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7
27
변호인 강태훈 027화
11장 원수를 위한 변호
판결문은 총 일주일 동안 시간을 두고 작성된다. 우배석과 좌배석. 재판장의 의견을 전부 수렴한다.
좌배석, 우배석의 경우 수명법관(受命法官)이라고 불린다.
재판장은 민간으로 따지자면 ‘부장판사’였고 이곳에서는 장기 군법무관이라 할 수 있다.
실상 ‘판사’라는 무거운 이름은 같았기에 재판장도 좌배석, 우배석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기 마련이었다.
법정에서의 대립만 대립이 아니었다.
실제 대립은 판결문을 작성하면서도 생겼다.
태훈은 4년 감형을 주자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반대로 한길두 대위는 감형을 주되 1년만 깎자. 라고 제시하고 있었다.
“요즘 총기 난사 사건이나 폭행, 자살, 살인미수 등의 사건이 많습니다. 이번을 본보기로 삼아 강하게 다스려 요즘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소 잠재워야 하지 않냐, 는 의견입니다.”
그렇다고 실상 침을 튀기며 죽일 듯이 싸우는 건 아니었다.
엄연히 두 사람은 동료였기 때문이다.
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김현실 병장은 평소에 후임들을 너무 억압하려고 했던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피의자인 이동배 일병 역시도 후임으로 해야 할 도리에 어긋난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언론을 보면 지금 현재 ‘이동배 일병’에 대해 손을 들어주는 이들 역시도 많은 편입니다. 너무 강한 실형은 오히려 군에 대한 ‘불신’(不信)을 줄 수도 있지 않나 싶어 우려됩니다.”
실상 선고에는 언론의 움직임도 영향을 꽤 끼치는 편이었다. 유승묵 재판장은 팽팽하게 의견을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보며 경청하고 있었다.
“재판장님, 수렴한 자료에 따르면 이동배 일병이 평소 선임들의 말을 귀담아듣지도 아니했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한길두 대위의 말이 끝나고 태훈은 다른 자료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렇지만 그 반대로 김현실 병장이 후임들을 괴롭혔다는 말 역시도 있었습니다. 변호인이 주장하듯, 이것은 ‘우발적’이었던 겁니다. 덧붙여 초소에 대한 군형법 제54조에 따르면 초병에게 협박 또는 폭행한 이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같은 초소 근무자가 가한 것은 쉬쉬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 합니다.”
“두 사람 말이 모두 맞아. 그렇지만 강태훈 대위의 말처럼 지금은 언론이 너무 심란해. 일단은 아직 며칠 선고일이 남았으니. 판례들을 더 찾아 자료를 보강해 보자고.”
“예, 알겠습니다.”
재판장의 말에 태훈과 한길두 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장이 나서고 두 사람은 책상 위로 쌓인 각종 책과 판례들을 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담배나 한 대 피우지.”
“예. 알겠습니다.”
한길두가 태훈보다 선임이었다. 더불어 그는 장기 군법무관 지원자였다. 요즘 법조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꾸준히 지원자가 증가하고 있는 편이다.
오히려 단기 법무관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다.
“아하하,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그렇다니까. 재판장님. 엉덩이에 이만한 점이.”
한길두 대위는 엄지와 검지를 모아 둥그런 빈 공간을 만들며 웃었다. 판결문을 작성할 땐 티격태격해도 좌배석, 우배석으로서 두 사람은 꽤 돈독한 편이다.
일주일 후 결국 재판장은 태훈의 의견을 더욱 수렴하여 8년의 검찰관의 구형 요구에 4년으로 선고하였다.
4년 정도면 무난한 정도였고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이동배 일병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말년에서 마주했던 ‘이 일병 공포탄 발포사건’은 4년 실형으로서 종결되었다.
* * *
드디어 전역하게 되었다. 30살.
훌쩍 나이를 먹어버린 태훈이다. 그만큼 이젠 신사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태훈이 군법무관으로서 활동하면서 얻은 것은 판사로서의 법정의 분위기를 판단하는 이성적인 판단력이었다.
어떤 이들은 판사들의 선고에 ‘인간 같지도 않은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형편을 무조건적으로 봐주고 죄를 지은 사람이 눈물로 호소한다고 하여서 그것을 봐준다면 대한민국의 법체계는 분명하게 무너진다.
판사로서의 이성과 냉정함을 배웠고 더욱더 한층 성숙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전역한 후 바로 다음 날 부모님을 찾아뵈어 인사를 드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당일 날은 누나와의 술 약속이 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누나에게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단지 있다면 영화 촬영 몇 편을 더하고 흥행작 하나를 더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되레 부모님에게 변화가 있었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고깃집이 ‘전북권 체인점’으로 탈모하였다.
물론 누나의 힘도 뒷받침하긴 했지만, 부모님의 힘도 컸던 편이다.
현재 전북권에 여섯 곳의 체인점이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부모님은 더 이상 누나의 도움이 없어도 상당한 수익을 거두시고 있었다.
이제 정작 안정을 찾아야 할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누나가 따라주는 술을 받아 들이켰다.
“크.”
“공익 변호사들 월급이 적다고 하던데.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 나 이렇게 보여도 군판사 출신이야.”
태훈은 퉁명스레 말했다.
그랬다. 태훈은 군판사 출신이다. 일단 이것만으로도 변호사로서는 누구보다 성공한 수준이었다.
누구도 그를 쉽사리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수익이 많진 않잖아.”
“뭐, 모아둔 돈도 있고.”
태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모은 돈이 있었다.
그러나 실상 얼마 되진 않았다.
한류스타인 강혜지가 보기엔 코웃음이 나올 정도?
“집 구해놨어.”
“또?”
“그리고 이거.”
태훈은 실상 더 이상 누나에게 손을 벌리고 싶진 않았다. 그때는 어린 20살이었고 막 서울에 상경했을 때였으니까 어쩔 수 없이 벌렸지만 말이다.
그녀가 내민 것은 부동산 계약서였다. 아예 태훈의 이름으로 구매를 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서울권이었고 신축 아파트였다. 10억 원 정도의 가격이다.
“무슨 집을 10억짜리를…….”
“나한테는 몇 푼 되지도 않네요. 이것도 있다.”
그리고 그녀는 또 하나를 내밀었다.
이번엔 통장이었다.
태훈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통장을 펼친 태훈은 그녀가 데뷔하면서부터 차곡차곡 모았던 돈을 볼 수 있었다.
자그마했던 금액을 모으기 시작했던 것이 해가 지날수록 돈이 불어났다. 그만큼 그녀의 수익이 커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통장엔 자그마치 3억 원이라는 돈이 들어 있었다.
“어떻게 용돈개념으로 모으다 보니 이 정도 모였네.”
“무슨 용돈을…….”
“난 가족이 어깨 늘어진 건 못 본다. 더군다나 변호사님인 동생이잖아? 누난 아직도 기억해. 누나가 만약 인성기업에 들어갔다면 이렇게 되지도 못했을 거야. 공익 변호사. 되게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라더라. 너 우리한테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 될 거라며. 누난 네가 자랑스러워. 돈에 연연하지 마. 알았어. 새끼야?”
“알긴 하는데…….”
태훈은 꺼림칙하면서도 계약서와 통장을 품에 넣었다. 수십 년을 알던 누나이다. 자신이 안 받는다고 해도 안 줄 사람이 아니다.
“알긴 하는데 뭐?”
“나 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누나. 결혼은 언제?”
태훈이 장난스레 씨익 웃었다. 그녀는 어색한 분위기를 싫어한다.
“……죽고 싶구나. 네가.”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언제까지 노처녀로 살려고?”
“노처녀…… 하아. 안 되겠다.”
그녀가 결국 숟가락을 집어 든다. 태훈이 손사래를 쳤다. 강혜지라는 사람이.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의 가족이라는 것은 평생 후회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백혈병으로 죽었던 누나는 이젠 아시아의 별이 되었다.
정말 남은 건, 강태훈의 인간승리다.
* * *
태훈이 1년간 한마음 법무법인에서 일하기로 한 이유는 이곳에 큰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인권’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마음 법무법인은 주로 성 소수자나 노동자, 장애인, 취약계층 등이 주 의뢰인이었다.
1년간 태훈이 여기에서 일하고 어쩌면은 뿌리를 박을 수도 있었고 더 넓은 변호사의 세계가 경험하고 싶다면 국선 변호사를 도전해 볼 수도 있었다.
아직 자신은 변호사로서는 턱없이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경험을 쌓는 것은 좋았다.
“태훈아, 너의 첫 의뢰인이다.”
한소원 변호사의 말이었다. 일단은 노동자에 관련한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한소원 변호사 밑에서 배우기로 하였다.
첫 의뢰인이라는 말에 태훈은 큰 관심을 보였다.
“어떤 사건이에요?”
“아파트에서 일하시던 청소부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대. 정확하게는 와봐야 할 것 같아.”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이 열렸다.
태훈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변호사로서의 첫 손님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시선을 틀었던 태훈은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저, 저 새끼 저거…….’
안으로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의 장기를 적출 했을 때 ‘도박’에 관련한 법률을 읊었던 눈 옆쪽에 칼자국이 났던 사채업자였다
그의 등장에 태훈은 쥐고 있던 볼펜에 들어가는 힘이 절로 세졌다.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반삭이었던 머리는 정돈하게 길러져 있었고 얼굴에 있던 상처도 없었다.
‘저 새끼가 여길 도대체 왜 온 거야.’
태훈으로서는 씹어 먹고 싶은 존재였다. 전생에서 자신을 괴롭히고 갈구하였던 이 중 한 사람이다. 좋을 리가 없었다.
“아까 전화 드렸던 사람인데요.”
그는 생소한 곳에 와본 사람처럼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아, 여기 강태훈 변호사님 앞으로요.”
한소원 변호사가 얼굴에 화색을 띄우며 태훈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태훈은 심장이 덜컹했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내 첫 번째 의뢰인이었어?’
태훈으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원수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태훈은 본인도 모르게 화가 치솟아 그 인사를 듣지 못했다.
“강태훈 변호사. 강태훈 변호사. 강태훈……!”
한소원 변호사가 작은 목소리로 부르다가 손으로 어깨를 툭 쳤다.
“아, 예. 뭐, 뭣 좀 생각하느라.”
정신을 차린 그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차분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가 누구든 일단 사건을 의뢰하기 위해 온 의뢰인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들어보았다.
* * *
사건을 들은 태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파트에서 청소부로 일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지하의 휴게실에 내려갔다가 감전사한 경우였다.
그는 턱을 어루만졌다.
“산재신청은요?”
“했습니다.”
다행히도 이미 산재신청은 했단다. 태훈은 대충 사건이 짐작되었다. 피해자 측은 아파트를 관리하는 회사를 통해 그에 합당한 피해보상금과 진실규명이 얻고 싶은 것이다.
“이야기는 해봤나요?”
“자신들 잘못이 없다고 하더군요.”
“흠.”
태훈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잘못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였다. 그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업무 도중 사망했다는 것은 회사 측에서 충분히 피해보상을 해줘야 할 여지가 충분했다.
물론 산재신청이 성립하여 매달 56% 정도의 본래 앞의 의뢰인의 어머니께서 받던 돈이 나오기는 할 테지만 피해자의 유족들은 대부분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 측의 잘잘못 인정이었다.
그리고 앞의 사채업자 강무혁 역시도 그러한 케이스였다.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함께 가보죠.”
일단 공익 변호사들은 ‘발로 뛰는’ 변호사들이었다. 태훈은 지체할 것 없이 몸을 일으켰다.
일단 앞의 강무혁이 자신에게는 원수와 같았지만 그래도 의뢰인은 의뢰인이었다.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자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