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30
30
변호인 강태훈 030화
투박하게 고정되어 있는 전선을 육안으로 확연하게 확인이 가능했으며 곳곳에 전기 테이프를 감은 흔적이 역력했고, 정작 그 전기 테이프마저도 헐렁하였다.
“가장 얻고 싶었던 증거입니다. 어머니께서 승소를 원하시는군요.”
태훈은 피식- 하고 웃으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무혁은 그의 말이 더욱 가슴을 후비는 것인지 눈물을 왈칵 흘렸다.
술자리가 마무리되어 택시에 그를 태워 보내려는데 완전히 취해서 몸도 가누지 못했다.
“끄으윽…… 엄마…… 보고 싶어…….”
“어휴, 내가 어쩌다.”
태훈도 취기가 조금 올라 이 상황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어쩌다가 이 사람의 의뢰를 맡게 되었을까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더 이상 엇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콩!
“억……? 흠냠…….”
태훈은 슬쩍 그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그는 정신이 확 든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가 다시 숙인다.
태훈은 몇 차례 꿀밤을 먹인 후 택시를 태워 그를 돌려보냈다.
* * *
오늘의 경우는 무혁이 바쁜 일이 생겨 참석하지 못했다. 변론기일. 의정부지방법원에 온 태훈은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부장판사이자 본 법원의 재판장 하태권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재판장님.”
“이거 강 변호사 아닌가.”
재판장인 하태권은 빙긋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실상 재판 전에는 사건을 맡은 담당자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것은 안 되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는 사항은 아니다.
단지, 실제로 그들의 입에서 그 재판에 관련한 이야기를 운운하면 처벌될 수 있다.
“이번이 첫 재판이라지.”
“그렇습니다.”
“공교롭게도 무서운 적수를 만났어.”
하태권 재판장은 15년 경력의 잔뼈가 굵은 이였다. 그는 안타깝다는 시선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막 사회에 뛰어든 변호사가 대한 법무법인의 변호사와 붙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싶었다.
반면 태훈은 여유롭다.
“무서운 적수가 어딨나요. 옳고 그름에 따라 다른 거지요.”
“맞는 말이긴 하네.”
하태권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훈의 얼굴에서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두터웠다.
기만인지 아니면 정말 자신감인지는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태훈은 전화를 받고 급히 법원 앞으로 나섰다.
택시에서 엄춘자 할머님이 내리셨다.
“제가 모시러 갔어야 했는데…….”
“에이, 됐다니까. 나 아직 그 정도 아니야. 변호사 양반.”
태훈이 직접 모셔오기 위해 전화를 드렸었지만 극구 거부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법원 앞에서 뵙는 것이다.
모시고 들어가려는데 주차장에 멈춰선 차량에서 이백호와 피고 측 증인 박중호 시설 관리자와 아파트 주민 이새환이 내렸다.
박중호 시설 관리자는 엄춘자 할머님을 보더니 흠칫하고 놀랐다.
반면 이새환이라는 사람은 천하태평이었다.
‘찔리는 게 있다 이거군.’
태훈은 흠칫하고 놀란 증인 박중호가 증인으로 섰음에도 무척 불안한 심리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태훈 자신 측도 마찬가지였다.
엄춘자 할머님은 연세가 꽤 있으셨으니까.
그러나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 * *
변론준비기일 당시 행하였던 그대로의 절차가 진행된다.
모든 절차가 끝난 후 재판장이 묻는다.
“원고 측 증인. 엄춘자 씨 참석하셨습니까?”
“예, 참석했스유.”
할머니는 엉거주춤 오른팔을 들고는 말했다.
“피고 측 증인 박중호 씨, 이새환 씨 참석하셨습니까?”
“예.”
“참석했습니다.”
“좋습니다. 증인 신문을 시작합니다. 증인 신문은 원고 측부터 시작하여 번갈아 진행합니다. 증인은 미리 준비한 서류를 통해 증언할 수 없습니다. 또한, 신문 시 양측 소송대리인은 제출한 증인 신문에 따라 신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내용에 없는 질문은 제한받을 수 있음을 유념해 주십시오.”
“예.”
“그럼 원고 측 증인 엄춘자 양 증인석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의 말에 엄춘자 할머니께서 조심스레 증인석 의자 앞에 섰다. 그 모습이 무척 불안했다.
재판장의 형식적인 질문이 오갔다.
“그럼 이제 증인선서서를 낭독해 주십시오.”
“네. 보, 본인은 야, 양심에 떠라…… 잘 안 보이는디…….”
‘큭.’
미간을 찌푸리며 잘 읽으려고 해도 보이지 않자 한 말에 이백호는 대놓고 조소를 흘렸다. 어쩔 수 없이 서기가 다가가 대신 읊어준다.
“할머님. 저를 따라 하시면 되요. 본인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본인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그녀는 서기의 안내 하에 증인선서서를 모두 낭독한 후 자리에 앉았다.
“원고 측 소송대리인 신문을 시작해주세요.”
“예.”
태훈은 그녀의 앞에 서며 빙긋 한 번 웃었다. 그녀는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그렇다고 법정에서 누구보다 강한 건 아니었다.
축 늘어지고 주름이 진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태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작한다.
“증인, 엄춘자 씨는 한움 건설사를 통해 아파트에서 청소부 일을 한 것이 5년이 된 것이 맞습니까?”
“맞지.”
“그렇다면 아파트의 복지 실태와 그에 해당하는 대우에 불편함이 있었다는 것 역시도 알 거라고 판단됩니다.”
태훈의 형식적인 질문에 그녀는 답했다.
“근로기준법에 의거한 제50조 1항. 1주간 근로시간을 휴게 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잘 지켜졌나요?”
“지켜지긴! 하루에도 10시간 12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한두 번씩 밖에 안 쉬었어.”
“그렇다면 제55조 고용주는 근로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한다는 항목도 어긴 거네요?”
“그런 법이 있었구만.”
“증인, 증인이 현재 받는 시급이 얼마입니까.”
“2,700원이었나…….”
“그렇군요. 최저임금법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으면서도 그렇게 강행군을 했던 것이군요. 평소 증인 엄춘자 씨는 시설물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된 게 있습니까?”
“많지, 세상에 창고가 없으니까 옥상 길목에 불필요한 것들을 쌓아놓기도 하고 내가 그것 때문에 관리자 박씨하고도 대판 싸웠어. 누가 하나 다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고. 근데 관리자 박씨도 월급쟁이니까. 어쩔 수…….”
“이의 있습니다. 증인은 현재 재판과 무관한 이야기로 본 재판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증인. 불필요한 언행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태권 재판장은 그녀의 나이를 고려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태훈도 그렇게 해달라며 코를 찡그리며 웃었다.
“그렇다면 증인은 피해자 이경자 씨의 죽음이 그의 부주의가 아닌 한움 건설사 측의 시설물 관리 미흡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군요.”
“그렇지!”
태훈은 증거로 스캔 파일을 열어서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고 더러운 지하실을 보여줬다.
방청객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증인, 증인은 이곳을 휴게실이라는 명목하에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던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지.”
방청객들은 황당하단 표정이었다.
저런 곳을 휴게실이라고 만들어놓다니.
스캔 사진으로 보아도 햇빛에 비친 먼지가 자욱했고 냄새가 심할 것 같았다.
“요즘은 개도 저런 곳에서는 안 키워.”
방청객에서 들린 소리였다.
“또 한 번 혼란스러운 언급을 하는 이가 있을 시 즉시 퇴정 조치하겠습니다.”
방청객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백호는 여유만만이었다.
그리고 태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태권 재판장은 태훈이 생각보다 부드럽게 재판을 이끌어가자 다소 놀랐다.
법무관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군판사로서 근무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변호사로서의 실력이 무척 수려했다.
여유로웠던 이백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추가 증거를 제출합니다.”
“추가 증거요?”
재판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휴대폰만 연결하면 됩니다. 재판장님.”
“인정합니다.”
실제 증거는 본래 변론기일 동안 준비해서 신청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기일 기간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으면 증거로 올릴 수 있었다.
태훈은 휴대폰을 노트북에 연결시켰다.
연결시킨 그는 사진첩에 들어가 사진을 클릭했다.
확대된 사진은 다 허물어진 전선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고가 났던 지하실에서 피해자 이경자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한 원흉입니다. 피해자 이경자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어갔던 그곳은 불이 꺼져 있었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엉성하게 고정되어 있던 전선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고 헐렁거렸던 전기 테이프는 바닥의 물을 막아내지 못하여 이러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제, 젠장……!’
증거 자료를 확인한 이백호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전선은 분명 사고가 난 후 바로 회수했다.
저 사진을 구했다는 것은 핵심적인 한방이었다.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피고 측 변호인. 반대 신문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백호는 반대 신문을 거부하고 자신의 증인 신문에 나섰다.
박중호 시설 관리자를 데리고 한 그의 신문은 시설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고, 그에 합당한 증거자료들을 제출하고 있었다.
더불어 그가 제출한 한 방은 ‘촉탁 근무각서’였다.
실상 아무리 부당한 계약서라고 할지라도 서명자의 날인이 들어가 있으면 그 힘이 큰 법이었다.
그러나 이백호는 심층 불안감에 싸였다.
아무리 계약서가 있다고는 하나 사고의 정황을 확실하게 판사에게 인지할만한 증거 자료를 태훈이 채택시켰기 때문이다.
태훈은 반대 신문을 펼친다.
“정말 증인은 시설물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십니까?”
“아, 그거야 내가 시설 관리자이니까 누구보다 더 잘 알지!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여!”
“알겠습니다. 그런데 증인 요즘 아파트 내 주위의 인테리어가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더군요. 어째서입니까?”
“그야 윗사람들이 하라고 시키니까…….”
“현장검증을 우려한 대처 아닙니까?”
“재판장님, 변호인은 지금 피고에게 유도적인 신문을 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원고 측 변호인 주의하세요.”
이미 태훈이 보였던 그 사진 한 장만으로 승패는 기울었다. 앞으로 더 중요한 건 얼마만큼의 금액을 더 받아갈 수 있는지 태훈이 싸우는 것이었다.
촉탁 근무각서를 무시할 만큼의 핵심들이 필요했다.
“사고가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선은 새로 교체되었습니다. 이게 현장검증을 우려한 대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태훈은 이번에는 자신이 첫 현장방문을 했을 때 찍었던 사진을 보여줬다.
자신이 이전에 제출한 사진과 확연히 다르다. 전선은 깨끗한 새것이었다.
“모두 피해자 이경자 씨 유족의 소송을 고려한 대처가 아니었습니까?”
“아, 아니야, 그런 거.”
“알겠습니다.”
그는 대답을 회피했지만, 재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항상 민사의 원고 피고 둘 중 하나는 거짓이지. 피고는 거짓이다.’
그것이 재판장의 판결이었다.
그러나 계속 지켜보았다.
아파트 주민 이새환의 증인 신문이었다.
서른 초반의 나이.
무직.
‘왜 난 네가 돈 받고 증인 서러 온 놈 같지?’
태훈은 픽 웃었다. 승소를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 하는구나. 그렇지만 제대로 된 변호 앞에선 오히려 태훈에게 그 힘을 실어줄 것이다.
무조건 잡아떼라고 했겠지.
그러나 그것은 쉬운 것만은 아니다.
증인 이새환은 복지가 좋아 보였다는 점. 또한, 한움 건설사 직원들이 나와 그들의 건강 여부를 묻기도 하였고 삼겹살 회식도 하는 것 같이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것도 여러 차례 봤다고 진술했다.
그 말에 엄춘자 할머니는 한마디 하셨다.
“XX럴…… 고기 한 번 먹어본 적이 없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