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33
33
변호인 강태훈 033화
이종탁의 누나인 이현지는 아름다운 외모였다. 누구보다 짙은 갈색 눈동자와 새하얀 피부. 알맞게 복선으로 뻗은 콧날과 갸름한 턱선. 또 다르게 보이는 차가운 표정은 그녀가 꽤 깐깐하다는 걸 알려준다. 그녀는 한마음 법무법인에 방문했다.
“어떤 일로 오셨죠?”
자리에서 일어나 팩스를 보내려던 민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태훈 변호사님 좀 만나 뵈러 왔는데요.”
“아, 저기 앉아계시네요.”
“저분이요?”
그녀는 태훈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현지의 나이가 올해 32살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변호사라고 앉아 있는 태훈은 자신보다도 더욱 어려 보이는 외모였다.
작은 불신(不信)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녀는 실상 많은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뛰어다녀봤다.
그러나 대부분 ‘승소’할 수 있다는 말은 했지만, 신뢰가 가질 않았다.
요즘 악덕 법무법인이 판을 치고 있었다.
‘승소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한 후에는 결국 ‘합의’로 이야기를 주도하는 변호사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 때문에 신문기사를 보고 아는 분의 소개를 통해 의뢰했더니 ‘인권 변호사’라는 족속들도 결국 그런 이들과 다를 것이 없나 싶었다.
“아, 의뢰인 이종탁 씨의 누나분 되시나요?”
강태훈은 벌떡 몸을 일으켜 예의를 차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젊은 변호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못마땅하게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 저희 대표님하고 이종탁 씨를 만나서 사건의 정황을 들어봤습니다.”
“어떨 것 같나요?”
그녀의 질문에 태훈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이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
그녀는 헛바람을 턱 뱉었다. 결국, 대답은 다른 이들과 똑같았다.
‘내가 젊긴 하지.’
누가 봐도 젊은 변호사보단 연륜이 묻어나는 변호사가 신뢰가 가긴 할 거다.
태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의 앞으로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내밀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지 짐작됩니다. 이 자료를 확인해주시죠.”
그녀는 자료조사를 확인했다.
“첫 장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는 점을 주목해 주세요. 제10조를 보시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밑쪽에 보시면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역시도 존재합니다. 제4조 인권의 존중. 이 법을 집행하는 때에 수용자의 인권은 최대한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죠. 맞습니까?”
“네. 그렇게 적혀 있긴 하네요.”
그녀는 양 팔짱을 낀 채 여전히 그저 법률만 읊는다고 여겼다.
“행정소송을 걸게 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예상한 그들의 변론은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32조 2항의 수용자는 위생을 위하여 머리 또는 수염을 단정하게 유지하여야 한다, 를 걸고넘어질 겁니다.”
“흐음, 네.”
그녀는 계속 이어지는 태훈의 말에 귀를 열어 경청했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몇 ㎝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단정’하라, 라고 명시되어 있죠. 이종탁 씨는 그 부분 관련하여 부당한 대우를 받았단 사실입니다. 맞나요?”
“네? 네, 네.”
그녀는 어느새 집중해 듣고 있다가 그의 물음에 아차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신(不信)이 어느 순간 가라앉고 정작 귀 기울이게 만들고 있었다.
“더불어 2007년 이미 교소도 내의 두발규정은 폐지된 상황입니다. 말 그대로 단정하면 교도소장이 깎으라고도 못 한다는 이야기이죠. 이것은 ‘재량권 남용’으로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그 때문에 현재 이종탁 씨에게 광주 교도소에서 내려진 징벌방 처벌을 ‘징벌처분취소 소송’을 통해 취소시킬 예정입니다.”
“아…….”
그녀의 깐깐했던 얼굴에서 잠시 희망의 빛이 보였다가 일순간 다시 감춰졌다.
“이제야 좀 믿음이 생기셨나요?”
태훈은 생글생글 웃었다. 그 웃음에서 순간 이현지의 얼굴로 붉은 기가 올라왔다.
불신(不信)이 믿음으로 변하는 순간. 자신 스스로가 민망해진 것이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젊고 잘 생겨서 그런 거죠. 뭐.”
태훈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현지는 그의 능청스러움에 작게 미소 지었다.
“커피 한 잔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아서요.”
태훈은 몸을 일으켜 커피믹스로 커피를 두 잔 탔다.
그 후 그녀의 앞에 한 잔 내려놨다.
“이 외에도 부당했던 대우를 이종탁 씨께서 살아오면서 받은 게 몇 가지 더 있을 거라고 판단됩니다. 그 부당했던 일들을 저에게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 * *
태훈은 이현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성 소수자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다른 남자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이종탁은 점차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차별’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반 아이들에게도 그러했다.
학교에서 왕따를 수시로 당했고 어떠한 교사는 장난스레 ‘종탁이는 치마를 입고 학교와도 된단다’라고 비난했다는 이야기 역시도 있었다.
그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심한 차별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일이 터졌다.
대학교에서 항시 그를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놀리던 이에게 우발적으로 커터 칼을 휘둘러 결국 수감자가 된 것이다.
“종탁이는 죽으려고 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참 우습죠.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인데.”
태훈은 이미 식어버린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움켜쥔 이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번 재판은 이종탁 씨의 권리만이 걸린 일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이현지는 고개를 들어 태훈의 얼굴을 보았다.
빙긋 웃고 있었다.
“항상 차별받았던 이종탁 씨가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도약할지도 모르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길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 네.”
이현지는 왜 자신이 앞의 젊은 변호사에게 갑자기 철썩같은 믿음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그의 말 하는 투가 일반 변호사들과 달라서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그의 눈빛은 깊고 고요했으며 많은 것을 담고 있기도 하였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태훈은 잠시 몸을 일으켰다.
그가 사라지고 자리에 앉아 있던 박문수 대표가 다가왔다.
“어때요. 이 친구 괜찮지 않나요?”
“아, 네.”
“보기보단 솜씨 좋은 친구입니다. 이런 누추한 곳에 몸담고 있지만 사법연수원에서도 손에 꼽혔던 실력을 가지고 있던 친구예요. 믿고 한 번 맡겨보시죠.”
“그, 그런가요?”
이현지는 다소 놀랐다. 사법연수원. 대한민국의 상위권 천재들이 모인 곳은 누구라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연수원에서도 1%의 성적을 가졌다는 남자 강태훈.
그는 다른 변호사들과 분명 다른 게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태훈은 몸을 일으키는 이현지를 발견했다.
“들어가시게요?”
“네.”
“내일쯤에 한 번 더 교소도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참. 이건 제 명함이에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그녀가 건넨 명함을 받은 후 태훈은 자신의 명함도 공손하게 건넸다.
한마음 법무법인이라는 상표 밑으로 ‘강태훈 인권 변호사’라고 적혀져 있었다.
‘인권 변호사라…….’
새삼 다른 변호사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받았다.
그녀가 나서고 태훈은 그녀의 명함을 확인했다.
상표로는 ‘제일 출판사’라고 적혀 있었다.
그 밑으로는 ‘이현지 CEO’라고 적혀있었다.
“응?”
태훈은 무심결에 봤다가 다시 휙 명함에 시선을 두었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대표님. 혹시 이종탁 씨의 누나께서…….”
“맞네. ‘왕자 같은 딸아이’ 작가님이시고 제일 출판사 대표이시기도 하지.”
“헙.”
태훈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왕자 같은 딸아이’라는 작품은 아들이지만 여성 성향을 가진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었다.
두 사람의 갈등구조와 여성의 성향을 가진 남자아이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했고, 어머니의 그런 아이를 키우는 심정 역시 감동적으로 전한 소설이다.
전국에서 200만 부가 팔려나갔고 해외에 판권이 팔려나가 20억의 수익을 얻었다는 국내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로서 영화사에 판권이 팔려 영화 제작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역시도 들었다.
‘다음에 뵈면 사인 받아야겠어.’
태훈도 많은 것을 느꼈던 책이다.
* * *
손홍준 교도관은 강태훈이라는 변호사가 조금 탐탁지 않았다. 보통의 수감자들에게 오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건성이었다.
그들은 수감자였으니까.
그렇지만 태훈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면서도 꼬치꼬치 많은 것을 캐물었다.
곧 손홍준 교도관은 이종탁에게 수갑을 채우고 그를 이끌었다.
“교도관님. 배가 아픕니다. 면회 끝나고 진찰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아요.”
‘귀찮은 녀석…….’
손홍준 교도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부터 배가 아프고 구역질이 난다고 하여서 의무실에 데려갔고 소화제를 먹였다.
그런데도 아프다고 해대니.
‘생각이 여자 같아서 몸도 허약하나.’
그는 끌끌 혀를 찼다.
“일단 면회 끝나고서도 계속 아프면 말해.”
그는 그렇게 답하고는 문을 열었다. 종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훈 변호사가 서울에서 먼 길까지 온 것은 알았다.
몸이 아파도 그와 면회는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디 안 좋아요?”
유리 벽 너머로 자리에 앉은 종탁의 얼굴색이 좋지 않자 뒤쪽의 면회실 교도관을 보았다.
“어제부터 속이 좀 안 좋다고 해서 소화제를 복용시켰습니다.”
‘단지 속이 안 좋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종탁이 고개를 저었다.
“예. 그럼 간단히 진행 방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은 광주 교도소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겁니다.”
그는 뒤쪽의 면회실 교도관을 슬쩍 보았다.
역시나 자신들 교도소를 상대로 소송한다니 시선이 탐탁지 않았다.
“그리고 이종탁 씨께서 이제까지 교도소 내에서 받았던 차별에 대한 것 하나하나도 지적하려 합니다. 혹시 그 전에 있던 교도소에서도 이렇게 강압적인 두발규정이 존재했나요?”
“아니요. 이곳에서만 유독…….”
이종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홍준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종탁은 이곳 광주 교도소에서 더욱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있었다.
교도관들뿐만이 아니었다.
수감자들도 종탁을 기피하고 욕하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교도관들이 제대로 통제는커녕 그들도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종탁을 대놓고 무시하니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태훈이 소송에 제기할 방법 등을 가르쳐주었다. 시간이 조금 남았다.
“참 누나분께서 아주 유명하신 작가님이시더군요.”
“저 때문에 처음 그 소설을 썼어요.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금 무너뜨리기 위해서죠. 그렇지만…….”
종탁은 씁쓸한 모습이다. 200만 부가 팔려나갔다는 것은 최소 국내에서는 300만 명 이상의 이들이 읽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누나한테는 무척 고마워요. 절 미워할 법도 한데…….”
태훈은 그의 말에 작은 웃음만 지었다.
누나는 젊은 나이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출판사를 이끄는 대표이지만 정작 동생이란 자신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기에 부끄러운 것이다.
“동생 미워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태훈의 말이 어느 정도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크읍.”
종탁은 일순간 계속 쿡쿡 찌르던 느낌이 더욱 강렬해지자 얕은 신음을 흘렸다.
손홍준 교도관이 다가왔다.
“뭐야, 왜 그래?”
그 통증은 갑작스럽게 크게 증폭되고 있었다.
“이종탁 씨 괜찮아요?”
태훈도 기겁을 했다. 그가 결국 바닥으로 쓰러져 내리려 했다. 교도관이 그를 지탱하는 게 보였다.
유리 벽 너머의 일이라 태훈은 속이 타들어 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아, 하아.”
그는 거친 고통에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의사 불러요. 어서요!”
태훈은 다급하게 교도관에게 외쳤다.
손홍준 교도관은 어제 소화제를 처방해줬던 것이 생각났다. 졸린 눈의 의무실의 의사는 종탁에게 ‘소화불량’을 진단하고 소화제를 줬었다.
내심 홍준도 졸린 눈을 비비던 그가 걸리긴 했었다.
그것이 오히려 화가 된 것이다.
종탁의 고통에 찬 신음 소리는 증폭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