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37
37
변호인 강태훈 037화
그는 못 본 사이에 많이 야위어 있었다.
“좋죠.”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백호는 그에게 다가와 한 개비를 건네 불을 붙여줬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한성호 그 친구가 가르쳐 주던가.”
태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임으로 답했다.
자신의 선에서 처리한다. 라는 의미가 해고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난 고향이나 내려가서 조그마한 법무법인 사무소라도 하나 차리려고. 다 인과응보(因果應報)지.”
그는 못 본 사이에 말 하는 것에서 태훈을 배려하는 것이 묻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한탄했다.
자신의 담배에도 불을 붙여 깊게 빤 그는 ‘후-’ 하고 뱉었다.
“어머니 혼자서 날 키우셨네. 난 그런 집이 싫었어. 가난은 죽어도 싫었거든. 그래서 미친 듯이 공부했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지. 모든 걸 가진 것만 같았네.”
그는 작은 웃음을 지으며 태훈을 보았다.
“그리고 대한 법무법인에 들어갔을 땐 소리까지 질렀을 정도였지. 너무 행복했지. 비싼 외제 차도 몰고 좋은 오피스텔도 사고 어머니 집도 한 채 장만해 드리고.”
그가 말하는 한마디가 과거 자신의 일이었던 것 같아 경청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한성호 그 친구에게 그런 일을 당하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
그의 한숨은 깊고 진했다.
“내가 왜 이렇게 앞만 보았을까. 예전에는 남을 위한 변호사가 되자고 했는데…… 어느새 나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괴물이 되어 있던 거지. 돈에 환장했던 거야.”
태훈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날 가장 원망하게 만든 게 무엇인 줄 아나?”
태훈은 묵언으로 답했다.
“자네 같은 변호사가 세상에 있다는 것이었어. 나처럼 돈이 아닌 ‘진실’을 추구하는 변호사. 내가 참 한심해지더군.”
그는 다 타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자네가 인성기업 반도체 소송 건을 맡았다고 얼핏 들었어. 이미 대한 법무법인이 난입한 건 알 테지.”
이백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쉽지 않을 거야. 인성기업은 가장 중요한 대한 법무법인의 고객이야. 소송 하나라도 걸리면 5-8명의 엘리트 변호사들이 자료 수집을 진행하고 판례들을 찾고 허점을 찾아내지. 특히나 한성호 변호사가 이 사건을 맡아버렸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기기 힘든 싸움이 될 거야.”
태훈은 그의 말에 픽- 하니 웃고는 돌아봤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다른 사람들은 이길 수 없다고만 말하던데.”
“뭐, 그런가.”
이백호는 손가락으로 얼굴을 긁으며 픽 웃었다.
“사실 내가 인성기업 건 담당자였었네.”
“……그렇습니까?”
태훈은 그를 돌아보았다. 이백호는 빙긋 웃고 있었다.
“자네도 알겠지. 현행법상 인성기업은 노동자들에게 사용되는 위험물질에 대해서 공표를 해야 해. 그런데 우스운 건 인성기업의 계약서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지.”
태훈은 그의 말을 하나도 놓칠 수가 없었다.
“‘기업기밀 유지를 위하여 사용 화학약품은 발설하지 않는다.’ 실상 말이 안 되는 걸세. 현행법상으로 따지면 알려야 하지만 그들은 기업기밀의 유지를 토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있고 법원도 자연스럽게 인성기업이란 이름 때문에 묵언하고 있는 실정이야. 자네는 이 부분을 공략해야 해. 알려주지 않는 기밀 유지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거지.”
“그렇군요. 그런데…….”
“왜 그런 것을 가르쳐 주냐고?”
태훈이 말끝을 흐리자 이백호가 픽 하고 웃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몇 발자국 앞으로 가더니 한마음 법무법인 사무실을 돌아봤다.
“이곳은 사람 냄새가 나거든. 근데 대한 법무법인은 그게 아니야. 나도 사람인지라 내려가기 전에 한 방 먹이고 싶거든. 그 새끼들 똥 씹은 표정 한번 보고 싶어. 내가 짐을 챙기러 갔는데 눈길 한 번 주지도 않더군. 이백호 변호사님 변호사님 하면서 아양 떨던 녀석들도 말이야.”
태훈의 얼굴로 작은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가 도와준다. 더불어 인성기업의 백혈병 소송 관련한 담당자였었다.
“이거 커피 한 잔 안 줄 건가?”
“들어오시죠.”
태훈은 그를 안내했다.
문을 열고 함께 들어가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백호에게 꽂혔다.
“이야, 이거 안녕들 하십니까.”
“이백호 변호사.”
박문수도 몸을 일으켜 의아한 표정이었다. 다른 변호사들은 그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한마음 법무법인 이들은 대체적으로 이백호를 싫어했다.
특히나 강민후 변호사가 가장 싫어한다고 할 수 있었고 박문수 대표 역시도 그의 방문은 달갑지 않았다.
“아, 이거 싸우러 온 게 아니라 도와주려고 온 겁니다. 도와주러.”
그는 능청스럽게 웃었지만, 여전히 경계의 눈빛은 풀리지 않았다.
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도와주러 온 겁니다.’
그제야 어느 정도 시선이 거둬졌다.
이백호는 태훈이 타준 커피로 한 모금 입을 축였다.
“이거 빨리 알려주고 사라져야겠는데. 살벌하구만.”
그는 장난스레 웃었다.
자연스레 한 마음 법무법인 이들은 이백호의 목소리에 귀를 집중했다.
“환경부의 2002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는 총 97종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고 20종이 유독성 물질이야. 그리고 이중 주목할 한 방은 이거야. 이건 어디에도 없는 정보이지.”
이백호는 눈을 반짝였다.
태훈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를 보았다.
“하이넥 반도체 업체도 잘 알 거야. 하이넥 반도체 업체에서 하류 수계를 하는 복하천이 있어.”
그는 커피 한 모금으로 다시 마른 입안을 적셨다.
“그 복하천엔 아주 많은 붕어가 살고 있지. 근데 그 복하천은 전국에서 생식세포 교란 현상이 가장 심각한 곳 중 하나로 꼽히지. 이게 무슨 소리일 것 같나.”
“기업 비밀을 유지하고. 아니라고 발뺌하지만 결국 화학물질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태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그런데도 아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아. 하이넥은 분명 인성기업과 달라. 그렇지만 같은 반도체를 만들고 전혀 다른 화학물질을 사용한다고 볼 수 없어. 또 하이넥에서도 역시 백혈병 환자들이 나타나고 있지. 대기업의 힘에 의해 이 사실은 밝혀지지 않은 거야.”
황금알 같은 정보였다.
태훈에게로 승리할 수 있다는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자네는 산업 안전보건 연구원에 조사 자료를 요청하게. 이미 재작년에 우리나라 반도체 공정과정의 불합리한 증거자료들을 가지고 있을 거야.”
“그렇군요.”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 돌리기 위해 커피 한 잔 다시 목으로 축이려던 이백호는 어느덧 주위로 몰려든 한마음 법무법인 이들을 보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거 정말 답답해서 빨리 나가든가 해야겠군요.”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야, 계속하게. 정말 자네가 우릴 도와주러 오다니.”
박문수 대표는 예상외의 그가 내놓는 자료들에 말했다.
“물질적인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이 늦은 나이에 깨우쳤을 뿐입니다.”
이백호는 픽 하고 웃었다.
“어째서 이 사실들이 알려지지 않았나 싶겠지. 분명 많은 이들이 이 건을 위해 싸웠는데.”
태훈은 확실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이들이 싸웠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정작 얻어낸 이는 없었다.
더불어 그들도 변호사를 대동하고 싸우지 않았겠는가.
“실상 반도체 업체 생산 라인의 대부분은 힘없는 사람들이야. 아무리 복지가 좋아도 결국 ‘공장직’으로 분류가 되니까 돈 많이 준다고 해서 온 사람들이지.”
확실히 일리가 있다.
“그 사람들이 변호사를 고용하려고 한다 한들 변호사들이 오히려 선임을 거부할 정도지. 누가 인성기업과 싸우려고 하겠나. 또 악덕 변호사들은 선임료 받아먹겠다고 선임되어도 결국 지들끼리 짜고 치는 거지. 한 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어.”
그는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생각보다 바르고 이 사건에서 열정적인 변호사가 한 사람 있었지. 내가 해결했던 일이지만…… 나도 그 사람이 워낙 캐고 다녀서 어지간히 애를 먹었지. 어떻게 처리했는지 아나?”
모두가 숨죽여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3억으로 매수했어. 대기업이 패소한 이름값에 비하면 껌값이지. 돈으로 그 변호사를 내가 직접 샀네. 결국, 또 패소. 가지고 있던 정보 전부 파기시키고. 만약 그 변호사가 돈에만 눈이 안 멀었어도 처음으로 승소를 가져갔을 수도 있었지.”
“쓰레기네…….”
강민후 변호사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가 아차 하며 입을 막았다.
“흠? 지금은 그래서 도와주러 왔지 않나. 지난 일이야. 어차피.”
이백호가 퉁명스럽게 그를 보았다.
그의 오래전의 수치였다.
“사실 복수하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자네에게도 기대가 커. 내가 1급 정보들을 주었다지만 그래도 상대는 인성기업이고 더불어 한성호 변호사야. 나 같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람이지.”
그는 자신이 챙겨온 서류가방에서 묵직한 파일 첩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이건 노다지일세.”
태훈은 파일첩을 열어 쭈르륵 흩어보았다. 전화번호, 집 주소, 성별 등이 나열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이걸 버리지 않고 집에 보관하고 있었네. 소송을 제기했던 사람들. 그리고 병에 걸렸던 이들을 두었던 가족들. 혹은 피해자들.”
이백호가 준 것은 태훈에게 무척 유용한 물건이었다. 그것을 건네받은 태훈은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았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는 박문수 대표에게 살짝 묵례를 취했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게. 상대는 인성기업이야.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그렇지만 겪어보니 알겠어. 돈은 사람 위에 설 수 없네. 자네도 그 점을 기억하게.”
이백호는 빙긋 웃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다가 멈췄다.
“저번엔 미안했네.”
그는 강민후 변호사에게 고개를 조금 숙여 보였다. 그가 훨씬 선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간 이백호가 상당히 많은 것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길 수 없는 게 아니야.’
이백호가 주고 간 것은 꽤 큰 것들뿐이었다.
우연히 많은 것을 얻었다.
* * *
태훈은 이백호의 조언처럼 산업 안전보건 연구원에 자료조사를 촉구했다. 그들이 넘겨준 자료를 검토한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어.”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이백호가 대한 법무법인의 사주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이라면 한성호 역시도 승소를 위해선 뭐든지 다 하는 변호사였으니까.
그러나 답변서에는 반도체 업체를 보유한 3사의 대기업에 대한 조사결과가 나타났다.
– 반도체 공정과정에서 분명하게 백혈병이나 뇌졸중, 암 등 다양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이 부산물로 발생하며 비소의 경우 기준치의 4배를 초과합니다.
그다음으로 확인한 것은 태훈이 따로 조사한 복하천에 관련한 것이었다.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복하천은 확실히 생식세포 교란 현상이 가장 심각하다고 꼽히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하이넥의 압박으로 인해 대부분의 기사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단, 블로그 등은 몇 개 올라가 있었다.
과거 신문기자였던 이가 올린 블로그에는 확정 지은 말이 아닌 ‘복하천의 붕어 생식세포 교란 현상.
하이넥 반도체 업체로 인한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제목이었고 그에 관련한 설명 글이 이어져 있었다.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그와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 기사를 중점적으로 파헤치려다가 신문사에서 해고당한 케이스라고 밝혔다.
현재는 부모님 일을 도와주고 있는 서른다섯의 남성이었다.
“저도 인성기업 이놈들 벼르고 있었는데. 제가 블로그에는 ‘의혹’이라고 적었지만 확실합니다. 이 복하천 붕어들의 생식세포 교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하이넥 반도체 업체로 인한 것이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상식적으로 이 복하천의 붕어들이 생식 교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습니다. 이곳에 하이넥 반도체 업체가 들어선 것은 정확하게 2002년도였습니다.
본래 1급수였던 이곳이 단 2년 만에 전국 최악의 하천으로 변모해버린 거죠. 절 보세요.”
그는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이 사건 하나 파헤치려다가 부당 해고당했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그는 화가 난 듯 주먹을 말아 쥐었다.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혹시 증인으로 서주실 수 있을까요?”
“아, 그럼요!”
그는 자신만 믿으라는 기색이었다.
“죽일 놈들. 사람 목숨을 가지고.”
그는 잔뜩 심술이 난 표정이다. 태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 * *
그다음으로 태훈은 피해자들을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패소 경험이 있거나 아직도 시위나 모임 등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 이들이었다.
태훈은 이백호가 요약해 준 연락처의 이들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임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도 이백호가 이번 싸움을 위해 넘겨준 자료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태훈은 피해자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 아픈 하소연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22살. 임혜연. 백혈병으로 사망. 부모의 하나밖에 없던 소중한 외동딸이었다.
서른여덟 살 임해석. 뇌졸중으로 사망. 아내가 있었고 첫째 아들이 있었으며 둘째 딸을 아내가 출산한 후 일주일 만에 사망.
스물다섯. 김지윤. 폐암으로 사망. 할머니와 동생을 이끌던 소년·소녀 가장이었고 지극했던 효녀로 알려졌었다. 폐암 선고 후 반년 만에 사망.
그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태훈으로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구보다 가족 잃은 슬픔을, 특히나 대기업의 횡포로 인한 아픔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태훈은 오늘도 어김없이 음료수 세트 상자를 들고 꽃다웠던 나이의 딸아이를 잃은 엄기태 씨를 뵙기 위해 식당 앞에 섰다.
“후!”
그는 심호흡을 크게 쉬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예. 지금 엄기태 씨를 만나러 식당에 막 들어갔습니다.”
그가 들어가고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검은색 차량의 창문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