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38
38
변호인 강태훈 038화
14장 인성기업. 권선징악(勸善懲惡)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 그래? 벌써 여섯 명째군. 대부분이 소송했던 경험이 있거나 인성기업에 위로금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야. 누군가 정보를 줬다는 거지. 알겠네. 한 시간 뒤에 가도록 하지.
남성이 전화하는 이는 다름 아닌 한성호 변호사였다. 그리고 태훈의 뒤를 캐는 이 역시 대한 법무법인의 변호사였다.
전화를 끊은 남성은 식당을 주시했다.
* * *
‘아름이 백반’이라는 가게로 들어온 태훈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허름하고 낡은 식당이었다.
“식사 드릴까?”
늙은 노부인이 물었다. 태훈은 고개를 저었다.
“연락 드렸었던 강태훈 변호사라고 합니다.”
“아이구, 변호사 양반이구만!”
“변호사 친구가 왔어요?”
목소리를 듣고 주방에서 배가 산만하게 나오고 머리에 조리모를 쓴 남성이 나왔다.
조리모를 조심스레 벗은 그는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그의 얼굴로는 활기가 컸다. 아직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태훈을 반겨주고 있었다.
앞의 남성은 반도체 업체에서 병이 발병된 이들의 모임을 이끄는 남성이었다.
8년 전 그 사건에 의해 금지옥엽 같은 딸아이를 잃은 이이기도 했다.
“식사는 하셨나?”
“아, 괜찮습니다.”
“아니지, 그게 아니야 굶고 다니면 안 되지.”
이 식당의 주인이자 핵심적 인물이 될 엄기태는 고개를 저으며 주방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태훈은 무안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을 뿐이다.
* * *
밥을 먹으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몇 가지 자료들 역시도 가지고 있었으며 모임을 이끄는 사람인만큼 그들과 연락이 닿는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이번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서주셨으면 합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어? 내가 아니면 누가 나가겠어.”
그는 가슴을 팡팡 쳤다.
“아직도 우리 딸아이가 숨넘어갈 때만 생각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길 수만 있다면. 내 이 심장도 내놓겠네!”
“이길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도 자네는 양반이구만. 다른 변호사들은 자료조사니 뭐니 대충 흘려듣고 선임료만 비싸게 받아먹더니. 내 제대로 된 변호사도 만나지 못했어.”
그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태훈은 말없이 그의 푸념을 들으면서 물 잔을 비웠다.
증인으로 나오신다는 확답을 들었다.
“그리고 아버님. 또 한 가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태훈이 하고 싶은 말은 태산같이 많았다. 그의 조심스러운 말에 엄기태는 귀를 기울였다.
* * *
“잘 먹고 갑니다.”
식사를 마친 태훈은 지갑을 품에서 꺼내려고 했다. 엄기태가 손사래를 쳤다.
“무슨 계산이야. 그냥 가시게.”
“아니, 그래도 밥을 먹었으니…….”
“에헤이. 이 사람이.”
엄기태는 죽어도 받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결국, 태훈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선 태훈은 자신의 차량에 올라 유유히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벤츠 차량이 식당 앞에 도착했다.
벤츠로 대한 법무법인의 직원이 빠르게 다가갔다. 창문이 열렸다.
“오셨습니까.”
“강태훈은.”
“다른 친구가 대신 붙었습니다.”
“내리시죠.”
한성호의 옆에는 박대민 팀장 역시도 함께 타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차량에서 내렸다.
“강태훈이라는 변호사가 많은 걸 캐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성호 변호사님께서 이런 제안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누군가 분명 정보를 주었습니다. 강태훈 변호사의 동선이 저희가 가지고 있던 사람들 자료와 일치합니다.”
“그래도 역시 대한 법무법인이군요.”
박대민 팀장은 빙긋 웃었다.
“비꼬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단지 너무 철저하셔서요.”
그의 ‘철저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는 생각이 담긴 말이기도 했다.
곧 두 사람이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식사하시게?”
늙은 노부인의 물음에 박대민 팀장이 고개를 숙였다.
“저 인성기업에서 나왔습니다. 어머님.”
“이이. 인성기업!? 이노옴드을!”
늙은 노부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밖에서 이 소리를 들은 엄기태는 성난 모습으로 주방에서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당신들 뭐야!”
한성호와 박대민은 그의 성난 모습에 당황했으나 곧 빙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인성기업 박대민 팀장이라고 합니다. 일단 정식으로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박대민 팀장은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엄아름 양의 일은 유감입니다.”
엄기태는 그들의 사과에 당혹했다. 인성기업에서 이렇게 호의적으로 나온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리를 요청했고 일단은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여겼다.
그들은 사과의 말을 하더니 곧 식탁 위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1억입니다. 저희 기업에서 드리는 위로금입니다. 저희도 진심으로 엄아름 양의 일은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억이란 말에 엄기태는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한성호는 삐뚤어진 안경을 맞췄다.
“콜록콜록!”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콩나물을 다듬는 노부인은 계속 기침을 토해냈다.
“엄기태 씨.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어머님 역시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혹여 강태훈이라는 그 변호사가 승소한다고 하여서 엄아름 양의 일이 산재승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떨리는 손으로 엄기태의 손은 봉투로 손이 뻗어지고 있었다.
한성호는 빙긋 웃으며 물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 * *
변론준비기일 재판이 내일모레 있었고 오늘의 경우는 한재희가 수술에 들어가는 날이었다.
수술을 하면 더 이상 그녀의 웃는 얼굴 역시도 몇 개월간은 보기 힘들어질 것이었다.
수술을 하게 되면 그녀는 격리된 병실에 홀로 있어야 한다. 간호사나 의사 역시도 쉽게 들어갈 수가 없는 병실이었다.
그녀는 정말 햇빛이 들어오는 ‘독방’에 갇히게 되는 셈이었다.
“변호사님. 여기.”
수술 한 시간 전 태훈도 재희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노트북 통째로 태훈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그 안에 ‘소설자료’라는 이름의 폴더가 있을 거예요. 저 완결 했어요. 꼭 좀 이현지 대표님한테 보여주세요.”
“그래, 좋은 결과 기대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수술 잘 받아야 해.”
태훈은 빙긋 웃었다. 이미 이현지에게는 사전에 전화를 했었다. 이현지는 태훈의 말에 호의적이었다.
자신이 직접 작품을 검토해보고 싶다는 의사까지도 밝혔다.
재환은 안쓰러운 눈으로 재희를 보고 있었다.
“아빠, 그런 식으로 보지 말라니까.”
“아아, 그래.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재환은 힘겹게 웃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수술이었다.
혹여 수술이 잘 끝난다고 해도 완치될지는 미지수였다.
아버지로서는 무척 답답할 것이었다.
“빨리 나아서 친구들하고 쇼핑가고 싶다.”
한재희는 이불을 끝까지 뒤집어쓰고는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자신이 살 수 있는 걸 확신하는 사람처럼.
그러나 정작 그녀가 쏙 들어간 이불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서. 아직 어린 재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일이지 않을까 싶다.
* * *
간호사들은 재희를 이동시키고 있었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 곧 놓여질 재희는 묵묵히 옆을 지키는 재환과 태훈을 보면서 미소 짓고 있었다.
“아빠, 강 변호사님. 나 수술 잘 되겠지?”
“……그래.”
재환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면서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태훈은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될 거야.”
“헤. 고마워요. 변호사님.”
“보호자 분. 이제 물러서 주세요.”
어느덧 수술실 앞에 도착했다. 마스크를 쓴 간호사의 말에 재환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며 침대를 놓지 않고 있었다.
“잠깐만요, 우리…… 우리 예쁜 공주님 얼굴 좀 더 보고.”
그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재희의 눈으로 결국 눈물이 터져서 흐른다.
“아빠가 그러면 내가 더 무섭잖아.”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보면서 태훈은 고개를 돌렸다.
간호사들도 잠시 부녀의 이야기를 기다려 주었다.
“아빠, 나 있잖아. 꼭 나아서 아빠랑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래. 우리 재희 나으면. 여행도 가고 그러자. 응?”
재환의 눈에서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제 그만 들어갈게요.”
다시 한번 이어진 간호사의 말에 그제야 재환은 겨우 그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문의 틈으로 재희가 애써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려 V자를 만들어 보인다.
재환은 힘겹게 웃었다. 수술실로 그녀가 들어가고 초록색이었던 불빛이 빨간색으로 변했다.
* * *
수술시간은 꽤 걸렸다. 태훈은 잠시 바깥으로 나왔다. 그는 이현지와 통화하고 있었다.
– 메일 주소 보내 드릴 테니 그쪽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네.”
이현지의 말에 태훈은 메일 주소를 받아 적은 후 병원으로 들어왔다.
무선 인터넷을 잡은 그는 그녀의 메일 주소에 ‘위풍당당 소녀’라는 한글 파일의 작품을 전송해주었다.
전송해 준 후 그는 다시 수술실 앞으로 갔다.
재환은 물 한 모금. 담배 한 모금 입에 대지도 않은 채 여전히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태훈도 자연스럽게 그 옆에 앉았다.
양 손가락을 깍지 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몸은 계속해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태훈의 손이 그 위로 겹쳐졌다.
“잘 될 겁니다.”
“……네. 내일모레. 재판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변론준비기일이라 크게 상관은 없어요. 제가 채집한 자료가 무엇인지, 증인은 누구를 데려올 건지를 말하는 자리일 뿐이거든요.”
태훈은 그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말해주었다.
그는 산재신청의 승소를 얻고 싶을 거다.
자신의 딸아이를 죽음의 문턱으로 밀어 넣은 그들에게. 어쩌면 그런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을 테지만 사과 한마디라도 진심으로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꼭 이겨주십시오.”
“네.”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꽤 시간이 지났다.
수술실 문이 열리0면서 초록색 가운을 입은 의사가 마스크를 걷어냈다.
“한재희 씨 보호자 분 되시죠?”
“네.”
재환과 태훈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도 골수이식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재환의 얼굴로 화색이 돌았다.
“아시겠지만 재발의 위험이 존재하고 실제로 골수 이익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고 해도 생존확률은 희박합니다. 또 항암치료가 진행되면서 물이나, 음식들을 밀어내게 될 거예요. 많이 힘든 싸움이 될 겁니다.”
일단은 살았으나 앞으로 더 지켜봐야만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살았다는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태훈도 옆에서 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 *
변론준비기일 당일 날이 되었다. 태훈은 이현지의 전화를 받을 수가 있었다.
이현지는 무척 놀란 목소리였다.
– 정말 21살이라고요?
“네.”
– 국문학과 학생이 아니라는 거죠?
그녀의 몹시 놀란 목소리에 태훈은 작은 웃음이 맺혔다. 생각보다도 재희의 재능이 컸던 듯싶었다.
– 재밌게 봤어요. 국문학과 학생도 아니었는데. 이 정도의 글을 쓴다는 건 다듬기만 한다면 훌륭한 작가가 될 것 같아요. 지금 저희 쪽 기획부에서도 무척 호의적인 반응이에요. 한재희 양이 허락만 한다면 출간할 예정이에요.
“그래요?”
태훈은 출간한다는 말에 무척 밝은 미소를 지었다. 재환의 옆을 지키느라 정작 자신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생각보다도 그녀가 가진 잠재력이 컸던 듯싶었다.
– 꼭 만나보고 싶어요. 수술 경과가 좋았으면 하네요.
이현지는 한편으로는 재능 있는 여자아이가 이렇듯 큰 고난을 겪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운 목소리였다.
그녀는 언제 한 번 병원에 가겠다는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실상 병실로 들어가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녀의 방문이 재희에게 큰 힘이 될 듯싶었다.
이 소식을 태훈은 재환에게 알리기 위해 재환의 번호로 전화를 걸려고 했다.
“무슨 좋은 일 있습니까?”
달갑지 않은 얼굴들이 다가왔다.
중앙에 한성호 변호사가. 양옆으로는 그의 부하 변호사들이 태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