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44
44
변호인 강태훈 044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그는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천천히 입이 열렸다.
“네. 제 누명 벗겨주세요. 그 두 사람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태훈은 빙긋 웃었다. 김창영으로서는 무척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었다. 억울하게 수천만 원을 ‘사랑’이란 명목으로 쥐여 주고 그냥 넘어간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뒤늦은 식사를 시작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창영은 여러 번 목이 메는 것인지 계속 물을 축였다.
식사를 끝내고 나왔을 때, 유명호와 태훈이 그를 택시에 태워 배웅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김창영 씨께서 받았던 피해 모두 다시 찾아드리겠습니다.”
“네.”
창영은 힘겹게 웃으며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유명호는 답답하다는 듯이 넥타이를 풀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참 그러네. 내가 사랑했던 여자를 의심하면서도 사랑한다는 감정으로 일부러 묵언하고 감추고 어쩌면 지켜준 거지.”
사건이 가장 커진 이유 중 하나는 김창영의 ‘묵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나쁘게 생각하자면 자신을 끔찍하게 아꼈던 남자를 이용한 임의진은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자네 어떻게 이 모든 걸 일주일 만에 수집한 거지?”
유명호는 몸을 틀어서 의아한 표정으로 보았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던 것처럼. 실상 일주일 만에 이 정도 자료조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유명호의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놀랐다.
그가 건네준 증거자료는 전혀 소홀하지 않았으니까.
“밤낮으로 뛰어다니니까 얻을 수 있더군요. 하음, 잠 한숨 못 잤습니다.”
태훈은 기지개를 켜면서 눈치를 살폈다. 실상, 이 정도 증거는 최소 한 달은 수집해야 했다.
증거를 자신이 찾는다고 항상 확실한 증거만 찾아지는 것도 아니었고 허탕을 치는 경우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괜스레 찔려서 등 뒤로 식은땀이 삐질 났다.
“끝까지 수고해 주게.”
어떤 방식으로 그가 수집했던지 생각해 보면 중요하진 않았다. 유명호는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는 먼저 차량에 올랐다.
“들어가세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차량이 출발했다. 태훈도 자신의 차량에 올라 시동을 건다.
* * *
태훈은 대검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를 받은 대검찰청 측은 기존의 사건 담당 검사가 아닌, 다른 검사를 배정하였으며 그는 태훈에게 방문을 촉구했다.
서울중앙지검 검찰청에 방문한 태훈은 이번 건의 담당 검사가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네 사람 정도가 안에 있었는데, 명패에 ‘이재승 검사’라고 적힌 곳에는 중년의 신사가 그를 반겨주었다.
“강태훈 변호사시죠?”
“네.”
“반갑습니다. 이재승 검사라고 합니다.”
이재승은 빙긋 웃었다.
“오지훈 실습생. 여기 커피 두 잔만.”
“네, 알겠습니다!”
사법연수원에서 실습을 나온 남성은 크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이는 태훈과 비슷해 보였다. 그는 커피 두 잔을 타오더니 태훈을 단번에 알아봤다.
강태훈 변호사.
사법연수원에서도 소문이 아직 돌고 있었고, 더불어 사건마다 두각을 드러내는 변호사.
연수생인 오지훈에게는 그가 우상이었다.
가끔 연수원 교수들이 장난으로 ‘강태훈이라는 연수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말이야.’ 하고 운을 떼었다.
사법연수원 최고의 엘리트. 군판사 법무관 출신.
그러나 원장이 제안한 당찬 자리도 벗어던지고 인권 변호사가 된 남자.
실상, 돈이 아닌. 진실을 위해, 또는 사람을 위해 법조인이 되려는 연수생들에게 그는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아, 자네도 이 친구 아나?”
이재승 검사의 질문에 오지훈은 고개를 수차례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그래요. 하하.”
태훈은 멋쩍게 웃었다. 영광까지야. 악수를 하는 걸 받아줬다.
“자, 일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이재승 검사는 태훈이 진정서와 함께 제출했던 자료들을 파일 첩에서 꺼냈다.
그는 촤르륵 책상 위에 펼쳤다.
“이미 검찰은 김창영 씨가 ‘강간’을 했다는 혐의를 인정하고 구속하였고, 구치소에 40일…… 그런데 이런 증거자료라니.”
이재승은 피곤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불어 사건을 배정받고 나서 그는 전 담당 검사가 수립하였던 사건의 증거자료들을 검토했다.
너무나도 허술했던 자료들이었다.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진행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촉이 섰다.
“변호사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은 송파구 아동. 여성 전담팀의 고명현 경찰관과 피해자였던 임의진 양께서 연인 사이였다는 거고. 그들이 증거를 조작하여 검찰에 넘기고 짜고 친 고스톱이었다는 거지요.”
이 자료들이 사실이라면. 담당했던 검사. 그리고 고명현 경찰관까지 싸잡아 처벌받아야 한다.
더불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무고한 사람을 구치소에 40일 동안 수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네. 모두 사실입니다.”
“그렇군요. 이 사건 담당 검사가 아는 친구인데, 들어온 지 몇 년 안 된 녀석입니다. 저도 이제 변호사님의 확답을 받았으니 변호사님이 제출하신 증거를 토대로 수사관들을 통해서 확실한 증거이고 자료인지 확인하게 될 겁니다. 만약 이 증거가 거짓된 것이라면 변호사님께서 처벌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태훈은 빙긋 웃었다. 거짓된 자료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사실이라고 확실해진다면. 그 경찰관도 그렇지만 그 검사 친구는 제가 아주 아작을 내놓겠습니다.”
이재승은 장난스레 웃고는 자료들을 다시 한 대 모아 툭툭 책상에 두들겨 정돈하였다.
“듣기론 인권 변호사라고 들었는데, 기부금을 통해 월급을 받는 걸로 압니다. 멋지십니다.”
아직 사건이 확실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재승은 작은 감탄을 했다. 실상 경찰도 아닌 변호사가 자료조사를 했다.
더불어 사선 변호사였다면 이 자료조사만으로도 5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받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수익에는 변동이 없음에도 이렇게 뛰어다녔다는 것에 감탄한 것이다.
“아닙니다.”
“하하, 겸손하시기까지 하네요.”
태훈은 빙긋 웃었다.
이제 남은 것은 수사관들이 증거자료를 더욱 확실하게 하는 것이었다.
* * *
검찰은 증거자료를 모두 확보하고 임의진의 도주에 우려를 염두에 두어 구속 영장을 발부하였다.
또한, 고명현 경찰관의 경우 ‘파면’으로서 징계를 내리고 직무유기와 엄한 사람을 ‘강간범’으로 몰아간 것에 대한 재판이 치러졌다.
고명현은 실형으로 9개월을 임의진의 경우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거기에 사건을 기소하였던 검사의 경우는 징계를 받고 지방으로 발령받았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발령을 한다는 것은, 검사들에게는 출세의 길을 완전히 차단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태훈의 일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을 토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했고 그들을 통해서 기존의 김창영이 잃었던 피해금보다 더욱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었다.
김창영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은 ‘40일 동안 구속’되었다는 것을 두고 그 자리에서 ‘수사기관’의 허점에 대해서 지적하면서 김창영에 대한 사과와 무죄를 인정하였다.
또한, 임의진의 범행이 계획된 것이었고 자신의 연인인 고명현 경찰관을 끌어들인 일에 대해서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추가적으로 40일 구속에 관련한 형사보상금 500만 원 역시 지급 받게 되었다.
태훈과 박문수 대표. 유명호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였다.
태훈은 범현에게 전화가 오자 몸을 일으켰다.
– 아깝다. 네가 나한테 형님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난 확실하지 않으면 그런 조건 안 건다.”
범현의 목소리에는 나름 태훈을 인정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는 화장실로 향했다.
“어떤가, 저 친구 괜찮지?”
“괜찮더군. 일주일 동안 증거자료라고 가져왔는데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자네가 인정할 만해.”
유명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꺾었다.
“크. 달군.”
오늘따라 술맛이 달았다. 아까 김창영에게 전화가 왔었다. 새로운 가게를 매입하기 위해 뛰어다닌다고 한다.
“그렇지만 저 친구 내가 데리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친구라.”
“잡을 수 있을 때 잡지 않고 왜.”
유명호는 의아한 듯 물었다.
“담을 수 없는 그릇에 계속 담으려고 하면 넘치는 법이지.”
유명호는 그 말에 뭐라 말하려다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태훈은 더 넓은 세상으로 가는 게 옳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것은 스스로의 선택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훈이 돌아왔다.
술자리는 깊어졌다.
* * *
술자리가 끝이 나고 문수는 대리운전을 불러 집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술이 더 잘 들어가서 평소보다도 더 취했다.
그는 불이 꺼진 집으로 들어오면서 한숨을 쉬었다.
냉기만 가득한 집은 그를 더 참혹하게 만든다.
“개나 한 마리 키울까. 흣.”
그는 실소를 흘렸다. 아내와 아들 녀석이 있었지만 떠나갔다.
자신의 오판은, 죄책감으로 다가왔고, 그는 법복을 벗었다.
반년 가까이 죄책감에 살고 술만 퍼마셨다.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이혼 도장을 찍고 말았다.
가끔 아들 녀석은 보지만 아내는 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잃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고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게 된 것이다.
차가운 냉수를 들이켠 그는 침대 위로 고꾸라졌다.
참혹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꺼풀은 곧 무거워졌다.
–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그때 무죄만 선고하지 않았더라도.
– 당신이 내 아들을 죽였어!
– 저런 것도 판사라고.
문수는 도망치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질척한 바닥을 밟고 도망치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들의 목소리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토해내며 도망치는 그는 뒤를 돌아봤다. 어둠밖에 없었지만 계속 무언가 쫓아오는 느낌이다.
털썩-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 순간, 땅을 비집고 나온 팔들이 그의 온몸을 옭아맸다.
– 당신 때문이야.
– 으흐흑, 당신이 무죄만 선고하지 않았어도 난 죽지 않았어.
– 내 아들 살려내!
‘으아악!’
서서히 기어 나오기 시작하는 절규에 찬 목소리를 가진 이들과 마주하면서 박문수는 비명을 질렀다.
“허억허억!”
악몽에서 깨어난 박문수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악몽이 자신을 쫓아다녔다.
“한동안 안 꾸나 했더니.”
그는 이마에 손을 짚고는 이 참혹한 심정과 자신에 대한 원망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 * *
아침 일찍 누구보다 일찍 출근한 태훈은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막내였기 때문에 가장 일찍 오는 편이었고 태훈도 그것이 편했다.
“강태훈 변호사. 좋은 아침.”
“네. 오셨어요.”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박문수 대표가 출근했다.
“안색이 안 좋으세요.”
“괜찮네. 어제 먹은 술 때문에 속이 안 좋아서 그래.”
박문수는 악몽을 꾸었던 것을 숨겼다. 정신과 진료도 사실 그는 남모르게 받고 있었지만, 정신과 의사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어쩌면 평생을 꾸게 될 꿈일지도 모른다고 소견 내렸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지이잉-
지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김창영 씨였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 강태훈 변호사님. 사무실 앞에 왔는데, 잠시 봬도 될까요.
“아, 물론입니다.”
태훈의 얼굴은 활기를 띠었다.
그는 잠시 다녀오겠다며 나섰다.
김창영은 분홍색 보자기에 싼 묵직한 것을 태훈에게 건넸다.
“사골입니다. 푹 고아 드세요.”
“이 귀한 걸…… 괜찮습니다.”
태훈은 고개를 저었다.
“받으세요. 이거 받지 않으시면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럽니다. 수임료 한 푼 안 들이고 강태훈 변호사님 같은 유능한 분이 저 때문에 뛰어다니셨는데요. 뭐.”
창영의 안색은 많이 좋아졌다. 그는 빙긋 웃고 있었다. 태훈은 거절하면 오히려 그의 마음이 더 안 좋을 것을 알고 받았다.
“잘 먹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변호사님. 많이 바쁘실 텐데.”
그렇게 말하며 창영은 몸을 돌렸다. 태훈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는 가면서도 태훈을 계속 돌아보고는 웃었다.
태훈은 보자기에 숨겨진 쪽지를 발견했다.
– 강태훈 변호사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글씨가 삐뚤삐뚤하게 쓰여 있었다.
“이것 때문에 내가 이 짓을 한다니까.”
태훈은 픽 웃었다. 보람찬 일 하나를 또 마무리했다.
그는 사무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서는 이미 다른 변호사들은 업무를 시작하고 박문수 대표는 뉴스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건 뭐야?”
“아, 김창영 씨가 주셨어요.”
“이런 거 받으면 잡혀가. 그러니까 내가 먹도록 하지.”
강민후 변호사가 장난스레 말하며 팔을 뻗었다.
– 다음 뉴스입니다. 여러분 13년 전 있었던 ‘마포구 살인사건’ 기억들 하십니까? 당시 23살이었던 이 모 씨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피해자 스물세 살 우 모 씨를 살해한 사건으로, 이 모 씨가 실형으로 11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던 사건입니다.
마포구 살인사건이라는 말에 한마음 법무법인 이들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실상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언급하지 않았던 것.
박문수 대표가 무죄를 선고하였던 남성이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살해혐의로 기소되었던 사건이다.
그들은 박문수 대표를 곁눈질로 살폈다.
‘무슨…….’
박문수 대표의 눈은 커졌다. 그의 몸에는 미세한 경련이 일고 있었다.
– 어제저녁 9시경. 서울시 서초구의 파출소로 자신을 ‘마포구 살인사건’의 가해자라고 밝힌 36살 김 모 씨가 자수하였습니다.
“……!”
턱!
박문수 대표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책상 위에 올려놨던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바닥으로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