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45
45
변호인 강태훈 045화
16장 11년의 억울한 수감
“바, 박문수 대표님.”
한소원 변호사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 그는 뉴스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마음 법무법인의 이들도 뉴스에서 전하는 보도에 귀를 기울였다.
– 이곳 서울시 서초구의 파출소로 김 모 씨는 어제저녁 9시경. 스스로가 ‘마포구 살인사건’의 가해자라고 밝히고 자수하였습니다.
화면이 바뀌고 리포터는 서초구의 파출소 앞에 서서 마이크를 들고 진행하고 있었다.
– 현재 용의자로 지목되어 11년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 씨는 약 2년 전 서울 남부 교도소에서 복역을 마치고 출소하였습니다. 현재 경찰은 김 모 씨의 진술이 사실인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파악하고 있으며 혹시나 이것이 사실로서 밝혀질 시에는 이 씨의 억울했던 11년을 어떻게 갚아줄지가 난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KBC 뉴스. 김종방이었습니다.
“대, 대표님!”
박문수의 몸에서 일순간 힘이 빠지면서 털썩 의자 위로 주저앉았다. 모두가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게 도대체…….”
태훈은 박문수 대표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언젠간 닥칠 일이라는 것을 태훈은 알고 있었다.
박문수 대표의 지난날의 13년의 기억.
그리고 죄책감. 그 엉켰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 * *
경찰은 조사결과 사건 정황과 김 씨가 말하는 진술. 그와 더불어 그가 증거물로 제시한 살해 당시 사용하였던 흉기의 제출로 인하여 자수한 김 씨가 그때의 ‘가해자’가 맞다, 는 확답을 내렸다.
국민의 관심사는 오로지 11년을 감옥에서 산 이지성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으며 비난의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김씨는 스스로가 단독으로 벌였던 범행이며 평소 친구였던 이지성이 용의자로 지목될 것을 염두에 두고 사건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문제는 경찰과 검찰, 법원이 그에게 ‘유죄’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고 억울하게도 11년이라는 시간을 누군가는 옥살이하였다는 것이다.
한마음 법무법인 사무실은 고요했다.
박문수 대표는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친구가 무죄라고……? 그 친구가 무죄…….’
눈앞이 새하얘졌다. 그가 살해혐의 용의자로 지목되었을 때, 죽은 피해자의 장례식장에서 많은 이들의 질시를 받을 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오판하였다고.
그러나 다르게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끝까지 그 친구를 믿고 ‘그가 살인범이 아니다’라고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상처는 더욱더 찢어지고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모두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나, 나 잠시 바람 좀 쐬고 와야겠어.”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침착하려는 듯이 웃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여기 혹시 박문수 변호사님이라고…….”
문이 열리고 들어온 서른 중반의 허름한 차림새의 남성을 본 박문수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몸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틀었다.
남성은 박문수를 보자마자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흑, 끄으윽, 윽…….”
그는 참으려던 거친 울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재판장님, 끄흐흑! 제, 제가 잃었던 11년은 어떻게 합니까!? 재판장님! 차라리 그때 유죄를 선고하시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이런 일은 없었지 않을 겁니까!”
그는 힘이 풀린 다리로 기어와 그의 바짓가랑이를 끌어당겼다.
박문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도대체 왜요! 제가 잃은 11년은 어떻게 합니까. 예!? 말씀해 보세요. 재판장니임! 그래도 재판장님은 저를 끝까지 믿어주셨어야죠! 재판장님도 저를 믿지 않으셨던 겁니다! 그렇죠!? 끄흐흑-”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위험천만한 상황이 이어질 수도 있었다. 남성 변호사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박문수 대표는 손을 저었다.
“끄윽! 저요, 정말 열심히 한 번 살아보려고 했다고요! 재판장님께서. 크흑, 제 손 잡아주시면서 하던 말 기억하십니까!? 너에게는 아직 살면서 기쁠 일이 많다. 또 변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이게 뭐냐고요! 끄흐흑!”
결국, 박문수 대표가 막으려던 눈물이 두 눈에서 흘러내렸다. 그는 천천히 몸을 숙였다.
“미안하네. 내가, 내가 자네를 의심했어. 끝까지 자넬 믿었어야 했는데, 미안하네…….”
“끄으윽. 끄흐흑, 도와주십쇼. 도와주십쇼. 재판장님. 끄으윽.”
박문수 대표는 그의 등을 두들기며 그를 끌어안았다. 이지성은 박문수의 품에서 한참이나 오열을 터뜨렸다.
* * *
실상 업무 시간이었고 한마음 법무법인의 인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문수는 이지성을 이끌고 카페로 데려왔다.
그는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이 변해 있었다.
산만했던 덩치는 어느덧 야위어졌고 세월의 흔적이 지나가 그의 얼굴의 젊음을 빼앗아갔다.
문수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의 첫 마디를 기다렸다.
“원망 많이 했습니다.”
“……그랬나.”
당연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차라리 박문수가 그때 유죄를 선고하였더라면 다르게는 이지성을 끝까지 믿어주었다면 변한 게 있지 않았을까.
“계속 기다렸습니다. 재판장님을 기다렸어요. 여기 며칠만 있으면 재판장님이 오셔서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실 거야. 재판장님은 좋은 분이시고. 나의. 나의 아버지 같은 분이시니까.”
그는 울음을 집어삼키면서 애써 웃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재판장님은 오지 않았습니다. 저 수감 되어서도 계속 기다렸습니다. 재판장님은 저를 믿어주었던 유일한 분이니까…… 그렇지만 끝내 오지 않더군요. 그때 다시 원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문수의 허벅지 위로 올라간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가며 파르르 떨렸다.
애써 침착하기 위해 노력해 힘을 주지만 떨림은 그것을 감추지 못한다.
“나에게 헛된 믿음을 주고 거짓을 한 재판장님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나오고 나서야 재판장님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지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저만큼이나 힘드셨을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법복을 벗으시고. 아내와 아들을 잃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까지 당하는 인권 변호사가…….”
그는 울음을 삼켰다.
실상 그랬다. 법조인들 사이에서 인권 변호사는 분명하게 무시를 당하는 편이다.
어쩌면 서울고등법원의 부장판사나 더 크게는 대법관 역시도 노릴 수 있었던 박문수 대표는 다른 법조인들이 보았을 때는 크나큰 추락을 겪게 된 것이다.
“내가 원해서 나는 인권 변호사가 되었네. 나는 지금에 만족한다네.”
문수는 빙긋 웃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과 불안한 눈동자는 당장 눈물이라도 쏟아낼 것 같았다.
“단지, 자네를 믿지 못한 것이 내 평생의 한이야. 나를 용서하지 말게. ‘정의’라는 이름 앞에서 선의를 베풀고 마치 성인군자라도 된 것처럼 하였지만 막상 들이닥치니 피했던 나를 용서하지 말게.”
그의 말에 이지성은 고개를 저었다.
“박문수 재판장님은 제가 살면서 보았던 사람 중 가장 큰 어른이셨습니다.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박문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을 용서한다는 의미였다. 이지성의 힘없는 눈이 흐릿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몇 마디 말을 더 나눴다.
* * *
이지성과 이야기를 나눈 후 문수는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이지성은 돌아갔다. 곧 다시 보게 될 것이었다.
박문수 대표는 멍하니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는 쓰게 웃었다.
자신이 앉는 자리에서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면 변호사들 모두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을 볼 때마다 항상 신에게 말했다.
이들과 함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젠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섰다.
그의 떨리는 손은 왼쪽 가슴 위에 걸려 있는 꽃 모양의 배지를 잡았다. 그것을 오른손으로 떼 내며 한동안 주먹으로 꽉 쥐고 있었다.
“내가 그 친구를 봤던 건 그 친구가 절도죄로 재판에 서게 되었을 때였어.”
모두 그의 목소리에 시선을 집중했다.
“‘넣을 테면 넣어라, 안 무섭다’라고 나한테 했던 첫 마디가 그거야. 그런데 이상하더군. 그렇게 천방지축. 세상에 반항하듯 한 청년의 눈에서 나는 다른 무언가를 보았어.”
그는 픽 하고 웃는다.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지. 처음에는 반항적이었던 그 친구가. 몇 번을 다가가 보니 어느 날 웃기 시작하더군. 또 어떤 날은 그러더군. 내가 아버지 같다고. 자신에게 없던 아버지 같다고 말이야. 난 그 청년에게 말했네.”
그는 잠시 목이 메는 듯 울음이 꼈다.
“아버지는 아니지만, 아버지 같은 말을 해주겠네. ‘자네에게는 아직 기쁠 일이 많아. 그리고 변할 수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청년은 울음을 흘리며 나에게 사죄를 하더군. 그렇게 나에게 법 따위 무섭지 않다던 청년이 내게 사죄를 하는 거야. 그걸 보고 생각했네. 이 청년은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기회를 준다면 이 청년은 변하지 않을까.”
실상 사건의 정확한 내막을 알지 못했던 한마음 법무법인 이들은 다소 놀랐다.
그의 마지막 말을 풀이하자면 단순히, 그에게 생긴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에 판사로서 옳지 못한 ‘무죄’를 선고했다는 사실이었다.
태훈도 실상 몰랐던 이야기였다.
“난 판사로서의 자질이 없었어…… 그리고 이 자리도 내가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해.”
그는 주먹으로 쥐고 있던 배지를 책상 위로 내려놓았다.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그렇지만 문수는 단호해 보였다.
“대표님이 막 사법연수원 수료했던 저에게 하셨던 말씀 기억하시나요?”
한소원 변호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왼쪽 가슴에 달려 있던 배지는 어느덧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좋은 세상 한 번 만들어보지 않겠냐. 힘없는 자들을 위해 싸워보지 않겠냐. 월급은 박봉이겠지만, 한 번 그렇게 사람들을 위해 변호사가 되어보지는 않겠냐.”
그녀는 빙긋 웃었다.
“처음에는 뭔가 싶었어요. 돈 많이 벌고 싶어서 변호사가 된 건데.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변호사가 된 건데 말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전 대표님과 함께 일을 하고 즐거워하고 있더라고요. 이제 더 이상은…….”
그녀의 목소리 끝에는 울음이 맺혔다.
“대표님 없이는 못 해요.”
그녀는 소파 앞의 테이블 위로 자신의 배지를 내려놨다.
강민후 변호사가 자신의 배지를 뗐다.
“사법연수원에서도 꼴통이라고 불렸던 저입니다. 졸업하고서도 지방에서도 변호사 짓 할 수 있을지나 의심받기 일쑤였어요. 그런 부족한 저를 박문수 대표님은 거두어두셨죠. 저 역시 대표님 없이는 이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배지는 한소원의 배지 옆에 놓였다.
“하하, 이거 분위기상 어쩔 수 없겠는데요.”
고두환은 어색하게 슬픔을 숨기며 웃었다. 그 역시 왼쪽 가슴의 배지를 떼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박문수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을 잡기 위해 모두가 자신들의 평생을 바친 일을 내려놓고 있었다.
“변호사님 같은 좋은 사람이 법조인을 하지 않는다면 저는 이런 세상에서 법조인으로서 살기 힘들어질 것 같아요.”
인민희 변호사 역시도 배지를 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테이블 위로 배지 네 개가 놓여졌다.
태훈은 천천히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씁쓸한 눈으로 배지를 내려다보았다.
“전 그만두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