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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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강태훈 046화
그의 말에 변호사들은 쓰게 웃었다.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었으니까.
태훈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배지를 모두 잡아 주먹 쥔 손을 펼쳐보였다. 네 개의 배지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이지성 씨의 억울했던 11년은 풀어줘야지 않습니까.”
태훈은 싱긋 웃었다.
그의 말에 다른 변호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것이 일단은 최우선되어야 할 문제였다.
박문수 대표는 고개를 파묻었다.
“고맙네, 크흑, 고마워!”
그는 한참이나 울었다. 모두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이 사람들을 만난 것은 박문수로서는 평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다.
* * *
일단은 태훈의 말처럼 이지성의 억울했던 11년의 옥살이를 보상받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현재의 그에게는 일명 ‘빨간줄’이 살인자라는 명목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실상 모두가 다 붙어서 이 사건만을 위해 매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한 마음 법무법인의 다른 의뢰인들은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문수 대표와 다른 한 사람이 함께 준비하기로 하였는데, 한 마음 법무법인 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태훈을 지목하였다.
그가 가진 타이틀과 이제까지의 승소율만 보더라도 한 마음 법무법인 이들은 쉽사리 자신들이 그 사건을 맡는 것보다는 태훈이 가담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이지성은 다시 법무법인 사무실로 방문했다.
처음 왔던 며칠 전보다는 표정이 좋아졌다.
감정을 추스른 것이다.
“김주현하고 죽은 우해석과 저. 세 사람은 학창시절부터 함께 어울렸던 친구였습니다.”
태훈은 그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다른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주현이의 부모님은 국회의원이셨어요. 지금은 뇌물혐의 수수 때문에 옷을 벗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인자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촉망받는 분이셨죠. 그리고 죽은 해석이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친구였습니다. 그렇지만 머리가 빼어나게 좋은 건지,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습니다. 리더십도 좋아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던 친구입니다.”
그는 과거의 추억을 주마등처럼 회상하듯 웃었다.
“그에 반면, 저는 아버지도 없이 식당 일을 나가시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래도 덩치도 있고 싸움도 줄곧 했지요. 그러다 주현이 녀석 좀 보호해주고 하면 떡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해서 어울렸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라서 어느덧 돌아보니 세 사람이 단짝 친구가 되어 있더군요.”
전혀 각기 다른 사람들이 친구가 되었다.
국회의원의 자녀.
평범한 가정. 그러나 미래의 성공이 보장되는 인재.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미래도 보이지 않는 문제아이자 어려운 형편의 이지성.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당시에는 폭행으로 인해 소년원에 갔고 퇴학까지 당했었다.
학창시절에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왔던 세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질투, 시기,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주현이가 어느 순간 해석이를 많이 미워했습니다. 주현이는 빼어난 머리도 아니었고 키가 컸던 것도 아니고 운동도 잘하진 않았거든요.”
국회의원의 자녀가 평범한 가정의 자녀를 이기지 못한다. 이것은 큰 불화가 생기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어느 순간 두 녀석이 틀어져 버리더군요. 그런데 제가 절도로 인한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얼마 후 주현이가 화해하겠다며 해석이가 자취 중인 원룸에서 술을 마실 건데, 오지 않겠냐, 라고 했습니다.”
“그때 일이 벌어진 것이군요.”
태훈은 직감적으로 예상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갔을 때 정작 절 불렀던 주현이는 없었습니다. 연락도 안 되고 해서 해석이와 단둘이 술만 마시고 전 나갔죠. 그리고 이틀 후에 경찰이 절 찾아왔습니다. 용의자로 지목되었죠. 주현이의 DNA는 검출되지 않았고 CCTV 화면에도 역시 모습이 안 나타났습니다. 즉, 제가 용의자로 지목되기에 충분했죠.”
그의 말을 들은 태훈과 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수의 한숨이 짙어졌다.
분명 그가 용의자로 의심 받기는 충분하나 수가기관의 허점이 존재했고, 추가적인 말을 들어보면 강압적인 수사가 진행되었다.
더불어 지성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기에 ‘김주현’을 지목했다. 그러나 경찰은 서둘러 그를 선상에서 내렸다. 그 당시에는 촉망받는 국회의원의 자녀였으니까.
“근데 그 친구가 어떻게 CCTV를 피하고 들어간 건지는…….”
이지성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태훈은 그 CCTV를 피해 집에 들어간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제 며칠 후면 뉴스를 통해 밝혀질 거다.
그는 다름 아닌 배수관을 타고서 4층의 우해석의 집으로 침투했던 것이다.
“혹시 배수관 아닐까요?”
태훈은 마치 추측하듯이 말했다. 그 말에 이지성과 박문수 대표의 시선이 마주쳤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모습이었다.
얼마 전에도 사례 하나가 있었다.
혼자 원룸에 사는 여성들을 노린 강간범이 배수관을 타고 올라가 그들을 성폭행하였다는 것이다.
“일단 쟁점만 놓고 보자면 수사기관의 허점이 분명히 존재했고 인권 침해와 강압적인 수사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죄’ 선고를 얻어내는 것과 그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검찰청과 경찰, 법원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쟁점은.”
태훈의 말에 이지성은 쓰게 웃었다. 11년이라는 시간을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했다. 그 당시 그의 나이 스물셋. 가장 어리고 좋았던 때였다.
모든 청춘을 감옥에서 소비한 것이다.
송두리째 그의 인생을 빼앗아갔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고작 금전적인 보상과 국가의 사과뿐이었다.
지나간 세월은 다시 보상받을 수 없었다.
“검찰은 어쩌면 ‘공범’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고, 공범이요?”
이지성은 눈을 크게 떴다. 김주현 스스로가 자신의 단독 범행이었고 일부러 이지성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사건을 조작한 것이다. 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검찰이 공범 주장이라니.
“아무리 10년이 더 된 사건이라지만 엄연히 망신입니다. 순순히 인정하려고 들지는 않을 거고. 더불어 저희의 소송 금에 대고 꼬투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실상 이지성 씨가 보상받을 수 있는 최소의 금액은 5억 원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또한, 최대의 금액이라고 한다면 16억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태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실상 5억도 16억도 엄청나게 큰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국가손해보상 비용이 너무 짠 편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흑인이 살인자로 오명 받고 수감 받은 후 출소 후에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흑인이 받은 국가손해배상금이 약 106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돈을 줄 리는 만무했고, 태훈도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 돈도 언급했듯 분명 큰돈이었고 다르게 생각하면 두 사람이 짜고서 한 사람씩 반씩 나눠 갖고 번갈아 옥살이를 했다. 라고 주장할 수도 있었고, 태훈이 아는 미래는 분명히 그러했다.
물론 태훈의 중심으로 미래는 계속 변화하고 개척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흐름은 일치할 것이라는 생각이 섰다.
“이건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이지성 씨가 저나 박문수 대표님과 잠시 함께 지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태훈은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박문수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긴 했네. 함께 모여 정황을 확실시하고 대비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야.”
“저희 누나가 보유하고 있는 별장이 한 시간 정도만 차로 가면 있습니다. 이곳도 이제 기자들이 들이닥칠 건 시간문제이니 그곳으로 가면 될 것 같네요.”
“이거 본의 아니게 제가 변호사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이지성의 시선이 한마음 법무법인 이들에게 돌아갔다.
자신은 몸을 피하면서 이곳의 변호사들은 벌떼 같은 기자들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괜찮아요. 저희는 도가 텄는데요. 뭐.”
“저희가 워낙 이슈적이고 대단한 일 하는 사람들이라 기자들은 이제 친구 같아요. 친구.”
그들은 웃음으로 미안함을 털어주려고 했다. 이지성은 쓰게 웃었다.
* * *
누나인 혜지에게 연락을 취해 별장을 빌린 태훈은 그들과 함께 별장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별장은 120평이었고 그 가격이 20억에 달하는 고급 별장이었다.
잔디가 깔린 마당은 카페같이 꾸며놓고 나무로 만든 예쁜 모양의 그네가 있고 한편에는 텃밭도 있었다.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기자들도 쉽사리 찾지 못할 것이며 누나는 가족들과 쉬기 위해 마련한 장소였기에 언론에도 알려진 곳이 아니었다.
문수와 이지성은 작은 감탄을 했다.
“이런 집에서 산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겠네요.”
그는 출소 후에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 그에게 이런 집은 꿈만 같은 곳이었다.
도착하자 시간은 6시였고 태훈이 팔을 걷고 식사를 준비했다.
조촐한 바비큐 파티를 준비했다.
식사를 하고 술도 몇 잔 걸치기 시작했다.
박문수 대표와 이지성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 모습이 꼭 부자와 같이 친근해 보여서 태훈의 입가로는 작은 웃음이 스쳤다.
박문수 대표는 보통 술 조절을 잘 하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다소 빨리 취했다.
주정은 없는 편이었기에 그는 먼저 몸을 일으켜 침실로 갔다.
태훈과 이지성 단둘만이 남았다.
태훈은 바비큐 그릴에 아직 불씨가 남아 있는 숯에 고구마를 호일에 싸 굽고 있었다.
“저희 아버지가 강태훈 변호사님을 무척 믿고 신뢰하는 것 같아요.”
그도 술을 부쩍 마셨기 때문에 눈이 풀렸다. 어느덧 그는 박문수 대표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저도 기사 몇 번 봤습니다. 변호사님. 꼭 저희 아버지 옆에서 지켜주세요. 저희 아버지가 쓰러지지 않게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의 목소리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암시하듯 가라앉아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박문수 대표님은 이 손으로 지킵니다.”
태훈은 주먹을 들어 올려 보이며 웃었다. 그는 고맙다는 말을 연신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몇 잔 들이켰다.
* * *
나무가 우거진 부근이었기 때문인지 새벽 3시가 되자 풀벌레 우는 소리가 별장을 가득 메웠다.
방은 많았기 때문에 각자가 자고 싶은 방에서 자는 걸로 이야기가 되었다.
끼이익-
문수가 자고 있는 방의 문이 조금 열렸다. 그 틈으로 측연하게 가라앉은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이지성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는 쓰게 웃었다. 술에 잔뜩 취했던 것 같은 그는 어느새 술기운이 확 달아난 상태였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은 이런 집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단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월급날에는 가족들과 삼겹살 외식을 하는 그러한 소소한 삶을 바랐다.
그런 자신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져 버렸다.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였던 김주현에 의해서였다.
비록 죄책감을 느껴 자수했다고는 하나 사람으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눈높이의 선반에 올려진 위스키를 꺼냈다.
투명한 유리잔에 부어 들이켰다.
“크-”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지나온 삶과 복역을 하면서 겪었던 억울함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일순간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걸음은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칼꽂이에 다양한 칼들이 꽂혀 있었다.
여러 개의 칼을 뺏다 넣었다 해본다.
그중 가장 날이 길고 날카로운 칼을 꺼내어 이리저리 둘러본다.
‘죽여 버리겠어…….’
그의 눈에 짙은 살기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