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47
47
변호인 강태훈 047화
끼이익-
한참을 그 칼을 둘러보던 이지성은 다시 칼꽂이에 넣고는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문 하나가 닫혔다.
닫힌 문에는 태훈이 기대어 서 있었다.
‘역시 이건 변하지 않았어.’
자신도 앞으로의 흐름 전체를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는 터였다. 사소한 것 하나가 세상 전체의 흐름을 바꿀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지성의 어리석었던 행동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그 전에 현장 검증을 하는 틈에 난입하여 김주현에게 칼부림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현장에 있던 경찰에 의해 마취 총에 맞아 결국 살인미수로 그쳤지만, 그와 함께 모든 것이 날아갔다.
국가 손해배상금도. 그리고 무죄 입증도.
가장 중요한 것. 박문수 대표의 남아 있던 믿음마저도.
그 후 박문수 대표는 변호사로서 물러서고 한마음 법무법인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국내 유일의 공익 변호사 집단이 그토록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실상 태훈이 제안한 함께 지내자는 것은 그의 말처럼 논의를 해보기 위함도 있었지만, 이지성을 감시하고 그를 제지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의 심정은 이해가 된다.
누구라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어리석었던 행동 하나가 모든 것을 무너뜨리게 되는 것을 태훈은 막아야 했다.
그는 곧 자신의 침대 위에 누워 잠을 청했다.
* * *
[내일 저녁 김 씨의 현장검증이 이루어질 것으로 경찰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으며 과거 그가 범행을 저질렀던 원룸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것을 감안하여 경기도 용인시의 경찰 대학교 강당에서 현장을 재현하여 검증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한편, 11년 간 친구를 죽였다는 살해혐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되었던 이 씨는 현재 재심을 신청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번 사건을 담당하게 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서동진 검사는 두 사람이 ‘공범’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서동진 검사는 두 사람이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을 노리고…… 한편 김 씨의 아버지는 전 국회의원 김유열 씨로 밝혀져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KBC 뉴스 김종방이었습니다.]
태훈이 리모컨으로 TV를 껐다. 역시나 검찰은 자신의 예상처럼 공범을 주장할 계획이 확실해졌다.
내일 현장검증이 치러질 것이고 일주일 후면 무죄를 밝히기 위한 싸움이 시작될 것이었다.
“으아. 배고파. 라면 드시겠어요?”
실상 가장 떨릴 것은 이지성이었다. 그는 태연한 척 물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방으로 들어갔다.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지성이 주방으로 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수는 입을 열었다.
마치 두 사람이 입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태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나 대신 법정에 서줄 수 있겠나?”
“무슨…….”
태훈은 당혹했다. 사건의 자료를 함께 검토하기는 했지만, 당연히 법정에는 문수가 설 거라고 여겼다.
그는 분명 노련한 변호사였다. 판사로서 15년 경력을 갖춘 이이기도 했다.
자신보다는 그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섰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저 친구를 대신해 변호를 하나. 또 재판장은 비웃을 거네. 그 사건에 의해 도망쳤던 내가 그 사건을 다시 해결하려고 한다고. 어쩌면 내가 이 사건을 풀고 재기하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법이지. 재판장들의 시선은 공정함부터 시작해야 해. 그들은 나를 알고 내가 어째서 그 자리에서 물러난 건지 알아. 어쩌면 내가 하는 말마다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어.”
확실히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문수가 그의 변호를 선다면 재판장의 경우 기회다 싶어서 문수가 변호를 섰다고 여길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태훈은 망설였다.
“저 친구도 이미 수긍했다네.”
문수는 쓰게 웃었다.
누구보다 그 법정에 서고 싶은 사람은 문수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가장 두려운 사람이 그일 거다.
이지성에게 가장 면목 없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일단은 알겠습니다.”
태훈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고맙네.”
박문수 대표는 빙긋 웃으며 그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 * *
경기도 용인시 경찰 대학의 강당으로 기자들이 벌떼같이 몰려 있었다. 추정 숫자만 사십여 명은 될 정도로 북적거리는 인원이었다.
그중에는 태훈과 박문수 역시도 함께 있었다.
문수는 지성에게 이 자리에 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순순히 수긍했다.
그런 수긍 뒤의 감춰진 것을 태훈은 알고 있었다.
“왔다!”
형기차 세 대가 도착했다. 앞뒤의 형기차에서 먼저 형사들이 내려 중앙의 형기차를 엄호하고 쌓았다.
얼마 후 모자에 하얀색 마스크를 쓰고 수갑을 찬 손 위로 수건이 걸쳐져 있는 김주현이 양옆으로 경찰들을 대동한 채 내렸다.
파파파팟!
플래시 사례가 사방에서 터지며 밝은 빛이 번쩍번쩍했다.
“비켜주세요!”
경찰들은 앞을 막아서는 기자들의 틈을 파고들었다.
강당 안으로 들어서자 13년 전의 원룸의 방을 사진 속 자료를 통해 재현해놨으며 그곳에는 마네킹과 그가 범행 당시 사용하였던 살해 도구 역시 모형으로 놓여 있었다.
파파파팟!
“왜 죽였습니까!”
“친구인 우해석 씨를 죽인 이유가 뭡니까?”
“정말 이지성 씨와 손해배상금을 노린 것입니까?”
“조용히 하세요! 한 번만 더 소란을 피울 시 즉시 쫓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강력계 반장이 골반 위로 양손을 올리며 불과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비밀리에 현장검증을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언론이 좋지 않아 위쪽에서 공개하라고 지시한 상황이다.
아마 공개하지 않았다면 여론은 ‘감추는 게 있는 것이다!’라고 입을 모았을 것이다.
그의 불같은 목소리에 기자들은 입을 막았다.
쫓겨나서 좋을 것은 없었다.
현장검증이 치러지기 시작했다.
여느 현장검증과 다를 것이 없었다. 경찰들이 바로 뒤쪽에 서고 그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마네킹에 진행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에 향해있을 때 태훈은 시선을 요리조리 굴렸다.
사람들이 원체 많았다.
분명 이곳 어딘가에 이지성은 있었다.
* * *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이지성은 검은색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현장검증이 이어질수록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는 때는 이때라고 여겼다.
실상 감옥에서도 많은 의심을 했었다.
설마 정말 친구 주현이가 그랬겠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자신들은 돈독했던 우정을 가졌었으니까. 세 사람이 어울리면 그 어떤 우정보다 값졌다고 여겼으니까.
녀석이 면회를 오지 않았을 때도 ‘일이 있겠지’하는 작은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이 출소 후 연락이 닿지 않았을 때도 정말 그가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차라리 주현 말고 다른 진범이 잡혔으면 하는 마음도 가졌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죗값을 받겠다며 자수했다.
그것이 더 참을 수 없는 증오로 다가왔다.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우해석. 친구 한 명이 하늘나라로 갔다.
오늘 그 일이 있고 난 후 가졌던 13년간의 모든 고통을 청산할 것이었다.
그는 천천히 가방에 손을 뻗었다.
가방 안에는 그가 챙겨온 칼이 있었다. 날이 시퍼렇게 선 칼. 그도 똑같이 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야 마땅하다.
그는 손으로 만져지는 신문지에 감싸진 칼을 어루만졌다.
‘이때다…….’
그는 몇 걸음 더 다가서 한층 김주현과 가까워졌다. 조심스레 가방 안에서 신문지를 벗겨냈다.
“……!?”
칼의 신문지를 벗겨냈던 지성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것을 집어 올리고서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기존에 넣었던 칼보다 묵직하고 칼날 부분이 뭉툭했다.
가짜였다.
당혹한 그에게 누군가 다가갔다.
그와 눈이 마주친 이지성은 당혹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 * *
배가 아프다고 둘러대고 이지성을 찾아다녔던 태훈은 그를 찾아 당혹한 표정의 그를 이끌었다.
실상 이지성에게 흉기는 없었다. 태훈이 이미 어제저녁. 그가 챙기는 모습을 발견했었고 나오기 바로 전에 바꿔치기해 놨었다.
흉기를 잃은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실상 막상 그가 덤벼든다고 해도 분노에 찬 주먹질 밖에는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두 사람이 차에 올랐다.
“어떻게…….”
이지성은 너무 놀라 그 말을 반복했다.
“칼을 챙기시는 거 봤습니다.”
실상 전생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칼부림이 생겼을 것이다. 그는 일단은 둘러댔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태훈은 심드렁하게 그를 쏘아보았다.
“죽이고 싶습니다. 변호사님. 저 새끼는 죽어 마땅합니다!”
“그럼 달라지는 게 도대체 뭡니까? 그리고 이지성 씨가 김주현 씨하고 다를 게 뭔데요!”
태훈은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분명 그의 심정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는 법에 의해 스스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물론 법만으로는 그 죗값이 가볍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공공연한 질서를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변호사님이 뭘 아십니까! 11년 동안.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감옥에서 썩은 내 심정을.”
툭툭
그는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어느덧 그 손은 뻗어와 태훈의 멱살을 움켜잡고는 흐느꼈다.
“재판장님 덕분에 정말 다시 한번 살아보려고 했다고요…… 근데 감옥에서 11년을 제 청춘을 보냈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제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제 어머니 곁에도 못 있어 줬단 말입니다. 저는 그 빌어먹을 새끼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고요!”
그는 태훈의 몸을 거칠게 흔들었다.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태훈은 이를 악물었다.
“그럼 박문수 대표님은요. 지금 박문수 대표님께서 그 일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하고 계셨었는지 아십니까? 지금! 박문수 대표님께서 정신과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은 아냐고요!”
문수는 숨기고 있었지만, 한마음 법무법인 이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가 먹는 약이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이라는 사실을.
그는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약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괴로워했다.
“그런데 이지성 씨가 또 그렇게 되면 대표님은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되면 저희 박문수 대표님은 불쌍해서 어떻게 합니까…… 이지성 씨만이 모든 걸 잃은 게 아닙니다. 아내도, 자식도. 모두 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 남은 게 무엇인 줄 아십니까?”
지성은 입을 꾹 다물고는 울음을 삼켰다. 그러나 그것은 딸꾹질처럼 계속해서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진실입니다. 당신이 죽이지 않았다는 진실. 그분에게는 딱 그거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13년 전, 박문수 대표님이 이지성 씨를 믿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믿을 수 있게 도와주십쇼.”
박문수 대표는 태훈이 살면서 보았던 가장 정직했던 법조인이었다. 그의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하루하루 새로운 걸 얻고 있었다.
그의 또 한 번의 좌절은 보고 싶지 않았다.
“끄흑, 으흐흑!”
그는 답답한 듯 심장을 움켜쥐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 * *
그의 울음이 진정되었다. 자신의 어리석음에 한참을 울었다. 자신의 이기적인 복수심만을 생각했다.
자신 하나만을 믿어줬던 박문수 그의 믿음을 자신은 배신할 뻔했다.
“이제부터는 딱 하나만 보십시오. 11년의 보상. 그리고 무죄. 제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이지성 씨는 저와 박문수 대표님의 의뢰인이니까요.”
태훈은 굳게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현장검사가 끝난 것인지 주차장으로 기자들이 우르르 물 밀듯이 빠져나왔다.
지성은 서둘러 눈물을 훔쳐냈다.
곧 박문수 대표도 차량에 타 있는 지성을 보고는 놀란 표정이 되었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잘 참았네.”
그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이유로 왔든, 그가 참아줬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문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배들 고플 테니. 밥이나 한 끼 하러 가지.”
그는 차에 올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