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52
52
변호인 강태훈 052화
18장 꽃피는 법정?
살인미수를 일으켰다고 검사 측에서 주장하고 있는 김진영은 올해 만17세가 되는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살인미수죄로 기소 예정이기는 하였지만, 구속 수사의 필요성 혹은 미성년자인 것을 감안하여 다행히 불구속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의 경우는 어머니와 진영이 함께 법무법인 사무실에 방문했다.
그녀가 건네는 검찰에서 우편으로 발송한 자료들을 보던 태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담당 검사분이 여성분이시네요. 하하.”
태훈은 어색하게 웃었다.
다름 아닌 안도혜 검사였다.
태훈은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대립하게 될 줄이야.
문제는 정의를 좋아라 하는 그녀는 이런 살인미수 사건이나 혹은 강간, 살인 등의 사건에서는 누구보다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번 사건 조금 힘들 것 같았다.
“그 검사라는 사람 나이도 어린 게 얼마나 싸가지가 없던지…… 어휴, 제 말도 들어주지 않더라니까요.”
“검사들이 다 그렇죠.”
태훈은 쓰게 웃었다. 실상 피의자들이 보는 검사는 다 그럴 수밖에. 반대로 검사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고 반영한다면 법체계는 무너진다.
그리고 검사들이 들어주지 않은 이야기를 법정에서 알리는 것이 바로 변호사의 일이다.
“그 녀석이 널 많이 괴롭혔니?”
“……네.”
“변호사님. 오죽했으면 이 녀석이 죽으려고 친정에 가서 할아버지가 쓰시는 농약을 가져와서 먹으려고 했겠어요? 어쩌다 그 녀석한테…….”
태훈은 한숨을 쉬며 양손을 깍지 꼈다.
사건의 개요는 학교에서 매일 유독 한 아이에게 괴롭힘을 받던 진영이 견디다 못해 주말에 친정에 내려가 몰래 가져온 농약으로 자살을 시도하려다 겁에 질려 그만두고 피해자인 이성민이 음료수를 사 오라고 하자 그곳에 농약을 소량 넣어 살인미수죄가 성립한 것이다.
다행히도 아주 소량이 들어가 있었고 피해자 측에서 ‘맛’이 이상함을 식별해 내어 당장 뱉어냈다.
그리고 작은 복통과 두통, 어지러움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니 지금은 멀쩡해졌다고 한다.
태훈은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 * *
일요일.
오늘의 경우 재희와 약속이 있어서 그녀와 만났다.
그녀는 유독 다른 여성들보다는 편한 편이었다. 편한 동생 같은 느낌이 들어서라고 할까.
그녀를 멀리하고 싶은 마음은 크게 없었다.
치료가 끝나고 완치된 그녀는 머리가 꽤 길어졌다. 단발머리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였지만, 사람들이 그녀를 흘끗흘끗 돌아보고는 했다. 그 정도로 예쁜 외모였기 때문이다.
안도혜 검사가 누나 강혜지의 성격을 닮았다면 재희는 배경이 닮았다.
가난한 형편으로 인해 반도체 생산직 라인에 들어가고 백혈병이 걸리고.
그것 때문에 더욱 그녀가 편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좋다.
그녀가 이렇게 완치되었으니.
그녀는 태훈을 다름 아닌 롯데월드로 이끌었다.
“아싸, 재밌겠다!”
그녀는 활기차게 웃으며 말했다. 태훈은 롯데월드에 들어가면서부터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응? 설마 변호사님…… 놀이기구 못 타요!?”
그녀의 목소리는 컸고 태훈은 헛기침을 했다.
“무, 무슨 이깟 게 뭐, 뭐가 무섭다고……!”
태훈은 화를 내듯 언성이 높아졌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상 무서웠다. 태훈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딱 두 개가 있었다.
화난 누나 강혜지의 모습과 놀이공원이었다.
그러고 보면 자주자주 누나 강혜지는 자신을 일부러 놀이공원에 끌고 와 무서워하는 것을 보면서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요? 그럼 우리 저거 타요.”
자이어 드롭이었다.
“꺄아아악!”
“아아아악!”
기둥에 기대어 올라갔던 원반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빠른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인지 즐거운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퍼졌고, 태훈은 심장이 덜컹했다.
“아, 내가 오늘 약속이 있었는데…….”
“거짓말. 갑시다.”
그녀는 당차게 태훈을 이끌었다. 츄러스를 입에 문 그녀와 태훈은 함께 줄을 섰다.
“어? 혹시 한재희 작가님 아니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그녀는 작게 웃었다. 앞줄의 여고생들이 그녀를 알아봤다.
“작품 잘 봤어요. 어떻게. 너무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재희는 빙긋 웃었다. 그녀가 판 것은 4만 부. 요즘의 출판시장에서 신인으로서 대단한 역량을 드러낸 것이다.
그 4만에서 추가적으로 수입이 창출되어 그녀가 1년간 벌어들인 수익이 1억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안다.
또한, 다음 작품의 경우 이현지가 20만 부를 점칠 정도로 기대가 크다고 한다.
“옆에 분은 남자친구예요? 되게 멋있어요!”
여고생들은 태훈을 보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작은 얼굴에 좋은 비율. 조화로운 얼굴을 가진 태훈은 여고생들이 보기에도 훈남이었다.
“아니에요. 남자친구.”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오늘부터 작가님 남자친구다! 하면 남자친구죠.”
여고생들은 눈을 가늘게 떨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엽다.
여고생들이 보기에 재희와 태훈은 천생연분처럼. 잘 어울려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선남선녀였고 비율도 좋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30분을 넘게 기다리고서야 자이어 드롭에 몸을 태울 수 있었다.
안전바가 내려오고 태훈의 몸이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변호사님. 지금 떨어요?”
“응? 아아, 나, 날씨가 좀 춥네.”
그는 춥다. 라고 언급했지만 무서운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간 순간, 태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재희는 그 모습이 재밌다.
“정말 안 무서워요?”
“노, 높은 곳에 올라오니까 추워서…….”
그 순간 자이어 드롭이 바닥으로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태훈의 가슴이 덜컹하는 순간이었다.
“끄어어어어억!”
태훈의 비명은 재밌어서도 아니고 무서워서도 아닌, 절규였다. 살려달라는 목소리.
다시 천천히 자이어 드롭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변호사님? 변호사님.”
“으응? 응…….”
넋이 나간 그를 재희가 흔들었다.
“힘들면 제 손 잡아요. 호흡 가다듬고.”
“으응, 후우후우.”
태훈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말을 잘 들었다. 손을 잡은 재희는 어느덧 다시 올라갔을 때 눈을 질끈 감은 그를 아무 말도 없이 작게 웃으며 보았다.
그라는 사람이 좋다.
강태훈 변호사라는 사람이 좋다.
그는 다신 만날 수 없는 인연이라고 한재희는 믿고 있다.
그 순간, 자이어 드롭은 하강한다.
“끄아아아아악!”
태훈은 그 후. 놀이동산의 충격으로 자그마치 몸무게가 0.5㎏이나 빠졌다고 재희를 만날 때마다 투덜거렸다고 한다.
* * *
1차 공판을 치르기 위해 법정에 온 태훈은 자판기 앞에서 이온 음료를 마시고 있는 안도혜를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 검사님.”
“또 뵙네요. 공교롭게도 대치하게 되었어요.”
그녀는 쓰게 웃었다. 태훈도 마찬가지였다. 저번에는 함께 밥을 먹게 되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적으로 만나다시피 한 것이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그렇다고 틀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의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니까.
“태훈이. 오랜만이야.”
이번 사건의 재판장님이 다름 아닌 이범현의 아버지인 이범훈이었다. 그는 빙긋 웃으며 태훈에게 악수를 청했다.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그렇지. 안 검. 자네도 오늘 재판 기대하겠네.”
“네, 재판장님.”
범훈은 안도혜 검사 역시도 알고 있었다. 범현과 그녀가 꽤 친한 사이라는 것 역시 말이다.
“혹시 이 일로 틀어지고 그러는 건 아니지?”
“재판은 재판일 뿐이지요.”
“맞습니다.”
이범훈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태훈이 먼저 말하고 그 뒤로 안도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이범훈이 우배석, 좌배석 판사들과 함께 몸을 옮겼다.
“공평하게 한 번 해보자고요.”
그녀가 악수를 청했다.
태훈은 그 악수를 받아줬다.
곧 1차 공판이 시작되었다.
“검사 측 공소장을 낭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네.”
안도혜 검사가 몸을 일으켰다.
“피의자 김진영은 피해자 이성민과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입니다. 피의자 김진영의 경우 학교 현장학습 날. 평소 학교에서 힘이 좀 세고 덩치가 큰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싸움을 잘하는 아이’인 피해자 이성민이 음료수를 사 오라고 시키자 이에 앙심을 품고 음료수에 독극물. 즉 ‘농약’을 넣었습니다. 음료를 마시던 피해자 이성민은 맛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고 얼마 후 복통과 구토 증상, 두통으로 인하여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목적 달성에는 실패하였기에 형법 제250조 및 제254조에 의하여 살인미수죄로 기소합니다.”
이범훈 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피의자석에 앉아 부르르 몸을 떠는 소년 진영을 보았다.
진영은 유독 나이 또래에 비해 키가 작고 체구도 작은 편이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피고인은 본 기소 사실을 인정합니까?”
“……진술하지 않을게요.”
태훈이 있었기에 그는 굳이 진술할 필요가 없었다.
“피고 측 변호인. 모두 진술하시겠습니까?”
“예.”
태훈이 몸을 일으켰다.
“본 피고인은 살인미수에 대하여는 살해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보이며 단순히 자신을 괴롭히던 그를 골탕 먹이려던 목적으로 여겨져 그에 대한 공소 사실을 일부 부인하는 바입니다. 또한, 피고인은 지속적으로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피해자인 이성민에게 학교폭력을 당했던 피해자였습니다. 또한, 이 폭력이 지속됨으로 인해 피의자인 김진영의 경우 주위의 친구들을 모두 잃고 학급에서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또한, 이제 겨우 18살에 대해 정신과에서 내린 소견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심신 미약으로 인하여 감정조절능력이 약해진 상태였으며 이에 법정은 이를 참작하여 피고인을 감면해줄 것을 바랍니다.”
곧이어 증거 제출과 증인 신청이 이어졌다.
안도혜 검사의 경우는 피해자인 이성민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반대로 태훈의 경우는 학급의 담임 선생님과 정신과 의사를 신청했다.
“다음 공판 기일은…… 모두 퇴정하셔도 좋습니다.”
몸을 일으켜서 안도혜 검사는 밖으로 나섰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태훈은 가슴이 쓰라렸다.
‘몇 년 후였던가…….’
그는 아련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정의감에 강간범과 살인자, 살인미수 등 극악무도한 사람들은 모두 죗값을 달게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그녀. 또 한편으로는 거친 용모도 있으며 마음은 따뜻한 그녀.
그녀의 그 너무 바르기만 한 정의감이 몇 년 후 무고한 사람을 징역을 살게 한 일이 있었다.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라는 게 있어야 했는데 그녀는 그 부분이 다소 부족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녀는 크게 상심한 것으로 안다.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고 싶다.
* * *
오랜만에 만난 친구 놈들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서울의 한 막창 가게 안에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이제는 어엿한 의사로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아 가는 장지훈이, 또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군판사로 근무했으며 이제 많은 돈을 벌겠다며 변호사로의 일을 준비하는 기태가.
개꼴통 검사로 유명세를 떨치며 요즘 신문에도 자주 나오는 범현.
그리고 인권 변호사인 태훈. 이 네 사람이 모였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기태와 지훈은 서로 초면이었기에 악수를 건네받았다. 왠지 어색하다. 지훈은 훌쩍 어른이 된 모습이었다.
그가 레지던트 과정을 밟는 병원은 국내에서도 이름 세가 유명한 대일병원이었다.
기태는 말 그대로 일부러 군판사를 근무하고 많은 돈을 벌고 싶다며 현재 변호사가 되기 위한 걸음을 밟고 있었다.
모두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친구들이다.
그리고 이 자리를 주선한 기태는 어깨를 쭈욱 폈다.
“오늘 이 자리는 형이 쏜다.”
“으응? 내 귀가 잘못되었나?”
“하…… 지구가 네 쪽이 나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말인데.”
그를 잘 아는 범현과 태훈은 다소 놀랐다.
버스비 1천 원 남짓이 아까워서 한 시간 거리도 걸어 다니는 녀석이 쏜다니?
뭔가 대성한 게 있나 보다.
“형 드디어 합격했다.”
“오!? 정말? 어딘데?”
태훈과 범현의 얼굴로 이채가 스쳤다. 의대를 다니는 지훈의 경우 법무법인의 방향에 따라 얼마나 크게 변하는지를 몰랐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대한 법무법인.”
“대한 법무법인이면 국내 최고의 로펌인데, 자랑스럽다. 임마.”
“……축하한다! 짜식!”
범현은 거침없이 축하를 해줬고 태훈은 반 박자 느렸다. 대한 법무법인이 국내 최고의 로펌임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었다.
단, 돈을 너무 밝히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들이 많다는 게 흠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불법적인 일만 주선하는 이들은 아니었고 법적으로 정당하게 사람들을 옭아매는 이들이었다. 간혹 무조건 이겨야 하는 사건의 경우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난입하긴 하지만 말이다.
태훈은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기겁하며, ‘너 그딴 데 들어가고 싶냐!?’
하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기태의 꿈은 돈 많이 벌어 어머님께 효도하고 집을 장만하고 좋은 차를 타는 것이었으니까.
“나 이번에 그 한성호 변호사님? 그분이 날 눈여겨보시더라고. 한번 키워보고 싶대. 참, 태훈이 너도 예전에 한 번 인성기업 소송 건으로 만났었지?”
“그랬지.”
태훈은 쓰게 웃었다.
“그런 분을 네가 이겼다니. 역시 넌 내 친구다. 짜식.”
기태는 주먹을 말아 쥐면서 내밀었다. 태훈이 맞추어 쳐준다. 엄연히 업계의 톱으로 꼽히는 한성호를 태훈이 이겼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긴 했다.
그와 주먹을 부딪치는 태훈은 부디 기태가 그곳에 물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백호 변호사처럼 말이다.
“뭐야, 이렇게 친구분들이 많다고는 안 했잖아.”
친구들이 일제히 여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태훈에겐 익숙한 얼굴인 안도혜 검사가 서서 퉁명스럽게 범현을 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