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63
63
변호인 강태훈 063화
태훈의 차가 없었기 때문에 안도혜가 정반대되는 상황을 연출했다. 그를 집 앞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태훈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자신 혼자서 3인분이나 먹었다며 그녀는 기필코 태훈을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먹기 밖에 안 한 하루이기는 했지만 나름 그녀와의 식사가 즐거웠던 태훈이다.
자신을 끔찍이 싫어했을 때의 그녀의 모습과는 반대되는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괜스레 가슴 속에서 그녀에 대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또 가끔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도혜도 즐겁기는 매한가지였다.
굳이 거부하는 그를 데려다주는 그녀의 속내는 어쩌면 흑심으로 새까말지도 몰랐다.
‘내가 왜 굳이…….’
그러면서도 계속 그녀는 의문이었다. 머리는 부정하고 몸은 움직였다.
집 앞에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바래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량에서 태훈이 내리고 그녀도 내렸다.
“등갈비 다음에 또 먹고 싶네요.”
“그럼 다음에는 검사님이 사시나요?”
태훈이 장난스레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등갈비라면 얼마든지요.”
그녀는 빙긋 웃었다. 태훈은 머쓱한 듯 머리를 어루만졌다. 뭐라고 말하면서 헤어지는 게 좋을까. 즐거웠습니다? 아니면 다음에 또 봐요? 작은 갈등이 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는 잠시 들리실래요? 라는 말이 기대되었다.
“변호사님.”
그렇지만 그녀의 환상은 처절하게 깨졌다.
태훈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케이크와 샴페인이 든 종이가방을 든 재희가 있었다.
재희를 본 도혜는 다소 놀랐다. 무척 아름다운 여자아이였다. 어두웠지만 마치 색을 칠한 것 같은 갈색 눈동자는 깊고 고요했으며 단발인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모습은 그린 것처럼 화려했다.
그리고 한재희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태훈이 오지 않았다. 두 시간을 넘게 기다리고서야 그는 왔다.
그것도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
자신보다 한 뼘은 작았지만 마치 깎아 만든 조각상처럼 좋은 비율의 얼굴과 또렷한 눈망울을 가진 여성이었다.
“인사드려, 안도혜 검사님이셔.”
“안녕하세요. 한재희라고 합니다.”
재희는 그녀가 ‘검사’라기에 크게 놀랐다. 우리나라의 검사라는 직업은 대부분 ‘존경’ 받기 일쑤였고 쉽게 될 수 없었으니까. 거기에 아름답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한재희 작가님 아니신가요?”
놀란 것은 재희뿐만이 아니었다. 안도혜 역시도 그녀를 알아봤다. 인터넷 기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미녀작가’라는 타이틀이었는데, 작품도 읽은 적이 있어 꽤나 인상 깊었다.
실제로 본 그녀는 정말 미녀라는 말이 손색이 없었다. 그녀의 눈은 재희의 품을 스캔했다.
케이크와 샴페인. 짧은 치마에 달라붙는 티셔츠. 유혹적인 몸매. 태훈의 집 앞.
그녀가 태훈의 집까지 들락거리는 여성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망감이 엄습했다.
“이만 가봐야겠네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도혜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좋은 시간이라는 말에 재희를 돌아보았던 태훈은 당황했다.
그렇다고 ‘그게 아니라…….’ 하면서 잡기에도 상황이 안 좋았다.
차에 오른 도혜는 쓰게 웃었다.
“괜찮은 남자지. 강태훈 변호사님이 만나는 여자가 없는 게 이상해.”
그녀는 그렇게 수긍하며 차를 출발시켰다.
머리를 턴 태훈은 자신도 모르게 작은 화가 올라왔다.
어쩌면 모든 것을 망친 재희에 대한 화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생각은 그렇게 해도 그도 모르게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야?”
“변호사님. 합격하셨다고 해서 축하드리려고 왔어요.”
그녀는 잔뜩 풀이 죽었다. 태훈은 그녀가 들고 있는 케이크와 샴페인을 보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말은 다르게 나왔다.
“굳이 그런 걸 축하해 주진 않아도 되는데. 어제 대화로 이미 축하한다는 말 받았고.”
평소완 다른 차가운 음성이 느껴지자 그녀는 주춤했다. 아까 전 그 검사라는 여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녀는 분명히 아름다운 여자였다. 여자인 재희가 보기에도.
“여기요.”
그녀는 케이크와 샴페인을 그의 품에 던지듯이 주었다.
몸을 돌린 그녀는 가슴이 시렸다.
태훈은 그녀가 주고 간 케이크와 샴페인을 보면서 한숨을 크게 쉬었다. 어둠 속에서 재희의 뒷모습은 점차 멀어져갔다.
‘아니라고 말해요. 변호사님. 그런 사이 아니라고…….’
재희는 그가 잡아주길 바랐다. 바보가 아니라면 기다렸다는 것쯤은 알 것이다. 어쩌면 태훈은 자신이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잡지 않는 것은 자신이 싫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어둠 속으로 사라져도 그는 잡지 않았다.
“흑, 흐흑. 으흐흑. 변호사님. 흐흑.”
그라는 남자가 이렇게 밉긴 처음이었다. 가슴 속에서 뜨겁게 끓어올라온 것은 목구멍으로 타고 눈으로, 코로,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보면서 태훈은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던 돌을 걷어찼다.
“하아, 미치겠네.”
재희가 주고 간 케이크와 샴페인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강태훈이라는 자신 스스로가 이렇게 한심해지기는 처음이다.
* * *
근래에 한재희와 안도혜 검사. 두 사람 모두에게서 연락이 오질 않았다. 안도혜의 경우 그렇다 치더라도 재희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연락을 했었다.
태훈은 휴대폰을 쥐고 망설였다가 다시 휴대폰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는 한마음 법무법인 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새로 들어온 유능한 신인들과 기존의 변호사들이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줄 것이다.
국선 변호사 사무실 앞에 선 태훈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찍 왔기 때문에 아무도 없었고 불은 꺼져 있었다.
모든 불을 소등시키고는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시작했다. 첫 시작은 한마음에서의 막내 생활 시작과 다를 바는 없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김한기 변호사였다.
“아, 자네 왔나?”
“안녕하세요. 김한기 변호사님.”
태훈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김한기는 국선 변호사 중에서는 꽤나 인지도가 높은 편이었다.
얼마 전에는 자칫 누명으로 인해 절도범이 될 법한 남성을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이끌어내는 여력을 발휘하기도 했으며 며칠 후 진범이 잡혔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척척이군.’
그는 빙긋 웃었다. 앞으로의 태훈이 무척 기대된다. 그러나 내색하진 않았다. 자만심은 독약이 될지도 모르니까.
태훈이 커피를 타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커피 한 잔 드세요.”
“잘 마시겠네.”
그는 커피로 입가를 축였다. 어느새 태훈은 자신의 자리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김한기는 그를 유심히 살폈다.
몇 년 전. 이환이라는 수재와의 경쟁에서도 빛을 바랐던 실전에 대한 능력이 강한 그가 부디 지금 썩어가는 국선 변호사들에게 일침을 가하길 바랐다.
하나둘씩 국선 변호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흔한 살의 이태영 변호사. 뚱뚱한 체격의 그는 자칫 누추하게 입힌다면 백수로 보이기에도 충분했다. 심술 맞게 올라간 입꼬리는 비호감적인 인상이었다.
안효성 변호사.
강력반 출신의 변호사였다. 서른다섯 살의 패기 넘치는 변호사. 태훈이 수년 전에 왔을 때는 없던 이였다.
키는 꽤 컸고 변호사보다는 격투기 선수 같은 체형을 지녔다.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 낀 안경이 돋보였다.
채수진 변호사. 올해 서른여덟. 깐깐해 보이는 그녀는. 말 그대로 깐깐한 것이 맞긴 한 것 같다.
“여기 커피 한 잔 드시고 일하세요.”
“난 됐어. 에스프레소 아니면 안 마시거든.”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서 좀 마시지…….’
채수진에 거절에 다시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태훈이다.
이렇게 총 다섯 사람이 국선 변호사 사무실을 이끈다.
개개인이 개성이 또렷했기에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난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안효성 변호사가 강태훈 변호사 좀 한 달 정도 데리고 다니면서 기초적인 것을 가르쳐주게.”
“네.”
안효성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훈은 살짝 묵례를 취했다.
‘에이, 귀찮은데.’
효성은 그런 그의 인사를 받고는 자리에 앉아 눈살을 찌푸렸다.
* * *
안효성의 재판이 있다고 해서 함께 차량에 올랐다.
“피의자는 어떤 분이에요?”
“노인네. 뻔하지. 생활고에 시달려 슈퍼에서 먹을 걸 훔친 거지. 몇 번은 봐줬지만 이젠 검사 측이 벼르고 있어.”
태훈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슈퍼에서 먹을 걸 훔쳐봤자 노인네가 뭘 훔쳤겠는가. 라면 몇 개나 과자 몇 개 정도를 훔쳤을 것이다.
안효성은 너무 태평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런 사건이 자주 있나요?”
실상 국선 변호사로서 실제로 일해 본 경우는 없는 태훈이었다. 효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웃기긴 해. 그 2천 원 4천 원어치 훔쳤다고 재판에 서고 그걸 또 우리한테 처리하라고…….”
‘처리’라는 부분에서 그는 말끝을 조금 흐렸다. 생각해 보니 강태훈 변호사라는 녀석.
인권 변호사로서 꽤나 대단했다고 들었다. 정의감 넘치고 누구보다 열심인 노력파라고.
그래 봤자, 국선 변호사로서는 남는 게 뭐가 있겠는가.
“강태훈 변호사. 선배로서 좋은 충고를 하나 해줄게.”
운전대를 잡은 그는 싱긋 웃으며 조수석의 그를 보았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국선 변호사로서 입지를 굳힌 후에 ‘형사사건’ 쪽의 사선 변호사가 되는 거야. 그거만 바라보고 일하라고.”
태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딴 걸 지금 충고라고 하는 건가. 그의 입이 뾰로통 나왔다.
확실히 요즘 국선 변호사들. 문제가 있나 보다.
“왜 대답이 없어? 금옥 같은 충고인데.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고…….”
“국선 변호사들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만큼 나오지 않나요?”
국선 변호사들이 받는 월급은 500 이상이다. 그렇지만 그 돈에서 기름값이나 식비 등을 빼면 300-400만 원 남짓이 남기에 박봉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면 여유는 있다.
“그렇긴 하지만. 내 말은 경력 좀 쌓고 인정 좀 받아서 사선 변호사가 된다면 월 1천만 원의 수입도…….”
“전 돈만 생각하고 변호사를 하는 건 아닙니다. 선배님.”
태훈의 딱 잘라 말하는 목소리에 순간 안효성의 화가 솟아올랐다. 다혈질적인 강력반 형사 출신의 성격이 드러나는 거다.
그는 빨간 불에 차가 멈추자 그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강태훈 변호사. 내 딴에는 강 변호사가 출세도 조금 하고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인데,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 해?”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이 새끼가…… 참자, 참아. 아직 초반이니까 모르겠지. 어휴. 멋모르는 정의감에 찬 놈들!’
누구라도 법조인이 되면서 처음에 정의감이 없던 사람은 없을 거다. 태훈은 그 정의감이 유독 빛난다고 생각했다.
곧 타락할 거라고 안효성은 생각했다. 두고 봐라. 너도 곧 우리 꼴이 날 것이니까.
그렇지만 태훈은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출세를 위해 뛰는 변호사의 길이 얼마나 부질없고 말도 안 되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어느덧 차량은 법원에 도착했다.
함께 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의 사이가 서먹해졌다. 태훈은 한동안 따돌림 좀 당하겠거니 했다.
다른 이들과 추구하는 게 다르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노인을 마주한 순간 태훈은 얕은 한숨이 나왔다. 앙상한 뼈밖에 남지 않은 노인은 얼굴 살마저도 쏙 빠져 해골처럼 앙상했다.
힘없는 걸음걸이로 법정 안으로 ‘피고인’이라는 신분을 달고 들어가는 그를 보며 가슴이 착잡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 노인은 몇 천 원뿐일지라도 분명 범죄를 저지른 ‘절도범’일지도 몰랐다.
그 절도범이 정상참작 받게 하는 것이 변호인의 일이었고, 무죄를 얻어야 했다.
그러나 법정에서의 모습을 본 태훈은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