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67
67
변호인 강태훈 067화
21장 연쇄살인마가 생긴 이유
일이 있어 밖에 나갔다 온다던 김한기 변호사가 급하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하던 일들 멈추고 모여 봐.”
그의 얼굴에서 심각성이 보였다.
“이번에 연쇄살인범 조태석이 잡힌 거 모두 알고들 있지?”
그 말을 듣는 순간이었다. 사무실 내의 모든 인원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촉이 팍하니 온 것이다.
‘X발…… X 됐네.’
안효성이 고개를 저었다. 연쇄살인범의 경우 대게 감형받으려는 의지도 없고 변호든 뭐든 관심 없기에 국선 변호인이 변호하기 마련이다.
“우리 사무실에서 나가야 해. 누가…….”
김한기가 말을 끝내기 전이었다. 변호사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누가 연쇄살인범 변호를 맡고 싶겠는가.
일단 패소는 확실하다. 당연한 패소여도 변호사에게 좋을 것은 없었다.
그리고 살인범 변호를 서면 그 변호사도 사람들은 삿대질한다. 어쩔 수 없는 변호에도 말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는 연쇄살인범이다. 돌발행동이 언제나 예상된다.
사람을 죽이는 걸 대수롭지 않아했던 사람 앞에서 멀쩡하게 서 있을 사람은 몇 없을 거다.
“안효성 변호사가 그래도 형사사건에는 능통…….”
“저 요즘 미성년자 학교폭력 관련한 사건 맡고 있습니다.”
“그래?”
김한기 변호사의 말에 그는 생각해놨던 핑계를 대본 읊듯 말했다.
“그럼 이태영 변호사는.”
“전 농아자 자해사건 관련해서…….”
김한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채수진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기도 전에 시선을 회피했다.
“아우! 이것들이 변호사라는 거야!? 어!?”
순간 열이 오른 김한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화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들이 어째서 그러는지는 이해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놓고 빼는 게 한심하고 어이없었다.
“난 대체 누구를 믿고 일을 해야 하나!? 어!?”
김한기는 성난 손을 푹신한 가죽 소파를 때리면서 달랬다.
안효성의 시선이 태훈에게 향했다.
덩달아 이태영 변호사의 시선, 채수진 변호사의 시선이 향했다.
왜 그에겐 묻지 않냐는 모습이다.
김한기도 시선을 태훈에게 두었다.
‘결국 나인가?’
태훈은 큰 표정 변화는 없었다.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연쇄살인범 조태석.
자신의 기억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물론 사형제도가 폐지된 때이기에 ‘사형’은 ‘무기징역’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다.
자신도 맡기에는 꺼림칙했지만, 누군가는 분명 해야 했다.
“제가 맡겠습니다.”
별말 없이 쓰게 웃는 태훈을 보며 다른 변호사들은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상대는 연쇄살인범이었다.
그런 사람 변호를 태연하게 맡겠다고 하다니.
김한기는 옳거니 했다.
“변호사라는 것들이. 이제 막 들어온 신입한테 그런 일을 떠넘겨?”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다른 변호사들을 쏘아보았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회피했다.
“부끄러운 줄 알게! 부끄러운 줄!”
그의 성난 목소리가 사무실에 퍼졌다.
변호사 중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확실히 자신들이 회피했던 일을 이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나이도 가장 어린 태훈이 당당히 맡겠다고 했으니까.
* * *
접견하기 위해 걸음을 옮긴 태훈은 선임된 국선 변호인 신분을 밝혔다. 경찰들은 거수경례를 취했다.
“예, 수고하십니다.”
태훈은 쓰게 웃었다.
멀지 않은 곳에는 안도혜 검사가 보였다.
그녀와 요즘 서먹하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안도혜 검사도 태훈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설마 강태훈 변호사님이…….”
그녀는 놀란 표정이었다.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조태석 씨 변호사입니다.”
그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물론 국선 변호인이라는 신분에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아는 지인이 그를 변호한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태훈은 도혜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때의 즐거웠던 저녁은 날아갔다. 앞으로는 서먹한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했는데, 오늘은 일하러 왔다.
접견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수갑을 찬 그는 앉아 있었고, 바깥에서는 경찰들이 돌발 상황 시에 바로 뛰어들어올 수 있게 대비하고 있다.
들어오자 웃음에 찬 조태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태훈은 서류가방을 한 쪽에 내려놓고 물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으세요?”
“아니, 원래 내 형편에 변호사는 꿈도 못 꾸거든. 캬, 사람 몇 명 죽였다고 나라에서 변호사를 붙여주고. 좋구만.”
그는 이곳을 무슨 자신의 집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죄책감 따위는 없는 모습에 태훈은 속으로 한숨을 뱉었다.
“이번에 조태석 씨 변호를 맡게 된 국선 변호사 강태훈이라고 합니다.”
“변호사 씨가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이야, 멋있네!”
그는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여전히 장난기 어린 모습에 태훈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일단은 조태석 씨의 변호를 맡은 만큼 조태석 씨는 저에게 아무런 숨김도 없이 살해한 정황과 이유. 유년시절의 형…….”
“오? 강태훈 변호사? 생각해 보니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맞다 X발!”
그는 태훈의 말을 뚝 끊어먹었다.
“원래는 인권 변호사였죠?”
태훈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누나가 강혜지!?”
“그렇습니다만.”
“이 X발 그년 X나 예쁜데! 와, 누나 가슴 본 적 있어요? 크던데!?”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쾌활하게 웃었다.
태훈의 주먹이 움켜쥐어졌다.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아니, X발 그런 중요한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가 뭐가 있어. 누나 가슴 실제로 봤어요? 어때요? 커요? 혹시 누나가 이상한 취향이 있어서 그 나이에 같이 목욕하는 건……?”
태훈의 화가 꼭지까지 돌았다.
그는 테이블 밑의 구두 신은 발로 그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세 번.
“윽. 끄억. 꺼억!”
구두로 채였으니 어지간히 아플 거다.
“장난 그만합시다. 저도 화가 납니다.”
정강이를 문지르던 조태석은 픽하고 웃었다.
“변호사님 성깔 있네. 변호사님 근데요, 저는 그쪽이 뭐라고 할 줄 알아요. 그냥 닥치고 사형 선고받고 구치소에 짱박히라고 할 거잖아요. 그 형사반장 새끼가 그러던데. 어차피 너 같은 새낀, 국선 변호사도 싫어한다고. 어차피 피차. 피곤하게 하지 말고. 저하고 수다나 떱시다.”
“귀찮으신가 봐요. 지금 이 상황이.”
태훈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귀찮아요. 그냥 빨리 구치소에 처넣었으면 좋겠는데.”
“그럼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왜 죽였습니까?”
그 질문에 조태석의 눈에서 뭔가 스치고 지나갔다. 태훈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재밌으니까.”
“재미라. 후우, 알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졌네요.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태훈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머리가 아득해졌다. 사람 같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방금 전 눈에서 스치고 지나간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그가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 하자 조태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변호사님.”
태훈이 시선을 틀었다.
또 한 번 그의 눈빛이 스쳤다. 뭔가 말하려고 우물쭈물거리다 그는 장난스레 웃었다.
“다음에 올 때 맛있는 거 사와요.”
“X발.”
“오?”
태훈은 짧게 내뱉고는 문을 열고 나와 버렸다.
안에서는 ‘푸하하! 변호사가 나한테 욕했어!’라는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강력계 반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 사람 새끼 아니죠?”
“네, 하마터면 제가 사형 집행할 뻔했습니다.”
태훈은 빙긋 웃었다. 강력계 반장은 다소 놀랐다. 농담을 던지는 그의 모습이 변호사가 맞나 싶었다.
흉악한 범죄자들만 다루는 자신도 이 접견실 안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태훈은 농담도 한마디 던지고 있었다.
사실 내색은 안 해도 태훈도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그는 접견실을 다시 돌아봤다.
안도혜 검사가 그에게 다가왔다.
“아시겠지만 제가 이번 사건 담당하고 있어요. 강태훈 변호사님.”
“그러니 이곳에 계시겠죠.”
태훈은 싱긋 웃었다.
그녀는 그 웃음에서 뭔가를 보았다.
“커피 한잔할까요.”
그 웃음에서 안도혜는 조심스레 청했다.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경찰서에서 커피 한 잔 뽑아 테이블에 앉아 마셨다.
안도혜는 태훈이 걱정되었다. 그가 상처 받을까 봐. 어쩌면 그에 대한 가슴속 마음이 그를 이 자리에 앉힌 걸 수도 있다.
그때 한재희와 마주했던 때를 생각하는 오해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아직 태훈에 의한 끌림은 의미 모르게 나타났다.
“최선을 다하실 건가요?”
“그게 제 일 아닌가요. 의뢰인이니까.”
태훈의 말은 백번 천번 맞았다.
그렇지만 상대는 연쇄살인범이었다. 어쩌면 검사인 안도혜는 국민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죽어 마땅해요. 저런 사람은.”
“맞습니다.”
너무 최선을 다해 스스로 상처받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태훈은 쉽게 수긍했다. 그는 사형을 어떻게든 피해갈 방도가 없었다.
물론 끽해야 무기징역 받을 수도 있지만 매한가지다.
전혀 다를 게 없는 사실이다.
태훈은 커피를 목구멍 뒤로 넘겨 다 마셨다.
그는 힘없는 종이컵을 손으로 찌그러뜨렸다.
“그런데요. 검사님. 모두가 욕하고 손가락질해도 변호사는 그 사람을 위해 있는 겁니다.”
그는 찌그러진 종이컵을 들어 올렸다.
“이 쓰레기를 만든 건 저입니다.”
그는 휴지통에 던졌다. 가까운 거리였기에 쉽게 들어갔다.
“그리고 조태석이라는 쓰레기가 생긴 이유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태훈은 쓰게 웃었다.
“그리고 재희하고 저하고는 그냥 오빠 동생이에요.”
어째서 태훈은 자신이 그 사실을 설명하는지는 몰랐지만 말했다. 그녀는 쓰게 웃었다.
“……그런가요?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이 일 끝나면요.”
“네엡,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태훈은 몸을 일으켜 갔다.
그녀는 물끄러미 태훈의 뒷모습을 보았다.
오늘따라 그의 뒷모습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축 처진 그의 어깨.
그도 썩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쓰레기가 만들어진 과정을 확인하러 가는 것이.
경찰서 밖으로 나온 태훈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들어올 때는 벌떼 같은 기자들을 잘 피해서 들어왔다.
그렇지만 밖으로 나올 때는 아니었다.
그들은 태훈을 알아봤다.
“강태훈 변호사다!”
“이번 사건 맡았다고 하지!?”
순식간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태훈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차량으로 꿋꿋이 이동했다.
막 차량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후우웅
파직.
그의 머리에 토마토가 날아왔다. 머리에 직격한 토마토는 터졌다. 붉은 액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고 그 액이 머리에 흥건하게 묻었다.
“이런…….”
그 순간이었다. 중년 여성이 밀가루를 까서 태훈에게로 뿌렸다.
화아아!
순식간에 밀가루를 뒤집어쓰게 된 태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