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68
68
변호인 강태훈 068화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순경들이 서둘러 달려왔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에요!”
태훈의 앞을 막아섰다. 중년 여성은 태훈에게 손을 휘휘 휘둘렀다.
“어떻게 그런 새끼 변호를 서. 네가 사람 새끼야?”
태훈이 본 그녀는 피해자의 어머니였다.
그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무 말 하지 않고 몸을 털고는 차에 올랐다.
“퍽퍽하네.”
태훈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사건을 맡는 것 자체가 껄끄러운 이유 중 하나다. 피해자의 가족은 변호를 선다는 이유만으로 미워한다는 것.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만약 태훈의 가족이었다면 그 역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차를 출발시키기 전, 멀지 않은 곳에서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하는 피해자의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네가 해야 할 일이잖아. 태훈아.”
이번 사건은. 변호사로서의 자신의 마음가짐이 조금 흔들린다.
* * *
변호사 사무실로 오자 김한기 변호사가 기겁했다.
“무슨 일 있었나?”
대충 짐작이 갔지만, 본인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피해자 가족분이.”
태훈은 쓰게 웃었다.
“채수진 변호사. 물티슈.”
김한기 변호사가 손을 뻗었다. 그녀가 서둘러 물티슈를 집어 들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김한기는 물티슈를 뽑아 그의 몸의 밀가루를 닦아내 주었다.
“이런 옷이 다 버렸네.”
“강태훈 변호사. 머리…….”
“아, 참 토마토도 맞았네요.”
태훈은 싱긋 웃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다른 변호사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러게 왜 사서 고생을…….’
안효성은 태훈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막상, 태훈이 맡지 않았다면 이중 누군가는 맡아야 했다.
그 총대를 태훈이 멘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안효성의 심리였다.
“씻고 오겠습니다.”
그는 화장실에 가려 했다.
“집에 잠시 다녀오게. 이 꼴로 일할 수나 있겠나. 옷도 갈아입고 샤워도 하고 와.”
“감사합니다.”
태훈은 싱긋 웃었다. 그는 나서기 전 물티슈로 자신의 서류가방에 묻은 밀가루를 깨끗이 닦아내고 다녀오겠다는 말과 함께 나섰다.
* * *
집에 다녀온 태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몸을 일으켰다.
“다녀오겠습니다. 조사할 게 많네요.”
“그래, 다녀와.”
한기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밀가루와 토마토를 맞은 것이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조사하러 간다는 말에 다소 놀랐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
이길 수 없었다.
그래도 나선다. 김한기는 다른 변호사들을 둘러보았다.
이런 사건을 제외하고도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도 회피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변론하고.
이 친구들과 태훈이 다르게 보였다. 태훈이 나섰다.
“어차피 무조건 사형일 텐데 뭐하러…….”
그 싱숭생숭한 생각에 안효성 변호사가 불을 지폈다.
“어차피 사형? 하 참! 내가 변호사 입에서 그런 말을 듣다니! 그것도 내 밑의 변호사에게서! 자네들이 그렇게 썩은 줄은 내가 몰랐네!”
결국 활화산(活火山)처럼 터졌다.
“모두 여기 와서 앉아!”
그의 불호령 같은 목소리에 모두가 소파에 앉았다.
“자네들 왜 변호사가 됐어! 먹고 살아야 돼서야!? 아니면 멋져 보여서 변호사가 된 거야!?”
그의 말에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의뢰인을 위해 뛰는 게 우리 일이야! 좋든 싫든 우리는 의뢰인을 위해 뛰는 거라고. 어차피 사형? 안효성 변호사! 그게 자네가 할 말인가? 자네 형사에서 어째서 변호사가 되었지!?”
“그, 그게…….”
안효성은 말끝을 흐렸다. 그가 형사에서 변호사가 된 이유.
다혈질적이지만 정의감 넘쳤던 강력계 형사 안효성은 수년 전 살해사건 용의자를 검거했다. 몇 개월을 잠복 수사하여 힘들게 잡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용의자가 고용한 사선 변호사는 ‘무죄’를 주장했고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때의 원통함과 자신의 노고를 보상받지 못한 것에 화가 크게 났었다.
그런데 한 달 후. 진범이 잡히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변호사라는 직업을 돌아보고. 그 길로 걷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이 이리 변해버렸다.
“법률 상담해 주고 자문 몇 마디 던지고. 그것이 우리의 일인가? 최소한! 스스로가 맡은 의뢰인을 위해 뭔가를 하겠다는 친구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딴 식으로 할 거면 전부 때려치워!”
그는 완강히 말했다. 이젠 자신도 참을 만큼 참았다.
“그 질 수밖에 없는 싸움하러 강태훈 변호사는 나갔네! 자네들보다 더 어리고. 이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그 친구가! 자네들이 뭔가 느꼈으면 해. 이 가슴으로 느꼈으면 해. 이 답답한 친구들아.”
김한기는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처음에 그들이 면접을 볼 때가 생각났다.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농아자 돈이 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변호할 수 있는 국선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김한기는 밖으로 나섰다. 그들은 자신들을 한 번 돌이켜본다.
* * *
잔뜩 화가 솟은 김한기에 대해선 모른 채 태훈은 조태석이 자랐다던 고아원으로 향했다.
고아원으로 차를 받치고 들어온 태훈은 원장을 만났다.
원장은 태훈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눈에서는 씁쓸한 기색이 엿보였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태석이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게.”
노후한 신사인 그의 사무실에는 고아원의 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유독 많았다.
앨범을 가져와 들척인 원장은 고등학생 시절의 조태석을 보여주었다.
“이리 순해 빠졌던 녀석인데.”
사진 속. 고아원 원장과 사진을 찍은 조태석은 정말 순백 그 자체였다. 태훈이 접견을 하면서 보았던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정말이지 착했던 아이입니다. 사실 저도 10년이 넘도록 소식 한 번 듣지 못했지만 나쁜 아이는 아니었어요.”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부모 없이 자라다 보니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삐뚤어지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그렇지만 태석이는 그러지도 않았어요. 나중에 성공해서 꼭 찾아뵌다고 했던 녀석인데.”
그는 멍하니 창문 밖을 보았다.
바깥에서는 어린 초등학생 정도 나이의 아이들이 공을 차고 놀고 있었다.
“이렇게 뉴스를 통해서 소식을 듣네요. 참나.”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몇 마디 더 나누고 태훈은 고아원 밖으로 나섰다.
아이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낯선 태훈을 경계하며 고아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쓰게 웃은 태훈은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원장에게서는 고아원에 있을 당시 태석과 친했던 이의 전화번호와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려고 하고 있었다.
“유년시절의 조태석은 깨끗했다는 것이 원장의 주장이라…….”
계속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말하려다 뱉지 못한 태석이 걸렸다.
그리고 조태석은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 더 돌아다녀 봐야 할 것 같다.
담배를 비벼 끄고 다시 차에 올랐다. 오늘은 이만 철수다.
* * *
“어제 왔던 각설이 거 죽지도 않고 또 오셨네-”
들어오는 태훈을 보며 조태석은 히죽 웃었다.
“대단하십니다.”
“뭐가요?”
태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 같으면 다리 후들거려서 들어오기 싫을 텐데.”
“전 아침에 상쾌하게 뵈러 오니 좋기만 합니다.”
“얼씨구?”
“절씨구.”
태훈은 말 한마디 밀리지 않았다. 괜히 말려들어서 좋을 건 없었다.
“자, 어제 했던 말 다시 합니다. 조태석 씨께서는 유년시절에서나 혹은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 이런 범행을 저지르게 된 일에 대해 숨김없이 저에게…….”
“아으, 귀찮아. 저 피곤한데.”
“저도 피곤합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시죠.”
“근데 사무실 가면 더 피곤합니다. 워낙 조용해서.”
태훈은 삐딱하게 말했다. 조태석은 적수를 만났다는 듯이 웃었다.
“이야, 강력반 형사보다 담이 크시네요? 제가 자칫 여기에서 머리 돌아서 수갑으로 목 조르면 답 없습니다.”
“그럼 전 정당방위 인정받고 먼지 나게 패면 됩니다.”
“오오.”
그는 작은 감탄을 흘렸다. 이 변호사 뭔가 달랐다.
“근데 보통 변호사들은 저 같은 죄수한테 살아온 일생이니 뭐니 묻지 않지 않나요? 나 같은 쓰레기 새끼. 살아온 과정이 뭐가 중요하나. TV보면 변호사들이 이럴 때 그렇게 말하던데. 그냥 순순히 인정하고 들어가라고. 그게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거라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 같네요.”
태훈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싱긋 웃었다.
“적어도 저라는 변호사에게는 조태석 씨의 숨겨진 비밀이 궁금하거든요.”
태훈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뒷짐을 진 채 왔다 갔다 했다.
“정신과에서 어제저녁 테스트했죠? 근데 결과적으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소견이 나왔습니다.”
“소식 빠르네요. 근데 나 미친놈 맞는데.”
“또 한 번 묻겠습니다. 왜 죽이셨나요?”
“형사 납셨네요.”
“전 그 과정을 묻는 겁니다.”
“전 그 과정보다 빨리 사형 선고받고 빵에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들어가면.”
그는 작게 웃었다. 그 눈동자에서 어둠이 스쳤다.
“죽어버리게요.”
“…….”
태훈은 입을 닫았다. 분명히 뭔가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이게 더 큰 처벌로 작용된다.
정신적 문제도 없는 사람이 맨정신으로 사람 다섯을 죽였으니.
“오늘도 안 되겠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여자친구예요? 매일 오게.”
태훈은 문고리를 잡았다.
“참, 변호사님.”
태훈은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뭔가 말하려나?
“내일은 꼭 맛있는 거 사와요.”
어제처럼 또 낚였다.
태훈은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다.
“재밌는 양반일세.”
태석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 * *
가장 먼저 만난 것은 태석과 고아원에서 친했다던 이였다.
그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한 4년간은 뜸했었어요. 단지,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언제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거든요.”
“좋아하는 여자요?”
“네.”
태훈은 수첩에 그것을 적었다.
그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그렇지만 크게 얻을 건 없었다.
자신이 알기로 그의 등본에는 아내가 없었다.
태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와 헤어지기 전 태훈은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참, 조태석 씨 좋아하는 먹을거리가 뭐예요?”
“치킨이요. 치킨이면 아주 환장을 합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곧 태훈은 다시 그곳을 나섰다.
그다음으로 만난 이는 막노동을 뛰는 인부들이었다.
“태석이 그 친구 참 착실한 친구였어. 그럴 녀석이 아닌데.”
“그럼, 그럼. 그럴 녀석이 아니지. 그 녀석. 제 마누라하고 태어날 아기한테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고 밤낮으로 일했지.”
“아내하고 아기가 있었어요?”
태훈의 눈에서 광채가 스쳐 지나갔다. 안전모를 벗으면서 인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낳았던 건 아니고 아기를 배고 있었어. 근데 어느 날부턴가 태석이가 일을 안 나오더라고. 그 후에 소식이 완전히 두절 됐었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그들에게서는 아기가 있었다는 정보와 근면 성실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뻗어 나가는 담배 연기 사이에서 그의 눈이 씁쓸함으로 물들었다.
‘그렇다면 그 여자와 아이는 지금쯤 죽었겠군.’
사실 한 번 겪었던 조태석에게서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었다.
단지, ‘사형’ 그것이 국민에 대한 대답이었다.
다른 배경은 전혀 알려진 게 없었다.
그 당시 그의 변호를 섰던 이는 그랬을 것이다. 태석의 말처럼 ‘인정하고 유족들 아픔이나 덜어줘라.’
또 지금 태석의 꼴을 보면 알려지지 않았을 법도 하다.
태훈은 범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지랄.”
태훈은 범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실소를 흘렸다.
– 아, 왜 바빠 죽겠는데.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 이 새낀 걸핏하면 나한테 연락해서 도와 달래. 저번에 웨이터 일도 그렇고.
“형님이 부탁하면 ‘아, 예. 형님’해야지.”
– 뭔데.
범현의 목소리는 퉁명스럽지만, 장난기도 어렸다. 자신의 친한 친구의 부탁이니 장난을 치는 것일 뿐이다.
“내가 이번 연쇄살인 사건 변호 맡은 거 알지?”
– 알지. 근데 네가 그 사건을 왜 맡았냐?
범현은 조금 황당한 목소리였다. 이제 막 국선 변호인이 되지 않았던가. 아직 그 정도 사건을 맡을 짬은 그가 생각해도 아닌 것이다.
태훈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됐어. 아무튼, 조태석 씨 관련해서 재판 있었는지 좀 확인해줄 수 있어?”
– 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지. 알았다.
곧 전화를 끊었다. 담배를 모두 핀 태훈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오늘 온종일 돌아다녔더니 벌써 또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한다.
사무실로 향했다.
“쉬엄쉬엄하게.”
“네.”
사무실로 오자 한기가 빙긋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발에 땀이 나게 뛰어다녀서 일 것이다.
자리에 앉은 태훈은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손 하나가 뻗어와 그의 자리에 커피가 놓여졌다.
고개를 틀어 확인하니 안효성 변호사였다.
“쉬엄쉬엄해. 몸살 난다.”
눈을 회피하면서 그는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