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88
88
변호인 강태훈 088화
경찰에서 수사를 끝낸 후 사건은 당연하게도 검찰에 송치되었다. 즉 안도혜의 앞으로 사건이 배정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태훈은 안도혜의 사무실에 와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만. 아. 그런 새끼들은 나한테 걸려야 하는데 그럼 내가 아주 그냥 묵사발을 만들어 놓을 수 있지.”
사무실이 가까웠기에 태훈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범현이 놀러 왔다.
한참 노가리를 까는 그를 보며 도혜가 퉁명스레 물었다.
“넌 일 안 하냐?”
“왜 좀만 놀자. 일만 했더니 피곤해서 죽겠…….”
그 말이 끝맺기 전에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범현 사무실의 수사관이었다.
“이 검사님 또 여기에서 농땡이 피고 계셨습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아하하하…….”
범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곧 성질을 내는 수사관의 이끌림에 범현은 질질 끌려갔다.
얼굴에서 ‘일하기 싫어!’라는 표정이 보였다.
“이 검사님하고 김 수사관님은 찰떡궁합이라니까.”
이런 일이 자주 있는지 도혜 사무실의 수사관과 계장이 이야기를 나눴다. 태훈은 픽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핼쑥해진 얼굴의 남성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 뒤에는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변호사 역시도 대동해 있었다.
변호사를 보며 도혜와 태훈의 눈이 찌푸려졌다.
김성훈은 정말 죽을 죄를 지었다는 듯이 풀이 죽어서 무조건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네, 정말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닌데…….”
태훈은 한숨을 푹 쉬었다.
법정은 순순히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면 형을 다소 줄여주기 마련이었다.
검사도 그런 기미를 보이면 구형을 조금 낮춰서 하기 마련이었다.
아마도 이 모습은 변호사에 의해 만들어진 김성훈의 ‘가식’일 것이다.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면 상습폭행이었던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맞습니까?”
상습폭행이 인정될 시 단순 폭행보다 그 형량이 상당히 커지는 편이었다.
“상습폭행이라니요. 그건 제가 수도 없이 지혜를 때렸다는 이야기…….”
성훈의 당혹한 말이 이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도혜와 태훈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가 부인하면 ‘괘씸하다’라는 명분으로 구형을 높이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훈의 어깨 위로 변호사의 손이 올라갔다.
“상습폭행이라는 것에 대한 명확한 증거자료가 있나요? 그렇지 않고 단순 피해자의 주장이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변호사는 삐뚤어진 자신의 안경을 맞췄다.
‘오호라, 한 번 해보자 이거지.’
김성훈은 전직 사업가였었다. 한때는 무척 잘나갔던 양반이다. 지금은 사업이 실패하고 빚 때문에 전부 처분하느라 남은 게 크게 없었지만, 한때는 자산 30억을 넘어서는 중상층의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그 당시 손이 펼쳐져 있던 변호사를 선임한 것 같았다.
명확하다. 그 말은 다소 난해했다.
그 당시 폭행당했던 것의 상해진단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도혜는 싱긋 웃었다.
“경찰이 송치 전 이웃 주민들을 토대로 조사했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개 짖는 소리와 여자 울음소리가 났다. 라는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또한, 이건 CCTV 자료입니다.”
도혜는 그의 앞으로 테이프를 던지듯이 했다.
변호사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어떤 자료입니까.”
“음, 차에 오르기 전, 가해자가 피해자의 뺨을 한 대 때리고 차에 구겨 넣는 폭력영화라고 할까요?”
도혜는 입 한쪽 꼬리를 올려 웃었다.
변호사는 얕은 기침을 했고, 김성훈의 눈이 떨렸다.
“상습폭행이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좋았어.’
결국, 수긍하는 김성훈을 보며 태훈과 도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두 사람 모두 김성훈에게 최대한 강한 구형을 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피해자의 소유물인 맹인안내견을 야구 방망이로 무참하게 때린 것을 인정하나요?”
이번에는 성훈이 입을 닫았다.
묵비권이었다.
“인정하지 못하겠군요.”
변호사는 고개를 저으며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는 김성훈의 왼손에 감싸져 있는 붕대를 보였다.
“오히려 그 행위는 자신의 신체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습니다. 또한, 동물보호법 8조 4항에 의하면 동물로 인한 사람의 생명, 신체, 재산의 피해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당하지 못했나요?”
변호사가 주장하는 것은 개가 사람을 물었기에 자신의 신체를 지키기 위한 당연한 처신이었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진술과 다르군요. 개가 가해자를 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피해자의 개는 ‘물지 마!’라고 말하자 공격을 멈춘 것으로 압니다.”
“그걸 검사님이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단지 피해자의 말에 의한 가정일 뿐 아닙니까.”
변호사는 빙긋 웃었다.
노련하게 파고드는 그 목소리는 꽤나 날카로웠다.
“개가 무는 것을 그만두었나요?”
변호사는 성훈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만두기는요. 계속해서 죽일 듯이 물어뜯길래, 아 이렇게 물리다가 결국 죽겠구나, 해서 근처에 있는 야구 방망이로 내려친 겁니다. 야구 방망이로 내려쳐도 놔주지 않아서 계속 때린 겁니다.”
“들었지요?”
도혜와 태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지혜의 진술서에 따르면 해리는 ‘그만해’라는 말과 함께 그 팔을 놔주었고 성훈은 옆에 있던 야구 방망이가 아니라 현관 쪽에 놓인 야구 방망이를 고의적으로 가져와 폭행했다는 것이다.
“사람 몸이 중요한가요. 아니면 개의 몸이 중요한가요.”
변호사의 말에는 작은 조소가 껴 있었다.
도혜는 퉁명스레 답했다.
“그렇다면 재물손괴죄에 대해 부정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혐의를 일부 부인합니다.”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혜는 잠시 노트북을 두들기던 손을 멈췄다.
작은 한숨이 본인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그것에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개의 소유자는 분명히 피해자였습니다. 소유물인 개가 사람을 물어 상해를 입힌 행위는 문제가 충분히 야기되는 일이지 않을까 합니다.”
즉 이 부분에 관련한 소송을 자신들도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단 본 재판에서 그 사실이 인정되느냐에 따라서겠죠.”
“그렇겠죠.”
변호사는 기세등등하게 양 팔짱을 끼고 빙긋 웃었다.
그 웃음 뒤로는 강한 자신감이 껴 있었다.
“참 영국에서 이번에 법 개정안을 추진 중인 거 아시나요?”
그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개에 의한 인명피해 발생 시 주인에 대한 처벌을 현행 최대 2년에서 최대 종신형까지 강화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없지요.”
그는 다리를 꼬면서 빙긋 웃었다.
“요즘 워낙 미친개들이 날뛰는 일이 많아서 말이지요. 참, 맹인안내견도 예외는 없다고 하더군요.”
시퍼런 칼날이 두 사람을 겨냥한 듯했다.
태훈과 도혜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밖으로 나서는 김성훈과 변호사의 얼굴에는 약은 웃음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 * *
도혜의 말을 들은 지혜는 놀란 표정이었다.
“내가 재판에 서게 될 수도 있다고……?”
“만약 이번 공판에서 재물손괴죄가 인정되지 않으면 역으로 고소가 들어올 거야. 물론 지혜 너의 말을 우리가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당사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야. 그렇지만 증거 자체가 없잖아.”
도혜의 말을 이어 태훈이 한숨 섞인 목소리를 뱉어냈다.
“변호사가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다 했더니, 생각보다 경력이 화려하시더라고. 강철민 변호사인데, 얼마 전까지 판사로 재직했었어.”
“전관예우…….”
“빌어먹을 상황이지.”
전관예우는 분명 부도덕한 법조계의 비리와 같았다. 그 때문에 2011년 변호사법이 개정되었으며 판검사 등이 변호사 개업 시 퇴직 이전 1년 이상 근무한 곳에서의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개정하였다.
이에 한국 변호사 협회가 전관예우를 하는 이들에게 자체징계를 할 수 있게 되었으나 실제로 징계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또한, 처벌의 강도가 경미한 편이며 현재까지도 실효성에 논란이 있었다.
전관예우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근무한 곳에서의 업무를 일정 기간 막아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은 ‘선배님, 후배님.’ 하던 이들에게 더욱 우월한 특혜를 주려는 심리를 가지기 마련이었으며 판사의 경우 ‘판사로 근무했던 이에게 더욱 믿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심리다.
“어쩌면 정말 법원이 우리보단 김성훈에게 유리하게 이끌 수도 있다는 거지.”
태훈의 말에 지혜는 말을 잃고 허탈하게 웃었다.
“법이라는 게 그래. 지혜야. 때론 달지만 때론 쓰지.”
태훈은 작은 위로의 말을 했다.
“최대한 우리 쪽으로 유리하기 위해서 우린 증거자료를 보강할 필요가 있어.”
“우리가 최선을 다할게.”
도혜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이 태훈이 그녀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애써 웃어 보였다.
태훈이 담배를 피러 나오자 도혜가 따라 나왔다.
“저도 한 대 줘 봐요.”
“진짜요?”
“농담이죠.”
태훈의 말에 그녀는 농담, 진담도 구별 못 한다는 듯이 위아래로 흩어봤다. 태훈이 황당한 듯 웃었다.
“어떻게 해야 저희가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까요.”
도혜의 물음에 태훈은 담배 연기를 허공에 뿜었다.
잠시 침묵하고 두 사람의 머릿속에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나라에서 맹인안내견이 사람을 공격한 것에 대한 전례가 있긴 한가요?”
“글쎄요, 맹인안내견의 경우는 생소한 것 같습니다.”
도혜의 물음에 태훈은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아차 하며 허공에서 마주쳤다.
태훈은 담배를 서둘러 끄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컴퓨터를 통해 맹인안내견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행히도 맹인안내견에 관한 사고사례가 없었다.
있다면 맹인안내견보다는 사람이 맹인안내견을 폭행한 사례는 있었는데, 태훈과 도혜가 그 기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이 행한 맹인안내견 폭행은 ‘지저분하다고’ 발로 걷어찼다는 것인데, 무죄의 판정을 받았다.
법원은 그 당시 개로 인해 심신의 위협을 느낄 여지가 충분했고, 그로 인해 당사자 스스로는 자기 방어식으로 걷어찬 것이다. 라는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끄응…….”
“그래도 우리나라는 맹인안내견 피해 사례가 없었다는 거잖아요. 이것을 중점으로 파고드는 게 어떨까요.”
도혜의 얕은 신음에 태훈이 한 말이었다.
“어떤 식으로요?”
“맹인안내견 훈련사를 만나서 맹인안내견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법정에 증명하는 겁니다.”
“흐음.”
도혜는 턱을 어루만졌다.
확률적으로 큰 한방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현재는 작은 가능성과 법정의 판단을 돌릴 사소한 것도 소중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재희야. 혹시 해리는 어디에서 분양받은 거야?”
“해리는 인성 안내견 학교에서 데려왔어.”
“……인성화재에서 운영하는?”
“응.”
태훈은 쓰게 웃었다. 인성기업의 계열 중 하나였다.
인성기업은 태훈과는 불미스러운 마찰이 있었지만 분명 국내 최고의 크기의 기업임이 사실이었다.
세계적으로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인성기업은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고 있었고 인성화재 역시 그와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맹인안내견에 관련한 교육을 시키고 전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성기업 쪽이었다.
실상, 더러운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깨끗한 부분도 있는 것이 거대한 기업이라는 것이었다.
태훈의 경우도 인성기업 반도체 업체 건을 관련하고서는 큰 원한은 없었다.
“가보도록 하죠.”
“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