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0
“어? 서류신…형.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이거 2시간짜리 대본으로 써보지 않을래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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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한 연기와 대단한 연기
“이거 2시간짜리 대본으로 써보지 않을래요?”
“네??”
“오디우스 가을공연에 올립시다. 내 연출로. 본인은 극작만 해도 좋고, 원한다면 조연출도 줄 수 있고.”
유명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류신의 말을 듣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아, 전 극작 지망이 아닙니다만,”
“그럴리가요. 한두 번 써본 솜씨가 아닌데. 처음이라 쳐도 상관없어요. 진짜 천재라는 거니까. 장담하는데 극작이 그쪽 재능입니다.”
“제 연기는 아직 못보셨잖아요.”
류신은 답답함에 버럭하려던 것을 겨우 삼키고 말을 씹어 뱉었다.
“안봐도 압니다. 그쪽이 초보치고 대학생치고 정말 연기를 잘한다 쳐도 극작의 재능에 미칠 수는 없어요.”
유명도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리딩 보고 얘기하시죠.”
“리딩에서 내 말이 증명되면 대본 써줄 겁니까.”
“전 배우 지망이라니까요.”
“정 연기가 하고 싶으면, 대본 써주면 캐스팅해 줄게요. 잘하는 애들이 많아서 비중있는 역을 약속하긴 힘들지만.”
“거긴 오디우스잖아요. 전 연영과도 아닙니다만.”
“재능이 확실한 경우 외부 영입을 받는 경우가 없지는 않아요. 제가 추천하죠.”
와…이 독불장군···
줄라이의 서류신이 타고난 승부사라더니, 이건 물면 안 놓는 불독 수준이다.
“리딩 때 뵙겠습니다.”
결국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폴더폰을 접은 유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냥. 싸웠컁?”
“이게 인정을 받은 건지 무시를 당한 건지 알 수가 없네.”
“100년 후에 돌이켜봤을 때 빡칠 거 같으면 무시당한거당.”
“100년 후면 이미 죽었지.”
“쯧쯧. 하루살이 목숨들.”
미호가 얄밉게 혀를 찼다.
유명은 미호의 털을 마구 헝클고 읽던 대본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너와 있을 때는 노래할 때 같은 기분이 들어.] […you, love of my life…] [나…동성애자인 것 같아.] [사랑해. 하지만,]유명은 한숨을 푹 쉬었다.
어렵다. 아무리 해 봐도 흉내같다.
이재필 교수의 말대로,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완전히 이해하여 연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 쉬운 역이 있었나.
그의 해법은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것 뿐.
유명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동성애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CD를 컴퓨터로 재생했다.
그리고 나오는 인물들이 토로하는 감정을 배우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
수요일 저녁, 연극영화과 단과대 연습실.
2층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소형 연습실들 중 한 곳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아직 초봄, 비가 온 뒤라 쌀쌀한 날씨였지만 연습실 내부는 더울 정도의 열기로 가득했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평생 내 옆에 있어.”
“안을 수도 없는 남자의 곁에? 그게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알아?”
“이기적인 거 알아. 억지이고 어리광인 것도.”
“…난 자기에게 뭐야?”
“…you, love of my life.”
6명 전부 연기를 하고 싶어했기에, 파트를 돌아가며 리딩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영과 조원들 모두는 유명에게 바짝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발성이 깨끗해.’
‘어떤 역할을 할 때도 크게 위화감이 없어.’
‘저런 애가 연기 초보라고? 구라 아냐?’
유명의 연기는, 각 배역에 찰떡같이 달라붙었다.
게다가 초짜가 하기 십상인 실수들-대사를 강조하기 위해 너무 자주 길게 포즈(pause)를 넣거나, 모든 대사를 한 가지 톤으로 치는 등-이 전혀 없었다.
졸업한 오디우스 선배가 장난을 치러온 건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순간, 유명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후아…미치겠네’
아직도 프레디의 감정이 잡히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소중한, 일생일대의 소울메이트.
하지만 몸이 그녀를 배신하고 남자만을 원할 때의 미칠 것 같은 초조함. 스스로에 대한 배신감.
머리로는 알겠다. 알겠는데···
‘능숙한 연기이지만, 대단한 연기는 아니야.’
15년간 부단히 노력해 왔던 유명은 알고 있다. 자신이 만족했을 때, 완전히 그 인물과 합치된 듯한 느낌이 들 때의 연기를.
그리고 지금 자신의 연기는 흉내에 지나지 않았다.
리딩이 끝났다.
조원들은 유명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조장 진짜 연기 초보 맞아요?”
“어렸을 때 아역배우라도 하다가 사고쳐서 신분세탁한 거 아냐?”
“류신이랑 비교해도 안 빠지네.”
‘빠지지 않는다’는 우월하지도 않다는 말.
유명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을 때, 귓가에서 나즉한 속삭임이 들렸다.
{쟤 재밌넹. 존재감이 보통이 아니다컁.}
당황한 표정을 급히 가라앉혔다. 오늘은 미호가 따라왔던 모양이다.
유명은 마음속으로 미호에게 말을 걸었다.
‘얼만데?’
{70중반정도?}
‘헐…나보다 20이나 높잖아!’
{그래서 연기는 너가 더 능숙한뎅 남들은 비슷하다고 느끼는 거당.}
아니나 다를까, 그런 반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슷하다면 류신이가 낫지 않을까? 초보는 불안정하기 마련이라 공연 중에 실수할 수도 있고. 난 안정적으로 류신이에 한 표.”
“내 생각도. 무리수 둘 필요는 없을 거 같아. 조장은 짐 허튼 역은 어때? 그 쪽도 잘하는 거 같은데.”
한편 류신의 마음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뭐야. 극작만 천재인 게 아니었다고?
어떻게 처음 하는 연기를 저렇게 할 수가 있지? 저건 흡사 프로의 노련한 연기···’
침이 꿀꺽 넘어가며 목젖이 요동쳤다.
‘정말 초보인데 저 정도라면, 내가 진 거야.
오디우스 4년차라는 새끼가 초보와 비슷하다고 비겼다? 개소리지.’
그는 자수하려고 했다. 사실 저 놈이 이긴 거라고.
그리고 저 놈은 연습기간 중에 더 성장할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저 놈이 프레디를 맡아야 한다고. 그런데,
그런데,
젠장. 욕심이 난다.
정식 공연도 아닌데 이렇게 역할이 탐이 날 수가 없다.
그 욕심이 류신의 입이 열리는 것을 자꾸만 막고 있었다.
‘여기서 역을 낼름 받아먹으면 난 배우로서 자존심도 없는 새끼야.’
류신이 떨쳐지지 않는 미련을 뿌리치고 패배를 인정하려 할 때,
“캐스팅 전에 리딩 한 번만 더 하죠. 이제 감을 잡은 것 같습니다.”
유명이 선수를 쳤다.
*
‘왜 시간을 벌라고 한거야?’
{너…이 역 꼭 하고싶엉? 제대롱?}
‘당연한 소리를. 진짜 엄청 하고싶지. 근데 프레디가 손에 안 잡혀. 리얼하게 느낌이 안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