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05
{됐당. 신경쓰지 말고 촬영이나 잘 해랑.}
‘그래.’
1월 중순의 어느 날.
오늘은 연예학개론의 마지막 촬영일이다.
*
‘고양이소녀’를 오디션에서 따내고, 그 역으로 하나는 일약 스타덤에 떠오른다.
그 사이, 하나는 도준의 고백에 대한 답을 얘기한다.
‘선배님께 저도 끌린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권도준이라는 자석이 너무 강해서, 저는 철가루처럼 끌려가서 붙어버릴 거에요. 저는 권도준의 여자친구가 아닌, 배우 김하나로 서고 싶어요.’
그리고 3년의 시간이 과감히 스킵된다.
그 동안 하나는 상당한 인지도를 쌓은 여배우가 되었고, 권도준은 정기적으로 그녀에게 고백을 시도하고 거절당하길 반복했으며,
보형은…제 집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그녀의 따뜻한 지지자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그녀는 권도준과 같은 작품에 남녀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대등하게 불꽃튀는 연기대결을 펼친다.
‘남주, 여주의 연기배틀물’이라는 평가가 난무할 정도로.
그런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는 보형.
“많이 컸네요, 우리 하나.”
“좋은 배우가 되셨습니다.”
“그러게요. 그 때 내 이름을 수십 가지로 하나하나 다르게 부를 때 알아봤죠. 대단한 배우가 될 거라고.”
그가 바랜 추억을 털어내듯 중얼거렸다.
“얘기…안하십니까.”
“뭘요?”
천연덕스런 물음에 실장이 당황하여 입을 닫자, 보형이 짓궂게 웃는다.
“안해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눈이 너무 좋아서요.”
실장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사람의 마음을, 생각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서 세상을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 억지를 부려 본 적이 없던 아이.
그는 이번에도 억지를 부리지 않으려 한다.
“결과가 너무 뻔하게 보이는데요. 잠시 속시원한 대가 치고 리스크가 너무 참혹하잖아요.”
“…”
“저 목소리로 ‘보형아’라고 다시는 불러주지 않으면.”
실장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를 모셨지만, 이런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늘 고정된 듯이 그의 얼굴에 그려져 있는 웃음이 걷혔다.
“어쩔 수 없어요. 소금물인 걸 알면서도, 그거라도 마시지 않으면 말라죽을 것 같으니까.”
“…죽진 않습니다만.”
“그렇겠죠.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
“정말 안 죽는 게 확실해? 라는 생각도 들어서.”
저미는 음성의 끝을 웃음으로 누그러뜨린다. 그것은 진한 열병.
속속들이 잘 보이는 인간들에 대한 회의가, 속속들이 잘 보이는 한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넘어갔을 때의, 도를 지나친 애착.
그렇기에 꾹꾹 눌러담는다.
망가뜨리느니, 손대지 못할 유리벽 안에 고이 넣어서라도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성공하지도 못할 고백 때문에 ‘배우 김하나’와 ‘인간 김하나’를 응원하고 싶었던 제 마음이 왜곡되는 것도 싫어요. 처음부터 사심을 가지고 도와준 것 같잖아요. 그냥, 열심히 살아온 그녀의 기회가 되어주고 싶을 뿐이었는데.”
실장은 조용히 고개를 숙여 그의 결론을 수용했다.
“하나는 오늘, 권도준을 만날 건가 보네요.”
보형이 담담하게 던지는 마지막 말에, 수많은 감정들이 묻어 있었다.
“커트-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 보형아.”
“와- 보형이는 오늘 끝났구나. 부럽다!!”
“오늘 거 보고 보형이 팬들 눈물콧물 짜겠다.”
보형이 하나를 지켜보는 이후의 몇몇 장면들은 이미 오전에 촬영이 마무리된 상태.
아직 16화의 촬영이 남아 있었지만, 15화로 보형의 분량은 끝났다.
유명은 5개월간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
1월 27일 목요일.
연예학개론의 종방일이자, 종방연.
칼바람을 뚫고 하나, 둘 사람들이 도착했다. 물론 아직 신인이라 생각하는 유명은, 오늘도 30분 일찍 도착해, 스탭들과 한 명 한 명 사진을 찍어주었다.
찰칵-
찰칵-
수십 명의 스탭들의 부탁을 웃으며 들어준다.
종방연에서 배우들과 함께 했다는 사진을 남기는 것은 모든 스탭들이 바라는 일이었기에 더할나위없이 화기애애했다.
“국장님 오셨습니다~”
CP가 드라마국장을 모시고 일찌감치 왕림했다.
일찍 와서 스탭 한 명 한 명 일일이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하는 것을 보니 KBK가 이번 드라마 결과에 얼마나 신이 났는지 알 것 같다.
그럴만도 하다. 어제의 시청률은 44.7%.
‘대장금’이나 ‘파리의 연인’급은 아니지만, 18%에서 시작한 드라마가 쾌속으로 시청률 상승가도를 달려, 지금은 국민드라마 소리까지 듣고 있다.
오랫동안 고전 중이던 드라마국의 어깨도 이제 좀 펴졌을 것이다.
“오오, 신유명씨!”
유명을 보고 국장이 걸음을 재촉해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네. 드라마 잘 봤어요. 우리 딸이 엄청 팬이라는데 싸인 한 장만 부탁해요.”
“따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누군가가 가져다준 희고 빳빳한 종이에 유명이 싸인을 새겨넣는다.
이제 그도 싸인이 꽤나 익숙해 보인다.
“오빠.”
차하린이 도착하고, 정준희가 도착하고, 백승효도 도착했다.
이규성은 뒤늦게 연락이 왔다. [몸살로 불참]
그 내심을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 모두 언짢은 표정을 지었지만, 불편한 인물이 빠지니 분위기는 더 화기애애해졌다.
“방송 시작합니다!”
16화의 내용은 예상대로, 하나와 도준이 맺어지는 엔딩이었다.
-이제야 저도 작은 자석정도는 된 것 같아요. 작긴 해도 인력도 척력도 생겼으니까, 연기도 연애도 끌려가지만은 않을 자신이 생겼어요. 양쪽 다 열심히 겨뤄봅시다, 권도준’씨’.
당당하게 눈높이를 맞추고 먼저 손을 내미는 하나의 고백.
그것은 고백이라기보다는,
끝없이 이기고 지게 될, 그러나 결국 무승부로 끝날 전쟁의 선포같았다.
반전없는 결말이라 다행이었다.
육작가가 ‘파리의 연인 결말 멋지지 않아?’하고 눈을 빛내던 것이 내심 불안했었는데.
와아아–
엔딩씬을 배경으로 드라마 주제가가 흘러나오며, 5개월의 대장정을 마친 팀의 함성이 터졌다.
종방이었다.
그리고 육작가가 유명의 테이블에 찾아왔다.
“신유명씨, 한 잔 합시다.”
“네, 작가님. 한 잔 받으세요.”
이미 여기저기서 술을 받아 마셨는지 얼굴이 달아오른 육작가는, 유명이 채운 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그 때 이후로 처음보죠, 우리?”
“네. 집필하시느라 바쁘셨죠? 촬영장에도 전혀 못오시고.”
“바빴죠. 마지막에는 20부작으로 늘리자는 KBK랑 싸우느라 또 골머리였고.”
“결국 늘리지는 않으셨네요.”
“늘려서 개판되는 작품이 한둘인가요. 시간 다 빼놨다고 통보처럼 얘기하는데, 저랑 한 첫 작품을 마지막 작품으로 끝내고 싶냐고 으름장 놨더니 포기하더라구요.”
“하하, 작가님다우시네요.”
“그래도 이번 작품 KBK랑 잘했어. 대본쓰면서 상상한대로 화면이 빠져서 아주 좋았어요. 특히 10화의 보형이 하나에게 반하는 ‘계기’, 그 파트 쓰면서도 그렇게 소화해줄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참…볼 때마다 놀라워요 신유명씨, 아니 신유명배우는.”
배우, 라는 말에 강세를 주며 그녀가 눈을 찡긋했다.
“대본이랑 캐릭터가 좋아서 그렇죠.”
“그것도 놀랍도록 좋기는 하죠. 둘 다 좋았던 걸로 합시다.”
“하하, 네.”
자신과 남을 함께 높이는 호탕함이 싫지 않았다.
실력있는 자의 자신감이었기에.
“그래서 말인데 유명씨, 나중에 다시 한 번 꼭 같이 합시다. 그 땐 유명씨 남주로 꼭 섭외할테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줘야 해요? 아 물론 그 때까지 좋은 연기 보여줘야겠지만.”
“좋은 작품 써주시면, 언제든지요.”
만만치 않은 응수에 육미영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가끔 보면 방피디님같단 말야. 아직 스물넷이면서.”
“스물다섯입니다.”
이제 한 살을 더 먹은 유명이었다.
“케잌 커팅식 하겠습니다~”
[KBK 연예학개론 종방연]이라는 현수막 아래에 큰 케잌이 설치되고,배우들이 모두 앞에 섰다.
백승효 차하린이 대표로 케잌 커팅식을 했다.
와아아아아–
커다란 함성이 터졌고,
그 날의 종방연은 몇 차를 거듭해 늦게까지 진행되었다.
*
연예학개론 16화 시청률은 45.2%였다.
낮았던 초반 시청률 때문에 평균시청률은 34.8%로 집계되었지만, 04-05 연말연초 시즌 드라마의 우승자는 누가 뭐래도 연예학개론이었다.
남주와 대등하게 어깨를 겨루는 ‘구원받지 않는’ 여주캐릭터의 획을 그었고,
어느 드라마보다 서브남주가 사랑받았던 드라마이기도 했다.
-보형아ㅠㅠ
-보형아 목말라? 누나가 불러줄게. 보형아보형아보형아보형아 울지마…
-러브라인 잘못된 것 같은데요. 진남주 보형이 아니었나요.
아직은 ‘신유명’보다는 ‘윤보형’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배우 신유명의 가치를 확고하게 세상에 보여준 작품이기도 했다.
종방 이틀 후,
유명은 인터뷰가 잡혀 있어서 회사에 나왔다.
몇개월간 고생한 호철에게 며칠 휴가를 주었고, 유명은 자신의 차를 타고 혼자 회사로 와 오후 인터뷰를 끝마쳤다.
그런데, 복도에서 백승효를 마주쳤다.
“유명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