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07
“네, 감사합니다.”
“어디 휴가라도 다녀오지 그래요?”
“어…다음 작품 해야죠.”
유명의 말에 유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휴식기 가져야죠.”
“저는 괜찮습니다. 어서 다음 작품을 하고 싶어요.”
“몇 개월을 휴식없이 달렸는데 괜찮을 리가 없죠. 다작하는 배우로 만들 생각은 없어요. 두세달 충분히 쉬고 다음 작품 찾아봐도 되요. 어차피 들어와 있는 작품은 넘치고.”
“넘쳐요? 들어온 대본들 어디 있는지요?”
“안돼요. 일단 휴가부터 다녀와요.”
이상한 대화였다.
배우는 일하겠다고 하고 매니지먼트는 쉬라고 하는, 역할이 바뀐 듯한 대화.
“실장님. 진심으로 저는 괜찮은데요···”
유명은 마음이 급했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 지 확신이 없었다.
요즘 미호가 유독 조용하지만, 그래서 더욱 불안하기도 하다. 좋은 작품을 빨리, 많이 연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안 돼요. 그럼 딱 한달만 쉽시다. 한달 별로 안 길어요. 가족들과 시간도 좀 보내고, 못본 영화도 좀 찾아보고, 사람이 여유가 있어야 연기도 더 잘 나오는 거에요.”
생각보다 완강한 유석의 의견에, 유명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활동에 대한 의욕은 잘 알았고, 돈은 어때요? 많이 벌고 싶다면 CF가 줄줄이 들어와있긴 합니다.”
유석이 A4용지를 한아름 내려놓았다. 제안서라는 제목이 붙은 서류들이었다.
“이걸…다…하자구요?”
“내가 미쳤어요? 한참 뜨고 있는 신인배우 이미지 한큐에 다 소모해버릴 일 있나. 그냥 자랑이에요. 이렇게 인기많다는 자-랑.”
유석이 짓궂게 말하는 것을 유명은 신기한 듯이 보았다.
지난 번 부터 자신을 대하는 문실장의 태도가 조금 바뀐 것 같다. 아마도 좀더 솔직한 쪽으로.
“돈은…있으면 좋지만, 개런티만으로도 생각도 못해 본 큰 돈이라서요.”
마지막 출연료가 엊그제 입금되었다.
유석이 협상을 잘 해주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돈이었다.
엑스트라로 14시간씩 현장에서 대기하고 촬영한 대가로 몇 만원씩의 입금을 받던 그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금액.
그리고, 낮은 출연료가 미안하다며 기감독이 밀어넣은 러닝개런티,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것이 의외로 조금 돈이 되었다. 독립 영화였기에 제작비가 높지는 않았던 터였다. 손익분기점이 22만명이었던가…그런데 100만을 찍어 버렸으니.
“아참, 기도한 감독님이 해외에 상영권이 좀 팔릴 것 같다고, 그쪽 지분도 계산해 주겠다고 하시더군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유석이 웃었다.
“돈 욕심을 전부 연기 욕심으로 치환했나. 사람이 왜 이렇게 욕심이 없어요. 어쨌든 내 생각은 그래요. 씨에프도 인지도를 올리는 부분은 있으니까, 브랜드 가치와 개런티가 높은 걸로 한두개만 찍읍시다. 단, 콘티가 ‘15초의 예술’인 걸로 뽑아볼게요. 연기력이 필요한 쪽으로.”
CF를 일컬어 15초의 예술이라고 한다.
물론 그런 이름을 붙일만한 CF는 한정되어 있다.
‘제품광고’의 성격이 짙은 종류가 아닌, 스토리라인이 있고 연기가 요구되는 광고를 받아오겠다는 의미.
유명으로서는 바라 마지않는 얘기다.
“알아서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그 순순한 대답을 듣고 싱긋 웃은 유석은, 쇼파에서 일어나 책상에 엉덩이를 기대더니 뜻밖의 제안을 한다.
“뭐 원하는 거 없어요?”
“…?”
“취미생활로 돈벌 마음은 없었는데 돈도 벌어다 주고있고, 생각보다 빨리 쑥쑥 성장하는 걸 보니 후원자로서 마음이 뿌듯해서 뭐라도 해주고 싶네요. 바라는 거 있으면 하나 얘기해봐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면 들어줄게요.”
유명이 고개를 갸웃하자 설명을 덧붙인다.
“갖고싶은 것도 좋고, 해보고 싶었던 일도 좋고, 아님 누구 엿먹이고 싶은 사람 없어요? 눈 앞에서 치워줄 수도 있는데.”
악동같은 웃음.
고개를 저으려던 유명에게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누구…데려올 수도 있을까요?”
세 번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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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데려올 수도 있을까요?”
“…누구? 대학동기인가요?”
“아니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면 소원권을 썼을리가요.”
소원권, 이라는 표현에 유석이 쿡쿡 웃었다.
“그럼요?”
“이번에 드라마 같이 했던 차하린이라는 배우인데, 기획사 사정이 많이 안 좋은 모양이더라구요.”
“차하린씨 알죠. 경력이 꽤 있는 배우일텐데 그냥 계약 끝나는 시점에 옮기면 되지 않나요? 불공정계약같은 것에라도 묶여있어요?”
“아뇨, 오히려 반대라서 문제입니다.”
유명은 하린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했고, 유석은 그것을 귀담아 들었다.
“필엔터라…사정이 나쁘다는 얘기를 들어본 것도 같군요.”
“네. 혼자는 안 오려고 할거에요. 걸그룹 한 팀과 사장님 부부가 같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조금 알아봐야겠습니다. 자선사업도 아닌데 아예 상품성이 없는 친구들을 데려오거나, 본인 도덕관념에 취해서 일을 제대로 못하는 매니저를 데려올 순 없으니까요.”
유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렇게까지 부탁하는 건 아닙니다. 실장님 선에서 해결가능한 상황이면요.”
“그렇게 얘기하니까 또 오기가 생기는데요?”
그가 싱긋이 웃는다.
“장담할 순 없지만, 신유명씨가 한 최초의 부탁이니까 최대한 애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가서 쉬세요.”
“저, 심심할 것 같은데 시나리오라도 좀···”
“안돼요.”
유석은 단호하게 유명을 밀어내고 문을 쾅 닫았다.
유명은 사무실 앞 쪽에 앉아있던 호철을 바라본다.
“호철아, 남는 대본 좀···”
“실장님이 형 뭐 못읽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데려다 드릴게요.”
“아, 진짜···”
유명은 결국 얌전히 수원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거실 바닥에 누워있던 지연이 유명을 반갑게 맞았다.
“오빠, 나 치킨.”
이럴 땐 오빠다.
“몇 주만에 보는 건데 치킨부터 찾냐.”
“없어? 없으면 오빠놈.”
“출근은 언제부터야?”
“다음 주.”
임용고시 합격 1년만에 지연이 드디어 발령이 났다.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하다니 잘된 일이다. 이제 드디어 방바닥에서 탈출하게 된 것도 잘된 일이고.
“옛다.”
“오~ 치킨? 치킨 냄새가 안나는데?”
“선물이다.”
“뭐? 선물?!”
지연의 등이 드디어 바닥에서 떨어졌다.
벌떡 일어나 포장을 집는다.
“무슨 선물이야? 나 생일 아직 안됐는데?”
“취업 선물이야.”
지연은 포장지를 연 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동공이 흔들렸다.
“이거 까…까···.”
“흠흠. 그거 맞아.”
“이 비싼 걸 왜 나 따위에게! 여자친구 주려고 샀다가 차였어?”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연은 얼른 그것을 들어올린다.
어렸을 때 병아리를 사왔을 때 이후에는 본 적이 없는 세심한 손길로, 보듬듯이 그것을 펼쳐 손목에 끼웠다.
“와…대박 예뻐.”
“잘 어울리네.”
“무슨 일이야. 혹시 나한테 잘못한 거 있어? 지금 말하면 다 용서해줄게.”
“풉…너 뭐에 집중하면 시계 잘 못 보잖아. 이제 선생님이니까 수업시간 잘 지키라고 주는 거야. 오빠가 너를 업어 키워 세상에 내놨으니 책임은 져야지. 건실한 사회인이 되려무나.”
“업어 키우긴 개ㅃ…이 아니라 오빠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암, 동갑이셨지만 저를 업어 키우시고 기저귀도 갈아주셨죠.”
“야, 그건 좀···”
지연이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유명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진다.
돈이 좋긴 좋구나. 소중한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수단이니까.
띠릭-
문이 열리고, 부모님이 함께 퇴근하신다.
“엄마! 나 오빠가 이거 사줬다!”
“이게 뭐…헉!”
지연의 손목에서 심상치 않게 번쩍이는 광택을 보고 엄마가 깜짝 놀라신다.
“너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이제 처음 돈벌어서 이렇게 다 쓰면 되니.”
“오빠라고 여태 해준 것도 없는데요.”
유명이 쑥쓰럽게 웃으며 말하자, 부모님의 표정이 따스하게 풀리고, 동생의 눈도 살짝 촉촉해진다.
진심이었다.
시집갈 때도 뭐 하나 제대로 못해줬던 동생이었다.
드라마 1, 2화가 방영되고 처음으로 통장에 꽂힌 금액을 보았을 때부터 가슴이 설레었다.
아빠에게, 엄마에게, 동생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이건 엄마 거.”
“어머, 내 것도 있어?”
유난히 기관지가 약해 기침을 자주하시는 엄마에게 스카프와 목도리를,
“이건 아빠 거.”
가게에서 늘 서서 일하셔서 다리가 자주 붓는 아빠에게는 마사지기계와 바닥이 편한 구두를.
스물 다섯, 아직 어린 줄 알았던 아들이 처음 번 돈으로 양손 가득히 들고 온 마음을 받으며, 가족들은 모두 행복해했다.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그것이 십칠년 만의 효도라는 것은 모른 채로,
알 필요도 없는 채로.
*
“감독님, 어떠세요?”
“글쎄, 저 친구가 할 수 있을까? ‘그 배역’은 너무 강렬해서, 연기 경험이 많지 않으면 배역에 먹힐 수도 있어요.”
“어차피 20대 초중반으로 뽑으셔야 하지 않습니까?”
“아역부터 꾸준히 해온 친구들도 있으니까. 저 친구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카리스마’라고 해야 하나? 저 친구 아직 주연해본 적은 없잖아요?”
“제가 보증합니다, 감독님. 한 번 보시기라도 해주세요. 보시면 제가 추천하는 이유를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허허, 그걸 못 느끼면 내가 윤배우 기대에 못 미치는 게 되나?”
“어후, 그럴리가요… 그만큼 연기력에 신뢰가 가는 친구라는 의미입니다.”
60이 아직 조금 안되었지만, 벌써 백발이 성성한 감독은 못 이기겠다는 듯이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그럼 얼굴이라도 한 번 볼까요?”
한성은 얼굴이 밝아졌다.
꼭 ‘그녀석’과 함께 연기해보고 싶었다. 그 마음은 최근의 슬럼프로 조금 더 급해져 있었다. 그는 연기 방식의 변화로 인한 슬럼프에서 아직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고, 그녀석이라면 왠지 실마리를 줄 것도 같았다.
더하기, 좋은 기회를 주고 싶은 선배의 마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