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
{그럼 겪어볼랭?}
2차 리딩 전.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복도에 나온 유명은,
화장실 칸막이 안에 들어가 손 위에 호로로 내려앉은 미호와 대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호가 이상한 제안을 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프레디 머큐리에게 빙의라도 시켜준다는 거야 뭐야.’
{맞앙. 정확히는 그의 감정을 여기에 불러오는 거지만컁.}
“뭐? 그런 게 가능하다고?!”
유명은 놀라 육성으로 반문해 버렸다.
미호는 자신만만하게 반투명한 어깨를 펴며 주장했다.
{그럼. 나능 대단한 존재당.}
‘하기야. 회귀까지 시켜줬으니···미호 그럼 꼭 좀 부탁해.’
{근데 조건이 있당}
‘뭐야?’
{내가 원할 때, 네 몸 한 번 빌려줘랑.}
오싹-
순간, 미호의 눈이 야릇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착각이겠지···’
미호는 아기 여우의 몸이 되고도 내내 잠만 잘 정도로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착한 녀석이다. 유명은 되뇌었다.
‘누구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나보네? 그래, 한 번 정도는 괜찮아.’
{계약성립이네.}
[연귀와의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계약에 따라 ‘프레디 머큐리’의 감정을 ‘신유명’의 몸에 불러옵니다.] [너무 많은 정보로 뇌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습니다. 주요 감정만 남겨두고 삭제합니다.]한 번 본 적이 있었던 안내가 송출된 후,
키이이이잉–
유명의 머리속에 광폭하게 감정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아, 그건 마치 폭력이었다.
처음 메리를 만나고 설레었던 풋풋함.
하나가 됐을 때의 고양감과 합일감.
그녀를 사랑하지만 점점 몸이 반응하지 않는 고통.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동성에 대한 끌림.
쾌락과 타락. 좌절과 갈구의 나날들..
모두가 자신을 버린 듯한 절망의 늪에서 자신을 구해준 메리에 대한 승화된 사랑.
자신을 되찾고 나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던 헌신적인 연인 짐 허튼에 대한 친애.
그 모든 감정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유명의 머리와 가슴을 유린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은 채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유명은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껏 조인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뭔가 꺼림칙한 알림이 떠올랐지만, 유명은 그것을 신경쓸 수 없었다.
아직도 눈물샘이 멈추지 않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것 같다-
그 불안함은, 유명도 익히 알고 있는 감정이었다. 종류는 달랐지만.
*
“얼굴이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아닙니다. 리딩 시작하죠.”
유명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다. 류신은 의아했다.
‘이제와서 압박감 때문은 아닐테고···’
한 번 더 리딩하자는 유명의 제안을, 류신은 부끄럽게도 거부하지 못했다. 오히려 반가울 정도였다.
그는 방금 전까지 잠시도 쉬지않고, 아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을 연습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정도라면 깨끗하게 패배를 시인할 생각이었다.
‘어디 한 번 해보자고!’
다시 시작된 리딩.
폭풍같이 감정을 격하게 쏟아내는 프레디 역의 서류신.
직전의 리딩과 비교해서 대사의 고저가 분명해지고, 감정이 직접적으로 분출된다.
살아있는 인물의 생동감.
‘역시 류신이야.’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류신의 활약에 속으로 환호하는 조원들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장면이 바뀌고 유명의 리딩이 시작되자···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유명의 텐션은 류신과는 달랐다. 아주 차분하게 리딩을, 아니 연기를 시작했다.
시선은 저편 허공에 두고,
전화기를 든 듯 귀에 가져다 댄 손.
조원들은 고정된 유명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기울여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는 분명 누군가를 보고 있다.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봐.”
“나 보여?”
다정한 속삭임.
극도로 자제한 말투 속에서 외로움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공허.
깜깜한 어둠 속에 닿을 수 없는 빛 한 조각을 향해 손을 뻗는 남자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내 휴식을 네 옆에 놓고 왔나봐. 잘 수가 없네.”
남자가 웃었다.
아니 울었다.
입가에는 웃음을 띤 채로 유명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모두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
장면이 끝났다.
왠지 얼어붙은 듯한 정적을 깬 것은 류신의 박수소리였다.
짝짝짝짝-
“이건 뭐 더 비벼볼 것도 없네요. 제가 졌어요.”
류신의 패배선언과 함께 프레디역은 유명에게 낙점되었다.
유명은 아직 멈추지 않은 눈물을 닦아내며, 머쓱하게 웃었다.
“와…진짜 게이 아니에요? 아, 칭찬이에요. 오해금지.”
“대박. 메소드연기학 더 안들어도 될 거 같은데···”
“그 잠시 사이에 무슨 치트키를 쓴 거에요? 아예 감정의 밀도가 다르던데.”
치트키를 쓰긴 썼지.
유명은 머리속으로 미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냥 갑자기, 아- 하면서 프레디의 감정선이 이해가 되더라구요.”
“와 엄청 천재같은 발언이네요. 재수없지만 인정. 배역이 갑자기 훅 들어오는 경우가 있긴 하죠.”
“그럼 조장이 프레디, 혜선이가 메리, 류신이가 짐 허튼?”
“아니. 난 다른 역 하고 싶은데?”
류신이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응? 프레디는 조장이 하기로 했잖아.”
“그 얘긴 끝났고, 난 메리 역에 다시 지원한다.”
“뭐? 그게 무슨···”
“어차피 이 주제였잖아. 조연은 그러면 안된다는 법 있어?”
“어? 그러네? 그래도 주제는 주연만 지키면 된다고 했는데, 굳이 불리한 짓 할 필요 있어?”
“불리하지 않아. 완벽히 납득 가능한 메리 오스틴을 보여주지.”
류신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
.
그는 천성이 승부욕이 강한 인간.
얼굴에 띠고 있는 미소와 달리 속은 짓뭉개져 있었다.
완벽한 프레디 머큐리.
아역배우로 십수번 연기를 하며 쟁쟁하기 이를 데 없는 배우들도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패배감을 안겨주는 연기는 처음이었다.
‘졌어. 일말의 변명의 여지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