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7
“황산대첩에 참전하는 군졸이야.”
{오, 전투씬이냥. 오늘 그나마 먹을 거라도 많겠넹.}
백여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는 전투씬.
전쟁이라는 극적인 장면을 담기에 잔존 생기가 풍부하고 맛도 특별하다며 미호가 입맛을 다셨다.
유명이 피식 웃으며 미호를 흘려보내고, 촬영장에 들어섰다.
이 곳은 문경의 한 야산.
황산의 지형과 유사성과 고려하여 신중하게 선정된 촬영지였다.
거대한 크레인 위에 카메라와 촬영기사가 올라타서 구도를 조정하고 있었고, 조명은 곳곳에 쌓아올려진 장작더미와 횃불의 일렁임을 방해하지 않게 신중히 배치되었다.
“다들 어두운데 발 밑 조심하세요!!”
야간에 촬영하는 대형전투씬이었다.
야간인 이유를 알만했다.
백여 명의 인원을 수천 명으로 불리기 위해 후반 VFX(*Visual effect: 시각 효과)처리를 해야 할텐데, 화면이 밝을 수록 효과가 더 티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황산대첩은 이 영화의 주제와 직결된 씬은 아니기에 돈을 많이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야간 촬영을 택한 것일테고.
그런 이유라 해도, 야간촬영은 역시 긴박감이 있었다.
일렁이는 모닥불에 의존하여 유명은 가슴과 복부에 판자를 엮어 댄 보호구를 두르고, 투구 밑으로 보이는 하관은 더러운 천으로 가렸다.
스테디캠(*촬영자의 몸에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장비) 촬영을 병행하기에 유명의 얼굴이 잡힐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의상팀에서 얼굴을 가릴 천을 준비해주었다.
“배우분들! 조감샷(*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샷) 먼저 찍을 거니까, 아까 전달한 동선표중 1번으로 갑니다. 리허설 갈게요.”
조감독이 쨍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고, 리허설이 진행되었다. 몇 번을 반복하고, 튀는 동선들을 교정하고 나서야 촬영이 시작된다.
연귀는 전체 현장을 뱅글뱅글 돌면서 촬영을 구경하고 있었다.
동선이 긴 야외촬영이니만큼, 동선을 따라다니며 잔존생기를 흡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본 촬영 갑니다. 슬레이트 쳐 주세요!”
군졸들이 뛰기 시작한 후, 그들이 머물러있던 자리에 도달한 연귀는, 있어야 할 잔존생기가 현저히 부족함에 당황하고 말았다.
{이..이거 왜이러냥.}
군졸들의 동선을 추적하며 따라가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다수의 인간이 기세를 올리며 전투를 하는, 그것도 패퇴하는 적을 뒤쫒는 강렬한 장면인 것을 고려하면, 이해가 안될 정도로 부족한 잔존 생기.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귀가 따라간 끝에는 군졸의 무리가 보였고, 그 가운데에서 익숙한 한 형체가 보였다.
익숙···?
분명 익숙한 형체가 낯설다.
{어?}
유명의 생기가 며칠 전보다…더 커졌다?!
연귀는 조그만 앞발을 들어 눈을 슥슥 비볐다.
원래 그는 인간의 주변에서 번져나오는 생기를 시각으로 인식하므로, 생기가 조금 늘어난 것을 인지하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커졌다’ 라고 느낄 정도라면 상당히 변한 것.
단 며칠만에 유명의 생기가 커진 것과,
방금 전 기이할 정도로 잔존생기가 적던 연기현장.
이 두 사건에 인과관계를 설정해보면,
오싹-
{서…설마.}
그가 생기를 흡수했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
{말도 안돼!}
연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생기를 흡수하는 것은 인간에게 허용된 능력이 아니다. 스스로 추리한 결론이면서도 믿을 수 없어 고개를 마구 휘젓던 귀鬼는 급속도로 하늘 위로 치솟았다.
온 숲이 내려다보이는 공중에서, 그는 안력眼力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지상을 관조한다.
그리고,
스으으윽-
하나의 점을 향해 미약한 기운이 몰려드는 것을 인지했다.
잔존생기라는 것은 양 자체가 매우 적기 때문에 눈에 쉽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감각을 곤두세우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이 무엇인지는…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도대체…뭐가 어떻게 된 거냥…}
왜 인간이 연기의 기운을 흡수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과의 계약 때문에?
그럴 리 없다. 선계의 계약에 그런 부작용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혹시 저 녀석이 인간이 아니었던 건가? 반인반귀라든지?
아니, 그렇다면 인계人界와 선계仙界의 계약이 아예 성립하지 않았을텐데.
그렇다면…기운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있다고?
아니, 참, 있기는 하다.
선승이나 선각자 등 ‘깨달음’을 지향하는 극히 일부의 인간들은, 벽곡(*신선이 되는 수련 과정의 하나로, 곡식을 먹지 않고, 솔잎,대추,밤 같은 것만을 먹으며 도를 닦는 일)과 운기조식으로 자연의 기운을 흡수하여, 우화등선(*사람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
감)을 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신유명과는 관계없는 얘기. 심지어 그가 흡수하고 있는 것은 연기(*演氣: 연기의 기운)가 아닌가. 귀업이 없는 인간이 흡수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다.
그 어떤 가설도 각하되어 버리자, 연귀는 속이 답답해졌다.
‘이건…위험해.’
유명이 연기(*演氣: 연기의 기운)를 흡수하여 본연의 존재감이 50 이상이 될 경우, 그들의 계약은 의미가 사라진다.
인간에게서 존재감의 총량은 100을 넘길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부여한 존재감이 유명의 존재감보다 클 때 발생하는 가 아예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빨리 원인을 알아내야 해.’
잠시 공중에 못박힌 듯 몸을 바르르 떨던 빛무리는, 서쪽을 향해 몸을 던졌다.
목적지는, 중국 항주杭州의 신선거神仙居였다.
*
연귀는 신선거神仙居의 초입에 들어섰다.
주문을 외자 명산에 자욱이 낀 안개가 스르르 걷히며, 인간이 보는 것과는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이곳은, 반선계半仙界.
어떤 이유로, 선계에 머무는 것을 거부한 신선들이 거주하며, 천계로 직접 오르기 위한 수양을 거듭하는 곳.
그가 이 곳에서 만나고자 하는 신선은…
크르렁–
거대한 호랑이가 앞을 막았다.
몸집이 작은 동산만한 대호는 불청객의 방문에 누런 송곳니를 드러냈지만,
조그만 여우가 은빛 광채를 뿜으며 인간의 모습으로 화하자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구나, 수호(*守虎). 어머니를 잘 모시고 있었느냐.}
으릉…킁···
대호는 머리를 바닥까지 붙여 그의 어깨에 뺨을 부볐다.
{여전히 귀여운 녀석이군. 어머니는 어디 계시느냐.}
으렁-
{삼은담이라…목욕 중이신가 보구나. 가서 내가 왔다고 알려드리렴, 이미 알고 계실 테지만.}
대호가 몸을 휙- 날려 사라졌고, 그는 모母의 처소로 향했다.
{혜호(*연귀의 진眞명). 오랜만이구나, 내 아들.}
유채꽃같이 맑고 풋풋한 음성이 먼저 귀를 간지럽혔다.
드러난 형체는, 농염한 여인이었다. 연귀와 꼭 닮은 거미줄같이 가늘고 반짝이는 은색 머리칼과 붓으로 그린듯이 부드럽게 휘어지는 은빛의 눈썹 아래, 요염한 눈매가 나른하게 휘어지며 웃는다.
혜호의 외형을 여성화하고, 색기와 경륜을 한 컵씩 쏟아부으면 나올 법한 이 여인의 이름은 화호花狐.
일개 귀鬼였으나 독보적인 미모로 천제마저 홀렸다고 일컬어지는 이로, 현재는 선仙의 경지에 올랐다.
그녀, 화호와 천제 사이의 자식이 혜호惠狐이다. 천제의 은혜를 받아 태어난 여우.
{평안하셨는지요.}
{나야 언제나 이 곳에서 수양을 거듭하고 있지. 평온하고 아름다운 삶이란다. 재미는 없지만.}
그녀가 입을 가리고 호호- 웃었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누구라도 반할 듯이 매력적이었지만, 혜호는 그저 덤덤히 차를 한 모금 삼켰을 뿐이었다.
{여쭐 게 있어서 왔습니다.}
{요즘 재밌는 일이 많은 것 같더구나. 말 많은 선계에서 네 얘기가 신나게 회자되고 있던데?}
{그와 관련된 일입니다. 혹시 인간이 연기(*演氣: 연기의 기운)를 직접 흡수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인간이? 너처럼 연기 후에 남는 잔존생기를 흡수한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
화호는 생각에 잠겼다.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제 아들이 물색없는 소리를 할 녀석은 아니었다.
그녀는 잠시 시간을 들여 오래, 아주 오래 살아온 제 기억을 훑어보았지만, 그런 사례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선승이 되어 자연의 기운을 흡수해, 신선이 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 인간은 우리같은 귀와 달리, 생기를 많이 모으지 않아도 신선이 될 수 있으니까. 혹은, 사술을 배워서 다른 인간의 생기를 흡수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업을 감당하지 못해 영혼이 붕괴되고
말겠지만.}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기…연기라. 귀업이 없이 특정한 기운을 흡수하다니, 불가능한 일인데.}
혜호가 침음성을 흘렸다.
제 어미도 모른다면, 이건 예외 중의 예외. 답을 구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너와 계약을 한 인간이라면, 기운이 연결되어 있겠구나. 내게 보여주겠니.}
화호의 요청에 혜호는 한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눈이 내리면 소복히 쌓일듯이 긴 속눈썹이 내려앉았다.
하아-
무엇을 보는 것인지, 그녀의 입에선 하염없이 한숨이 이어진다.
그녀는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손을 놓더니, 눈을 다시 떴다.
긴 눈의 끝에서 눈물이 한방울 아롱졌다.
{왜…그러십니까.}
그녀가 그를 가만히 주시하더니, 입술을 떼었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구나. 그 아이도, 내 아들도.}
*
{인과를 알아내셨군요.}
화호는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답은, 그 아이의 원생에 있구나.}
{원생이 왜···?}
{선계 그 ㅆ…머저리들이 일처리를 개떡같이 해서, 그 아이가 그렇게 세상에 나왔지. 세상의 기운에 눌려 죽을만큼 미약한 생기를 가지고.}
예쁜 입술에서 과격한 단어가 뿜어졌다. 화호는 선계에 쌓인 것이 많았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쌍둥이 동생이 있구나. 어릴 때는 동생의 동질적이고 강한 기운이 그를 지켜주었겠어. 제 할애비가 지은 이름도 유명有名에 유명有命이라. 참…가끔 보면 인간들은 신기하게 현명하단 말이지.}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혜호는 점점 마음이 다급해져, 어머니의 설명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