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2
자존심이 쩍 갈라질 정도로 베었지만…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이번 극에서 2번째 비중있는 역은 짐 허튼이 아니라 메리 오스틴이다. 그리고…
‘대등한 핸디캡을 안고, 대등하게 연기로 붙어주겠어.’
류신이 이를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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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03-03-10 12:58] 1조 대본 [03-03-12 20:42] 1조 캐스팅이재필 교수는 메일함에 도착한 두 통의 메일을 확인했다.
이번 학기 학생들은 열의가 남다르다. 특히 1조 녀석들. 가장 빨리 결성된 1조는 대본도 캐스팅결과 제출도 어느 조보다도 빨랐다.
달칵-
이틀 전 도착한 대본 이메일을 먼저 열었다.
그 신유명이라는 녀석이 보낸 것이다. 의도치 않게 재필의 머리 속에 이미 이름을 각인시킨 녀석.
내용은 간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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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대본 완성되어 보내드립니다. 연습하면서 변경 있으면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첨부파일: 1조_love of his life.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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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위로 마우스 포인터가 이동한다. 검지손가락에 힘이 실리는 것을 겨우 억제한다.
평론가 서재필로서의 철칙.
-공연을 보기 전에 미리 대본이나 원작을 보지 않는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은 팬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대부분 실망하는 것은 선입견 때문이다. 자신의 머리속에 상상된 캐릭터와 실제 캐릭터의 충돌은 재미를 반감시킨다.
대본은 조금 덜할 것 같지만, 재필같은 전문가에겐 오히려 더하다.
대본의 배역에 가장 어울릴 법한 배우, 연기, 연출 따위의 심상이 빼곡한 데이터베이스에서 순식간에 뽑혀나오기 때문.
‘이 조 대본은 진짜 궁금한데.’
호기심을 꾸욱 누르고 백스페이스를 누른 재필은 이번엔 캐스팅 메일을 열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예상 외의 인물이었다. 제안자인 신유명도, ‘그’ 서류신도 아닌, 이필성이라는 99학번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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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수님!
연영과 99학번 이필성입니다. 저희 조 연출을 맡게 되어서 앞으로는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캐스팅 결과 및 조원들 롤 정해져서 보내드립니다!
-프레디 머큐리 역 : 신유명
-메리 오스틴 역 : 서류신
-짐 허튼 역 : 반혜선
-연출 : 이필성
-음향, 나레이션 : 강규민
-의상, 소품 : 한서원
-대본 : 신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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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재필은 그들이 뭔가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회신을 눌러 짤막하게 답장을 보냈다.
[‘다르게 태어난 것’ 제한은 주연에게만 걸려 있습니다. 확인하고 다시 보내세요.]접속해있었던 것인지, 금세 재회신이 왔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연들이 본인들도 해보고싶다고 하네요. 잘 만들어 보겠습니다!]재필이 이마를 찌푸렸다.
이 정도까지 설정이 들어가면 코메디가 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의욕이 넘친다는 데 막을 수도 없고···
게다가 주연은 경영학과 2학년 학생이라니.
‘도대체 뭘 만들려고 저러지···’
*
요즘 경영대는 화제의 인물로 떠들썩했다.
“와…나 방금 이 건물에서 못보던 인종을 봤음.”
“아, 그 사람. 경영대 선배래.”
“뭐? 그런 간지남이 우리 과라고? 처음 보는데?”
“00이래. 2년 군대갔다가 이번학기에 복학했다던데. 근데 더 빅뉴스가 뭔지 알아?”
“뭔데뭔데?”
“그 선배 1학년 땐 평범 그 자체였대. 2년만에 대변신.”
“진짜? 그 센스가 군대에서 길러진 거라고? 무슨 보그사단이라도 제대했대?”
두 여학생의 흥분이 고조되자, 옆에 있던 남학생이 끼어들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음?”
“얜 또 뭐래.”
“그 선배보다야 현욱이나 천희 선배가 더 잘생겼지.”
“지금 얼굴 말하냐. 스타일 말하는 거잖아. 간!지! 우리 경영대에 그렇게 옷입는 남자가 있었냐.”
“얼굴도 너보단 백배나음.”
여학우들의 합동 공격에 남학생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
.
유명은 오랜만에 점심 모임에 합류했다.
연기 연습이며 조모임들로 바빴던 탓이었다.
점심멤버들은 유명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학년이라 유명과 수업이 겹치지 않는 그들은 유명의 변한 모습을 처음 보았다.
“와, 신유명 너…무슨 짓을 한 거야?”
직설적인 성격의 신희는 궁금증을 바로 표출했고, 보라는 얼굴이 붉어져 유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보라를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던 상진의 기분이 팍 상했다.
“옷이 너무 튀는 거 아냐? 너랑 좀 안어울리는데.”
“야 오상진. 질투하냐? 완전 잘 어울리는구만.”
“유명아. 진짜…잘 어울려!”
보라가 수줍게 유명을 칭찬했고, 상진의 표정이 더 구겨졌다.
“너네가 남자옷을 아냐? 지금 저런 스타일은 유행 아니거든. 그리고 패턴이 너무 튀잖아. 연예인이면 몰라도 일반인이 평소에 그런 옷을 입냐. 남사스럽게···”
유명이 조용히 한 마디를 했다.
“이거 WARM 스타일리스트 했던 누나가 골라준 건데···”
“뭐? 그런 분을 니가 어떻게 알아? 나도 좀···”
바로 말이 바뀌어 부탁하는 상진을 여자들은 어이없이 쳐다보았고, 유명은 조용히 무시했다.
열받은 상진이 벌떡 일어났지만, 보라와 신희는 미동도 없었다.
“점심 빨리 먹고 과제하기로 했잖아~”
“우린 알아서 할게 먼저가.”
“유명아. 너 그 색 정말 잘어울린다.”
이미 그에게서 신경을 끄고 유명과 하하호호 중인 여학우들을 보고 상진은 이를 아득 물었다.
‘이번 주 총엠티지. 그 때 두고보자···!’
*
토요일 오전, 청량리역.
낡고 허름한 역사 안은 엠티를 가는 대학생으로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였다.
‘와, 이 때가 청량리역 개보수 하기 전이었구나.’
그 곳에는 유명도 와 있었다.
다음 주 창천 캐스팅이 끝나면 공연 때까지는 저녁도 주말도 없다.
마지막 휴일에 뭘할까 고민중이었는데 상진이 연락와서 엠티에 꼭 같이 가자고 읍소했다.
‘무슨 꿍꿍이로 갑자기 친한 척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젊음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유명은 이틀 간 대학생 때로 돌아가 젊은 에너지를 충전하기로 했다.
“앗! 저기 유명 선배님 같아요.”
“유명아~ 여기여기!”
북새통의 한 구석에 몰려있던 경영대 학생들은 천천히 걸어오는 유명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오늘 유명은 편안한 슬랙스에 흰 셔츠를 받치고 하늘색 니트를 덧대어 입었다. 봄느낌이 물씬한 훈남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에 여학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오상진은 그 여학생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 일단 온 사람들끼리 플랫폼으로 이동합시다. 지각자는 안기다려요~”
유명에게 향하는 시선을 큰소리로 떼어놓은 상진은 학생들을 인솔해가기 시작했고, 유명은 끄트머리에서 뒤따랐다.
.
.
대성리의 한 펜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