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23
“전…일곱번이었나, 여덟번이었나…아니 떨려서 그런 겁니다, 떨려서! 촬영장에서 손감독님 악명이 얼마나 자자한데, 처음 찍으면서 저렇게 안 떠는 게 말이 되나요?”
“그러게…근데 안 떠는 것 뿐만이 아니라···”
배거형이 눈을 꿈뻑꿈뻑거렸다.
“눈을 뗄 수가 없네. 저 나이에 저만한 흡입력을 가진 연기자가 있었나?”
“…나이 떼고 생각해도 별로 없을걸요. 한성이가 왜 그렇게 기대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갑니다.”
“태도는 무척 공손한데, 눈빛은 상대를 압도하려고 하는군요. 과연 이방원이구나…하는 느낌입니다.”
“리딩날도 참 잘하긴 했는데, 실전에 오니까 아예 사람이 달라진 것 같네. 우리도 분발해야 겠어. 자칫하면 후배한테 잡아먹힌 선배소리 들을라.”
“그런데, 술은 누가사죠?”
“거형 형님 아닙니까. NG 몇번? 열 번요?”
“쉿! 거 사람들 참…아니 내가 술은 사긴 사는데, 두 사람도 이겼다고 하긴 뭐하지 않아? 다섯 번, 여덟 번, 이건 뭐 오십보 백보인데.”
“…그러게요. 근데 저희 내기 술은…좀 있다 먹죠. 저 오랜만에 연습욕구가 무럭무럭 솟습니다.”
털털한 동네 삼촌에 가까운 아저씨들은 신인배우의 활약에 흔쾌히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속마음도 겉처럼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의 선배이기 전에,
연기로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배우’였으므로.
그들이 뿔뿔히 흩어졌고, 촬영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손감독은 다음 씬에서, ‘사회적 태도’로 포장했다는 유명의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
포장이 벗겨진 이방원의 표정을 본 후에.
끝
ⓒ 글술술
씬은 수업이 끝난 후 마주한 정몽주와 이방원의 투샷으로 이어졌다.
조금은 피하고 싶은 듯이 강의 자리를 뜨려는 정몽주의 앞을 가로막은 이방원은, 고개를 깊이 숙인다.
동북면 구석에 있는 무가에서 자랐다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귀족적이고 세련된 인사.
정몽주가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어 선다.
“강녕하셨습니까, ‘스승님’.”
몽주에겐 불편한 칭호.
그렇다고 이제 스승이라 부르지 말라 내치기엔, 방금 전에도 자신의 수업을 들은 학생이었다.
몽주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인사했다.
“오랜만이네, 유덕(*이방원의 자).”
어릴 때처럼 반말을 쓰지 않고 하게체를 쓰는 것이, 그 사이 진사시에 합격하고 혼례를 올린 자신을 존중해서인지, 혹은 자신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자 함인지.
그 의중을 두고, 방원의 머리 속이 촤르르 돌아간다.
“그새 장정이 다 되었군. 학문적 성취도 높은 듯 하고.”
“많은 가르침 바랍니다, 스승님.”
“성균관엔 특강을 나왔을 뿐이라네.”
이것은 거절이다.
나는 더 이상 네 스승이 아니라는 완곡한 거절.
겉으로는 여상하기 그지 없는 그의 얼굴에 방원의 한쪽 입술이 뒤틀린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제 아비는 아직 모를 것이다. 그가 벗으로 생각하는 저 정치가가 이성계를, 아니 이씨 가문을 이미 ‘경계대상’으로 규정하였음을.
방원은 비틀리려는 한쪽 입꼬리를 지그시 눌렀다.
이런 비틀린 속마음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배운대로.
지금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좋은 본보기처럼.
그는 여전히 정중한 태도로 다시 말을 붙였다.
“그간 격조하였습니다.”
“그랬군. 혼인 소식은 들었네. 축하하이.”
“감사합니다.”
“아버님은 잘 계시는가.”
“저보다 더 기운 넘치시지요.”
“하하, 송헌(*이성계의 호)공은 강골이시니까. 안부 전해주게. 다음에 보세.”
그가 빠르게 인사를 갈무리하고 걸음을 옮기자, 이방원의 포장이 툭- 하고 터진다.
일그러진 한 쪽 입술에서부터 번져 나가듯이 와르르 드러나는 그의 ‘진짜’ 표정.
“스승님!”
“……”
방원을 지나쳐 몇 발 떼던 정몽주의 다리가 그 호칭에 덕지덕지 붙은 감정에 부착되듯 발을 멈췄다.
마주보던 그들이 이제 등지고 있다.
서로 반대쪽을 바라본 두 인물의 투샷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왜….”
“……”
“왜!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시는 겁니까.”
씹어 뱉듯이, 그의 원망이 터진다.
천재적인 재주에, 최고의 인물의 사사했다지만,
아직 16세.
일견 견고해보이던 그의 포장이 겉잡을 수 없이 뜯겨나간다.
알고 있다. 그가 자신을 내친 이유.
자신이 마음에 안 들어서도, 바빠서도 아닌,
아버지의 야심을 눈치챈 그가, 아버지의 아들인 자신까지 경계대상으로 규정했기 때문.
하지만 10년을 우상으로, 2년은 스승으로 방원에게 자리매김한 인물이, 또 한 번 등을 돌린다.
‘입장이 달라서 그런 거겠지.’라며 쿨하게 받아들이기엔,
그는 16세밖에 되지 않은 방원의 역사에서 비중이 너무 높은 인간인 것이다.
결국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외치고 만다.
“찾아뵈어도, 서간을 보내도 단 한 번을 응답치 않으십니까! 정녕…저를 아예 아니 보실 작정이십니까!”
한 자락 남은 동심과 혈기 넘치는 격정이 뒤범벅된, 공기를 찢을 듯한 외침.
그렇게 견고해보이던 포장이 완전히 벗겨진 그에게, 그 계기가 된 상대가 건네는 말은,
“교언영색(*巧言令色), 면종복배(*面從腹背), 양봉음위(*陽奉陰違), 사시이비(*似是而非)!”
소리는 나직하지만, 분명한 질타.
“소득없이 속을 내보이는 것은 정치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가르쳤거늘···!”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
그제야 자신이 패를 까보인 것을 깨닫고 입을 꾹 닫는 방원.
정몽주는 다시 걸음을 옮겨 프레임밖으로 사라지고, 화면 속엔 눈에 핏발이 선 방원만이 남았다.
정몽주 vs 이방원.
1라운드는 방원의 완벽한 패배였다.
*
고요해진 촬영장에 새소리만이 찌르르- 울렸다.
카메라의 불빛이 초록빛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한성의 긴장이 탁- 풀렸고, 그를 등지고 선 유명의 실루엣에서도 힘이 살짝 빠졌다.
한성은 스르르 몸을 돌려, 아직 자신을 등지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녀석일까.’
2년째 그를 보아왔다.
재필이 자랑한 동영상에서 그를 처음 보았지.
보는 사람이 숨이 막힐정도로 텐션이 과도해서,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멋진 재능.
오디우스 워크샵에서 그의 연기를 보고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리지만 누구보다도 연기에 진지한 배우.
그저 후배가 아닌, 함께 연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등한 동료.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아주 가까운 동생이었다.
이상하게도 가끔은 친구나 형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는 마음 씀씀이가 깊은 동생.
함께하면 자신도 채워지는 기분이 드는 좋은 사람.
그리고 지금은···
처음으로 위기감이 든다.
아무리 이방원이 강렬한 캐릭터라 해도, 결국 이 영화의 중심은 정몽주이다.
이방원이 탄생한 1367년부터 정몽주가 사망한 1392년까지, 정몽주의 행적을 위주로 전개되는 영화.
더구나 유명은 영화 초반 40분이 지나서야 등장한다.
둘의 대치는 팽팽해야 하지만, 결코 정몽주가 밀려선 안 된다.
그는 이방원의 손에 제거되지만, 자신의 고집을 관철함으로써 사실상 승리하는 인물이므로.
대본의 정몽주는 밀리지 않는데, 실제의 정몽주가 밀리게 된다면,
그건 자신의 연기가 부족하기 때문이 될 것이다.
그럴 순 없지.
겪어온 과거의 아픔들이 자극의 역치를 높여서, 세상에 조금 무덤해졌던 한성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연기에만큼은 원래 절박했었긴 하지만,
그는 오늘부터 좀 더, 절박해질 예정이었다.
*
감독이 놀란 입을 겨우 다물었다.
나이가 드니 점점 감정을 숨기는 게 어렵게 되어 큰일이다.
아니, 여태 이렇게 놀란 일이 별로 없었던가.
‘포장, 이라는 것에 그런 의미가···’
이방원과 정몽주,
이 두 인물은 본심을 결코 드러내지 않고, 사회적 태도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교묘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인간들이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의 민낯이 드러나는 곳이 딱 한군데씩 있다.
이방원은, 16세에 정몽주와 2년만에 조우했을 때.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눈 앞에서 자신을 등지는 것을 보고, 아직 덜 여문 청년의 껍질이 한 번 툭- 터져 속살을 보인다.
이후 그의 포장은 점점 견고해져 간다.
반면 정몽주는, 첫 등장하는 것이 29세인지라, 이미 정치가의 탈이 완성되어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완벽하게도 우아한 낯만 보이는 그가 민낯을 드러내는 것은, 마지막, 죽기 직전의 단 한 번이다.
그로써 세대가 교체되는 것이다.
신유명은 두 가지의 표정을 만들어왔다.
야심과 격정이 터질 듯한, 선명한 원색의 이방원의 표정과, 그에 덮개를 한 겹 씌워 색상이 잘 구분되지 않는, 잘 포장된 이방원의 표정을.
그리고 포장지가 툭툭 뜯겨나올 때 새어나온 방원의 민낯은···
자신이 손에 쥘 수 없는 것을 애타게 갈구하는 진한 욕망.
잔상이 아직 눈에 남을 정도로 색깔이 선명한 그 감정의 표출을 떠올리며, 감독이 말했다.
“이거…정말 좋네요. 이 표정이 한 번밖에 안나오는 게 아쉬울 정도로.”
“직접적으론 안나와도, 섞으려고 합니다.”
“섞어요? 어떻게?”
유명이 설명했다.
“조영규같은 가신을 대할 때와, 다른 정적을 대할 때는 포장의 두께가 달라질테니까요. 물론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지구요. 장면마다 포장의 두께를 조절해보려구요.”
“……”
천재란 이런 것일까.
엑스트라 연기를 해보겠다고 요청할 때도 느꼈지만, 연기에 대한 접근방식이 독특하다. 영화판에서 30년 넘게 구른 자신도 못 들어본 방식으로 연기를 한다.
이렇게 말로 설명하면 그럴싸한 이미지를 막상 표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데, 실제로도 납득이 가게 구현해내는 것이 또 놀라운 점이다.
감독은 유명의 연기에 대해서 너무 많은 터치를 하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자신 이상으로 캐릭터와 장면에 대해서 고민하고 준비해오는 친구니까.
감독. 디렉터(*director).
영화라는 선박의 키를 잡고 지시를 내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