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25
와…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이쪽바닥에서 10년째 굴러먹어서 촬영장이고 방청이고 안가본 게 없는데, 진짜 유명이가 연기할 땐 박력이 다르더라고요. 내새끼 우쭈쭈 절대 아닙니다.
려말선초 너무너무 기대됩니다. 사진 퍼가셔도 되는데 출처표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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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워어어어!! 여기 좀 눕겠습니다. 안락해 보이네요.
└사진 퀄리티 뭐임;; 전문작가십니까.
└퍼가요~♡
└한복 맵시 미쳤…오늘부터 제 이상형은 한복이 잘 어울리는 남자입니다.
└ㅠㅠ ㅠㅠ ㅠㅠ ㅠㅠ ㅠㅠ
└그 정도인가요? 실제 연기하는 모습이 너무 궁금하네요. 저도 실물보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회장님. 오늘 감사했습니다. 밥 잘 먹었다고 인사드리러 왔어요.
└사칭자 강퇴 요망.
└드라마 끝나고 걸러진 줄 알았더니 요즘도 이런 사람 있네요.
└어;; 사칭 아닌데…오늘 도시락 다먹은 거 인증하시겠다고 사진찍어가셨잖아요.
└시삽/헉···..
└뭐야뭐야? 진짜임? 시삽님 이거 진짜에요?
└시삽/네…맞는 것 같은데요…잠시만요, 왜 하필 이런 더러운 글에…ㅠㅠ
└으악!!! 본인 등판!!! 안녕하세요. 팬이에요. 사랑해요!!
└성지순례왔습니다.
└성지순례왔습니다. 팬이에요. 영광입니다.
└성지순례왔습니다. 영화 대박 기원합니다.
커뮤니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호철의 권유로 팬카페에 인사를 남기러 돌아온 유명은, 게시물들을 몇 개 확인해 보았다.
대부분 자신의 사진, 잘생겼거나 멋있다는 격한 반응, 혹은 다음 작품에 대한 응원.
무척 민망했지만, 마음이 따뜻하게 간질거렸다.
원생에 ‘팬이에요’라는 말은 단 한 번밖에 들어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팬을 자처하고 있다.
‘갚을 수 있는 건, 오직 좋은 연기.’
유명은 또 한 번 마음 속에 다짐을 새겨넣었다.
*
한 달이 더 흘러, 이제는 한여름. 내려쬐는 햇볓이 따갑다.
배우들이 너도 나도 분발하는 덕에 물이 오른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오늘은 이선하와 유명이 처음으로 한 씬에 잡히는 날이다.
이선하가 맡은 역할, 신덕왕후 강씨.
고려는 1부1처제가 원칙이긴 했지만, 토착 세력이 자신의 근거지의 부인과(*향처) 개성 진출시 수도의 부인을(*경처) 따로 두는 것이 관행적으로 허용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성계가 경처로 택한 것은, 자신보다 스무 살 남짓 어린 강씨.
개경의 권문세족 일가에서 자라난 그녀는 그야말로 우아하고 품위 넘치는 여성으로,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무인이 혹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녀는 결혼 후 이씨 집안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성계의 아들들을, 고려의 최고 귀족들의 여식들과 족족 혼인시킨다.
원래 이성계는 개경에 기반이 없었다.
전장에 나가는 족족 대승하고 돌아오는 전설적인 무장이기는 하지만, 고려의 콧대높은 귀족들은 그의 앞에선 전공을 극찬하면서도, 뒤로 돌아서면 ‘사람 머리따는 게 특기인 촌놈’이라며 비웃음을 일삼았으리라.
도시와 귀족에 컴플레스가 있던 이성계는, 아들들을 좋은 혼처에 장가보내어 자신의 입지를 든든히 받쳐준, 어리고 귀족적인 아내가 얼마나 기꺼웠을까.
실제로도 태조는 강씨가 죽자 자신이 직접 서운관 지관(地官)들을 데리고 능지(陵地)를 보러 다녔다. 자신도 죽으면 강씨와 함께 그 곳에 묻히고자 수능(壽陵)으로 정했다하니, 태조에게 있어 평생의 사랑은 정부인 한씨보다는 경처였던 강씨였으리라.
그렇다면 10대 초반, 고향 동북면에서 개경으로 이사 온 어린 소년의 눈에는 작은 어머니가 어떻게 보였을까.
초반에 방원과 강씨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둘의 나이차는 약 11살(*추정나이. 강씨의 정확한 탄생년도는 전해지지 않는다).
엄마라기보다는 큰누이 같았을 것이다. 제 어머니와는 달리 너무나 앳된, 항상 세련된 옷차림과 좋은 향기를 몸에 휘감은 개경의 귀부인.
나긋한 웃음과 머리를 쓰다듬는 고운 손길.
가까워지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상적인 여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강씨가 성실히 공부하는 방원을 보며, ‘방원이가 어찌하여 내 아들이 아니란 말인가!’ 라며 탄식을 했다는 기록도 있는 것을 보면, 둘의 사이는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타고나기를 눈치가 빠르고, 통찰력이 드높은 방원.
특히 정몽주에게 버림받은 이후로 사람을 지극히 관찰하고, 곁을 주지않는 버릇이 생긴 그는 결국 강씨의 본성을 눈치챈다.
항상 순한 낯으로 환하게 웃고있는 제 어미의 속이, 자신과 같은 색의 야망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스무살이나 많은, 이미 본부인이 있는 남자에게 흔쾌히 시집온 것도,
자신과 형제들을 하나하나 개경의 권문세족의 여식에게 장가 보내어 아버지의 기반을 든든이 한 것도,
정몽주를 스승으로 모셔올 수 있게 제 아비를 설득해주고, 이후에도 열심히 자신의 과거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것도,
모두, 목적이 있는 행위.
그걸 깨달은 그는, 하늘을 한 번 쳐다보며 하하- 웃는다.
‘그렇군요. 스승님이 가르치신 교언영색, 면종복배, 사시이비. 어머니가 딱 그에 걸맞습니다. 배워서가 아니라 아니라 본능으로 그렇게 해내는, 타고난 모사가.”
이방원은 그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동류’이자, 대업을 위한 ‘동지’, 누구보다도 판단을 신뢰할 수 있는 동료.
대업 이후에는 어찌될 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대업 이전까지는.
그럼에도, 보고 있으면 가끔 속이 뒤틀리기는 한다. 모르면 모르되, 제게는 그 속이 빤히 보이므로, 순진한 척을 하는 모습이 역겨운 것이다.
유명은 신덕왕후 강씨에 대한 감정을 차근히 정리하고, 오늘 촬영할 씬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이방원의 나이 22세.
이색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사신 파견을 떠나기 직전, 어머니 강씨에게 문안을 드리는 씬 58.
여기에서 그는 강씨를 휘젓고, 자신에게는 본모습을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서로의 속마음을 본 그들은, 왕조 찬탈이라는 대업을 향해 협조하는 동료가 되기로 한다.
그러나, 방원이 드러내는 것은 제 진짜 민낯이 아니다.
‘진심을 드러내는 건, 오직 그것이 목표를 위한 수단일 경우’라는 스승의 가르침.
22세의 방원은 이미 그 가르침을 누구보다도 능숙하게 치르어내는 수완가가 되어 있었다.
이방원과 신덕왕후 강씨,
역시 색깔이 같은 두 야심가가 팽팽한 대치 끝에 손을 잡는,
이 작품의 ‘명장면’ 중의 하나의 촬영이,
잠시 후로 다가왔다.
끝
ⓒ 글술술
“유명아~~”
분장실에 들어서자 가는 손 하나가 번쩍 올라온다, 이선하다.
내에서 강씨는 상당히 의미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실제 찍히는 씬은 한정되어 있다. 늘 내실에서 활동하는 인물이다 보니, 이성계 이방원과 붙는 씬이 그녀가 나올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영화 촬영과 동시에 혜성 정기공연 연습에도 참가하고 있다.
연대순으로 찍는 것을 원칙으로 둔 손감독이지만, 이선하의 촬영장면은 혜성 연습 일정을 고려하여 몇 씬씩 몰아서 찍고 있는 중이다.
오늘 이선하가 촬영하는 씬은 이성계와 투샷인 S#41과 이방원과 투샷인 S#58.
‘반박하기’ 워크샵 이후 이선하와는 처음으로 함께 연기해본다. 동료들이 ‘상대역으로 선호한다’는 이 배우의 연기가 유명은 무척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저보다 조금 먼저 촬영 들어가시죠?”
“응~ 씬 41 먼저 찍고, 그 담엔 드디어 유명이랑 찍겠네!”
“정면 씬은 오늘 처음 가시죠?”
“응. 분장 잘됐어?”
방원의 나이 22세, 강씨의 나이 33세.
둘의 대치가 벌어지는 씬 58에서 강씨의 정면 모습이 처음 등장한다.
방원이 어릴 때 만난 작은어머니 강씨는 뒷모습으로만, 이성계와 대화를 나눌 때의 강씨는 어렴풋한 옆모습으로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속마음을 꽁꽁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인물을 상징하는 메타포.
한성은 40대의 선하가 20대 때의 강씨를 표현하는 게 무리라서 정면샷이 빠진 거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실제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씬 58이다.
아니, 방원에 의해서 강제로 들춰지는 것에 가깝겠지만.
“씬41은 배거형 선배님이랑 미리 맞춰보셨어요?”
“응. 근데 내가 연습하면서, 아들이 과거급제할 때의 심리를 참고하려고 스무 한 살에 결혼한 친구한테 물어봤잖아. 그 친구 아들이 작년 수능보고 서울대 들어갔거든.”
“우와, 엄청 기쁘셨겠네요.”
“응. 애가 태어났을 때만큼 기뻤다는데, 사실 그 비유도 이해가 안 가긴 마찬가지라…”
아직 싱글인 선하가 쿡쿡 웃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강씨에게 이방원의 급제는 아들의 합격소식이라기 보다, 자신의 야심을 이룰 ‘도구’가 더 쓸모있게 레벨업했다는 의미잖아?”
“네, 그건 그렇죠.”
“그래서 게임에 인생을 건 친구에게도 전화해서 물어봤어.”
“게임요?”
“응. 무기 강화했을 때 그레이트 석세스 뜨면 기분 어떠냐고.”
하하하-
유명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어머니의 무기인가요?”
“그렇지? 그 무기가 자아를 가지고 칼 끝을 돌리지만 않았어도, 강씨부인은 천하를 얻었을 테니까.”
“신박한 해석이네요. 너무 좋아요.”
유명은 한참을 웃더니, 선하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직 헤어 하셔야되죠? 저 베이스하는 동안 씬58 한 번 맞춰볼까요?”
“좋지~”
그들의 연습은, 선하가 씬41 촬영을 위해 분장실을 나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
유명이 분장과 의상착용을 마치고 촬영장에 나왔을 무렵, 씬 41의 리허설이 막 끝나가고 있었다.
이선하의 연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
원생에서 혜성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몇 번 선하가 연기하는 모습을 본 것도 같지만, 디테일한 감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고려 시대 귀부인의 복장.
엷은 화장에 시원한 모시옷은 일견 단순해 보이면서도, 소매 끝의 섬세한 자수나 허리띠 끝 부위에 달랑거리는 화려한 장신구 등의 디테일이 개경 수도의 맵시있는 귀부인의 자태를 한껏 강조한다.
“갑시다~~ 스탠바이!”
씬41.
방원의 과거 급제 소식이 전해온다.
16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고작 1년만에, 병과 7등(전체에서 10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문과에 급제한 아들. 심지어 그 해 최연소 합격자였다.
이것이 변방 출신 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던 이성계에게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을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리라.
방원의 과거 급제 소식이 들려온 날, 이성계와 강씨부인이 기쁨을 나누는 씬을 찍기 위해 배거형과 이선하가 마주 앉았다.
배거형의 전측면과 이선하의 후측면이 카메라에 나란히 잡힌다.
여전히 정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녀이다.
“부인, 우리 방원이가, 방원이가 과거에 급제를 했다 하오, 하하하하. 이런 경사가 있다니!”
“…감축드리옵니다! 방원이가 어릴 때부터 여간 똑똑하지 않더니, 이런 효도를 하는군요.”
나긋하고 보들보들한, 포근한 솜처럼 포옥 잠기는 음성.
유명이 귀에 감기는 그 소리에 몸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모성애를 연상케하는 상냥함이 흠뻑 묻은, 남자라면 누구나 그 품에 머리를 묻고 싶어질 법한 목소리다.
“우리 집안에 문재(*문과의 재능)는 없었는데 어떻게 된 녀석인지, 하하.”
“대감의 우수함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를요?”
“조가, 유가, 손가의 삼국시대를 보아하면 전장에는 장수와 모사가 있었고, 우수한 모사의 학문적 소양은 당대 학자들 중 으뜸이였지요. 하지만 대감께선 전투와 지략에 모두 능하시니, 무武에 할애할 시간을 문文에 쓰셨다면, 포은공을 능가할 문재를 발휘하셨
을 것입니다.”
“하하하, 내가 부인께 또 아첨을 이리 당합니다.”
강씨 부인이 고사를 섞어 재치있게 자신을 높여줌에, 이성계의 웃음소리가 한층 높아진다.
과연 건국의 시조를 쥐고 흔들만한 요부.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했다. 그것이 아름다운 자신의 애처라면 무엇을 바치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커다란 효도를 하다니, 방원이가 신첩의 아들이 아닌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아니 제가 무슨 망발을! 워낙 귀애하는 아이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