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0
챠앙-
주변 호위군관들의 창이 겨누어졌다.
목 끝까지 창이 닿은 상황에서도 그는 손 한 번 떨지 않았다.
연기라 해도 그 시퍼런 칼날에 흠칫할만 한데도.
주원장은 손을 살짝 들어 그들을 저지시켰다. 허락을 받은 그가 품에서 꺼내어 펼친 것은,
아교를 먹여 반들반들한, 배의 돛을 찢은 천.
방수가 되는 천을 펼치자 그 속에서 나온 것은, 명나라 황제가 고려의 왕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한 번 접히지도 않은 반듯하게 보존된 서신.
지치고 퀭한 남자의 모습과 붉은 종이에 밀봉된 깨끗하고 반듯한 서신이 완연한 대비를 이룬다. 주원장이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가 진중하면서도 강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그에게 요청한다.
[폐하. 은혜로운 분부는 황공하기 그지 없사오나, 제 작은 목숨에 얹어진 무거운 사명은 오직 폐하의 서신을 고려에 전달하여 두 나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옵니다. 13일간 사경을 헤메면서, 오직 한 가지, 제가 제 사명을 마치고 영예로이 죽을 수 있기를바라 왔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13일간의 표류에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허어···]충정이 절절 배인 목소리.
그 목소리에 주원장이, 아니 뤄더룽이 신음을 토한다.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하는 의지가, 기백이, 대사 마디마디에 기둥을 우뚝 세우고 있었다.
[저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자신의 즉위를 도운 공신들마저 인정사정없이 처단한 주원장에게 가장 고팠던 것은, 바로 저런 의심할 나위없는 충정.
그는 기묘한 눈빛으로 너덜너덜한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진실로 네가 탐이 나는구나.] [……] [하지만 사경을 헤메다 온 자의 청이라 하니 무시할 순 없고, 나를 위해 시를 하나 지어보아라. 그 시가 마음에 든다면 너의 청을 들어주지.]고약한 명령이었다.
어서 빨리 정양해야 할, 지금도 오직 의지로만 몸을 가누고 있는 남자에게 내리는 가혹한 주문.
그러나, 정몽주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의 주문을 받아들였다.
[종이를 주십시오.]그리고, 일필휘지로 시 한 수를 적어내렸다.
*
‘정말로···’
오늘 그는 어제까지의 그와 달랐다.
유명은 그의 연기를 보며 소름이 돋고 피가 끓었다.
미호가 했던 말이 예언처럼 머리 속에 맴돌았다.
-오늘 저 배우가 한 단계 도약할지도 모르겠당.
주원장의 명령에 거부한 정몽주의 도박은, 사실 계산된 것.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고 있지만, 철저한 계산 하에 던져진 승부수였다.
주원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세밀한 이해와, 그가 보관하고 있는 무결한 서신을 최대한 활용하여,
단순히 고려로 무사히 돌아가기 위해서만이 아닌, 이 잔인하고 변덕스런 인물이 고려에 최대한의 호의를 갖게 하기 위한 승부수.
마주본 두 사람의 기운이 팽팽히 맞선다.
거대한 궁과, 화려한 궁인들의 의상과, 악명높은 황제의 위엄.
그것을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퀭한 눈의 재인才人 하나가 기세로 아우르고 있다.
‘대체···’
무엇이 한성을 저만큼 절실하게 만들고, 무엇이 그를 밀어올린 것일까.
다담 씬의 26세 이방원이, 거슬러 내려가 그 이전의 시절을 관통하는 기백의 대를 세웠다면,
사신 씬의 35세 정몽주는, 이미 그 그릇이 완성되어 지금부터 죽음까지의 시간을 관통하는 기백의 대를 세우고 있다.
그 기백과 기백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힐 다담 씬.
이제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벌어지게 될 정몽주와 이방원의 승부.
정말 좋아하는 선배이고 형이었지만,
질 마음은 유명에게도 없었다.
이윽고, 정몽주가 단숨에 완성된 시를 읊기 시작했다.
끝
ⓒ 글술술
이윽고 정몽주가 단숨에 완성된 시를 읊기 시작했다.
[3척검 들고 용처럼 날아 천하를 평정하시니,당대의 호걸들이 모두 나와 도왔네
태산과 황하를 띠와 숫돌로 맹세한 이는 서승상이요
천지를 경륜한 분은 이태사라네.
부마댁 숲속 연못 가엔 봄빛이 난만하고
국공의 누각에는 달빛이 흐드러졌다.
알겠도다, 태평성대 공신의 후손들이
다 함께 나라의 태평함을 즐기며 만세도록 기약함을]*
약간 쉰 듯한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읊어지는 시는 남자답고 박력이 넘친다.
명의 시조 홍무제가 원나라를 제압하고 나라를 개국할 때의 강건한 기상을 극대화한 표현. 서승상과 이태사라는 주원장의 측근들의 충성심과 능력을 강조한 문장들.
읊는 음성에 서린 힘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겪으면서도 의연함을 잃지않는 선비의 기상이 실려있어 거대한 세트장을 숨죽이게 하였고, 단숨에 써내려간 시의 담대함과 아름다움은 주원장의 위업을 치하하고 있어, 당사자는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가히, 이 넓은 명에서도 찾기 힘든 기상과 솜씨노라.]주원장이 기뻐하며 치하했다.
[네 재주가 정말로 탐이 나지만, 이토록 멋진 시를 선물해주었으니 약속은 지켜야겠지. 명의 벼슬을 받지 않겠다 하니 네 원하는 청이 있으면 들어주마.]의심많고 수하에게 쉽사리 마음을 주지 않는 주원장의 얼굴이 완연히 풀어져 있었다.
정몽주는 등을 꼿꼿이 편 자세 그대로 말했다.
[폐하의 성은이 지극하여 감읍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사옵니다. 폐하께 직접 시를 지어드린 일만으로도 저는 평생 영광으로 여길 것이니 제게 상은 필요 없사옵고···] [그리고?]정몽주가 조심스레 말을 고르자, 흥미롭다는 듯이 주원장이 재촉한다.
개인의 영달이라고는 조금도 추구하지 않는, 젊은 사신의 강직함과 충정에 주원장은 깊이 감동한다.
[여봐라- 이번 고려 사신단이 헌상한 공물을 돌려보내라.]그리하여 공물을 돌려보내고, 고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에 이른다.
맨몸으로 대륙의 천자와 맞짱(?)을 떠, 잔인하기로 소문난 만인지상의 인정을 받은 당대의 재인.
그 의기와 재주를 저 자신인 것처럼 소화해내는 한성의 연기에 유명은, 그리고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컷-”
짝짝짝짝-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지자, 배우들과 스탭들이 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앞에 서 있던 뤄더룽이 손을 내밀었다.
[감탄했습니다!]“…감사합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그의 표정과 말투로 칭찬인 것은 알겠다.
한성 역시 뤄더룽의 연기에 감탄했던 터라 그가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어제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 배우가 말한대로 제가 소견이 좁았군요. 감독님을 존경했으면 감독님이 고르신 배우도 믿었어야 하는데, 제가 의욕이 넘쳐 얕은 소견을 내비쳤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중국인답게 큰 목소리로 떠드는 그의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 한성은 당황했다.
“어어…저는 중국어를 못합니다만···”
[시조를 읊을 때의 호방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처음 명 태조와 눈을 마주했을 때 압도하는 그 눈빛!]“뭐라는 거지···”
[한국에는 좋은 배우들이 참 많군요. 그 작은 나라에 어찌 그리 재능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음···”
[대표작이 뭐라고 했지요? 어제 동료분이 이름을 알려주신 것 같은데. 얘기해주면 꼭 찾아보겠습니다. 언젠가 또 같이 작품을 하고 싶네요.]“그냥 냅두자···”
중국인은 타인에게 마음을 잘 주지 않지만, 한 번 인정하여 받아들인 자기 사람에겐 헤플 정도로 정이 많다고 했던가.
그의 칭찬은 감독이 모니터링을 할 동안 끝도 없이 이어졌다.
저 멀리서 미호를 통해 뤄더룽의 칭찬을 전해들은 유명이 빙긋 웃었다.
내일은 자신의 차례다.
*
다음 날.
명나라를 방문한 이색과 이방원의 씬.
촬영 장소는 황제가 사신을 접견하는 접견실.
저 드높은 단상 위에 황제가 앉아있고, 바닥에는 이색, 이방원을 비롯한 사신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가져온 공물들을 하나하나 진상하며 이색이 원하는 것은, 창왕의 정식 인준.
그러나, 이 능구렁이같은 명나라의 천자는 만만치가 않다.
가져온 공물을 느긋하게 바라보던 주원장이 이색을 내려다보더니 질문한다.
이색은 원나라 과거에서 수석을 한 적이 있는, 명망높은 학자.
천자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릴 때,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한다
[폐하. 고려의 왕이 친히 조회하기를 청합니다.] […이해하지 못하였다. 무슨 말을 하였느냐?]천자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리고 예부의 관원이 아뢴 것을 듣고서야 아아- 하며 웃는다.
[그대의 중국말은 꼭 나하추(*몽골의 장수)와 같다.]모욕으로 들릴 수도 있는 농을 슬쩍 친 후, 주원장이 관심을 돌린 곳은 그 옆의 얼굴이다. 스물 두 살의 이방원.
[그대가 이성계의 아들이라고?]천자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화제를 넘기자 이색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이방원은 얌전히 고려말로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그것이 그 날 조회의 끝이었다.
뤄더룽은 이방원 역의 배우를 보며 생각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표현된 이방원을 소화하기에는 너무 얌전해보이는 신인배우인데, 뭐…감독님이 생각하신 무언가가 또 있겠지만, 흠···’
너무 눈에 띄지 않는 이방원. 뤄더룽은 그것을 의아하게 여기지만,
그것이 계획된 범주의 ‘연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다음씬 촬영에서 밝혀졌다.
*
“하하하하하–”
새파란 웃음이 터진다.
자못 통쾌한, 실내를 쩌렁하게 울리는 듯한 웃음에는, 천자 접견 때 보인 얌전함이 싹 걷히고 존재감이 실내를 가득 메우고도 넘치는 자신만만한 젊은 영웅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