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2
“유명아~~”
“강녕하셨습니까, 어머니.”
“으악! 엄마라니···! 근데 너같은 아들 있으면 좋겠다.”
유명이 장난을 치자, 선하가 엄마 미소를 지으며 아들타령을 한다. 하기야, 그녀가 17세쯤에 사고(?)를 쳤으면 유명만한 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여기 너무 예쁘다. 촬영 끝나면 나한테 분양해 달라고 하고 싶어.”
“세트라 외관만 번듯하고 수도도 난방도 안 될 텐데요?”
“윽···그건 곤란하네. 중국은 어땠어?”
문경 세트장 이후로 선하의 씬이 없었다. 즉 그녀와는 거의 3주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한성이 형이 올킬했죠.”
“한성이가?”
“보시면 깜짝 놀라실거에요. 어마어마했어요.”
“걔는 원래 잘하는데?”
“그걸 넘어섰죠.”
“와…나도 따라갈걸···!”
선하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랗게 변했다.
리액션이 좋은 배우가 아니랄까봐, 연기할 때 뿐 아니라 평소에도 리액션이 참 좋다.
나이가 들 수록 사람은 무뎌가기 마련인데, 작은 것에도 놀라고 진심으로 감탄할 수 있는 것은 배우로서 축복같은 재능이다.
두 사람의 의상과 분장이 준비된 후, 감독의 디렉팅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이 ‘동맹’을 맺은지 4년이 지났죠.”
“네-” “그렇습니다.”
“그간 둘 사이에는 변화가 있었어요. ‘동맹’ 당시에는 표면적으로라도 둘의 역학관계가 대등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방원의 식견과 기세가 강씨 부인을 압도하죠.”
“네.”
“그래서 강씨 부인은 좀더 이성을 잃고 초조해하듯이, 방원은 그걸 받아주면서도 제 생각을 느긋이 관철하는 모습, 이해하죠?”
“물론입니다.”
“오케이, 그 느낌으로 갑시다. 이제는 강씨 부인은 완전히 정면을, 방원은 조금 옆 모습을 보이는 형태로 갈 겁니다. 이미 방원에게 속이 다 보여버린 강씨 부인은 정면을 보이고, 방원이 오히려 살짝 돌아서 있는 거죠. 이 부분 유의해서 마킹(*배우의 동선을 바
닥에 표시해 둔 것) 확인하고요.”
“옙!”
때는 1392년.
정몽주가 살해당한 해이자, 조선이 건국된 해.
그 후면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을까.
손감독이 만든, 하지만 누구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역사 속의 숨겨진 이야기.
그 비밀스런 공방전이 이 곳에서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
후원의 커다란 나무 아래 그림자가 겹쳐 진한 부분이 교차한다.
그늘 밑에서 대화 중인 두 사람.
산책을 핑계로 하인들을 물린 후, 그들은 위험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포은 공이 병문안을 오겠다는 전갈을 넣었다.”
“들었습니다.”
선하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진다.
그 다급함이 담고 있는 강씨부인의 초조, 불안, 야욕.
하지만 방원은 느긋이 늘어진 나무가지에서 잎을 하나 똑- 따더니 그 잎맥을 따라 손가락으로 천천히 문지르고 있다.
“죽여야 해.”
까랑-
강씨 부인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위화도 회군으로부터 4년 째. 그녀는 불안했다.
이성계는 ‘선양’이라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옥좌를 양도받고자 한다. 그래서 우왕, 창왕, 공양왕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1391~1392년은 정몽주와 공양왕이 손을 잡고, 고려 왕조의 유지를 위해 마지막 발버둥을 치던 해였다.
1391년 가을 정몽주 측의 잇달은 상소로 정도전이 귀양을 간다.
그리고 1392년 초에는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져 입은 부상으로 벽란도에서 정양하는 틈을 타 조준, 남은, 윤소종 등 이성계의 측근들이 줄줄히 유배를 당했다.
고려유지파들의 마지막 반격이었다.
강씨부인은 점점 불안해진다.
왜 그냥 뺏아도 되는 것을 지아비는 기다리고만 있는가.
이러다 다 된 밥에 재를 빠뜨려 먹지 못하는 게 아닐까,
살랑살랑 이성계를 꼬셔봐도, 그는 ‘평화로운 선양’이라는 부분에서는 결코 양보가 없다.
그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수 밖에.
“정몽주만 죽이면, 위협이 될만한 인물은 없다. 그를 죽여라.”
만들어진 웃음도, 웃음을 씻어낸 무표정도 아닌, 초조한 마음에 살기가 맴도는 그녀의 낯빛은, 묘하게 징그러운 느낌이 있었다.
그 표정에 감탄하며, 유명이 연기로 맞선다.
“마지막 설득을 해 보지요.”
“설득이 될 자였다면, 여태까지 대치하고 있지도 않았다.”
“아까운 인재가 아닙니까.”
“아까운 인재에게 물려서 다같이 저승에 가고 싶으냐!”
그녀의 목소리가 매섭게 찔러오는 것을 방원이 그대로 맞아준다.
냉정을 잃은 그녀의 질타는 간지럽지도 않다.
“덫을 놓아야지요. 덫에 걸린 포은공, 그 고고하신 분이 사육당하기를 택할지 죽음을 택할지 궁금하군요.”
“그런 음흉한 작자에게 어찌 덫을 놓아!!”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지자 방원이 그녀를 지그시 쳐다본다.
선하는 그 표정에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선다.
그녀를 질책하는 듯한 시선은, 위에 선 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
그녀는 넘치게 몰려오는 방원의 기세에 당해, 예정된 동작이면서도 예정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리액션을 취했다.
그런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방원이 손에 쥔 이파리를 이지러뜨렸다.
짓이겨진 이파리에서 배어나온 시퍼런 풀물이 손을 퍼렇게 물들이더니, 바닥으로 한 방울 똑- 떨어진다.
“덫을 놓으러 가는 사냥꾼의 길목에 덫을 놓는 겁니다.”
“……”
“아주 조심성많은 사냥꾼조차, 자신이 공격 중이라고 믿고 있을 때는 방심하는 법이지요.”
“그가 무슨 덫을 놓으려 한단 말이냐!”
“아니 보이십니까?”
방원이 피식- 웃는다.
그 때 그의 포장이, 슬쩍 귀퉁이가 벗겨져 속살이 드러난다.
꿀꺽-
강씨 부인이 침을 삼킨다.
아주 어릴 때부터 봐온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도, 낯선 표정.
“저는, 보이는데.”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어 혼란해진 강씨 부인이 그를 멍하게 바라만 보았다.
26세의 청년은, 이미 그녀가 속을 읽을 수 없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
우와아아아–
“끝내준다, 이방원 카리스마 쩔어.”
“이대로만 가면 완성도 후덜덜 하겠는데···”
“우리 보너스 받는 거 아닐까?”
스탭들이 웅성거렸다.
용인에서의 첫 촬영, 스타트가 기가 막히게 끊겼다.
16세 이방원, 소년의 아직 앳되지만 강렬한 기세는, 10년 후인 지금 완연히 물이 올랐다.
타고난 자질에, 뛰어난 인물에게 사사하고, 그 자신의 사고와 통찰로 끊임없이 다듬어진, 2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된 인간.
잔인한 이미지조차 자신의 실리에 맞게 계산하여 연출했던 태종 이방원.
손감독이 이 시나리오에서 구현하고 싶었던 이방원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손감독은 그 현장에서, 슬쩍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텐션으로 앞으로 한 달, 다담 씬 전 장면의 촬영이 가능하다면, 이 작품은 내 마지막 작품이자, 평생의 역작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또 한 인물도 그만큼을 받아 쳐줘야 했다.
손감독은 촬영장 옆 대기 장소에서 차분한 눈빛으로 유명의 연기를 응시하고 있는 배우를 돌아보았다.
6일간의 단식으로 내린 살이 모두 돌아오진 않아, 약간은 까칠한 얼굴.
하지만 긴장을 몸에 휘어 감은 듯한 그의 분위기는 압도적이다. 20여 년을 알고 지냈어도 저런 한성은 본 적이 없다.
‘부끄럽군. 아무리 배우를 일깨우는 건 배우라지만, 함께 여러 번 작업했으면서 저 정도의 자질을 이끌어내 주지 못했으니.’
다담茶談.
차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
정몽주는 이성계의 문병을 갔던 날, 방원을 만나 그와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우리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정몽주는 그토록 양자간 대립이 첨예하던 그 시기에 이성계의 문병을 갔는가.
정적이라 할 지라도, 30년 지기인 이성계가 아프다는데 문병은 가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혹은 이성계가 정말로 아픈지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전략을 정비하려고?
이미 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은 시기에,
적의 소굴에 제 발로 찾아 들어가는 이유로는 너무 약하지 않은가?
정몽주는 우아하고 인품 높은 학자로 그려지기는 하지만, 필요할 땐 극단적인 수를 쓸 줄 아는 인간이었다.
뒤집어 말하자면, 필요할 때 극단적인 수를 쓰기 위해, 평소에는 자제하고 감출 줄 아는 인간.
오랜 벗인 정도전을, 출신에 천한 피가 섞여있다는 인신공격으로 축출하고,
조준, 남은을 유배 중에 슥삭하도록 지시한 사람이다.
그 모든 자신이 안배한 수들이 ‘이성계의 복귀’로 와르르 무너지기 직전, 그가 계획한 것은 과연 그냥 ‘문병’이었을까.
그래서 손감독의 시나리오는 정몽주의 문병을,
로 풀이한다.
이성계는 고려 땅에서 최고의 기량을 가진 무인.
다치지 않았다면 그를 암살한다는 계획은 너무나 무모한 것이었겠지만, 진정 다친 것이라면 다시 오기 힘든 기회일 것이다.
다만, 그가 낙마했다는 소문조차 ‘하나의 전략’일 경우를 대비해, 정몽주는 직접 문병이라는 이름의 ‘정찰’을 온다. 그의 부상이 정말로 진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방원은, ‘문병’이라는 핑계만 듣고도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다.
다담 씬은,
이성계를 죽이려는 정몽주와
그 정몽주에게 덫을 놓아 자신의 사람으로 포섭하려는 이방원의,
마지막 수싸움으로 전개될 것이었다.
끝
ⓒ 글술술
다담 씬은 총 8개.
도입-다담 씬-과거회상-다담 씬-과거회상-다담 씬···
의 구성은 다담 씬이라는 줄기를 기반으로 과거를 반추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후원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차와 대화를 나누는 풍경은, 당대 최고의 재사들이 나누는 설전과,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하들의 육박전이 어우러져 모순적으로 긴장을 더욱 부추길 것이었다.
“5분 안에 슛 들어갑니다. 다들 대기하세요!”
첫 촬영 날, 감독이 주문한 것은 다담 씬 전체를 주욱 이어 원테이크로 돌려보는 것이었다.
한 달에 걸쳐 디테일하게 촬영되어야 할 씬들. 컷마다 사이즈도 구도도 달랐지만, 처음에 한 번 풀샷으로 돌려보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이 한 번의 테이크가, 앞으로의 촬영의 가이드가 된다.
컷과 컷 사이에 감정이 뜨지 않도록, 감정을 이어갈 수 있는 ‘지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카메라가 세트를 풀 샷으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