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5
“예-”
“단,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대로변에서.”
그 명령에 무사들의 앞에 선 시헌이 묻는다.
“암살이 아닌 대로변입니까?”
“그래. 온 천하가 그의 죽음을 알아, 아버님이 내 공적을 지울 수 없도록. 가장 번화한 곳에서 가장 처참하게.”
“명 받들겠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죽음은 역사가 될 것이다.”
틱-
카메라가 파란 불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한참동안이나 화면이 잡고 있는 그림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커···.컷-”
*
그 날의 촬영을 보고, 손감독은 한성과 유명을 한 번씩 얼싸안았다.
고맙다는 말을 되뇌이며.
소소한 디테일들을 제외하면, 감정선의 수정은 없었고,
그것을 견본삼아, 한달 간의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담 씬 외에도 이성계의 집 주변에서 촬영할 부분들이 많았다.
정몽주의 수하들이 집 주변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몽주의 신호를 받는 장면,
그것에 모르는 척 힐끗 시선을 두는 이방원의 의미심장한 눈빛.
그런 장면들을 모두 촬영하고 나니, 어언 가을에 접어들었다.
“형은 오늘이 마지막 씬인가요?”
“그래. 죽을 준비만 내내 하다가 이제 드디어 죽겠네.”
한 달 동안 하루가 반복되었다.
영화의 약 1/3을 차지하는 이 날 하루는 그만큼 이 영화 전체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정몽주의 죽음.
한성이 말에 올라탔다.
이미 벌어질 일을 예감하고 있는 그는, 한 점 망설임도 없이 말에 박차를 가한다.
이성계의 암살을 시도한 증거가 방원의 손에 있는 이상, 다른 방법을 찾을 도리도 없다.
어차피 자신은 제거되고, 고려 왕조는 무너지리라면 마지막 가는 길은 깨끗이 걸어가겠다는 의지는,
걸음걸음 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렇게,
시대의 별이 졌다.
그리고 유명이 찍은 마지막 장면은, 태종의 즉위 원년이었다.
중년의 분장을 하고 곤룡포를 입은 태종이 사가에 들러, 별채가 있는 후원을 거닌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깨끗한 후원.
그새 녹음이 더 무성해진 곳에서, 태종은 한 인물을 추억한다.
“역사는 나를 승자로 기억하겠지만, 실제로는 진 것이나 다름없지요. 드디어 이 자리에 올라보니…참으로 그대의 현명함이, 그 수완이 내 옆에 없는 것이 천추의 한이외다.”
그리고 블랙 아웃.
검은 화면에는 이런 자막이 삽입될 예정이었다.
[태종 이방원은 자신의 즉위 원년에 정몽주를 영의정으로 추증하고 익양부원군으로 봉하였다. 이는 ‘충忠’이라는 사상을 미화하여 현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되기도 하나,역사 속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태종이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심이었을지, 그를 자신의 ‘첫 재상’으로 삼고싶은 욕망을 그렇게라도 이룬 것이 아닐지,
지금의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촬영 끝내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감독이 마지막 테이크를 본 후, 촬영종료를 선언했다.
스탭들이 모두 환호를 질렀고, 자신의 촬영이 끝났음에도 나와 있었던 한성이 다가와, 유명에게 악수를 청했다.
한성과, 중년의 태종으로 분장한 유명의 모습은 처음으로 친구같이 보였다.
그들은 악수한 손을 끌어당겨, 등을 마주안고 두들겼다.
실로, 두 배우 모두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다음날, 유명은 오랜만에 회사로 향했다.
어제 유석이 연락와 며칠 푹 쉰 후 잠시 회사에 들르라고 했는데도, 뭔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만큼, 유명에게도 강렬한 배역이었다.
특히 마지막 한 달 동안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방원으로 살았기 때문에, 배역에의 몰입과 탈출이 능숙한 유명에게도 방원의 기세가 아직 모두 빠져나가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땠어요? 호철씨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데, 궁금해서 혼났네요.”
“촬영장 놀러오시지 그러셨어요.”
“저 영화볼 때 스포일러 당하는 거 무지 싫어합니다.”
유석은 엄청난 영화광이었고,
그의 ‘취미’인 배우가 어떤 연기를 했는지,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손감독의 시나리오를 미리 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영화를 스포일러 당하다니, 안될 말이다.
“이번에는 무조건! 쉬어야 합니다.”
“어…저도 이번엔 좀 쉬어야 겠다고 생각은 했는데요…전 배역의 여운이 아직 남아서.”
“바람직한 생각입니다. 얼마나 쉴래요? 3개월? 6개월? 중간중간 후시 따거나 추가 촬영하거나, 영화 홍보용 활동들은 해야겠지만, 그거 말곤 원하는 만큼 쉬어도 됩니다.”
“어…한 2주만 쉬면 될 것 같은데···”
“네?”
유석이 기가 차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럼 3주? 한 달은 너무 긴데요.”
예전만큼 초조하지는 않았지만, 유명의 작품 욕심은 여전했다. 미호가 두고 보자고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유통기한은 서른까지다. 그 전에 한 작품이라도 더 하고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석이 정말 단호하게 말했다.
“안됩니다. 정 심심하면 한 번 해줬음 하는 일이 있는데요.”
“…뭔가요?”
“팬싸인회입니다.”
유석이 뜻밖의 말을 했다.
*작중 에서 다루어지는 정몽주와 이방원의 이야기 중,
정몽주가 이성계의 암살을 시도하였다는 점과 이방원을 정몽주가 키워냈다는 것은 시나리오상의 픽션이니,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역사적 사실 가운데 픽션을 짜넣어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을 ‘팩션 사극’이라고 하더군요)
끝
ⓒ 글술술
“팬싸인회요?”
“네, 그 밥차 배달간 날, 소진씨 얼굴봤죠?”
“아…그 재밌는 회장님요.”
유명이 그녀의 군대식 말투를 떠올리며 슬쩍 웃었다.
“그 친구가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제안을 하더라고요. 자체 팬싸인회를 하면 어떠냐고.”
“팬싸인회요…”
“원래 유명씨 촬영 끝나는대로 팬클럽 운영진들이랑 같이 밥 한 번 먹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유명씨가 대외 활동이 많이 없어서 팬들이 같이 공유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차라리 그 기회를 팬클럽 전체 회원들 행사로 돌려달라고 부탁하더라구요.”
“…생각이 깊으시네요.”
명랑하고 사차원으로 보였던 회장님은, 역시 팬클럽 활동에 대해서는 프로페셔널한 부분이 있었다. 운영진 입장에선, 배우와 같이 마주앉아 밥을 먹는 것과 많은 사람이 모이는 싸인회 중 전자가 탐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팬클럽 전체 행사를 만들기
위해 양보하다니.
“내 생각에도 괜찮은 것 같아요. 원래 팬싸인회는 주로 아이돌들이 하고 배우들은 ‘광고주 행사’의 일환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팬클럽 문화라는 게 시대가 지날수록 점점 활성화될 것 같거든요. 물론 배우는 연기로 말하는 법이긴 하지만, 코어팬층이 있으면 여러모로 든든하긴 하죠.”
“네 저도 좋습니다. 저라는 배우를 좋아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인데 인사드리고 싶네요.”
유명은 2010년 이후에 점점 팬문화가 확산되는 것을 떠올렸다.
지금, 아이돌도 아닌 배우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유석과 소진의 마인드는 확실히 앞서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배우에게 ‘팬’만큼 소중한 존재가 있겠는가.
자신에게 팬이라는 게 있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유명으로서는, 한 번쯤 그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오케이. 그럼 그건 됐고, CF건인데요.”
“네.”
유석이 기획안 하나를 내밀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CF제안은 워낙 많이 들어왔었어요. 아직 이미지가 소모된 적이 없는, 연기력 있는 신인배우라는 건 상당한 메리트니까.”
“그 때 보여주셨죠.”
“그쵸. 대부분은 거절했는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기획서 하나가 재미있더라고요.”
바스락-
유명이 기획안을 넘겼다.
하얀 A4지에 러프하게 스케치되어 있는 것은 콘티였다.
[현성 자동차 Crude 런칭 CF 기획안 ‘Unmask’]Unmask.
마스크를 벗다.
이방원의 연기를 하다 와서 그런지, 그 단어가 묘하게 귀에 감긴다.
“그 쪽에선 모르고 만들어 왔겠지만, 컨셉이 영화와 아주 잘 물려요. 나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방원이 ‘탈’을 쓴 캐릭터가 아니던가요?”
“…맞습니다.”
유명이 조금 놀라 대답했다.
유석이 영화광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고, 그가 시나리오를 보았으니 이방원의 캐릭터도 알고 있었겠지만,
자신이 잡았던 이방원의 컨셉을 정확히 집어낸 것이 소름돋을 정도였다.
“올해 현성에서 나오는 신차에요. ‘퇴근 후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젊은 직장인’이라는 타켓 컨셉이 있죠. 광고 런칭과 영화 개봉 시기가 맞물려요. 그 쪽에서도 그걸 노리고 있고.”
“그렇군요. 확실히 이 콘티라면…이방원의 컨셉과도 맞고, 내용도 잘 어울리네요.”
“광고라도 이 정도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골랐어요. 15초 티비광고버전 말고도 3분 풀 버전을 찍어 온라인에서 바이럴 마케팅을 하겠다는데, 긴 버전은 확실히 연기 영상을 찍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네…재밌겠네요.”
유석이 물었다.
“하고 싶어요?”
유명은 잠시 생각해본 후,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네, 하고 싶습니다.”
“좋아요. 그럼 계약조건을 조율해 보겠습니다.”
연극도, 연기도, 영화도 주연이 아니었을 뿐, 원생에 모두 해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