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6
하지만 CF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15초의 예술’이라 불리는,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연기.
유명은 새로운 종류의 연기에 도전할 것이 설레었다.
*
며칠 후, 굿 엔터 건물.
똑똑-
2층의 한 회의실 앞에서, 달달 떨리는 손으로 노크하는 인물은 바로 신유명 정식 팬클럽 의 회장, 정소진이었다.
“들어오세요.”
‘미친, 목소리 섹시해!!!’
소진은 팬심에 취해 이성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오늘 그녀는 누구보다도 프로페셔널하고 믿음직한 ‘회장님’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잘 계셨어요?”
실패했다!
부드러운 미소로 웃는 유명의 모습을 보고 결심은 온데간데 없이 허물어졌다. 소진은 어느새 풀린 얼굴로 헤헤- 웃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아···
“팬싸인회 관련해서 협의할 것이 있으시다구요.”
“네, 배우님!”
“뭘까요? 제가 이런 건 처음이라 잘 몰라요. 프로이신 회장님만 믿고 있습니다.”
‘믿는대…믿고 있대…흐어억.’
실망시킬 수 없다.
소진은 단호박이 되려고 노력하며 자꾸 솜사탕처럼 풀어지는 입가를 다잡았다.
“배우님, 사실 저에게는 비전이 있습니다.”
“어떤 비전요?”
“저희 갓네임드를 최고의 팬클럽으로 만든다는 비전이지요.”
“오오…?”
“사생팬 없고! 배우님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고! 좋은 일엔 꽃길을 깔고, 나쁜 일엔 최전방에서 실드를 치는! 격조높은 레전더리 팬군단을 양성하는 것이 저의 평생의 목표였습니다.”
소진의 진지한 포부에 유명의 눈빛까지 진지해졌다.
“그…러시군요. 정말 멋집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상당히 멋진 목표죠.”
소진이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말인데, 배우님도 협조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협조해야죠. 제가 뭘하면 될까요?”
“적절한 떡밥 제공입니다. 어장에 충분한 떡밥이 있어야 고기들이 안 싸우고 잘 놀거든요.”
“아아…그럼 어떻게 하면…?”
소진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조련입니다.”
“조련요?”
“네. 연예인 팬생 10년차인 제가 보기에 이게 참…팬들이 모순된 부분인데, 착하고 겸손하고 인간적인, 아 딱 지금 배우님같은! 그런 이미지도 좋지만, 뭔가 예측 불가능한 떡밥들이 쏟아지면 조련이 더 잘 됩니다.”
“예를 들면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반말…이라든가?”
“…흐음,어렵네요.”
“이게 연애와도 비슷한데, 적당히 선을 그어야 선을 넘지 않고, 가끔은 끼를 부려야 그어준 선 앞에서 안 떠나고 머물러있고 싶은 기분이랄까요.”
무슨 말인지 알 것은 같은데,
자신의 성격으로는 쑥쓰러울 것 같아, 유명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흐억···”
“네?”
“방금 그 표정 찍었어야 하는데. 앗 죄송합니다.”
“…”
소진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브리핑했다.
“사실 조련의 최고봉이 보형인데···”
“아, 그래요?”
“네. 그 애교 넘치는 표정이라든가! 반전있는 카리스마하며, 알 듯 모를 듯 알고 싶은 남자라는 삘이 팍팍 오는…하지만 보형이는 대본 속 인물이니까 그렇게 하시긴 어렵겠죠···”
“보형이면 되나요?”
“네??”
유명의 선선한 대답에 오히려 소진이 깜짝 놀랐다.
“보형이라는 캐릭터로 연기하라는 거면, 그건 어렵지 않아요.”
“헉, 정말요? 그게 돼요?”
배역에 몰입해서 행동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유명의 언급에 오히려 소진이 번뜩 놀랐다.
“하지만 저라는 사람이 원래 그런 성격이라고 여기시는 건 좀 그렇구요, 원하시는 분에 한해서 잠깐씩 보여드리는 정도면 어떨까요.”
“헉, 완전 좋죠! 감사합니다!”
소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싸인회에서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거나, 특정한 동작을 해주거나, 악수를 해 주는 정도의 일은 흔한 팬서비스였지만, ‘연기’를 해주고 ‘캐릭터’를 보여주다니.
잘 하면 신유명의 팬클럽이라는 것에 엄청난 가치와 희소성을 부여할지도 모른다.
‘대형 떡밥이다-!’
소진은 회의실을 빠져나오자마자 피씨방으로 달렸다.
어서 빨리 이 상황을 공지로 알리고 싶었다.
*
촬영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돌아왔다.
유명은 그동안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로, 아버지의 15년 된 낡은차를 바꿔드렸다.
덕분에 쾌적한 신형 suv를 타고 큰아버지 댁으로 가고 있었다.
“아, 오늘 짱 재밌겠다!”
“뭐가?”
“설날에 오빠 땜에 난리가 났었단 말이지. 그때 한창 연예학개론이 난리였잖아. 특히 병수 오빠랑 큰 고모가 아주 눈이 쭈뼛해져서 그냥-”
“지연아-”
“놔둬, 틀린 말도 아니구만 뭘, 하하.”
지난 설날에 유명은, 드라마 막바지 촬영과 종방으로 정신없던 시기라 큰집에 가는 것을 건너뛰었다. 그 때 친척들 사이에선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얌전하던 애가 어떻게 저렇게 변했냐며, 언제 친척 모임에 올건지 캐묻고 또 캐물었다지.
아버지 쪽 친척은 대가족이었다.
육남매 중 셋째인 아버지.
유명과 지연이 어렸을 때는 가족행사가 많았고, 유명은 그 때마다 사촌들 사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유명해졌다니 놀랄 법도 하다.
“큰 누나가 어릴 때부터 샘이 많았어. 사실 남매들 중에 제일 부모님 덕을 많이 본 게 누난데 왜 그러는지…”
“여보- 무슨 애들한테 그런 말을.”
“얘들도 이제 성인인데 뭐. 당신도 결혼할 때 누나 때문에 고생 깨나 했잖아.”
“엄마가 왜요?”
“엄마가 시집올 때 워낙 예뻤어야지. 그래서 큰고모가 말도 안되는 흠을 잡고 그랬어. 남자 많을 상이라고도 하고, 정 없게 생겼다고도 했고.”
“헐…큰고모 돌려서 칭찬하기의 달인인데?”
지연이 남자 많게 생겼다, 정 없게 생겼다는 예쁘다의 동의어와 다름없다며 고모에게 양 엄지손가락을 날렸다. 그 모습에 유명이 쿡쿡 웃었다.
“너네는 남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 잘 되는 건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예, 써- 오빠가 잘 되는 건 저에게도 풍족한 선물로 돌아옵니다. 배우 신유명 화이팅! 돈 왕창 긁어모아라! 남으면 나한테 버려도 됨!”
“너 학교에서 애들한테 그렇게 가르치진 않지?”
“왜- 어릴 때부터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배워야 해. 우리 반 애들은 커서 잘살 듯.”
유명이 지연과 만담을 나누는 사이,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에 차가 들어섰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거의 동시에 도착한 다른 차량에서 내린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 우창이 너 차 바꿨니?”
큰고모였다.
*
“누나,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자형.”
“어, 매제도 잘 있었어?”
고모부는 부모님이 안 계셔서, 고모네는 유명이 어릴 때부터 명절을 이쪽에서 쇠었다.
뒷좌석에서 엉거주춤 내리는 것은 사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30대 초반의 병수 형이다.
“병수도 잘 있었어?”
“아니 우창아, 차는 언제 샀어? 중고차가 가성비가 좋은데 왜 새차로 뽑았어. 형편도 썩 넉넉하지도 않으면서.”
“아들이 뽑아줬어요. 부모라고 뭐 해준 것도 없는데 호강하네요.”
“어머…그래? 유명이가?”
큰고모의 가장 큰 문제는, 저 오지랖이다.
자신도 명절마다 다른 사람 인생에 훈수를 두는 것이 취미인 고모의 잔소리에 질려, 점점 가족 모임을 빠지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누나, 들어가서 얘기하자. 우리가 제일 마지막이래.”
큰집에 도착하니, 삼십 평대 집에 꽉 차게 들어찬 친척들이 유명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유명아-”
“어머, 우리 스타님 오셨네.”
“쟤는 점점 잘생겨지니. 어디 수술한 거 아니야?”
큰아버지, 큰고모, 아버지, 작은아버지, 막내삼촌.
그 밑에 딸린 2세들이 모두 열 명.
고모부네에 가 있는 작은 고모네는 제외하고도, 인원이 스무 명이나 된다.
“으악, 형, 싸인좀!!”
사촌 중 제일 막내인 탁수가 달려와 수첩을 내밀었다. 유명은 웃으며 싸인을 해주었고, 동생들은 모두 유명에게 달라붙어 연예계 얘기를 묻기에 바빴다.
이상한 광경이었다. 늘 관심의 대상이 되어 본적이 없었던 유명이 중심에 위치한 상당히 낯선 풍경.
그 모습을 보고 큰고모가 샐쭉하니 말했다.
“연예인은 영 직업이 불안정해서 말이야. 작품 안할 때는 수입도 없다는데, 지금 번다고 새차나 턱턱 사고 하기 보다는 저축을 해야지.”
“어? 수입이 없는 것 보단 불안정한 게 낫지 않아요?”
풉-
엄마가 지연의 입을 틀어 막았지만 이미 말은 입밖으로 나왔다.
몇 명이 지연의 반격에 참지 못하고 실소를 터뜨린다.
병수 형이 몇 해째 취업준비만 하고 있는 것은 고모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리고 지연은 큰고모의 오지랖을 참아주는 성격이 아니라,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다.
“아니 너는- 휴우…됐다. 내 말은 아빠 차를 바꿔주고 싶으면 깨끗한 중고도 괜찮단 얘기지. 고모부가 딜러인데 새 것 같은 중고를 얼마나 잘 골라주겠니. 너도 이제 돈 버니까 혹시 차 살거면 얘기해. 고모부가 잘 골라줄 테니까.”
그 말에 지연이 다시 끼어들었다.
“오빠 차 있는데-”
“뭐? 무슨 차?”
끝
ⓒ 글술술
“오빠 차 있는데-”
“무슨 차?”
지연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페라리요.”
“뭐?!!”
어찌나 놀랐는지 고모의 목소리에서 삑사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