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
“미쳤다. 00최고미녀인듯.”
“저 오빠 웃기만 해서 얌전한 줄 알았더니..대박..”
런웨이를 걷던 유명이 열광하던 한 여학생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 학생들의 환호는 정점을 찍었다.
살짝 벌어져 아슬하게 말려올라간 치마. 층층히 그라데이션된 섀도우로 그윽해진 눈매.
유명은 왼손으로 여학생의 턱을 살짝 치켜올려 눈을 마주하고 싱긋 웃었다.
멍-
여학생은 홀린듯한 눈빛으로 턱을 들린 채 유명을 올려다보았고,
그녀에게 가볍게 윙크한 유명이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모두에게 손을 흔들며 워킹을 하자
우워어어어!!!
다들 미친듯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런웨이 끝에서 뱅글 돌아선 유명은,
“안녕하세요. 00 신유명입니다. 주목받는 김에 홍보 하나 할게요.
5월 축제중에 중앙연극회 창천에서 공연을 하는데, 제가 배역을 하나 맡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이 즐거우셨으면 공연도 보러와주세요.”
알뜰히 실리도 챙겼다.
분장의 톤&매너에 맞는 허스키한 보이스로.
“우와아아아-”
“갈게요!! 티켓 제가 다 살게요!!”
“누나!” “오빠!” “언니!” “형!”
엄청난 호칭의 카오스와 함께 3조의 장기자랑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최고 상품은 만장일치로 3조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상진은…혼자 바보가 되었다.
.
.
엠티가 끝나는 순간까지 유명은 초인기인이었다.
너무 멋있었다고 볼 때마다 침을 튀기는 2학년 집행부들, 연극팀 어떠냐고 관심을 표하는 새내기들.
‘인사이더도 쉬운 게 아니구나···’
집으로 돌아온 유명은 완전히 뻗어버렸다.
*
창천 캐스팅 당일.
휴학중인 연출 최철주와 조연출 사준한은 미리 만나 회의를 하고 있었다.
“김철수 역 지망자가 몇 명이야?”
“다섯. 셋은 예상했던 멤버들이고, 한 명은 어이쿠. 99 박한상. 이 친구는 본인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네.”
“나머지 한 명은?”
“허허 참…처녀작에 주연을 노리는 00이시다.”
준한은 유명의 배역 지망표를 펄럭였다.
“근데 얘 리딩은 잘하더만?”
“목소리 좋고 몸치인 애들도 있지. 뭐 어쨌든 첫 작에 주연 조연은 말도 안 되고. 오늘 봐서 괜찮으면 비중있는 단역 정도 줘서 향후 주연감으로 키우는 거도 괜찮지.”
“개깐깐 최철주가 웬 일? 맘에 들었나보네?”
준한이 얼~ 하며 철주에게 박수를 보냈고, 철주는 무시하고 다른 말을 꺼냈다.
“오디우스 봄 공연은 뭐래?”
“햄릿.”
“주연은?”
“서류신. 당연한 걸 묻냐.”
준한의 대답에 철주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5월 축제 주간을 끼고 창천과 오디우스는 3일씩 나누어 공연을 진행한다. 대놓고 비교될 것은 당연한 일.
“우리가 주말 끼고 배치되야 돼.”
“그거야 기획장 운빨이지. 어차피 뽑긴데.”
“주연이 서류신이면 관객수로 이기긴 어려운데.”
“벌써 걱정하지마. 우리 쪽에 또 호재가 있을런지 아냐.”
철주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의 캐스팅이다.
그들은 배역별로 지원자를 정리하고 유력 후보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
“김철수 역에 지원한 5명, 가운데로.”
우르르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들리며 몇 명이 일어섰다. 유명 역시 슬그머니 일어나 가운데를 향했다.
2학년, 첫 연기지망자가 주연에 지망했다는 사실에 다른 학생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특히 함께 주연을 지망한 박한상은 더했다.
‘저 새끼 주의한다더니 또 나대고 있잖아!’
“지금부터 3막 4장. 김철수과 곽기자의 대치 씬을 돌아가며 연기합니다.
상대역은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연출 사준한이 가운데로 내려오며 얘기하자, 5명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린다.
사준한은 캐릭터 연기의 대가. 잘못하면 상대 배역에 잡아먹힌다.
상대 배역에 밀릴 정도로 기가 약한 주연감이라면 바로 아웃인 게 당연하다.
“구원영부터 시작한다.”
최철주의 굵은 목소리가 던져지고, 처음으로 연기를 하게 된 것은 98 구원영이었다.
창천 내에서 연기력은 수위에 꼽았지만, 마스크와 키가 딸려서 늘 최철주에게 주연 자리를 뺏겼던 원영은, 독보적 주연 최철주가 빠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주연을 차지하려 이를 갈고 있었다.
“고!”
원영은 한쪽 구석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다, 건물 밖을 빠져나오는 곽기자를 보고 달려간다. 그리고 정말로 지문 그대로, 곽기자의 바지가랑이를 부여잡고 바닥에 뒹굴었다.
허억- 허억-
가쁜 숨이 몰아친다. 조금 전까지 길거리를 뛰어다니던 사람인마냥,
그리고 고개를 쳐들어 절박하게 부르짖었다.
“곽 기자님! 우리 진아 좀 살려주이소!”
.
.
짝짝짝-
원영의 연기가 끝났다.
상당한 열연이었다. 곽기자에게 매달리며 따지는 김철수, 이를 냉담하게 뿌리치는 곽기자.
두 시니어의 호연에 연극팀원들이 박수를 보냈다.
최철주는 내심 만족한 표정을 감추며, 딱딱하게 빈 종이에 채점을 남겼다.
‘원영이가 잘하는데 나때문에 번번히 밀렸지. 이제 주연 한 번 할 때도 됐어.’
그 뒤로 98 1명과, 휴학을 오래한 97선배 1명의 연기가 이어졌지만, 처음 연기했던 원영과 실력 차이가 많이 났다.
‘역시 원영이로 낙점인가. 보니까 연습도 엄청 했어. 대본도 손에 들고 있다 뿐이지 거의 안보고 대사를 치잖아.’
최철주의 마음이 점점 굳어가고 있을 때였다.
“네 번째, 99 박한상.”
“서..선배님 죄송합니다! 화장실이 급해서 좀 다녀오겠습니다!”
“빨리 다녀와! 그럼 00 신유명부터 먼저한다.”
박한상은 선배들의 호연을 보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지금 나가면 선배들과 바로 비교될 게 뻔해서 얕은 수작을 부렸다. 유명이 먼저 연기하게 하면 비교는 그가 당할 것이고, 그 뒤에 자신이 나가면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연기로 보일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는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갔고, 유명이 교실 가운데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연기가 시작되었다.
“곽 기자님! 우리 진아 좀 살려주이소!”
무겁다.
첫 마디를 듣고 철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20대 초반이 아니라 세파에 찌들린 40대 가장의, 지쳤지만 절박한 목소리.
어떻게 이런 음성이 나오는 걸까, 하고.
“올라가는 것도 한순간이더니, 땅에 처박히는 것도 한순간입니더. 그렇게 영웅이라고, 유리닦는 줄을 타고 사람을 구한 이 시대의 스파이더맨이라고 극찬하던 사람들이 이래 쌩하니 돌아설 줄 몰랐습니더.”
“잘 나갈 땐 좋으셨잖아요~”
상대를 하고 있는 준한의 느낌은 또 달랐다.
일부러 시선을 돌려보지만 유명의 눈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자신마저 손을 뿌리치면 죽어버릴 것 같은 절실한 눈빛.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집요함.
“이러지 마이소. 기자님이 기자님만 믿으라 해서 내 인터뷰도 하고, 가족사진도 박고, 하라는 대로 다~했다 아입니꺼. 도로 띄워달라는 게 아닙니더. 해명이라도 해주입시더. 우리진아 시선이 무서워서 학교도 못나갑니더.”
김철수의 감정이 애원에서 회한으로, 회한에서 분노로 변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건물에서 달려나온 경비원들이 김철수를 제지하는 것을 연기하며 유명은 뒤로 넘어졌다 일어서고, 나동그라졌다 다시 일어섰다.
“기자님! 곽기자니임!!”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특히, 화장실에 어슬렁어슬렁 다녀와 후반부만 목격한 박한상의 입이 가장 크게 벌어졌다.
박수는 나오지 않았다.
모두에게 감탄보다는 당혹감이 컸던 까닭이었다.
“다..다섯 번째. 99 박한상.”
결국 아무 코멘트도 없이 연출은 다음 순번을 불렀고, 거의 울먹이는 표정으로 박한상이 걸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