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1
안경을 벗었다.
가면을 완성시켜 주는 듯하던 안경이 벗겨지는 순간, 그 결을 따라 주욱- 하고 벗겨지는 표정.
딱딱하던 눈빛에 생동감이 깃든다.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슬쩍 각도를 튼다.
아주 약간의 각도였는데도, 그 미묘한 변화로 다른 사람처럼 표정이 화사해진다.
미묘하게 어긋나 뻑뻑하던 병뚜껑이 제자리로 쏙 들어가 닫힌 것처럼,
자연스럽게 호선을 그리는, ‘진짜 미소’.
‘미쳤다···’
말라있던 풀이 물을 흠뻑 머금고, 순식간에 파릇해지는 것을 보는둣한, 그 짧은 시간의 변화를 보고 그녀는 옆의 벽을 짚었다. 다리가 풀릴 것 같아서.
그 장면은 팬으로서도 감동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녀는 이번 광고가 대박을 치고 자신의 커리어에 날개를 달아줄 것 또한 직감할 수 있었다.
딸깍-
기대감 어린 즐거운 미소.
‘성인 남자’의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그가 크루드의 문을 연다.
목을 한 번 꺾어 풀더니, 운전석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시동을 건다.
성인남성의 아날로그적 취향을 겨냥한, 항공기를 본뜬 계기판에 현란한 빛이 들어오고, 그가 능숙하게 기어를 조작한다.
“컷-”
감독이 컷을 외친 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모니터를 다시 돌려보았다.
그리고 유명을 보고 말 없이 엄지를 치켜올린다.
박진희도 엄지를 치켜올렸다.
흔한 칭찬으로는 이 느낌을 다 표현하기 어려웠으므로.
*
“준비됐습니다.”
사무실 세트는 거대한 스튜디오의 일부에 불과했다. 사무실 바깥쪽에는 상당한 공간이 확보되어 있고, 그 뒷벽에는 초록색 천이 꼼꼼하게 덮여 있었다.
이것은 상당히 품과 비용이 들어감에도 박진희가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 씬이었다.
“사무실 컷들 빠진 것 없는지 마지막으로 한 번만 체크할게요.”
감독은 조감독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스크립트와 콘티를 대조해가며 꼼꼼히 체크했다. 3분짜리 풀버전의 마지막에 등장할 ‘다시 출근하는’ 씬까지의 촬영을 모두 마쳤다. Mask turn의 컷이 하나라도 빠져 있으면 안 된다. 그 이유는,
이번 씬으로, 사무실은 ‘부숴져’ 복구 불가능해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확인 끝났습니다. 시계 클로즈업 인서트도 확보했고, 빠진 부분 없습니다.”
“좋아요. 그럼 ‘퇴근 씬’ 가겠습니다.”
‘퇴근 씬’
참으로 평범한 이름이다. 앞으로 벌어질 촬영에 비해서는.
“유명씨. 벽은 잘 부숴지는 재질로 만들었고, 차와 부딪힐만한 소품들은 다 스티로폼 모형이니 안전엔 전혀 문제 없습니다. 재촬영이 불가능한 씬이라, 진동이나 충격에 놀라지 마시고, 최대한 빨리 풀악셀 밟으신 후, 약속된 지점에서 속도 줄이시면 됩니다. 어
차피 거리가 짧아서 풀악셀 밟아도 속도는 얼마 안나와요.”
“네, 알겠습니다.”
6시가 되면, 사무실의 모든 배경이 회색으로 바뀌고, 박주원은 태세를 전환한다.
작은 터치로 갑갑하던 옷매무새가 변화하고, 사무실 한가운데에 새빨간 세단이 나타난다.
그 차에 유유히 올라탄 그는,
사무실을 말그대로 ‘부수고’ 사라진다.
‘아아…이 장면은 내가 대신 찍고 싶다.’
이 촬영을 보고 있는 ‘직장인’들은 모두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을 폭파시키고 뛰쳐나가는 상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샐러리맨이 있겠는가.
비록 세트이긴 하지만 그 판타지가 눈 앞에서 벌어지려 하고 있다.
박진희 또한 손을 모았다.
‘시원하게 뻥- 하고 뚫어다오···’
“갑시다-!”
위잉- 하고 지미집이 올라갔다.
차유리 너머로 벽을 뚫기 직전까지 유명의 표정을 잡아야 하는 카메라였다. 차가 앞쪽으로 벽을 뚫고 달릴 것이기 때문에, 안전상 크레인은 쓸 수 없었다. 딱 한 번으로 끝내야 하는 촬영이기에, 지미집을 조종하는 촬영감독은 긴장한 표정으로 리모콘을 꽈악-
쥐었다.
카메라가 약속된 위치에서 유명을 조준하자, 그는 부릉- 하고 시동을 켰다.
부드럽지만 경쾌한 시동음이 들려온다. 그리고···
유명은 단숨에 엑셀을 밟았다. 정지 상태에서 악셀을 주욱 밟자 엔진이 헛도는지 부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속도를 높였다.
엑셀에서 발을 떼지 않고 천천히 끝까지 밟는다.
사무실의 중심에서 벽까지, 짧은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퍼엉-
가벼운 재질로 만들어진 벽이, 비산음을 내면서 터져나갔다.
쳐다보던 사람들이, 환호를 속으로 삼켰다.
사무실의 벽이 산산히 부숴나가는 장면은, 삶의 많은 시간을 그 벽 속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줄 것이다.
유명은 녹벽이 서 있는 공간을 가로질러 가다, 녹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브레이크를 스윽 밟았다.
녹색의 벽은 나중에 합성되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하늘이 되고, 정체가 하나도 없이 뻥 뚫린 도로가 될 예정이었다.
“좋습니다! 오늘 촬영 종료!”
“수고하셨습니다!”
*
“유명님 너무 수고하셨어요!”
유명씨가 아닌 유명님.
촬영 후 그를 배웅하는 길, 박진희는 어느새 팬의 마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와…오늘 진짜…이미 팬이었는데 다시 팬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괜찮았어요?”
“괜찮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하죠!! 제 앞에서 유명님 비하는 하시면 안됩니다. 본인이라도 예외는 없어요.”
“하핫···”
진희의 격렬한 칭찬에 조금 쑥쓰러워진 유명이 말을 돌렸다.
“그런데 팀장님, 3일 후에 촬영할 Unmask씬 있잖아요.”
“네, 뭐 걸리는 부분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박주원 대리가 즐기는 퇴근 후의 라이프에 ‘당구’가 있던데···”
“네. 아 혹시 당구 칠 줄 모르세요? 자세 안 나오실까봐요?”
“그건 아닌데…혹시 ‘국궁’은 어떠실까 해서요.”
“활 쏠 줄 아세요?!”
박진희는 예상 외의 유명의 말에, 상상해 버렸다. 서늘한 눈매로 활시위를 당기는 그의 모습을.
‘미쳤다…이건 가야 한다!’
“에 활쏘기가 필요한 장면이 있어서 배웠어요. 실제로 과녁 중심에 맞출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자세가 나올 정도는 됩니다.”
“헉, 그러니까 에도 활 쏘는 장면이 나온다는 거죠?”
“네, 잠시지만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의미있는 장면이에요.”
“맙소사. 이런 귀한 정보를…유명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팀장님.
흔치 않은 ‘국궁’이라는 소재. 그것이 보여줄 화면적인 아름다움과 회사원 박주원 대리와의 갭.
심지어 려말선초와 동시에 등장하는 소재라는 화제성까지.
박진희는 갑자기 손에 떨어진, 아니 유명이 손에 쥐어준 먹이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럼, 꼭 부탁드립니다.”
“네, 촬영장소 변경해야 해서 번거로우시겠어요.”
“어휴, 그런 건 일도 아닙니다. 이렇게 좋은 소재인데요.”
그리고 ‘자신의 배우’를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얘기나누고 있는 것만도 신기할 정도인데, 이 겸손하고 배려있는 성품은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이다. 단시간에 뜬 라이징스타는 보통 교만해진다던데.
“유명님, 제가 평생 팬될게요.”
그녀가, 직장에선 짓지 않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방긋 웃었다.
*
새하얗고 소매가 넓은 국궁복이 가을 바람에 펄럭인다.
연푸른 색의 넓은 띠는 허리를 깨끗이 묶었다.
이 곳은 3일 후 야외촬영, 첫 번째 야외촬영장인 국궁터.
Unmask turn의 첫 번째 씬이 곧 촬영될 예정이었다.
Unmask turn의 컨셉은 ‘밝고 에너제틱한 퇴근 이후의 삶’이었지만, 유명은 퇴근후의 박주원을 밝게만 표현할 생각은 없었다.
다채롭게, 생기넘치게.
각각의 장소에서 종류가 조금씩 다르지만, ‘살아있다’는 것이 물씬 느껴지도록.
‘회색’으로 보였던 박주원이 장면마다 다른 색을 입고, 총천연색으로 빛나도록.
이번 국궁장에서 단련하는 주원이 입을 색깔은, 야생미와 절제.
“레디-”
유명은 왼손으로 활의 줌통(*활의 한가운데 손으로 쥐는 부분)을 단단히 쥐고, 오른손으로 화살 하나를 그러쥐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액션.”
끝
ⓒ 글술술
유명은 가슴이 한껏 부풀도록 숨을 깊이 들이켜고, 호흡을 멈춘 후,
팔뚝에 불끈 힘을 주어 활시위를 팽팽히 당겼다.
최대한의 긴장을 유지한 상태에서 시선과 화살촉과 과녁을 일치시킨다.
과녁이 종이과녁이 아닌, 사냥감이라도 되는 듯이 집중하여 겨눈 쩌릿한 눈빛.
그 긴장의 끝에서 이보다 즐거울 수 없다는 듯이,
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핑-
놓아진 화살이 직선으로 전진하여 훌륭하게 과녁을,
사악-
빗나갔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독님도요.”
“과녁 관통컷 따겠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국궁장 사범이 참견했다.
“원래 좀 쏘시는 분 아닌가요? 분위기만 보면 과녁 정중앙을 맞출 것 같았는데···”
“하하, 촬영용으로 폼만 배운 거라서요.”
유명이 멋적게 웃었다.
“다음에 한 번 제대로 배워보세요. 폼이 그 정도로 안정적으로 나오면 금세 배우겠네. 그럼 국궁 말고 뭘 했어요? 뭔가 격투기나 무술을 오래 수련한 눈빛인데.”
“어…딱히 수련한 건···”
“그래요?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