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3
세익스피어 작, 중 포오샤의 연기.
“이 증서엔 피는 단 한 방울도 적혀있지 않소. 명기되어 있는 것은 ‘살 일 파운드’ 뿐. 증서대로 살 일 파운드만 떼어 가지시오.”
목소리는 맑고, 사람들의 시선에 움츠러드는 기색은 사라졌지만,
“단, 살을 떼면서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린다면 그대의 토지와 재산은 베니스의 법률에 의하여 국가에 몰수당할 것이오. 어서 살덩이를 떼어내시오.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역에 몰입이 안 되어 있어, ‘연기’로서의 가치는 느껴지지 않는.
“또 살을 정확히 일 파운드만 떼어내야 하는 거요. 일 파운드보다 많아도 적어도 안 되오. 저울대가 불과 머리카락 한 올만큼이라도 기울어진다면, 그대는 사형이오.”
유명은 설수연의 연기를 찬찬히 보고 있었다.
원생에 자신도 팬이었던 그녀의 연기, 그 빨려드는 듯한 몰입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왜일까.
로코코 촬영날, 자신의 도움에 이끌려 ‘빈 성에서 혼자 살아온 소녀’를 연기하던 그녀에게는 분명, 원생의 탑 여배우 설수연의 연기력이 묻어났었는데.
함께 지켜보고 있던 미호가 물었다.
{지킬하이드 준비할 때 오디우스 연습도 보고 갔다고 하지 않았냥?}
‘응. 연습보다가 도중에 사라졌어. 그리고 따로 연락은 안 왔었네.’
{너는 애가 사심도 없냥. 따로 연락해볼 만도 한 외모인뎅.}
‘음…그 땐 공연 준비하느라 정신 없어서…그리고 그런 마음 없어.’
연기를 감상하며 미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의 연기가 끝이 났다.
“지금까지 ‘베니스의 상인’의 ‘포오샤’ 독백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보고 있던 몇 명이 성의없이 박수를 친다.
“예쁠 거 같지?”
“마스크 안이 궁금하다. 눈 보면 백퍼 예쁜 게 확실한데.”
“가서 번호 물어볼까?”
공연보다는 잿밥에 관심있는 남학생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유명은 정리 중인 그녀에게 다가갔다. 남학생들은 분위기가 남다른 남자의 서슴없는 접근을 보고, 일행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쉬운 듯 자리를 떠났다.
“수연씨, 맞죠?”
“…어?”
“잘 지냈어요?”
“네…어떻게 여기서…영화랑 드라마 잘 봤어요.”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네요. 시간 괜찮으면 뭐 한 잔 마실래요?”
그들은 대학로 맥도날드 2층으로 향했다.
구석자리에 앉은 그녀에게 유명이 가져다 준 것은 시원한 콜라였다.
“아직도 콜라 마시면 취해요? 하하.”
“음…조금은 괜찮아요.”
그녀가 멋적게 웃으며 콜라를 받아들어, 한 모금 꿀꺽 삼켰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유명을 빤히 쳐다본다.
유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동경이 담겨 있다.
“이렇게 혼자 나와서 다니셔도 돼요? 인기 스타신데···”
“아직 그 정도로 안 유명해요. 그나저나 수연씨는 왜 여기서…기획사 있지 않았어요?”
“아…계약기간 끝나고 나왔어요. 지금은 무소속이에요.”
“…어쩌다…”
콜라빨인지, 유명과의 좋은 기억 때문인지 그녀는 서서히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
-왜 그렇게 뻣뻣해? 그런 식으로 하면 오늘 촬영 나가리야.
-훈련도 안 된 애를 보내면 어떡해요! 가온엔터랑 앞으로 일 못하겠네!
-야! 씨 똑바로 못해? 어디서 저딴 기본도 안된 애를 보내가지고.
수연이 계약한 곳은, 악덕업체까지는 아니었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 있지않은 작은 엔터. 그녀는 기본적인 연기 교육을 한 달 정도 받고 여기저기에 내돌려졌다. 처음에는 연기 배역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몰랐다.
자신이 ‘타인의 시선이 닿으면’ 움츠러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어릴 때부터, 제 방에 갇혀 홀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벗이라고는 티비와 책 뿐이었다. 그녀는 간혹 방영되는 주말의 명화를 허기를 채우듯이 뚫어지게 감상했고, 티비에 나오는 배우를 따라해 보거나, 자신이 책에 나오는 인물이 된 것처럼 상상해 보며 혼자 놀았다.
상상 속에서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배우가 되고 나자, 몰랐던 문제가 불거졌다.
혼자 있을 때와 달리, ‘다른 사람 앞’에 서면 연기가 되지 않았다.
타인이 시선이 자신을 평가하는 재단기라도 되는 듯이 무서웠고, 그녀는 도저히 자연스럽게 배역에 몰입할 수 없었다.
-영상은 도저히 안 되겠다. 스틸로 가자. 얼굴만 예쁘면 뭐하니, 연기가 발연기도 못 되는 로봇 수준인데.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매니저가 ‘배우’로서의 그녀를 포기했을 무렵, 그녀를 픽해준 곳이 로코코였다.
매일매일 면박을 당하고 쿠사리를 먹는 것이 일상이었던 시절.
눈에 띄게 위축되어 있을 무렵에, 그녀는 로코코 촬영장에서 유명을 만났다.
-하얀 점을 하나 머리 속에 그려봅시다.
어떤 기억이나 정보도 빨려들어가면 소멸될 것 같은 아주 새하얀 점.
자신을 이끄는 편안한 목소리. 신뢰가 가는 단단한 음성.
-그리고 드디어. 도착했네요 친구가? 자 이제 눈을 천천히 뜹니다.
중독될 것 같은 목소리를 정신없이 쫒아가다보니, 그녀는 로코코 화보 속 ‘소녀’에게 이입되어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자신 속에서 타인이 된 자신을 관조하는 기분이라니.
그리고 그 날의 촬영은 환상적이었다.
최초로 겪어 본, ‘관객’과 ‘파트너’가 있는 연기.
촬영이 끝나고, 처음으로 들어본 ‘대박이다’라는 칭찬.
그 날의 강렬했던 경험과 함께 신유명이라는 배우는 그녀의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일종의 ‘구원자’로서.
감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성의 소녀가 아닌,
콜라를 마시지 않은,
유명이 이끌어주지 않는 자신은 그제까지와 다를 바 없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얼마나 좌절했는지.
의 성공으로 그녀에게는 더 많은 의뢰가 들어왔고, 기획사에서는 처음으로 그녀를 극찬했다.
하지만 이후에 들어온 일감에서 그녀는 번번히 촬영을 망치고 돌아왔고,
‘아예 못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예전과 비교도 되지 않게 괴로워졌다.
결국, 그녀는 유명을 찾아갔다.
그 곳에서, 연기에 더할 나위없이 진지한 멤버들을 보았고,
자신을 이끌어주었던 배우는 그 사이에서도 가장 빛나고 있는,
정말로 연기에 미쳐있는 배우, 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끄러웠다.
결국 자신은 타인의 도움을 너무 쉽게 기대했던 것이었다.
저 정도 실력도 되지 않고, 저렇게 노력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이후, 그녀는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이 있어도 그럭저럭 움직일 수는 있게 되었고, 기획사에 큰 돈을 벌어주지는 못했을 지언정, 손해는 끼치지 않는 수준으로 일을 했다.
그리고 올해, 계약이 만료되었을 때, 그녀는 기획사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기초부터 쌓고, 자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상업 연예인’이 아닌 진짜 배우로 한 걸음씩 밟아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후, 기획사의 비웃음을 한껏 들은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런 한계 상황들을 겪어오면서도 그녀가 연기에 대한 소망을 놓지 않은 것은,
-수연씨, 연기 좋아하죠.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가 건네주었던 그 한 마디가
그녀의 본심을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
이상하게도, 그에게는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게 된다.
자신의 껍질을 부서줬던 강렬한 경험이 무의식 속에 뿌리박혀 있는 것일까.
그녀는 이야기를 마치고서야 민망해져 얼굴을 살짝 붉혔지만, 그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더 멋있어졌어…이제 유명인인데, 나 같은 애랑 같이 있다가 사진이라도 찍히면 민폐일텐데···’
스스로 노력해 보리라 결심한 후 유명에게 다시 연락하지는 않았지만, 수연은 그가 한 연기를 빠짐없이 찾아 보았었다.
연예학개론에서 보형에 빠져 울고 웃고, 발레리나하이를 수십 번 돌려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과 인연이 닿았었는지를 실감했다.
그는 이미 자신같은 사람과는 다른 세계로 날아가 버린 스타같았다.
오늘 이렇게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먼저 연락해볼 용기는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참을 생각에 빠졌던 유명이, 다시 고개를 들고 수연에게 질문했다.
“혹시 베니스의 상인을 택한 건, 공연 때문이었어요?”
“아, 넵. 혼자 연습해 본 후에, 혜성 공연을 관람하고 비교해 보면,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연기학원같은 데는 안 다녔어요?”
“네…그럴 돈은 없어서···”
“극단에 지망해 보지는 않았어요?”
“아직 그럴 연기력도 못 되어서요.”
아니아니, 유명은 그녀에게 내재된 연기력을 이미 보았다.
확실히 기초는 부족했지만, 깊은 몰입으로 그것조차 잊게 만드는 연기를 이미 2년 전에 하지 않았나.
그녀의 문제-아마도 몰입을 방해하는 무언가-는 다른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연기 연습’으로 극복할 수 있는 종류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이 무엇일까. 유명은 쉽게 결론을 낼 수 없었다.
“어차피 볼 거였으면, 오늘 같이 갈래요?”
“혜성 공연요?”
“네. 초대권을 두 장을 받았거든요.”
유명이 초대권을 꺼내 보여주며 싱긋 웃었다.
[[극단 가을정기공연 [베니스의 상인] 18:00 ]]이번 공연에서 ‘포오샤’ 역을 맡은 이선하가 직접 선물한 티켓.
그것을 보고 수연이 쑥쓰럽지만 욕심나는 표정으로,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
“안녕하세요~”
“유명아! 여기여기.”
공연이 끝나고 친근한 얼굴들이 모였다.
이선하, 윤한성, 반혜선, 신수호, 우준호까지, 언제봐도 반가운 오디우스 멤버들.
유명을 기다리던 그들은, 그가 낯선 인물을 한 명 데리고 들어서자 궁금증에 눈이 동그래졌다.
“우와~ 뭐야? 유명이 여친이야?”
“뭐? 너 형한테도 비밀로 하고 연애를 하고 있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어? 이 분 예전에 그 분 아니야? 연습장 견학 오셨던···”
“수호 형 기억력 장난 아니네요.”
“미인은 무조건 기억하지! 여기 앉으시죠.”
“오늘 공연보고 선하 선배님 보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어요.”
수연은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유명이 어쩌다 만나서 같이 공연을 보게 됐다는 해명을 하는 사이, 그녀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응? 나한테 뭐 할 말 있어요?”
선하가 방긋 웃으며 묻자, 그녀가 조금 망설이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내뱉는다.
“포오샤 연기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정말, 정말 잘 봤습니다.”
“우와, 고마워라. 혹시 연기하는 친구에요?”
“아…네…아직 지망생이에요.”
유명은 ‘지망생’이라는 그녀의 표현에 속으로 웃었다.
몇년 간 기획사 생활을 했음에도, ‘제대로 연기하지 않았으니까’ 스스로를 지망생이라고 여기는 태도는, 그녀의 마음가짐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