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4
“와, 이 마스크로 데뷔하면 바로 뜰 것 같은데? 데뷔하기 전에 싸인 받아놔야 하나?”
“제가 받아야죠. 포오샤를 어떻게 그렇게 ‘그 인물처럼’ 연기하시는지, 보는 내내 입을 벌리고 봤어요.”
“음…연기는 원래 좋아하긴 하지만, 이 친구 덕을 좀 봤죠.”
선하가 옆에 앉아있던 유명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웃었다.
“아직 어린 게, 얄미울 정도로 연기를 잘 하거든요. 이번에 영화 같이 찍고 나니까 나도 뭔가가 조금 변한 기분이에요. 다른 동료들이 내 리액션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체감하고 나니까, 액션이 더 자연스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유명이 부정하지 않고 싱글싱글 웃자, 선하가 퍽- 하고 팔을 쳤다.
“웃지마, 얄밉다 얄미워. 아직 나이도 어린 게 크면 얼마나 더 괴물이 되려고.”
“안 웃었는데요?”
“웃었거든?”
수연은 오디우스 멤버들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부럽게 쳐다보았다.
친구. 동료.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본인은 가져본 적이 없는 존재.
그 가운데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는 저 사람이 부럽다.
저 나이에 저만큼 대단한 연기를 하고, 주변의 인정을 받고 있는 그에겐, 자신의 고민은 너무나 먼 것이겠지.
그녀는 한 시간 정도 그들의 술자리에 끼어앉아 말 없이 귀를 기울이며,
듣고만 있어도 배부를 것 같은 ‘타인의 우정’의 공기를 흠뻑 들여마셨다.
한없이 가볍게 웃고 떠들다가도, 한 번씩 연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순식간에 깊어진다.
폭넓은 지식과 자기만의 확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는, 때로 격렬히 부딪히고 융합하여, 결국 합을 이루어낸다.
‘정말…부럽다.’
자신에게도 연기에 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조금은 덜 막막했을까. 술을 못 먹는 그녀는 제 앞에 놓아진 콜라를 벌컥 들이킨다. 기분이 알딸딸해진다.
“저는 이제 가볼게요.”
“왜, 더 놀다 가지. 우리가 너무 우리 얘기만 했나봐요.”
“아니요, 정말 재밌었어요! 그런데 이제 가봐야 해서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즐거웠지만, 제 자리는 아니다.
그녀는 더 있으면 폐가 될 것 같은 시간을 넘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유명이 술집 바깥까지 배웅을 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혹시 시간이 있으면, 당분간 저랑 같이 연습해 볼래요?”
유명의 제안에 콜라가 확- 깨버렸다.
끝
ⓒ 글술술
좋아하는 배우였다.
그녀를 싫어하는 남자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워낙 압도적인 미모기도 했지만,
순간에 빠져들어가는 몰입력이. 뚜렷한 존재감이.
다만, 그녀는 여배우치고 상당히 늦은 나이에 떴다. 20대 극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데뷔가 늦은 줄 알았던 그녀가, 사실 20살때 이미 연기를 시작했었다면, 그 때 가서야 해결이 된 어떤 ‘장애물’이 있었다는 얘기겠지.
“혹시 시간이 있으면, 당분간 저랑 같이 연습해 볼래요?”
유명은 그녀를 돕고 싶었다.
좋아하던 배우, 가능성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배우가 스승도 동료도 없이 본인의 벽에 갇혀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자신도 미호가 ‘부족한 생기의 벽’에서 꺼내주지 않았던가. 물론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도울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정말요···? 어…그런데 유명씨는 무척 바쁘실 것 같은데.”
“괜찮아요. 대표님이 몇 달 일 안줄거라고 하셨거든요.”
“한참 뜰 때고 연기력도 좋으신데 왜···?”
“그러게요. 제가 복이 많은가봐요.”
유명이 유석을 생각하며 빙긋 웃었다.
그는 크루드 광고를 끝낸 후에 다시 ‘시나리오 금지령’을 내렸다. 쉴새 없이 작품을 하는 유명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와 다르기는 하지만, 고마운 일이다. 조금이라도 매출을 올리려고 연예인을 눈 붙일 틈도 없이 여기저기로 돌리는 기획사가 어디 한둘이던가.
“회사 연습실은 불편할 테고, 연습실 찾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전화번호 그대로인가요?”
“네···네!”
“그래요. 오늘 반가웠어요. 조심해서 들어가요.”
수연은 웃으며 손을 흔드는 유명에게서 몸을 돌리며, 쿵쿵 뛰는 심장을 눌렀다.
여러 번, 갑갑할 때면 그가 생각났다.
노력이 성공을 담보해주지 않는 세계에서, 자신은 재능이 없는데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고민될 때면, 그에게 찾아가 묻고 싶었지만,
그에게 민폐일까봐, 그리고 아직 스스로 최선을 다해본 것이 아닐까봐,
여러번 그의 번호가 찍힌 전화기를 내려보다가 덮고야 말았는데···
이미 승승장구하고있는 그에 비해 너무 초라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함께 연기 연습을 하다니···’
누구보다 재능있는 젊은 배우와 함께 연습한다는 믿을 수 없는 행운에, 그녀는 손끝 발끝까지 찌릿해졌다.
저 오디우스 멤버들처럼, 그와 자신도 ‘동료’가 될 수 있을까.
그녀는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소망을 삼켰다.
*
“한참 걸렸네? 진짜 사귀는 거 아니야?”
“2년만에 처음 만났다니까요.”
“진짜 아니야. 유명이랑 몇 달 동안 동고동락했는데, 만나는 여자가 있는 낌새는 코빼기도 안 보였어.”
“어휴, 여자도 좀 만나. 생각보다 몰래 연애하는 연예인들 많다? 연애는 어릴 때 많이 해야 하는데.”
“아아, 그러세요. 그래서 선배가 학교다닐 때 그렇게 다양한 연애를 했구나.”
선하와 한성의 티격태격은 여전한데, 낌새가 조금 이상하다.
‘응?’
유명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혜선이는 어때? 요즘 재밌어?”
“응! 큰 극단은 시스템이 확실히 다른 걸 느껴! 그리고 선배님 연기 진짜…크으.”
혜선은 이번 정기공연에서 처음으로 혜성의 무대에 섰다.
포오샤의 시녀 네리사 역.
단역 치고 비중이 적은 역은 아닐 뿐더러, 선하와 붙는 장면이 대부분이니 배우는 것이 많으리라.
“선배님들. 근데 촬영장에서 유명이 어땠어요? 려말선초 진짜 너무 궁금하다…주역들이 다 아는 얼굴들이라 영화보면 엄청 신기할 것 같아요.”
이건 수호의 질문.
그 질문에 한성과 선하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지···”
“유명이 최고야. 혜성 입단해. 같이 공연하자.”
“선배, 그건 좀…지금 이 친구 노리는 영화며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데 혜성에서 홀라당 삼키려고 해요.”
“연극계도 신유명을 가질 권리가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3등분으로 나눠야 하오. 저울대가 불과 머리카락 한 올만큼이라도 기울어진다면, 그대는 사형이오.”
선하가 포오샤의 대사로 재치있게 한성의 태클을 받아쳤고, 술자리에는 즐거운 웃음이 터졌다.
“오늘 류신 선배는 못왔네요···? 아직 촬영이 안 끝났나.”
“어어. 표는 보냈는데, 아직 촬영이 덜 끝났다네. 너네보다 조금 뒤에 크랭크인했으니 이제 마무리 단계일거야. 어떻게 걔도 하필 사극이지? 관객수 두고 오디우스 멤버들끼리 경쟁하겠다, 후훗.”
“그러게 말야.”
선하와 한성의 영문 모르는 소리에, 수호와 혜선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선배들은 류신이 유명에게 갖는 라이벌 의식을 알지 못한다.
“자, 이제 자리 파합시다.”
“형, 수원 집으로 가실 거에요? 제 차 같이 타고 가실래요?”
“어? 어어…난 마치고 들를 데가 있어서…먼저 가.”
“알겠어요. 선하 선배님, 공연 잘 봤습니다! 혜선이도 계속 수고해~”
“어, 유명아 잘가.”
인사를 나누고 그들에게서 돌아선 순간, 미호가 묻는다.
{저 둘이 사귀냥?}
‘응? 아니, 금시초문인데?’
{인간들은 손 잡으면 사귀는 거 아니냥? 아, 엔조이인강?}
‘뭐? 손을 잡았다고?!’
유명은 미호의 발랑까진 멘트에는 반박할 정신도 없이, 앞의 발언에 기함했다.
{테이블 밑으로 손 잡고 있던뎅?}
‘헐···’
그제서야 유명은 오늘 뭔가 달라보였던 그들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도대체 언제부터? 려말선초 촬영하던 중간인가? 왜 자신은 몰랐지?
그나저나,
‘잘 됐다…정말.’
유명이 스윽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한성과 선하는 같은 방향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정말 좋아하는 형과 밝고 따뜻한 누나. 두 사람은 많은 시간과 아픔을 겪어 내고서야 서로를 발견했다.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
유명은 마음깊이 그들을 응원했다.
*
영화 촬영장.
공기는 칼같이 날이 서려 있었다. 바로 이 두 인물 때문.
장녹수에 천성연.
연산군에 서류신.
때는,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1주일 전인 1506년 8월 23일.
궁중의 연회장.
퀭한 눈빛, 곤룡포가 살짝 헐렁하게 걸쳐져 있는 것을 보니 급격히 살이 빠진 듯, 강퍅한 인상의 연산군.
궐내기생이 따르는 잔을 받아든 연산은, 그 잔을 받아들어 유심히 보다가 주변에 흩뿌린다.
촤악-
“독이 들었을 수 있는 잔을 내 어찌 마시겠느냐. 다들 나를 미워하거나, 무서워하거나 둘 중의 하나인 년놈들 뿐인데.”
그 말에 술을 뒤집어쓴 기생들이 달달 떨며 몸을 웅크린다.
근자에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점점 기행이 심해져가는 왕. 잘못 걸리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연산의 가까이 앉아있다 술을 뒤집어쓴 이 중 하나.
녹수가 얼굴에서 미끄러지는 술을 혀로 핥는다. 그 동작이 참으로 야릇하다.
“주상전하가 하사하셔서 그러온지, 참으로 감로주입니다. 한 잔 더 부어 주시옵소서.”
“하하하하하- 나를 웃게 하는 것은 녹수, 그대 뿐이라.”
“전하, 무엇이 그리 슬프시옵니까.”
“녹수야, 나를 위해 비탄한 노래를 연주해 다오.”
왕의 명령에 녹수는 기다란 활대를 든다.
그녀는 제 몸만한 커다란 아쟁을 앞에 두고, 온 몸을 사용하여 슬픈 가락을 연주한다.
지잉- 재앵-
그 가락에 맞추어, 연산이 시를 읊는다.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이라네.”
人生如草露, 會合不多時
누군가를 그리워하듯이, 무언가를 예감하듯이, 시의 가락에 처절함이 스며있다.
다른 기생들은 왕의 시에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지만, 녹수만은 그 시를 듣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 눈물이 아쟁에 떨어져 현을 타고 주욱 미끄러진다.
결국 그녀는, 활을 떨구고 오열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