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7
다시 밝아진 사무실. 박주원의 자리는 비어 있고, 저 너머에 그의 등이 보인다.
파티션을 두 세개 건너서 있는 팀장의 자리.
링의 사다코처럼 카메라가 파바박 점프하여 그 장면에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골치 아파 죽겠네. 일단 윤대리 업무 박대리가 좀 커버해.”
“…넵, 팀장님. 당연히 이런 상황에선 분담해야죠. 그런데 제가 관리하는 라인들이 요즘 맥스로 돌아가다보니 다 커버하긴 어려울 것 같고, 인원따라 적절히 업무 분장해서 가져오겠습니다.”
“…알았어.”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자, 박주원의 표정이 드러난다.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가 있지만, 눈은 무표정하다.
다시 화면 블랙 아웃되고 자막.
돌아온 화면에 사무실의 시계가 가득 잡힌다.
5시 59분 57, 58, 59, 60.
분침과 초침이 일치하는 순간, 그가 자리에서 스윽- 일어선다.
팟-
그 순간, 사무실의 모든 동작이 정지되면서 회색으로 바뀐다.
전화를 받으며 입을 연 상태로 멈춘 옆 팀원,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한 손으로 정강이를 긁다 멈춘 과장, 한 쪽 정수기에서 물을 받던 사람의 컵으로 떨어지다 멈춘 물방울.
그 흑백의 배경 속에서,
홀로 컬러인 박주원이 자동차 키의 버튼을 삑- 하고 누른다.
쿵- 쿵-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비트성의 음악이 점점 커지며, 사무실 중간에 새빨간 세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오오-!’
크루드의 디자인 팀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흑백의 화면 속에 타오를 듯이 새빨간 크루드가 멋지게 표현되었다.
자신이 작업한 디자인이 저렇게 멋있었나 새삼 감탄할 정도로.
그리고 그 크루드 앞에서 박주원이 여유롭게 움직인다.
넥타이를 풀어 반듯이 두 번 접어넣고, 단추를 푼다.
소매를 접어올리자, 단정해보이기만 하던 셔츠 속에서 불쑥 컬러풀한 안감이 튀어나온다.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딱딱한 구두를 운동화로 갈아신고, 마지막으로
안경을 벗는다.
이 순간, 그의 딱딱한 미소가 사악 걷혔다가,
종류가 다른 미소가 훅- 퍼진다.
진심이 드러나듯 즐겁게, 보는 사람까지 즐거워질 듯한 도전적인 미소로 화려하게.
그런 그의 모습을 멋들어지게 잡으며, 화면 위로 한 글자씩 자막이 박힌다.
그가 거침없이 운전석에 자리를 잡고, 악셀레이터를 밟는다.
부우웅- rpm이 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차가 돌진하여 사무실 벽을 뚫고 나갔다.
콰앙-
콘티를 알고 있던 민상무도 가슴이 덜컹할 정도로 시원한 소리가 터진다.
물론, 쾌감을 주기 위해 입힌 소리였지만,
콘티를 모르고 있었던 임원은 헉- 하고 입으로 소리를 뱉았다.
임원들 중 낙하산이 아닌, 사원부터 지금의 위치까지 꾸준히 올라온 인물들은 손을 불끈 쥐었다. 그들 역시 몇십 년을 사무실에 매여,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꾸역꾸역 참으며 이 자리에 오른 사람들.
그들은 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휘파람을 불 뻔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벽이 와르르 무너지고,
크루드는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도심의 텅 빈 도로를 달린다.
우우웅-
거친 배기음과 비트감 있는 음악소리를 깔고.
달리는 와중에 화면은 여러 가지의 인서트를 자막과 함께 보여준다.
활을 재고 과녁을 겨냥하는 박주원의 야생동물같은 미소.
클럽에서 눈길을 뗄 수 없는 춤을 추는 멋진 자태.
그리고 도로를 주파한 크루드가 서킷장에 도착한 후, 거칠게 레이싱 트랙을 도는 모습을.
크루드에서 내려 헬멧을 벗자 그의 번뜩이는, 살아있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환한 미소가 잡힌다.
새빨간 크루드와 함께.
모든 임원들의 시선이 화면에서, 화면의 중심에서 떨어지지 않고 멍하니 홀려있을 때,
화면이 다시 사무실로 페이드인 되었다.
초반과 똑같은 사무실 풍경, 시계는 9시 정각.
다시 사무적인 미소를 걸고 제 자리에 앉은 박주원은 소매 한 쪽이 아직 접혀있는 것을 발견한다.
슬쩍 삐져나와있는 초록색을 보고 잠시 ‘진짜 미소’를 흘린 그는,
잽싸게 소매를 바로잡은 후 미소의 종류를 바꾼다.
그리고,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화면이 줌아웃된다.
크루드의 1차 시사가 끝났다.
*
틱-
화면을 더 잘보이게 하기 위해 꺼졌던 형광등에 다시 불이 들어왔고, 임원들은 잠시 꿈을 꾼 듯 멍하니 빈 화면을 보고 있다가…박수를 쳤다.
짝- 짝짝– 짝짝짝짝
박진희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이상 크루드 ‘1차’ vip 시사회였습니다. 지금부터 수정 보완할 부분을 기탄없이 얘기해주시면 2차 시사에 최대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바로 사장.
“민상무!”
“네, 사장님.”
“이 사람 겸손이 지나치네. 어떻게 저걸 ‘괜찮게 빠졌다’정도로 표현할 수 있나, 하하.”
사장은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화면도 잘 나왔고, 구성도 기존에 자동차 광고에서 못 보던 구성이야. 하하, 김이사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주 좋습니다. 상당히 화제가 될 것 같군요. 저 배우는 저희 크루드와 무척 잘 어울리네요. 신유명이라고 했던가요?”
“그렇습니다.”
“처음에 마케팅부에서 신인배우에게 너무 터무니없는 개런티를 준 게 아닐까 논란이 있었는데, 결과물을 보니 이해가 갈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크루드의 이미지 모델로 가면 좋겠군요.”
“그럴 생각입니다.”
민상무가 기분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김이사 또한 이번 크루드 개발에 지분이 큰 사람이었다.
사장이 다시 말했다.
“고칠 게 없을 것 같은데? 충분히 잘 빠졌고, 3분 버전은 어차피 화제성을 위해 만든거니 15초짜리 tvcf를 빨리 뽑는 게 좋을 것 같아.”
“15초 버전은 현재 버전 그대로 15초에 압축하는 거라서, 3분 버전을 수정하지 않으면 거의 이 느낌 그대로 나올 겁니다. 괜찮으실까요?”
“이 느낌대로 나오면 좋지! 좋아! 허허.”
그렇게 3분 버전 ‘1차’ 시사회는 최종 시사회가 되어버렸고,
크루드 출시는 점점 임박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게시물 18712 [가입인사] 방가방가합니다 / 새우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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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가루*^^*
신입회원 새우깡이라고 합니다. 새천년 우리들의 깡다구라는 뜻이죠, 음화화.
저는 최근에 일적으로 우연히 신유명 배우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참말로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이더군요. 50대 삼촌이지만, 마음은 꽃다운 20대이니 다들 같이 놀아주세요.
세계최고 우주제일 배우 신유명,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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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삼촌 팬이라니 격하게 환영합니다. 역시 유명이가 남녀노소 불문 전천후로 어필하는 매력이 있나봐요.
└닉네임이…허허허. 진짜 삼촌 맞으시네요.
└헉 일적으로 따로 보셨다구요? 어떠셨어요? 무슨 일요? 좋은 일요? 우리 유명이 새 작품 하나요?
└여기만 압도적으로 썰렁해 어떡해…ㅠㅠ 삼춘 화이팅…
그 게시물을 보고 카페 회원 ‘보형양제’는 소름이 오싹했다.
‘이거, 서…설마···?’
*
헉- 허억- 헉-
수연은 구슬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숨이 한계까지 차서 더는 못하겠다는 말이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그녀는 함께 연습 중인 선배가 무척 어려웠다.
웨엑-
눈 앞이 뱅글뱅글 돌고, 속에서 토기가 올라오기 직전에 겨우 체력훈련이 끝났다.
그녀는 체면따질 것 없이 마루 바닥에 벌러덩 뻗었다. 반면 류신은 연습복 상의가 땀에 흠뻑 젖은 상태에서도, 무표정한 얼굴로 스트레칭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10분 휴식하고 연기연습 합시다.”
“네, 선배님! 저…근데 오늘 유명 오빠는 안 오나요?”
“이런저런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아마 오늘은 오기 힘들 겁니다.”
“아…넵.”
수연이 눈치를 보며 타올로 땀을 닦았다.
그녀에겐 ‘선후배’ 관계가 익숙치 않아, 자꾸 그의 앞에선 움츠러들게 됐다.
아니, 모든 종류의 관계가 익숙치 않은 걸지도. 그나마 2년 전에 안면이 있고, 자신에게 먼저 손 내밀어준 유명이 그녀에겐 가장 편한 사람이었다.
“오늘 준비해온 건 뭐죠?”
“피터팬입니다.”
유명과 수연이 만난지 2주, 그리고 류신이 합류한 후 또 2주가 흘렀다.
동화 연기.
류신은 최근 수연에게 이 과제를 주고 있었다.
동화는 인물의 감정이 단순한 편이다. 아직 수연의 연기가 복잡한 연기를 소화할 레벨은 안 된다고 판단하고, 기초적인 희로애락의 표현과 배역분석을 위해, ‘동화’라는 소재를 잡은 것이다.
그럼에도,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류신이 보기에, 이 사람은 배우의 자질이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텍스트를 전달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그는 티내지 않고 묵묵히 그녀를 훈련시키고 있었다.
‘타개책’이 있을 거란 유명의 말이 옳다면, 문제가 해결된 후에 이 기초훈련들은 그녀의 연기의 밑바닥을 지탱하는 자산이 되어줄 것이다.
“준비해 온 대사 좀 볼까요.”
“여기요.”
그녀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오늘 그녀가 준비한 것은 웬디의 부모가 피터팬과 함께 살자고 할 때, 피터팬이 거절하고 자신은 네버랜드에 남겠다고 하는 부분.
류신이 대사를 천천히 읽으며, 그녀에게 연기를 해 볼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보며 상대역의 대사를 읽어주었다.
그녀는 따가울 정도로 진지한 시선을 받으며, 그의 앞에 서서 열심히 연기했다.
“저는 어른이 되기 싫어요. 아침에 눈을 뜨고 얼굴을 만져 보면 수염투성이라니! 저는 그런 어른이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아요!”
예전보다 또렷해진 발음, 풍성하게 울리는 발성.
관객을 바라보는 시선도 명확해졌지만, 여전히 그녀의 연기는 ‘연기’로 보이지 않았다.
그냥 그녀 자신. 아니 그렇다기에도 자연스럽지 않은…
“여기까지입니다.”
“흐음···”
수연이 초조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체력 연습이야 몸이 힘들 뿐, 악을 쓰고 근성으로 쫓아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지금처럼 연기 연습을 하고 난 후의 평가를 기다릴 때는, 그녀는 무척 조마조마해지곤 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더이상 나오지 않아도 된다- 라는 얘기가 나올까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