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8
류신은 평소처럼 촌철살인의 평가를 하지 않았다.
다만 자리에서 일어서서 목을 좌우로 한두 번 꺾더니, 마루바닥에 내려섰다.
“내가 해볼게요. 한 번 봐요.”
류신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끝
ⓒ 글술술
동화 연기.
류신이 어릴 때, 연기의 기초를 닦기 위해 해 보던 연습이었다.
어릴 때부터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야기들.
선과 악이 명백한 캐릭터들.
단순한 연기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것은 아니다. 전형성을 띤 인물의 감정을 진실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 더구나,
-피터팬.
오늘 수연이 골라온 작품은 더욱 애매했다.
피터팬은 동화이긴 하지만 상당히 복잡한 인물들이 얽혀 있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후크라는 인물도 그렇고,
어릴 때는 그저 ‘나이를 먹지 않는 어린이들의 영웅’으로 생각했었지만, 커서 다시 동화를 읽어보니 상당한 마더 콤플렉스에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피터팬이라는 인물도 그렇다.
그는 잠시 동화의 내용을 떠올리며 피터팬의 감정을 파고들어 보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보는, 어린 아이로 남아 영원히 즐겁게 살고 싶은 소망.
하지만 엄마가 그리워서 돌아가려고 마음 먹었을 때, 자신을 잊고 새로 태어난 남동생을 안고 있는 엄마를 보았던 뿌리 깊은 배신감.
그리고 웬디의 부모가 ‘우리 아이가 되어 함께 살자’고 했을 때의 기분은…
내 엄마도 나를 잊었는데, 타인의 엄마가 나를 정말 사랑해 주겠냐는 현실적인 체념.
그리고 내내 어린아이로 살아와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두려워 도피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는 센 척하는 골목대장과의 소년, 명랑을 가장한 어조로 자신의 불안한 마음은 꽁꽁 감춘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가 피어오르자 수연이 움찔했다.
‘못 보던 표정···’
평소의 어른스럽고 진지한 얼굴과는 달리, 세상 어린아이같은 표정을 한 그가 피터팬의 연기를 시작한다.
“웬디, 난 갈게. 잘 있어!”
그 표정에 놀란 놀란 수연이 한 박자 늦게야 상대역 대사를 쳐 주었다.
웬디의 엄마의 대사였다.
“네가 피터팬이지? 너도 우리 집에서 같이 살지 않을래?”
“그렇게 되면 저도 학교에 다녀야 하죠?”
“물론 그렇지.”
“학교를 나오면 회사에 다녀야 하죠?”
“물론 그렇게 되겠지.”
“그러다 어른이 되겠죠?”
“물론 그렇지.”
확인하듯이 되묻는 그의 음성에 조금씩 공포가 서린다.
목소리는 애써 씩씩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치과에 안 갈거야!’하고 떼를 쓰는 듯한 어린아이의 공포가 바닥에 깔린 목소리.
“저는 어른이 되기 싫어요. 아침에 눈을 뜨고 얼굴을 만져 보면 수염투성이라니! 저는 그런 어른이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런 말 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살자꾸나.”
떼를 쓰던 소년은, 웬디의 엄마의 자상한 말에 잠시 대답을 늦춘다.
1초 상간, 짧은 순간에 드러나는 분명한 망설임의 표정.
동화라 그런지 보여주는 감정들이 원색으로 선명하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팩- 돌리며 다시 고집스런 목소리로 말한다.
“싫어요. 나는 언제까지나 아이로 있는 것이 좋거든요.”
그의 연기가 끝났다.
말로 하는 것보다 더 ‘차이점’이 피부로 와 닿는다.
평소의 자신을 벗고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입는 것, 수연은 그것이 바로, ‘연기’라는 것임을 깨닫고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오늘도 자신의 연기는 아직 걸음마에 불과함을 깨닫고 만다.
“사실, 피터팬은 좀 어려워요. 동화치곤 복잡해서. 접근 방식을 보여준거니 참고만 하고, 내일은 좀더 간단한 동화로 준비하도록 하죠.”
“네, 선배님.”
다시 주눅이 든 수연이 작게 대답했다.
그녀는 정말로 잘 하고 싶었다.
스스로도 배우의 길에 욕심이 있음은 물론이지만, 자신에게 손 내밀어 준 유명에게도 번듯이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갈 길이 너무 멀어보였다.
*
그 날 유명은 유석을 만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여어, 유명씨 잘 쉬고 있어요? 다음 주부터는 슬슬 영화 홍보일정이 조금씩 있을 거에요. 휴식에 지장 없게 띄엄띄엄 조율해 줄게요.”
언제나 자신을 배려해주는 유석의 말에, 유명은 얘기를 꺼내기가 미안해진다.
“저…대표님, 사실은···”
그리고 그가 얘기를 시작하자 표정이 점점 황당하게 변했다.
“여태 연습실을 따로 빌려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구요?”
“아…같이 연습하는 분들이 저희 회사 사람들이 아니라서···”
“왜 그걸 배우 사비로…아니 그것보다 그새를 못 참고 또···”
“…죄송합니다.”
유명이 난처하게 웃자, 유석이 혀를 찬 후 포기한 듯이 말했다.
“그래요. 본인이 그렇게 일이 좋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어요. 작품 들어온 거 많은데 시나리오 읽어보든가요.”
“시나리오는 감사하게 읽겠는데…좀 죄송한 요청이 있는데요.”
“뭐에요?”
드디어 자신이 해줄 일이 생겼나 눈을 반짝이던 유석은, 이어진 유명의 말을 듣고 점점 표정이 사라졌다.
“연극요?”
“네, 같이 공연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크게 수익은 없을 것 같긴 한데 어려울까요?”
“아니 어려울 건 없는데,”
‘역시 한참 활동할 시기에 연극을 하겠다니 마음에 안 드시나’하고 생각하던 유명은, 이어진 말에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왜 나한테 일을 안 줘요.”
“…네?”
“아니, 내가 좋은 시나리오 골라주려고 했는데! 하고 싶은 작품 있으면 따올 수도 있는데! 조건도 멱살잡고 최대로 따내올 자신이 있는데, 왜 자꾸 매니저를 놀리죠?”
“……”
마음에 안 드는 포인트가 생각과 무척 다르다…
“…흠흠, 어쨌든,”
“네, 대표님.”
“하세요. 하고 싶은 거 해야지.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라고요?”
“설수연이라고 소속사 없는 배우 한 명과, 서류신이라고 저희 학교 선배입니다.”
“아, 서류신 씨면 그 아역으로 날렸던? 그쪽 기획사 쪽에선 찬성했대요?”
“네. 친척 관계가 있어서 괜찮다고 하더라구요. 드림엔터 소속이래요.”
“그래요. 그 쪽 기획사와는 내가 협의해야겠네요.”
유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학로에서 공연할 거라면 스텝이며 혹시 필요할 지 모르는 단역들이며, 아무래도 극단을 하나 끼는 게···”
“네. 안 그래도 그것도 부탁 드리려구요. 제가 운을 띄운 후 오케이 받으면, 세부적인 협의는 실장님이 해 주셨으면 해서요.”
“어디 생각하고 있는 데가 있나 보죠?”
“네…”
-만약 나중에라도 극단에 마음이 생긴다면 꼭 선배님부터 찾겠습니다.
유명은, 과거의 한 약속을 떠올렸다.
*
백이신은 극단 사무실에서 맥심모카골드를 타고 있었다. 커피를 빠르게 휘휘 젓는 손길이 성격답지 않게 초조했다.
오늘 극단 에는 세입자가 들어올 예정이었다.
“왔나?”
“아직입니다, 단장님.”
단장 또한 무척 기다려지는지 시간이 되기 전에 사무실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재작년, 창천 공연에서 유명을 발견한 후 이신이 극단 운영진 회의에서 한탄하듯이 ‘좋은 배우를 놓쳤다’고 푸념하던 것을 단장은 기억했다.
그 가을, 오디우스 공연에서 서류신을 보고 그 한탄은 한 번 더 반복되었다.
-어떤 배우길래?
-아아…둘 다 1, 2년 내에 유명해질 겁니다. 오랜만에 제 안목을 충족시키는 배우들이었는데… 아까워요, 으으.
서류신은 아역 때부터 유명했었으므로, 단장도 납득이 갔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도대체 어떻길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백이신의 안목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배우는 단숨에 날아올라 작년 올해 최고로 주목받는 신인배우가 되었다.
이상하게 최근 줄라이에는 주연감의 젊은 배우가 없었다.
괜찮은 신인 배우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대 전체에 힘을 실어 끌고 가는 극단의 간판 노릇을 하기에는 뭔가 조금씩 부족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티비에서 비춰질 때마다 백이신이 자꾸 앓았다.
-아아…내가 먼저 발견했는데···
-이제 그만 마음 정리해. 어차피 그림 속의 떡이야.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공연 생각이 나면 저한테 먼저 연락주기로 했습니다.
-이미 몸값이 천정부지일텐데 퍽이나 연극판으로 오겠다.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질텐데.
-공연은 공연만의 중독성이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지만…한참 뜨고 있는 신인배우 때는 돈 벌기 바쁘지. 벌만큼 벌고, 기획사 눈치도 덜 보는 30대 이후나 되어야 공연 생각도 나는 거지.
이렇게 미련이 철철 넘치고 있었으니, 며칠 전 유명에게 연락이 왔을 때 이신은 뛸 듯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공연요? 줄라이에서요?
-네. 내년 초로 한정된 일 뿐이라, 민폐일수도 있겠지만···
-아닙니다. 민폐라뇨. 잊지 않고 연락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단기간의 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한창 핫한 신인배우인 신유명에, 그 서류신이다.
보장된 티켓셀링파워는 물론, 줄라이의 홍보에도 좋은 기회.
그 즉시 이신은 단장에게 보고하고, 및 와 미팅을 가졌다.
그리고 오늘,
극단 줄라이의 연습실 한 곳에 그들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다.
“누가 찾아오셨다는데요.”
드디어 경비실의 호출이 왔고, 그는 단장과 함께 1층으로 허겁지겁 내려갔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세 명의 배우를,
“어서 와요! 이 쪽, 이 쪽으로.”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