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52
“성인극이 될 거에요. ‘정신병동에 입원한’ 피터팬, 후크, 웬디의 이야기거든요.”
끝
ⓒ 글술술
경합을 준비하며, 짬짬이 새로운 작품을 의논했었다.
기존에 있던 대본에서 창작극까지 많은 레파토리가 물망에 올랐다가 삭제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류신이 얘기를 꺼냈다.
“피터팬 어때요?”
“피터팬···?”
“네. 유명씨 없던 날, 설수연씨가 피터팬에서 대사를 뽑아서 가져왔는데, 이거…연기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어릴 때 읽어본 게 다라, 모험 이야기라는 기억밖에 없는데 어떤 부분이요?”
“음…등장인물들이 죄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부분이···?”
유명은 서점에 가서 원작번역본을 구입했다. 그리고 집에서 단숨에 읽어내린 후···
‘정말이네.’
어릴 때는 인지하지 못했던 기이한 인물상에 깜짝 놀랐다.
먼저 피터팬.
“정말이지, 난 머리가 좋단 말이야. 역시 난 영리해.”
“웬디, 우리들의 엄마가 되어줘.”
“엄마란 웬디의 말처럼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야.”
자기중심적이고, 잘난 체가 심하며,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강한 원망과 그리움에 사로잡혀 있는.
그리고 후크.
“앗, 큰일이다! 악어가 왔다!”
“이크! 악어로군. 이것만은 안 돼!”
외상 후 ‘시계 소리’로 대변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팅커벨.
“넌 형편없는 계집애야.”
“흥, 계속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줄테다. 이 멍청이야.”
피터팬에게 집착이 심하며, 그가 관심을 보이는 웬디에게 무조건적으로 적대하는 태도를 보이는,
뭔가 하나씩 뒤틀려 있는 캐릭터들.
‘이 인물들을 등장시킨다면 아예···’
유명의 머리 속에 어떤 발상이 떠올랐고, 그는 다음날 팀원들에게 그것을 털어놓았다.
“아예 뒤틀린 내면을 본격적으로 조명하면 어떨까요? 이 인물들이 ‘병원’에 수용된 상황으로 하면…”
“…그거 좋네요. 처음엔 동화로 시작했다가 정신병원으로 턴오버하면 어떨까요?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한 번 반전을 주면 관객들이 놀라면서 단숨에 몰입할 거 같군요.”
류신은, 다시 한 번 유명의 연출적 발상에 감탄하며 추가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유명 또한 신이 나서 주고 받으며 살을 덧붙여 갔다.
그러느라 두 사람은,
급격히 어두워진 수연의 표정을 놓치고 말았다.
*
12월 중순.
SBK 채널,
수요일 밤에 방영되는 이 프로는, 자극적이지 않은 토킹 프로그램으로, 진행자 선우형의 차분하고도 리액션 좋은 진행으로 사랑받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틱택톡 시청자 여러분. 수요일의 달밤지기~ 선우형입니다.”
와아아아아–
“오늘의 토크손님은 세 분인데요.
한국 영화사에 이 분을 빼놓고 말할 수 없죠, 의 손치욱 감독님.
그리고 으로 탑배우 반열에 오른 윤한성 씨,
마지막으로 야 이 겨이같은~~”
선우형의 전혀 닮지 않은 구수한 목소리에 방청석에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올해 초, 윤보형 신드롬을 일으켰던 실력파 신인 배우, 신유명 씨를 한 자리에 모셨습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짝짝짝짝짝–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할 를 위한, 홍보용 출연이었다.
손 감독과 한성은 태연해 보였지만, 이런 자리가 처음인 유명은 신기한 듯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조명을 올려다보았다.
“다음주에 손치욱 감독님의 신작 가 개봉하는데요. 이번 영화에 대해 간략한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려말선초란, 고려말에서 조선초로 넘어가는 격변기를 일컫는 말이에요. 이번 영화에서는 그 중 특히 정몽주와 이방원이라는 두 인물, 그들의 관계와 신념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선우형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잘 끌어가는 진행자였다.
영화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 손감독의 해박한 지식과 배우들의 의견이 쏟아져 나왔고, 선우형은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이런 질문을 했다.
“손감독님은 윤한성씨와 신유명씨와 함께 작업하면서 어떠셨나요?”
그 질문에, 손 감독이 한성과 유명을 따뜻한 시선으로 건네보았다.
“정몽주 역의 윤한성 배우와 이방원 역의 신유명 배우. 저는 진심으로 이 두 배우를 만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영화판에서 40년 가까이를 보냈지만, 제가 만든 캐릭터를 제가 상상한 이상으로 움직여주는 배우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 말 끝에, 손 감독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자, 선우형은 조금 당황했다.
‘홍보용 멘트’겠지 흘려들으려 했던 칭찬, 그 말에 그의 절절한 감정이 배어있었기 때문.
“와…손감독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저도 코가 찡해지려 하는데요,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여러분도 궁금하죠?”
네에에에~~
FD가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관객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여기 윤한성 군은…제 제자로 생각하는 배우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꺼내는 표현, 따뜻한 음성에 한성도 조금 울컥한 듯 고개를 숙였다.
“함께 여러 작품을 해왔고, 그렇기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이번에…연기의 극의(*極意:지극한 뜻)를 추구함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죠. 제가 놀라고 감동할 정도로.”
“아, 듣기로 중국 로케에서 윤한성 배우가 6일간 단식을 하고 촬영을 했다던데 사실인가요?”
선우형이 잽싸게 끼어들어 감독의 얘기를 도왔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는, 이미 20년을 연기해 온 배우가 한 꺼풀을 벗고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무슨 의미인지 아실 겁니다.”
“그렇군요. 저도 정말로 기대가 되기 시작하네요.”
“그리고 신유명 배우는···”
감독이 살짝 울컥하는 것을 다시 누르고 그를 돌아보았다.
20대 중반. 아직 어리지만 끝을 알 수 없이 깊은, 빨려들어갈 듯이 흡입력 있는 눈빛.
“기적…이랄까요.”
“…기적인가요.”
눈이 높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감독의 표현에, 선우형은 살짝 소름이 올라 되물었다.
“이미 완성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완성 이상을 추구해 새로운 놀라움을 만들어 내는 배우입니다.”
“엄청난 표현이네요. 짐작할 만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초반에 제가 제 욕심을 못 이겨서 무리한 주문을 했었죠. 가만히 있을 때도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도록 존재감을 뿜어내야 한다는 주문을 했어요. 그랬더니…허허, 참…”
“그랬더니요?”
선우형이 조급한 추임새를 넣었다.
“엑스트라를 시켜달라고 자원하더군요. 군중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 연습해 보겠다고.”
“우와···”
선우형의 벌어진 입은, 감독의 다음 말에 완전히 쩍 벌어졌다.
“그렇게 엑스트라로 찍은 장면이 15번입니다.”
“네? 15번요?!”
“그렇습니다. 초반 한 달, 이방원의 아역이 출연하는 기간 내내 유명씨는 엑스트라 연기를 했어요. 그리고, 제 기대보다 몇 배는 훌륭하게···”
“해냈나요?”
“그렇습니다. 마지막 엑스트라 촬영 땐, 군중 속에 섞여있는데도 유명씨만 튀어서 엑스트라에서 제외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 말에 방청객들과 선우형이 동시에 신음을 토했다.
“그럼 엑스트라들을 잘 보면 신유명 씨를 찾을 수 있는 건가요? ‘윌리를 찾아라’처럼?”
“하하, 그렇지요. 그걸 찾으면서 보시는 것도 재밌겠군요.”
선우형이 휙- 고개를 돌려 스물 다섯의, 무던해 보이는 인상의 조용한 배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쑥쓰러운 듯이 얼굴을 살짝 붉히고 있었다.
“신유명씨, 감독님의 얘기를 들으니 너무 궁금합니다. 어떻게 짧은 연기경력에 그만한 연기력을 갖추게 되었을까요?”
그 말에 유명의 머리 속에서는 빠르게 지난 15년이 스쳐 지나갔다.
‘짧은 연기경력이라고 할 순 없지’라는 생각에 슬핏 웃음이 난다.
그리고, 그 15년의 노력 덕에 이제 늘 과분한 칭찬을 받음에도, 긴장을 놓지 않고 위를, 더 위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은···
“감독님이 방금 연기의 극의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저는 그걸 ‘목격’한 적이 있거든요. 그게 항상 제가 지금에 만족하지 않도록 북돋아 주는 것 같아요.”
“아니···”
그 말에 진행자도, 감독도, 한성도 놀라 유명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떤 배우인가요?”
“그건…비밀입니다.”
유명은 시선 위에서 가물거리는 푸른 빛을 보며 아찔한 웃음을 지었다.
*
은 유난히 많은 기사감을 양산했다.
보통 영화 개봉 직전에 출연하는 예능에선 자극적인 홍보멘트와 뻔한 극찬들이 난무한다. 보는 사람들도 홍보성이려니 하고 절반은 걸러듣기 마련이었다. 예능에 흔히 나오지 않는 배우들을 보는 맛으로 볼 뿐.
그런데, 한국 영화판의 거장이자, 연기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손치욱의 심상치 않은 멘트는 도무지 그냥 ‘멘트’로 보이지 않았기에.
-손감독님 통장 앵꼬나셨나, 홍보도 정도가 있는데 너무 과하심.
-이러다 개봉했는데 평점 테러나면 쪽팔려서 어떡하시려고.
-저 영화광인데, 손치욱이 만만한 감독이 아닌데요. 조금 과장은 있을지 몰라도 빈말하실 분은 아닙니다. 방금 첫 날 표 예매함.
-저게 연기면 감독이 아니라 연기자하셔야죠. 윤한성도 신유명도 연기파로 유명하긴 하잖아요.
-노감독님이 젊은 배우들을 진심으로 극찬하는 게 보여서 제가 다 울컥했네요. 너무너무 기대중입니다.
여론은, 점차 뭔가 있다는 방향으로 흘렀다.
의 회원수는 갑자기 폭증했고, 회원들은 떨어진 떡밥에 대폭발 중이었다.
-엑스트라로 15번 나왔다고 했죠? 제일 먼저 정답 올리는 사람 팬클럽 차원에서 시상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안녕하세요. 신입회원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저 첫날 연이어서 두 타임 예매했습니다. 한 번은 온전히 영화 감상하고, 한 번은 펜 들고 윌리를 찾아라 할 예정입니다.
-안녕하세요. 신입입니다. 오늘 가입했어요.
-감독님 말씀 듣고 저만 울었나요? ‘기적’이라니…하아. 유명이 너무 자랑스럽고 일찌감치 유명이를 알아본 저도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안녕하세요. 신유명 팬클럽 새내기입니다.
그리고, 또 한 편의 영화 또한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연산의 애첩이자 악녀로만 알려져 있는 장녹수의 ‘예술가로서의 인생’을 조명한 영화는, 려말선초의 ‘정치 이야기’와는 맥락이 달랐지만, 어쨌든 같은 사극이라는 것에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개봉날짜는 려말선초의 바로 다음날인, 크리스마스 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