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53
줄라이 연습실에서 처박혀 연습 중인 유명과 류신이 모르는 사이에,
세상은 그들의 이야기로 한껏 떠들썩해져 갔다.
그리고 12월 23일, 금요일.
가 개봉했다.
*
재능있는 배우를 서포트하는 것이 취미가 되었을 정도이니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유석은 영화광이었다.
‘드디어···!’
12월 23일 오후 3시.
그는 의 첫 상영을 보러, 영화관으로 향했다.
유명이 여러 번 청했지만, 편집 시사나 VIP 시사도 거절했던 그였다.
평론가의 호평이 줄이어 쏟아져 나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스포일러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한 번도 눌러보지 않았다.
‘개봉 후’ ‘일반 관객과 함께’
그렇게 보는 것이 좀 더 영화를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라는 지론이었다.
더구나 이번 영화는, ‘그의 취미’가 주연급으로 참여한 영화이자, 대단할 조짐을 이미 여러 군데서 보인 영화였기에 무척 기대가 되었다.
‘역시, 연예학개론 오디션장에서 잘 섭외했단 말이지. 너무 자생력이 강해서 혼자 쑥쑥 크는 건 재미없지만.’
신유명은 그에게 여러가지 상념을 불러 일으키는 배우였다.
첫 눈에 그의 레이더에 걸릴만큼 풍부한 재능.
천재는 게으르다는 공식이 무색할 정도로 늘 연기에 목말라 있는 절실함.
예의바른 듯 하면서도, 결코 만만치 않고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는 어른스러움.
그 묘한 매력에 자꾸 빠져든다.
타인을 쉽게 파악하고 조종하는 것이 익숙한 그를, 이렇게 번번히 당황시키는 인간은 없었으니까.
유석은 콜라를 하나 사서 자리에 앉았다.
예매 오픈 시간에 맞춰 빠르게 클릭해 잡은, 가장 스크린이 눈에 잘 들어오는 자리.
홍보가 잘 되었는지 영화관 좌석은 빈 자리없이 빼곡히 들어찼고,
-재밌었으면 좋겠다.
-평점 9점 넘던데 알바 푼 건 아니겠지?
불이 꺼지고 광고가 흘러나오자 조금씩 들려오던 객석의 수군거림도 완전히 잦아들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끝
ⓒ 글술술
가마귀 호 골에 白鷺(백로)야 가지 마라
셩낸 가마귀 흰 빗 새올셰라
淸江(청강)에 잇것 시슨 몸을 더러일가 노라
영화는 시조로 시작되었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70대의 노마님은, 지인의 병문안을 가겠다고 나선 아들의 옷자락을 쥐고 놓지 않는다.
“어제 꾼 꿈이 좋지 않았다, 몽란(*정몽주의 아명)아. 제발 가지 말아라···”
“걱정 마십시오 어머님. 금세 다녀 오겠습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사라지는 아들을 보고, 옷깃을 거머쥐며 시조를 읊는다.
아들의 마지막 뒷모습인 것을 알았을까.
화면 한 켠에 붓글씨로 백로가의 구절이 새겨지는 가운데,
까악- 까악–
불길한 까마귀 소리가 삽입된다.
고고하게 날아오른 백로가 까마귀 떼 사이로 돌진한다. 까아아아악-하고 사납게 우짖는 까마귀의 표정이 클로즈업되며,
정몽주와 이방원이 양 화면에 서슬퍼렇게 대치한 장면으로 서서히 디졸브된다.
[려말선초麗末鮮初]영화가 시작되었다.
*
쭈우우욱–
유석은 라지사이즈 콜라를 주욱 빨아당겼다.
그는 ‘연기’를 좋아했다. 어릴 적엔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명민했던 그는, 자신의 첫 꿈은 ‘이룰 수 없는 범주’라는 것을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조용히 지내무려나. 죽은 듯이 얌전하게 지내면 예뻐해줄텐데.
국민학교 4학년. 올백을 맞아서 전교 1등을 해 왔을 때,
아버지는 난처하게 웃으셨고, 어머니는 무표정했다.
그는 그 날 저녁을 먹지 못했고, 성적이 떨어져서 시무룩해하던 형은 최신형 로봇을 선물받았다. 그는 침을 꼴깍 삼키며 그 로봇을 보았지만, 형은 손가락 한 번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다음 시험, 그가 형보다 못한 성적을 받아오자,
아버지는 꾸짖었지만 어머니는 유석이 부러워하던 로봇을 사 주었다.
유석은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진열대에 올렸다. 그가 그것을 신나게 갖고 노는 일은 없었다.
너무 잘나서는 안 된다. 특히 형보다는.
너무 튀어서는 안 된다. 튀는 행동은 집안의 수치이니까.
너무 열심히 해서도 안 된다. 야심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까.
배우. 연예인.
꿈도 못꿀 일이었다. 집안과 절연당하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아예 기회조차 없이 묻히게 될 것이다.
그만큼 힘이 있는 집안이었으니까.
“죽여야 하옵니다–”
화면에, 왕권 정치를 하던 시절이 비추어진다.
‘왕세자가 못 된 왕자들의 삶이 그렇게 허무했다던가.’
왕자. 이름은 화려해 보이지만, 왕위에 오르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허울좋은 껍질.
천민보다도 제 뜻을 펼칠 수 없다. 똑똑하면 생이 더욱 한스럽다. 그 명석한 머리로 할 수 있는 것은 풍류나 즐기며 시간을 죽이는 것 뿐이니.
자칫 우수함이 드러나면, 역모의 가능성으로 잔뜩 경계당하다가 자칫 제거당할 뿐.
그런 집안에서 유석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실전연기를 하며 자랐다.
아무 야심없이 순종적인 아이처럼 ‘가면’을 쓰고.
“그리고 한 번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평소에는 전혀 그럴 인물이 아닌 것처럼 우아하게 처신하는 것을…”
그가 택한 배우의 눈이 이글거린다.
제 살인양 자연스럽게 붙어있던 ‘가면’을 부욱 뜯어내고.
“…’정치’라 한다.”
그의 본 얼굴에 세상을 덮을 듯한 야심이 번져 나갔고, 유석의 가슴이 덜컹 흔들렸다.
*
드라마는 불을 환하게 켜고 본다. 밥을 먹으면서 보기도 하고,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고 한참 떠들기도 하며, 빨래가 다 되는 소리가 나면 세탁물을 꺼내어 널고 오기도 한다.
원심성의 매체.
집중이 흐트러지더라도 스토리 이해에 크게 영향이 없는.
하지만 영화는 불이 깜깜한 곳에서,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강요당한 채, 전화기조차 무음으로 돌려놓고 2시간을 온전히 스크린에 집중하게 만든다.
구심성의 매체.
시선을 빨아 모으는 거대한 스크린은, 전달하는 메세지와 배우의 연기에 따라 영화관, 그 안의 관객들을 온전히 꿀꺽 삼키기도 한다.
꿀꺽-
시간이 순식간에 삭제된다.
유석은 눈이 부신 듯이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야심을 감추고, 미끄러져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최고급의 비단처럼 우아하게 움직이는 인물들.
그들의 심리를 자신만큼 잘 이해하는 사람들도 드무리라.
하지만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배우였다.
“아니 보이십니까?”
“저는, 보이는데.”
유석은 대학 졸업 후 작은 엔터테인먼트를 세웠다.
그의 어머니는 의외로 그것을 반겼다. 그녀의 적자(*嫡子:정실이 낳은 아들)와 경쟁할 생각이 아예 없음을 확인하고.
그럼에도 지나치게 똑똑한 차남이 불안한지, 그가 그 이상의 야심을 가지는 것을 단도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굳이 일할 거 뭐 있니? 네가 마음껏 쓸만한 돈은 얼마든지 줄텐데.
-심심해서요. 취미삼아 소소하게 해 보려구요, 하하.
-그래. ‘취미’ 수준에서 하렴. 너무 애쓰지 말고.
사업은 취미라기엔 잘 나갔다.
예상대로 자신의 안목이 비상한 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머니가 용인하는 선’ 안이기에 가능함을 아는 그는, 자꾸만 답답해져 갔다.
‘취미’로 일하는 인간.
그 부유해보이는 문장을 한 번 뒤집으면,
‘취미’밖에 허락받지 못한 인간.
그래서 ‘취미’ 속에서, 또 다른 취미를 하나 만들었다.
진짜 재능있는 배우를 발굴하자.
재능있는 자의 앞을 가로막는 사회적 장벽들, 그것을 치우고 아스팔트를 깔아주자.
외압이 재능을 뭉갤 수 없도록, 재능과 실력 하나로 쭉쭉 성장해 나가도록.
마치 나의,
아바타처럼.
그가 첫 번째로 발굴한 배우는, 재능만 있을 뿐 의지와 노력이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발굴한 배우는···
“저를 고이 따라오시고, 제 도발에 끌려와 주시고, 문을 닫아달라 한 후 열변을 펼치시고, 얼음같이 이성적인 분이 화까지 내시다니···”
“……”
“이렇게 미끼가 분전하고 계신데, 어째, 밖에서 ‘작전’은 잘 진행되어가고 있을까요?”
그가 웃는다.
가면에 가려진, 속을 알 수 없는 미소.
하지만 그 속에 차 있는 배우는 ‘진짜 미소’를 짓고 있다.
이렇게 연기하는 것이, 살아있다는 것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황홀하게 캐릭터에 몰입해 있는 그의 아바타.
아니···
어떻게 저 배우가, 저런 배우가, 고작 자신의 아바타일 수 있단 말인가.
빨아들인다.
보는 이의 시선을, 호흡을, 영혼을.
“아까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는 스승님이 탐이 난다고.”
이제는 그가 탐나지 않는다.
“언젠가 올 ‘내 시대’에 당신이 있어주었으면 했는데…”
그의 시대에 자신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그의 죽음은 역사가 될 것이다.”
그의 역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