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55
*
12월 23일 저녁. 대학로 판타지움 극장.
모자를 깊이 눌러쓴 한 남자가 극장 좌석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만석이었다.
‘팬텀을 보고 놀란지 불과 1년, 너는 또 얼마나 대단해졌을까.’
12월 24일 오후, 같은 극장 같은 좌석에 또 한 명의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낀 남자가 몸을 묻었다.
역시나 만석.
‘매일 보고 있는데도 궁금하군요. 선배는 어떤 연산군이 되었습니까.’
유명은 전생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천성연, 탑 여배우들 중에서도 상당한 연기파.
당시 이 영화 관객이 300만 정도 찍었던가.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제작비가 많이 드는 사극 영화임을 감안하면 썩 흥행했다고 볼 순 없었다. 손익분기를 조금 넘긴 성적이겠지.
그런데, 변수가 하나 있다. 서류신이라는 변수.
원생에서의 서류신은 연극 배우였다. 스크린으로의 무수한 러브콜이 있었지만 거절하고 무대에 남았다. 그러니 원래 이 영화의 연산은 류신이 아닌 다른 배우였다.
그 한 명의 변화가 어느 정도의 차이를 가져올 것인가.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변고가 있겠느냐? 하지만 만약 변고가 있으면 너희는 무사하지 못하겠지···”
젊고 아름다운 왕.
희대의 폭군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미쳐가는 연기에서, 닳고닳은 시선에서, 한 명에게만 지극히 편파적인 애정에서 시선을 떼기가 어려운,
그의 모든 악행에 눈 감고 한 번 등을 쓸어주고 싶어지고야 마는,
여린 연산.
‘역시···’
유명은 세간의 상식을 뒤집는 그 연산을 보고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류신이 얼마나 스스로를 몰아 붙였을지, 그리하여 이토록 애달픈 연산을 만들었을지,
그 모든 고뇌와 노력들이 선연하게 재생되는 것 같다.
류신은 아직 파릇한 16세의 방원을 뚫어질 듯 쏘아보았다.
살갗에 벌레가 기어가듯 자주 소름이 뻗친다. 팬텀의 죽은듯한 고즈넉함이 놀라웠던 1년 전의 배우는, 이제 터질듯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왜,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시는 겁니까.”
야심이 하늘을 뚫을 듯한 왕재(*王材:왕의 재목)
보는 것만으로 압도당할 것 같다. 모략, 계략, 정쟁. 그 한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우수한 전투력을 빛내는 맹수같은 사내가 있다. 하지만 지극히 우아한 껍질을 두를것을 교육받은 맹수는, 오직 한 명에게만 탐심을 부린다.
‘도대체···’
류신은 세간의 상식을 200% 구현한 태종을 보며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어떤 연습을 했을지, 무슨 깨달음이 있었을지, 어떻게 하여 저토록 위력적인 태종을 구현했을지.
그 압도적인 재능에 몸을 떨고 만다.
‘그래, 그래야 신유명이지.’
그가 자신을 실망시키기를 바라지 않는다. 더욱 놀라게 하길 바란다. 언젠가 자신이 그를 넘어섰을 때 한 점 거리낌이 없도록.
뒤도 옆도 보지 않고 앞을 향해 달릴만한 등대가 되어.
‘그래, 이게 서류신이지.’
유명은 자신의 행운에 감사했다.
함께 연기하며 전념할 수 있는 동료.
내가 최선을 다하면 그 이상으로 맞받아쳐 올 라이벌과 함께 연기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커다한 행운인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도 어김없이 그들은 연습실에서 만났고,
서로의 작품을 본 서로는,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한번 더 불이 붙은 시선들이 감상을 대변하고 있었다.
“오빠 대박! 선배 대박이에요!”
수연만이 발그레해진 얼굴로, 감탄을 거듭했다.
*
새해가 되었다.
틀어놓은 TV에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려말선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뉴스에서, 예능에서, 개그프로에서.
-연말 개봉한 사극 영화 가 엄청난 흥행세로 매진행렬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방원 성대모사 해보겠습니다! 아니 보이십니까? 저는…보이는데, 우하하.
-하나도 안 똑같아요! 좋아하는 장면인데 망가뜨리지 마시죠.
-개봉 1주일만에 200만을 돌파한 려말선초는 신정 연휴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부모님께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가 그렇게 쏟아진다고 했다.
특히, 신정 당일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는 모두들 귀를 쫑긋 세웠다.
[어머, 올케. 잘 있었어? 어유 내가 를 직접 예매해서 봤는데, 유명이가 진짜 너무너무 잘하더라. 걔가 그런 재주가 있는지 몰랐네. 하기야 유명이 아빠가 어릴 때 끼가 좀 있었는데 아빠 자질을 물려받았나? 저 근데 혹시 그쪽 매니저 쪽엔 믿을만한 사람 안
필요한가? 유명이가 워낙 순하니까 걱정이 돼서…형이 일 좀 봐주면 좋잖아.]
그 때 아빠가 전화를 잡아채서, “일 없수, 누나.” 한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연이 통쾌하다는 듯이 깔깔거렸고, 엄마가 그렇게 끊으면 어떡하냐고 걱정을 하자 아빠는, 지금은 유명이가 잘 나가서 화도 못낼 거라며 이 참에 당신도 하고싶은 말 다 하라면서 껄껄 웃었다.
그리고,
딩동-
“어머,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저도 떡국 한 그릇 얻어먹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실장님! 저희 유명이 잘 돌봐주셔서 감사해요.”
“돌봐주고 싶은데, 혼자 너무 잘 해서 영 재미가 없네요, 하하.”
유석이 집에 찾아왔다.
매니저들이 명절에 집에 인사드리러 오는 경우는 흔히 있다고는 하지만, 실장이자 사실상 대표인 유석이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치 않았기에, 유명이 놀라 벌떡 일어섰다.
“어머님, 이거 받으세요. 이건 저희 회사에서 드리는 거고, 이건 현성자동차에서 드리는 거, 이건 팬클럽에서 보낸 거고···”
“어머, 뭘 이렇게 많이…구정도 아니고 신정인데···”
“신배우가 요즘 핫하니까요, 구정 땐 더 많이 올겁니다, 하하.”
“어머 이건 웬 영양제가 이렇게 많이···”
“그러게요. 현성에서 보낸건데 새해선물로 영양제라니 특이하네요.”
유석이 이상하다는 듯이 뇌까리는 것을 듣고, 유명이 쿡쿡 웃었다.
누가 개입했는지 알 만하다.
식사를 하고 잠시 방에 들어온 유석과 유명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말이 맞죠? 이미 내가 이긴 것 같은데?”
“글쎄요. 더 두고 봐야죠. 999만도 천만은 아니잖아요?”
유명이 받아쳤다.
“그나저나, 회사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에요. 신유명씨 섭외하겠다고 예능이며 드라마며 영화며 아주 비상이 걸렸어.”
“헐…정말요?”
“크루드는 지금 신차 출고까지 6개월 대기래요. 덕분에 광고주들도 비상이 걸렸죠. 신유명 잡아오라고.”
유석이 짓궂게 빙글빙글 웃었다.
오디션이나 미팅 없이도 바로 주연 확정하겠다는 탑급 감독, 한 번만 나와주면 굿엔터 다른 연예인들도 같이 꽂아주겠다고 매달리는 예능 피디.
그리고 수많은 기업들. 와 광고를 보고 눈이 뒤집혀서, 돈은 원하는대로 주겠다고 장담하는 광고마케팅 담당자들.
한 번은 우연이었을지도.
두 번은 행운이었을 수 있어도,
세 번째는 반드시 필연.
, , 세 작품에서 반론없이 ‘최고의 연기력을 지닌 신인배우’라는 타이틀을 따낸 ‘신선한 마스크’에게 진한 성공의 냄새를 맡은 업계의 하이에나들이 탐욕에 찬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접근했다.
“그 사람들 유명씨가 ‘연극’하고 있다는 걸 알면 뭐라고 하려나.”
유석이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이 오직 ‘연기’ 한 가지에 열광하여, 그 대상을 어떻게든 화려한 보상으로 꾀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 대상은 보상에는 별 관심없이, ‘연기’ 한 가지만을 바라보다니,
이 얼마나 통쾌한 풍경인가. 실로 아름답지 않은가.
그는 세상 사람들이 자청하여 누군가의 ‘팬’이 되는 이유에 처음으로 공감했다.
*
신유명 팬클럽, .
요즘따라 실시간 접속자 수가 어마어마한 이 까페.
개봉과 크루드 상영으로 풀린 다량의 떡밥들.
매일같이 올라오는 신윌리를 찾아라 게시물들.
그리고 쏟아지는 가입, 가입, 가입.
정소진은 오늘도 등업신청란에서 정회원 조건을 맞추었는지를 확인하며 열심히 등업 노가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 뜬 게시물 하나에 순식간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더니, 몇 분만에 베스트 게시물에 올라갔다.
그녀는 등업 노가다를 잠시 멈추고 그 게시물을 클릭했다.
딸깍-
게시물 75872 [어? 이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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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신윌리를 찾아라에 중독돼서 영화관에서 다섯 번 본 사람인데요···
그의 등, 그의 옆모습, 그의 자태…그의 조각조각을 찾다가 집에 왔는데, 방에 붙은 포스터에서…갑자기 그가 보이는 겁니다?
제 눈이 삔 걸까요? 이거 아무리 봐도…유명이 등으로 보이는데···
2003_로코코화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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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진은 눈을 커다랗게 치켜떴다.
‘응···?!’
끝
ⓒ 글술술
소진은 양쪽 시력이 1.8, 1.8이었다.
그 시력은 주로 내 가수 내 배우 내 새끼를 인파가 혼잡한 곳에서도 한 눈에 알아보는 데 유용하게 기능했다.
‘로코코 광고라면…잘 알지.’
05년 런칭하여, 포스터만으로 단박에 이름을 알린 디자이너스 브랜드.
압도적인 비주얼의 소녀와, 그녀를 이끄는 ‘등남’은 그 해 상당한 화제였었다.
‘이 등이…우리 유명이라고?’
좀더 대용량의 jpg 파일을 검색으로 찾아낸 후, 그녀는 매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이 견갑골의 각도와 위치, 어깨와 등의 아름다운 비율, 귀 뒤에서 목으로 떨어지는 선, 그리고…힙업의 각도!’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미친…진짜 유명이네.’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얼른 댓글을 확인했다. 이미 댓글창은 난장판이었다.
└‘등남’이? ‘등남’이? ‘등남’이? ‘등남’이? ‘등남’이?
└헉!! 그냥 봤으면 몰랐을텐데, 윌리를 매일 찾다보니까…알겠네요. 이건 우리 윌리야!
└저는 잘 모르겠는데…이런 등은 많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