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58
그리고 유명이 제안한 방법을 듣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생각도 못한 방법이네요. 이쪽으로 경험이 있어요?”
“…네.”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유명이야 미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지만, 미호를 볼 수 없는 류신과 수연은 그의 판단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냥 떠올렸다, 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좀 더 확실한 신뢰를 주어야 했다.
류신은 궁금한 듯 했지만, 유명의 무거운 표정을 보고 더 묻지는 않았다.
{내 말을 따라하면 된당.}
‘응, 고마워.’
오늘의 진행은 미호가 맡기로 했다. 그가 유명의 입을 빌려 수연을 인도하는 방식.
유명은 수연과 1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룻바닥 위에 마주 앉았다. 유명의 약간 뒤쪽으로 빗겨, 류신이 자리했다.
살짝 감긴 수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지?}
“엄마와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지?”
“한달 전에, 병원에 면회를 갔어요.”
유명은 미호의 속삭임을 그대로 입에 담는다.
“그 때 엄마는 어떠셨어?”
“좀 안정되었다고 해서 만나러 갔는데, 저를 보고 재발했어요. 내가 쟤보다 예쁘다고 소리를 지르고, 저 년이 내 남편을 빼앗아 갔다고 울었어요. 주치의 선생님이 역시 저를 보면 증상이 악화되는 것 같다고 면회를 되도록 안 오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엄마는 정확히 어떤 문제가 있으신 거야?”
“처음엔 망상장애 중 특정인에게 한정된 심한 질투망상이었대요. 의처증이나 의부증과 비슷한 증상인데, 대상이 딸인 저인거죠. 그리고 병원에 수용될 즈음엔 조현병(*정신분열증)도 발병한 상태였다고···”
유명은 수연의 말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미호의 말을 되새김질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건 언제야?”
“제가 열아홉 살, 고삼 때요.”
“그래, 그 때로 한 번 돌아가보자.”
처음 시작은, 엄마와 마지막으로 함께 살았던 열아홉 살 때부터.
“무슨 일이 일어났지?”
“엄마가 칼을 휘둘렀어요.”
흠칫-
그 말에 두 청자의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
끝
ⓒ 글술술
“무슨 일이 일어났지?”
“엄마가 칼을 휘둘렀어요.”
흠칫-
그 말에 두 청자의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
“누구한테?”
“주민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찾아온 통장 아주머니에게요.”
그리고 조금 안도한 듯 가라앉았다.
“왜?”
“이유가 없었어요. 벨 소리가 울리자마자 다짜고짜 칼을 뽑아서 나갔나 봐요. 문이 열리고 통장 아주머니가 찢어질 듯이 비명을 질렀고, 저는 방 안에 있다 그 소리를 듣고 뛰쳐나왔어요. 다행히 아주머니는 안다쳤지만, 칼을 휘둘렀으니 경찰이 찾아왔고, 그 길로 정신과 병동에 강제 응급입원이 됐죠.”
“그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어?”
“아니요. 저한테는 무척 가혹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별 문제 없었어요. 다만, 그 몇 개월 전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였죠. 쓰레기를 자꾸 모아놓고, 아무 소리도 안나는데 시끄럽다고 화내고…선생님 말로는 그 전까지는 망상장애만 있다가 그 무렵부터 정신분열증이 발생한 것 같대요.”
그리고 수연의 모친은 정신과 병동에 수용되었다.
-자해 타해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호전될 때까지 격리 수용이 필요합니다.
그녀가 가족동의 서류에 싸인을 했고, 비로소 지옥은 끝났다.
처음으로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이 사라진 그녀는 바깥을 무한정 걸어다녔고, 그러던 중 길거리 캐스팅을 당해 기획사와 계약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왔을 때 쯤엔 엄마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
“…네. 친구들과 같이할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친구들 엄마들은 전혀 안 그렇더라구요.”
“네가 먼저 신고하거나, 보호를 요청할 생각은 못해봤어?”
“…제 스스로 뭔가를 결정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엄마가 나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은 언젠가부터 두려움이 됐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엄마가 나한테 하는 행동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지만···”
“무기력해졌구나.”
“네···”
오랜 정서적 학대를 받은 사람은 저항할 힘이 사라진다.
스스로 헤치고 나온 경험이 없으니까,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느껴본 감정이 두려움과 무력감이라. 거기에서부터 접근해보자. 수연이는 두려울 때 어떻게 했지?”
“침대에 얼굴을 박고 귀를 가렸어요. 그리고 밖에서 문을 쾅쾅 차고 욕하는 소리가 멎을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 때의 감정을 떠올려 보면서, ‘무서워’라고 열 번 반복해볼까? 최대한 감정을 실어서.”
수연이 부담감을 느끼는지 눈을 한 번 꼬옥 감았다가, 입을 벌린다.
입밖으로 웅얼거리며 새어나온 소리는 처음에는 신음같다가, 반복되며 형체가 뚜렷한 어절이 된다.
“무서워무서워무서워무서워무서워무서워무서워무서워무서워무서워!!”
그 동안 수연은 연기를 하며 ‘흉내’내왔다.
높은 목소리, 격양된 어조.
감정을 실을 수 없으니 그럴싸한 어조를 꾸미는 게 그녀의 최선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랬다.
반복되는 무섭다는 어절은 커다란 소리로 퍼져나와 공허하게 벽에 부딪혀 스러졌다.
{흠…역시 안 되냥.}
미호가 예상했지만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스스로 과거를 털어놓고 도움을 구했다고 해도, 그것이 감정이 오픈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식 속에는 극복하겠다는 의욕이 넘치지만, 무의식 속의 방어기제는 습관처럼 견고하다.
{플랜B로 넘어가장.}
미호가 요구했다.
자신의 이야기에 고스란히 절망하면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아서 견고한 성을 쌓아 왔다면,
타인의 이야기로 보여줄 수 밖에.
*
유명이 일어나서,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미호가 제안한 방법은, 유명이 수연의 심리를 ‘연기’하는 것.
{저 녀석, 본인 이야기에는 열심히 고개를 돌리면서 영화나 소설같은 다른 이야기 속에 빠져 지내왔을 거당. 그런데 자신의 마음을 타인이 연기한다면?}
사이코 드라마의 기법에 이런 방법이 있다. 상대와 자신을 바꾸어서 연기해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 보는 것.
그것을 변형해, 자신을 연기하는 유명을 봄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타자화해서 바라보며, 정상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미호가 고안한 방법이었다.
쉬운 방법이 아니었다.
반사적으로 마음을 닫을 그녀를 설득해낼만한 연기력이 있어야 했다.
미호는 유명이기에 겨우 써볼만한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그런 신뢰를 일으킨 몇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모로 대단한 녀석이란 말이지···’
유명이 자신이 ‘그녀의 연기’를 할 것임을 설명한 후 말했다.
“수연아, 보다가 뭔가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표현해도 돼, 알겠지?”
“네···”
유명은 수연이 얘기한 자세대로, 웅크리고 앉아 귀를 틀어막았다.
쿵쿵- 쿵쿵- 쿵쿵-
부탁한대로 류신이 발을 구른다.
귀를 틀어막는 팔의 힘줄이 퍼드득 튀어나올 정도로 힘을 주던 그는, 커다란 소리를 터뜨렸다.
“문 좀 그만 두드려!!!”
유명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수연이 깜짝 놀라 손을 뒤로 짚었다.
유명은 소리를 지른 것이 거짓이기라도 한 듯이 다시 손으로 귀를 막고 덜덜 떨었다.
흔들리던 몸이 힘없이 옆으로 툭- 하고 넘어갔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혔다. 그런데도 귀를 막은 손을 떼지 않았기에, 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헉-
수연은 유명이 다칠까봐 움찔했다. 그 놀람이 잔뜩 방어할 준비를 한 마음에 작은 균열을 낸다.
데구르르-
바닥에 뒹구는 그는 아주 작고 약한 생물처럼 보였다. 옆으로 쓰러져 귀를 막은 상태 그대로, 그가 독백을 시작한다.
“-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숨을 죽이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어릴 때의 나는, 엄마가 발작적으로 화를 낼 때마다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조금 더 자란 후에는, 그것이 엄마의 발작을 더욱 부추긴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저 방 안에 틀어박혀 귀를 막고,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속삭이는 듯한 어조에는 오랜 무력감이 소금처럼 절어 있었다.
깜빡-
한 번 깜빡인 그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주륵 흘려내렸다.
수연은 그 표정에 심장이 덜컹했다.
알고있는 표정이었다.
“엄마, 저 오늘 친구들이랑 시내에 한 번만 갔다오면 안 돼요?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건 처음인데…돈도 필요없대요. 학교 마치고 바로 가서 너무 늦지 않게 두 시간만…아니 하…한 시간이라도···”
그녀가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런 날이 실제로 있었다.
숫기가 없고, 아무 행사에도 참가하지 않는 급우. 학기 초에는 예쁜 얼굴로 잠시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쟤- 인형같아. 표정도 없고 어두워.’ 그런 인식이 곧 퍼지고 동급생들은 곧 그녀에게 무관심해진다.
그런데, 누구보다 멋있고 쾌활하던 한 친구가 자신을 생일파티에 초대했다. ‘같이 가자, 너랑 친해지고 싶어, 응?’
“죄송해요..아…안갈게요. 잘못했어요. 때리지 마세요. 소리치지 마세요. 드…들어오지 마세요!”
그녀는 그 날 모든 용기를 쥐어짜서 보내달라고 매달렸지만, 그 날 엄마의 반응은 격렬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지.
소년의 눈이 공포로 몸부림친다.
수연의 눈동자가 탁하게 물들면서 몸이 떨려왔다.
반항이라도 해! 너는 잘못하지 않았어!
앞에서 무력하게 떨며 울고 있는 소년을 격려하고 싶다. 상처받은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안아 다독이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다.
아아, 일어나. 맞서.
왜 그러고 있어.
그를 대신해, 저라도 덤벼들고 싶다.
그리고서야 깨닫는다. 저건 제 자신이라고.
“…네 잘못이 아니야.”
그 말은 오래동안 입에서 굴려지다가 속삭이듯이 겨우 튀어나왔다. 하지만, 불씨 하나가 온 산을 뒤덮는 산불이 되는 것처럼, 순식간에 몸을 부풀렸다.
“네 잘못이 아니야…네 잘못이 아니야···”
커지는 목소리.
“네 잘못이 아니야!!”
그녀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고 어깨가 파들파들 떨렸다. 공포.
“내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분노.
“그래. 네 잘못이 아니야. 억울해 해. 분노해. 토해내! 네 탓이 아니니까.”
그녀가 처음 보여주는 ‘진짜 감정’.
“내 탓이 아니야···”
눈물이 주륵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