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63
아니야. 아니야.
덜덜 떨면서 온몸으로 표현하는 거부.
하지만 강한 부정은 긍정을 예감한다.
‘얘 정말···’
추세미는 바짝 긴장했다.
상대역의 연기마다 다르게 대응하는 걸 보고 머리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감정의 몰입도가 더욱 압권이다.
본격적으로 감정을 내보이는 그녀는 스스로의 세계에 빠져들 듯이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며 무대를 가득 채운다.
세미는 그녀에게 압도되지 않으려 일부러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어쨌건 그녀를 여기까지 끌어낸 건 자신 뿐이다. 가장 유리한 고지에서 밀릴 수는 없다.
“아, 그러니까 웬디의 가치는 ‘착한 아이’인 데 있는 거구나? 엄마는 착하지 않은 웬디는 좋아하지 않아, 그렇지?”
“아…아니라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웬디를 싫어하지. 사실 웬디도 알고 있잖아? 너는 ‘착한 아이’가 아닌걸.”
“……”
“알고 있으면서도 거짓말을 하다니, 정말 나쁜 아이로구나? 이래서야 엄마가 싫어하는 것도 당연-”
“우으···”
세미가 몰아붙이는 말에 그녀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분하면서도, 반박할 여지없는 진실인 걸 알아버린 듯,
서럽디 서러운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맞아…웬디는 나쁜 아이에요…엄마는 정말로 웬디를 좋아하지 않았구나…노력했는데…노력했는데…”
‘어···’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우는 아이.
세미는 순간, 아이를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버렸다.
자신이 설정한 ‘비정하고 잔혹한 닥터’의 몰입이 흔들리면서 그녀는 추세미로 돌아왔다
그녀는 패배감에 얼굴을 굳혔다.
무대 위에서 캐릭터를 깨다니, 자신이…졌다.
“거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세미의 오디션도 끝났다.
그녀가 씁쓸한 마음으로 무대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기 직전, 유명이 입을 열었다.
“추세미 배우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네.”
“일반적인 ‘의사’의 범주에서는 벗어나 있었는데 왜 그런 캐릭터를 설정하셨나요?”
“설수연씨가 연기할 때 미러링을 쓰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요?”
“일부러 미러링하기 힘든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착한 아이인 웬디는, 이유없는 악의는 따라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그럼 수연씨가 연기하는 걸 본 후에, 캐릭터 컨셉을 바꾼 겁니까?”
“네.”
“그렇군요. 잘 봤습니다.”
유명이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그날 오디션을 통과한 것은 추세미였다.
추세미의 재기발랄한 대응도 화제였지만,
그날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설수연의 연기력.
그 날 이후로 줄라이에선 역시 ‘유유상종’이란 말이 진리처럼 퍼졌고, 수연에 대한 시선은 180도로 바뀌었다.
*
추세미가 연습에 합류했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오세요. 몇 달 동안 함께 잘 지내요.”
“좋은 기회 줘서 고마워요.”
“좋은 배우와 함께 하게 돼서 저희가 감사하죠.”
신유명, 서류신, 설수연.
밖에서 보면 끼리끼리 어울리는 천재 모임으로 보이겠지만, 그녀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그들의 모습은 밝고 상냥했다.
‘착한 애들 같네···’
그래서 의외로 그들과 편하게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며칠만에 산산이 무너졌다. ‘편하게’가 육체적인 편함까지 포함한다면 말이다.
‘아니…무슨 연습량이···’
훈련의 강도가 장난이 아니다. 단시간에 하이텐션으로 쉬지않고 몰아친다.
그들은 ‘힘들면 조절하면서 하셔도 돼요’라고 말했지만, 6년차 배우의 자존심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을 겨우 따라갔다. 연습을 마칠 무렵에는 오랜만에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알고 보니…끼리끼리 어울리는 연습벌레 모임이었구나···’
체력훈련.
바디밸런스.
마임, 독백, 표현력연습, 콤포지션들.
기초 중의 기초들인데도 절대 빼먹지 않는다. 다만 상상도 못할 강도로 압축해서 단시간 내에 진행할 뿐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그녀는 작은 반성을 했다.
연기 초보시절 이후로는 이 정도로 기초를 집약적으로 연습하지 않았다. 분명 연습시간은 길었지만, ‘다 아는 건데 뭐’라고 궁시렁대며, 적당히 해왔었다.
그런 연기가 저런 배우들을 따라갈 리가 없다.
저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도 이만큼 노력하는 배우를.
그녀의 각오가 달라졌다.
이를 악물고 연습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습 3일 째 저녁, 함께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밥을 깨끗이 비우고, 후식으로 나오는 차를 마시던 중 수연이 유명을 똑바로 바라보며 폭탄선언을 던진다.
“우리 헤어져요.”
‘으…응??’
세미는 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릴 뻔했다.
저 둘, 가까워보이더니 그런 사이였던 건가. 아니 그런데 왜 이별 통보를 여기서···
“1분 1초도 더는 못 견디겠어요. 같이 밥 먹으면서도 체할 것 같아요.”
“후…너 왜 또 그래. 제발 좀···”
“이 정도면…우리 진짜 아닌 거잖아요···”
유명은 짜증을 냈고, 오래 지친 듯한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한 방울 맺힌다.
세미는 무척 당황해서 류신을 넘어다 보았다. 그도 자신처럼 당황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그는-
수연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헉-
“얘, 나랑 만나기 시작했어.”
끝
ⓒ 글술술
“얘, 나랑 만나기 시작했어.”
“뭐? 그게 사실이야?”
‘뭐?’
순식간에 대화가 살벌해진다.
다행히 칸막이가 있는 자리였고 낮은 목소리였기에 쳐다보는 사람은 없어보였지만…추세미는 진땀을 흘렸다.
‘뭐야, 얘네 삼각관계야? 나 이런 난장판에 끼어든 건가? 미치겠네···’
“대답해, 미현아.”
‘미현이···? 아…”
그제서야, 합류한 이후에 그들이 설명해 주었던 연습방식이 떠올랐다.
-누나. 저희가 평소에 쓰는 연습방식이 있어요. ‘눈치게임 에뛰드’라고.
-그게 뭐에요?
-연습시간을 제외한 평소 때, 누가 어떤 연기를 시작하면 거기 맞춰서 같이 즉흥연기를 하는 거에요. 놀이삼아 연습삼아요.
-재밌겠네요, 저도 끼워주세요.
‘이게…에뛰드라고?’
분명 그 설명을 인지했었다. 그런데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자연스러웠다.
지쳐 눈물을 보이는 수연도, 진절머리 난다는 듯 그녀에 말에 한숨쉬는 유명도, 중간에 끼어들어 문제를 키운 류신도.
‘연기’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에뛰드.
“현수씨는 나를 무시하잖아. 함께 있을수록 내가 더 작아지고 초라해져…”
“후우…또 그 얘기야. 네가 예민한 거라니까.”
그리고 짜증을 내던 ‘현수’는 그녀의 손목을 쥔 남자를 힐긋 보더니 말투를 완전히 바꾼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 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내가 너무 무신경했구나. 미안해. 내가 정말 사랑하는 거 알지, 미현아.”
“나도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지만…당신과 함께 있는 나를 사랑할 수 없어요…”
“미안해.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내가 잘 할게, 응?”
그의 표정이 한껏 달달해진다. 쳐다보지 않으려는 그녀의 시선을 쫓으며 집요하게 눈을 맞춘다. 그리고 결국, 시선을 잡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녀의 단단한 결심이, 순식간에 뭉그러진다.
너무 사랑하는 남자의 간절한 얼굴.
“미현씨···”
“미안해요, 성원씨. 제가 도와달라고 해 놓고···”
“안 됩니다. 반복될 뿐이에요. 본인도 알고 있잖아요.”
“알아요…알긴 하는데 그래도…저는 아직 이 사람을 사랑하나 봐요.”
순식간에 짧은 극이 완성되었다.
세미는 못이 박힌 듯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고,
“아, 누나. 처음 보셔서 당황하셨어요? 이게 그 눈치게임…”
“아…네. 중간부터 알았어요.”
“하하, 처음에 놀라셨겠어요. 이런 식이니까 같이 하고 싶으시면 슬쩍 끼어 들어오시면 돼요. 누나가 먼저 시작하셔도 되구요.”
그들은 세미에게 잠깐의 설명을 마친 후, 방금 전 에뛰드의 복기에 들어갔다.
“미현의 감정 전환이 조금 빨랐지 않아?”
“으…그렇게 쳐다보니까 그냥 넘어갈 거 같은데 어떡해요.”
“그리고 성원이 연인을 떨쳐내기 위한 수단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 건 좋았는데-”
세미는 그 가운데서 끼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천재들의 연습법.
너무 연기를 좋아해서 일상 속에서도 연기를 가지고 노는, 그리고 그 놀이마저도 연기로서의 가치를 가지게 만들어 버리는,
그녀로서는 상상해보지 못한 연습 방식.
그녀는 당황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끼며, 입술을 잘근 물었다.
*
2월 마지막 주,
려말선초의 천만 돌파 소식이 터졌다.
“사극영화 의 관객이 천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한국 영화 역사상 3번째로, 개봉한지 59일째만입니다. 특히 이번 관객 수에는 재관람 인원들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화제입니다. 예매 행렬이 끊이지 않는 영화매표소 현장에 나가있는 박주희 리포터 연결해 보겠습니다. 박주희 리포터-”
정소진은 Rec 버튼을 꾸욱 눌렀다.
동시에 여러 채널에서 터지는 떡밥을 건지기 위해, 카페 골드회원들과 채널을 나누어 녹화를 하는 것은 그녀의 흔한 일과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