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65
하지만 다음 연습을 보자, 기가 질렸다.
휘익-
바닥에 절반 정도 매트가 깔리고, 신유명이 개별 연습을 시작했다. 연습의 종류는 덤블링을 포함한 온갖 아크로바틱한 신체훈련이었다.
신기에 가까운 신체 컨트롤.
반순호는 자신도 모르게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제 아랫배를 내려다보았다.
“저건 뭐하는 겁니까?”
“이번 공연에서 유명이가 맡은 역할이 피터팬이라서요. 실제로 날지는 못하더라도, 피터팬에 걸맞는 가벼운 움직임이 필요하다면서 연습하는 겁니다.”
“동화 속 인물들이 정신병동에 입원한 이야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1막 1장에서 동화 피터팬을 보여주고 시작할 거라네요.”
경악할만한 소리였다.
고작 1장. 한 장면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 저런 연습을 한다는 것인가.
원래 배우란 그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인가.
아니, 결코 모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리고 여기 모인 사람들은···
반순호의 표정이 점점 더 진지해져 갔다.
그리고, 신체훈련을 마친 그들이 둘러앉았다.
“이제 뭘 하는 건가요?”
“요즘 한창 대본을 만드는 중입니다.”
“대본은 작가가 쓰는 게 아닌가요?”
“팀트리플은 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입고 만들어 나가는 공동창작극을 실험해 보고 싶다고 했어요. 배역마다 각자의 이야기, 각 배역이 교차할 때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들을 생각해온 후, 서로 의논해가며 장면을 구성하는 중이에요.”
“그런 게…가능합니까?”
“줄라이도 극단의 역사가 오래됐지만,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방식이에요. 하지만 저 친구들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다큐스럽다. 순호는 드디어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장면들을 화면으로 남기지 못해 좀이 쑤신다. 아예 의 제작기를 다큐로 만들고 싶은 욕심마저도 든다.
“오늘 저는 피터팬과 후크의 교차 장면을 생각해왔어요.”
신유명이 말을 꺼냈다. 그러자 후크 역이라는 서류신의 눈빛이 바짝 살아나며 그에게 묻는다.
“어떻게요?”
“피터팬과 후크가 동급생이고 친했다는 설정인데요, 소시오패스에 나르시즘이 강한 피터팬이 아주 별 것 아닌 이유로···”
“이유로?”
“후크의 팔을 자릅니다.”
덤덤하게 이어진 말에, 순호의 팔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음…피터팬이 네버랜드에서 해적들과 싸우다가 후크의 팔을 자른 게 아니고요?”
“역발상을 해보았는데…피터팬, 후크, 웬디가 동화 속의 인물로 출발하는 게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로 출발하는 거죠.”
“흐음…계속해 봐요.”
“후크는 원래부터 강박이 있었죠. 규칙에 예민한 후크가 처음 피터팬을 봤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그러자, 류신의 목소리가 단숨에 바뀌었다.
“피터. 너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살아날 것 같은 기분이야. 아아, 자유로운 피터. 규칙에 구애받지 않는 피터. 행복한 피터. 왜 나는 너같지 못할까.”
순호가 깜짝 놀랐다. 한순간에 배역으로 들어가버린 서류신.
부러움, 동경, 경의.
자신이 가지지 못한 부분을 잔뜩 가진 사람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생겨나는 흔한 감정.
그것이 어둡고 예민한 소년의 캐릭터를 입고 순식간에 눈 앞에 드러난다.
어안이 벙벙한 순호와는 달리, 백이신은 이미 녹음기 버튼을 누른 상태였다.
유명이 류신의 대사를 듣고 말했다.
“맞아요. 후크는 처음에 동경을 느끼고, 피터팬과 친해지면서 질시와 열등감도 느끼겠죠. 문제는 그런 그의 진지한 반응에 비해, 피터팬은 사람의 마음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거죠. 튀고 싶은 마음, 쿨한 척 하는 행동, 타인에의 몰이해가 겹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유명 또한 목소리를 싹 바꿨다.
살짝 들뜬 듯 자신만만하고 치기어린 어린 소년의 목소리.
“후크, 너는 맨날 시계만 보고 있더라? 시계 말고 세계를 봐! 세상에 즐거운 일이 이렇게 많은데.”
“곧 수업시간이야, 빨리 일어나서 들어가자.”
“에이 수업 제끼고 놀자. 으으 공부 너무 싫어. 학교도 이렇게 지겨운데 어른이 돼서 일을 해야 하면 얼마나 지겨울까. 지금이라도 놀아야지.”
“…피터는 좋겠다. 나는 그게 잘 안돼. 성격도 타고나는 건가봐.”
“그게 어려워? 친구니까 내가 해결해줄까?”
“어떻게···?”
쾅-
후크의 말이 떨어졌을 때, 피터가 책상을 한 번 세게 쳤고, 그 소리에 다들 헉- 하고 놀랐다.
그것은 그 소리의 의미를 다들 예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계가 사라졌네? 이제 됐지?”
후크의 손목을 잘라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이는 그의 해맑고 의기양양한 목소리.
역대급의 소시오패스 피터팬이었다.
순호가 손에 땀을 쥐었고, 류신은 조금 놀랐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인지 안색은 변하지 않은 채, 유명에게 추가적인 질문을 했다.
“시계만 뺏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유명이 아직 피터팬인 채로 대답한다.
“응, 시계를 숨기면 새로운 시계를 또 찰 거잖아? 그러니까 시계를 아예 못 차게 손목을 없애준 거야. 멋있지? 나 좀 짱이지?”
어린아이가 곤충을 마디별로 분리한 후, 자랑스럽게 내밀며 칭찬을 구하듯이,
아무 죄의식없이 뽐내는 피터팬.
그 순수한 미소를 보며, 순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도대체, 어떤 피터팬이 만들어지려는 것일까.
그의 머리속에서 기획적 사고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신유명이라는 배우에 대한 이야기와 실험적 창작극의 제작 과정을 교차식으로 조합한다면···!
그건…아직 자신이 만들어보지 않은 새로운 분류의 다큐가 될 것.
그것이 지금 그가 남국장에게 KO를 인정한 이유였다.
“이 다큐, 꼭 제가 열심히 찍겠습니다, 국장님.”
*
그 날 저녁.
류신은 집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앞에 놓인 것은 책 한 권, 하얀 종이 한 장, 그리고 펜 하나.
아역배우로 데뷔한 후, 연기로 채워온 삶이 20년이 넘었다.
그 긴 시간동안 이런 시도는 처음이었다.
각자가 각자의 배역을 맡아서 만들어가는.
신유명은 늘 기대 이상이다. 오늘 낸 아이디어도 기발했지.
피터팬이 후크의 팔을 자르는 사건을 동화 속에서 일상으로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놀랍게 이미지가 강렬해졌다.
설수연은 나날이 발전해갔다. 처음엔 의욕만 넘치고, ‘과연 재능이 있을지’ 의심스러웠던 배우는, 신유명의 예견대로 커다란 재능을 꽁꽁 감추어두고 있었다. ‘몰입’이라는 면에서는 어쩌면 자신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초조하다.
그리고 흡족하다.
지킬앤 하이드 때 이후, 이렇게 매일매일 피를 말리듯이 연습한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류신은 후크를 골랐다.
어느 날 눈 앞에 나타난,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레벨의 연기천재. 그것은 일종의 자연재해와 같았다.
타고난 투지로 매번 최선을 다해 맞서보지만, 앞에 설 때마다 새로운 패배의 예감으로 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어쩌면, 류신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이 극에서 후크의 모습은 피터팬을 훌륭히 극복하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가 잘라버려 없는 손을 볼 때마다 좌절한다. 어디선가 시계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두려움에 벌벌 긴다. 그런 피폐하고 망가져가는 모습을 처절하고 우울하게 그려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자,
기필코 부정하고 싶은 마음.
서류신의 마음 속에 팽팽히 대치를 이룬 양가감정.
(*두 가지의 상호 대립되거나 상호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
그런 두려운 자신을 이 극 속에 남겨두고,
현실의 자신은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패배하더라도 다시 도전한다면, 그것은 결코 완전한 패배는 아닐 것이기에.
류신은 제 앞에 놓인 피터팬의 원서를 펼쳤다.
‘동화’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두꺼운 원서에서는 후크 선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좋은 가문 출신에다, 어릴 적 귀족학교에서 배웠던 습관들이 그림자처럼 남아, 그를 더욱 파악하기 모호한 사람으로 만든다. 귀족학교에서 최고의 가치로 배웠던 ‘좋은 행실’에 대한 열정은 그의 내면에 남아 때때로 그의 죄책감을 자극한다. ‘오늘 하루를 좋은 행실로 보냈는가’ 어릴 적 기억에서 오는 소리는, 성인의 욕심과 부딪히면서 그를 괴롭힌다.]
좋은 행실을 가진 도덕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악당이 되어 피터팬을 베어버리고 싶은 욕망의 대치.
그것은 마치, 좋은 라이벌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쟁하고 싶은 자신의 선한 의지와
어떻게든 상대를 꺾고 짓밟고 싶은 부글거리는 욕망이 대치하는 것 같다.
드높은 자존심이 아니었다면, 그도 욕망에 꺾이지 않았을까,
후크처럼.
몰입한다.
자신의 지저분한 욕망을 직시함으로써, 어느 때보다 완벽한 후크가 되어 간다.
류신은 후크로서의 감정에 도취되어, 대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새하얀 종이를 마음껏 더렵혀갔다.
서류신의 후크가 정립되어 가고 있었다.
*논문참조
김혜남(2006), 한국정신분석학회지, 피터 팬 신드롬 : 애도하지 못하는 사람들
끝
ⓒ 글술술
유명 또한 빈 노트와 펜을 꺼내 놓았다.
요즘 그가 취침 전 일과같이 하는 일, 대본 구상.
펜을 빙글- 돌리며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미호가 책상 위에 몽글한 형체를 드러냈다.
{대본 구상하냥?}
‘응. 대본이라기보단, 피터팬 캐릭터.’
{피터팬에게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부분이 어떤 부분이냥?}
‘음…철없는 거?’
유명의 웃음이 왠지 씁쓸했다.
{네가? 나이치고 꽤 어른스러운 거 같은뎅.}
‘나 원래라면 올해 마흔 둘인데? 과거로 돌아오고도 4년이 지났으니.’
{그러니까 애기징. 42년이면 꼬리 하나도 제대로 안 생겼을 나이당.}
‘하하하. 그건 네 기준이고.’
천년을 넘게 살았다는 미호 기준에서야 42년이 별 거 아닐지 모르지만…인간의 입장에선 충분히 철이 들고, 꿈과 현실을 구분할 시점이 지난 나이.
하지만 자신은, 연기 하나에만 미쳐서 현실을 외면하고 살았다.
네버랜드에서 떠나지 못하는 피터팬처럼.
{그래서 피터팬을 골랐던 거냥.}
‘응. 네 도움을 받고 잘 풀려서 지금은 이렇게 행복하게 연기를 하고 있지만,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피터팬처럼 자신만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미호가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은 참 복잡하다.
생의 목적이란 원래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것에 생을 바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들은 찰나에 스러져 갈 인생 안에서도 미래를, 가족을, 주위의 평가를 생각한다.
자신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