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7
앞에 있는 사람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워 주체하지 못하는 남자의 표정.
유명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이제 세 번째 만나고 이런 말 이른 거 알지만…나랑, 결혼해줄래?”
벅차올라 터지듯 흘러나온 고백.
성질이 급하지만 소박하고 순진해 보이는 청년의 얼굴에선 충만한 애정과 뒤섞인 폭풍같은 기쁨이 흘러나온다.
본인이 시켜놓고도 잠시 넋을 잃었던 준한이, 정신을 퍼뜩 차리고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짝-
“엄마? 나 알아보겠어요?”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이번엔 어느 병실. 내려다보는 시선의 위치로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선을 낮춰 누운 사람과 눈을 맞추려는 유명.
“우와, 우리 엄마가 오늘은 나랑 눈을 마주치시네. 몇 달 만이야.”
짙은 슬픔이 지배한 얼굴에서 배어나오는 한 줄기 기쁨.
자신을 몰라보고 어린아이가 된 엄마가 몇 달 만에 자신과 눈을 마주쳤을 때. 그 절절한 기쁨이 아주 작은 희망과 함께 대사에 흩뿌려져 있다.
‘와…어떻게 저렇게 감정전환이 휙휙 되지? 미쳤다···’
수현이 감탄했다.
그것은 유명을 구경하고 있는 배우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사실,
짧은 시간에 감정에 몰입하는 것에 관해서는 유명만한 전문가도 없었다.
단역이란 그런 것이다.
대사는 한 문장, 혹은 두 문장. 등장하는 시간도 아주 잠깐. 그 잠깐 사이에 진실한 연기를 하려면, 순식간에 배역에 몰입해야 한다.
물론 단역이, 엑스트라가 그렇게까지 하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연기경력 15년.
총 배역 1321역.
유명은 그동안 알아봐주는 사람없이도 부단히,
자신이 맡은 배역에 거짓되지 않은 연기를 하려고 노력해 왔던 것이다.
짝-
“이..이게 뭐야. 로또…1등?!!”
짝-
“너구리에…다시마가 두 개 들었다. 후후.”
짝-
“골!! 골입니다!!!”
짝-
“우리 아들이 전교 1등을 했다네.”
.
.
어떨 때는 코믹하게, 어떨때는 비극적으로, 어떨때는 낭만적으로.
사준한이 아무리 박수를 쳐 보아도 유명의 ‘기쁨’의 종류는 끝없이 쏟아져나왔고,
결국 스무 번이 넘어가고 준한이 먼저 손을 든 후에야, 유명의 연기가 끝났다.
*
멍한 표정들.
유명이 고개를 까딱하고 제 자리로 들어가 앉자,
다들 꿈에서 깨어난 듯 표정이 돌아왔다.
“와아아~”
“야 너 미쳤다 미쳤어.”
소란스러운 배우들을 진정시키고 준한이 물었다.
“그…대사들은 낯익은 것도 있던데, 실제 대본에서 따온거야?”
그랬다.
15년간 읽은 천 권이 넘는 대본들.
본인이 연기해 본 것도 있고, 연기해 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 과제는 준한이 끊지 않았다면 유명에겐 끝이 없었을 과제.
“따온 것도 있습니다.”
지금 시점보다 미래의 대본도 있기에, 유명은 말을 아꼈다.
“대본을 얼마나 읽은거야. 아니 어떻게 외우고 있는거야?!”
“고등학교 때 대본 구해서 읽는 게 취미였습니다.”
그게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말에 준한은 혀를 내둘렀고, 배우들은 무슨 그런 취미가 있나 어이없어했다.
“이…렇게 기쁨이라는 명칭은 똑같지만, 10가지 상황과 10가지 인물이 있으면 감정은 100가지 색깔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알겠죠 여러분···?”
“네-”
준한은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굴러간 이 상황을,
모범샘플을 보여준 양 어색한 칭찬으로 끝냈다.
“그럼 한 명 더 해보죠. 박한상.”
‘아오…썅!!’
한 명이 울상이 되었다.
.
.
.
“걔 진짜 천재라고! 아오, 지금이라도 배역 변경하는 게 좋지 않을까?”
“뭐래 다 끝난 얘기를. 다음 공연 때까지 키우라니까.”
“키우고 말고 할 게 없다고. 그냥 개천재라서 내가 발렸다니까!!”
“에이~ 또 과장하기는.”
준한은 가슴을 쾅쾅 쳤다.
연출은 체력, 발성, 연기 등의 기초연습 때는 빠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스텝들과의 회의나 대본 수정 등 할 일이 많기 때문.
그래서 자신이 봤던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캠코더로 녹화라도 해놓을 걸, 속이 터지는 준한이었다.
*
아름다운 캠퍼스로 유명한 가운대.
학교 뒷산을 수놓은 진달래가 피고 지고, 교내의 길이란 길마다 좌우로 몸을 기대 선 화려한 벚꽃나무도 만개했다 낙화할 무렵,
꽃에는 마음 둘 겨를도 없이 바쁜 중생이 여기에 있다.
“5분…5분만···”
“연습해야 한다고 7시 정각에 깨워달라지 않았컁!”
“…으어어!”
머리에 까치집을 한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곧 중간고사 기간이다.
경영학과 시험들이야 F를 안받는 걸 목표로 때운다고 해도, 창천 공연 준비와 다음주로 예정된 메소드연기학 단막극 준비로 요즘 하루에 네 시간 자기가 힘든 유명이었다.
찬 물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린 유명은 대본을 집어들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단막극 대본.
프레디의 감정선은 진즉에 잡은 유명이었지만 연기란 감정에 몰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을 표현하는 스킬이 있어야 한다.
“하아…미치겠네. 왜 이런 부분을 써 가지고.”
그가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터닝 전환’ 부분이었다.
이 대본에는 프레디의 자아가 변화하는 2번의 중요한 시점이 있다.
처음 메리를 만나면서, 음악에 미쳐있던 거대한 자아의 ‘소년’에서 사랑에 빠져 타인과의 교감을 진심으로 원하는 ‘청년’으로 탈피하는 부분과,
자신의 몸이 남자를 원하는 걸 알게 되면서 메리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었던 ‘이성애자’의 자아가 혼란스러운 ‘동성애자’의 자아로 격변하는 부분.
단막극이어서 등퇴장이나 암전 등으로 변화의 경계를 나눌 수 없었기에,
몸을 천천히 터닝하는 3초 정도 상간에 표정과 행동이 슬로우모션으로 변하면서 자아가 오버랩되도록 지문을 넣었다.
어려울 것을 알고 넣은 장면이긴 하지만···
하아-
공연 전주까지 답이 안 나올 줄은 몰랐다.
같은 장면을 연습하고 한숨쉬고를 무한반복하는 유명.
한참을 구경하던 미호가 덥석 끼어들었다.
“도와줄깡?”
“응? 어떻게?”
유명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호를 바라보았다.
프레디의 감정이 잡히지 않아 고민중일 때도 신박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었지.
“연기력을 올려줄 수 있당.”
“놉! 그건 거절합니다.”
“왱?”
“연기 자체는 내 노력으로 성장하고 싶어. 프레디의 감정을 이입시켜준 것도 어차피 치트키 쓴 건데 무슨 차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부수적인 능력은 몰라도 제일 중요한 것엔 치트키를 쓰면 안 될 것 같아.”
그 말에 미호가 조금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