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78
“가끔 안부 전하고.”
그리고, 새로운 여정에 나설 동료 배우에게 응원의 인사를 전한다.
그 날, 송별회가 끝나기 전, 유명은 류신에게 말했다.
“잘 다녀오세요. 저도 노력하려구요.”
“그러겠죠, 유명 씨라면.”
“그래서 나중에 형과 다른 작품에서 만날 때는 훨씬 더 좋은 연기로 맞설 겁니다.”
“…무서워라.”
류신이 피식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무서운데 고맙네. 그 말에 답할 자격을 갖추고 돌아오죠.”
“잘 다녀오세요.”
장장 8개월간의 동행에도 류신이 유명과의 거리를 유지한 것은, 무뎌지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다.
서로를 바라보며 맞서는 듯 하지만, 사실은 고지를 향해 함께 달리고 있는 것이다.
두 남자의 손이 굳게 쥐어 흔들렸다.
*
“여름방학 꿀, 초등교사 꿀꿀!”
“어디서 돼지가 우는 것 같은데.”
“신유명. 지금 도전하는 거임?”
7월 말, 초등학교 방학이 시작되었다.
방바닥에 달라붙어 있던 지연이 방학을 찬미하며 꿀꿀거리다가, 목을 뒤로 꺾어서 유명을 쳐다본다.
와씨, 놀래라. 엑소시스트 레건인 줄.
“이제 그만 바닥과 분리해서 이거 좀 도와주시지?”
“흠…맨 입으로?”
“아울렛 일정은 빼야 하나···”
“어이쿠, 우리 오빠님!!”
몸을 뒤집어 벌떡 일어난 지연은 12색 싸인펜의 뚜껑을 뽑았다. 엑스칼리버를 뽑듯이 준엄한 표정으로.
뽁-
“먼저, 루트를 짜야해.”
“루트?”
“유럽 여행은 단위가 도시야.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도시와,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은 도시, 제껴도 되는 도시를 구별해야 해. 그리고 한 도시에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일주일을 잡고 루트와 일정을 짜는 거지. 빠뜨릴 수 없는 도시가 어디야?”
지연은 대학생 때 혼자서 배낭여행을 꽤 길게 다녀왔다. 당찬 구석이 있는 녀석이다.
자신도 가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후 바로 연극에 빠졌다. 부모님께 대들고 집을 나온 이후로는, 여유가 없어서도 해외 여행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전문가인 지연은, 프린트 된 지도를 쫘악- 펼쳐두고, 유명이 부르는 도시들에 점을 콕콕 찍기 시작한다.
“런던, 파리, 빈, 칸, 베로나.”
“런던 파리 인정, 빈 오케이, 칸은 뭐…배우라면 가 보고 싶을테고. 그런데 베로나? 이탈리아의 소도시 말하는 거지?”
“응. 제일 중요한 곳 중 하나야.”
“왜? 아…베로나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라서?”
이탈리아의 베로나.
베네치아에서 기차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자그마한 도시는 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질레타(줄리엣)의 발코니’는 많은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장소이다. 유명도 그 곳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긴 했지만, 베로나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 때문은 아니다.
“8월에서 9월 초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오페라 축제가 열리거든. 로마 시대에 세워진 고대 원형경기장의 한 면에 무대가 설치되고, 나머지 부분은 2만 명이 넘는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객석이 되는, 세계 최대의 야외 오페라 무대야.”
“어얼~ 오페라에도 관심이 있어?”
“무대에는 모두 관심이 있지.”
좋은 연기만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거대한 무대와 관객이 주는 압도적인 열기, 광장에서 푼돈을 버는 아마추어 배우가 보여주는 놀랍도록 창의적인 마임, 하얗고 동그랗게 말린 가발에 붉은 제복의 전통적인 복장으로 귀족적인 우아함을 뽐내는 궁정 오케스트라.
고흐의 그림, 미켈란젤로의 조각, 분수대에서 동전을 던지는 어린 아이들이 안겨줄 갖가지 예술적인 영감.
원생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것들.
한 편의 작품을 더 하는 것도 스스로를 성장시키겠지만, 그런 영감들 또한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발전시키리라.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유명의 모든 관심사는 결국 연기로 집약되고 있었다.
콕- 콕- 콕-
지연이 지도 위에 붉은 점을 찍는다. 다섯 개.
“꼭 처음이나 마지막이어야 하는 도시가 있어?”
“처음은 런던, 그 뒤에 베로나, 마지막은 파리.”
“으악- 뭐가 그렇게 뒤죽박죽이야.”
“기분상, 처음 여행가는 도시는 세익스피어의 고향이었으면 좋겠어. 베로나는 9월 초면 오페라 축제가 끝나기 때문에 그 전에 가야하고, 파리는 그 때쯤 만날 사람이 있어서.”
“아니 이건 최악의 루트인데? 경제성이 하나도 없어! 이동시간만 얼마야.”
“비행기타면 되잖아.”
“응?”
“오빠 돈 많아.”
씨익 웃는 유명을 보고, 지연이 그제서야 자신의 오류를 인지했다.
배낭여행은 무조건 경제적으로, 저렴하게, 가성비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였다. 저 인간 돈 많이 벌었지···
지연은 싸인펜을 무성의하게 내팽겨쳤다.
“계획이 필요가 없네.”
“어? 왜~”
“돈이면 다 돼. 잘 다녀와. 그 넘쳐나는 돈으로 내 선물 꼭 사오고.”
아껴아껴 배낭여행을 다녔던 것이 괜히 억울해지는 지연이었다.
*
8월 20일, 인천 공항으로 가는 길.
유명은 혼자 공항리무진을 타고 있었다.
가족들도, 실장님도, 매니저 호철도, 수연이도 따라 나오지 못하게 했다. 요란스럽게 떠나다 매스컴에 노출이라도 되면 자신의 여행이 매스컴의 먹이가 될 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이 아직 없는 시대인 것이 다행이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아예 없을 순 없겠지만, 가는 곳마다 사진으로 증거가 남아 gps까지 찍히는 시대는 아직 아니다.
{놀러가는 것 신난당~! 나 비행기 타자마자 맥주 줘랑.}
혼자지만, 혼자는 아니다. 미호가 버스 옆자리에 앉아 갸릉거렸다.
홀로 이동해 한껏 자유롭지만, 말동무는 있는 여행. 유명은 제 꼬마 친구의 반투명한 털을 만지듯이 손을 얹었다.
끼이잉- 취익-
공항에 도착했다.
트렁크를 받아 한 손에 단단히 쥔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존재감을 최대한 내부로 끌어들였다.
다행히, 존재감이 넘치지 않을 때의 유명은 꽤 평범한 편이다. 주변의 시선을 끌지 않는데는 성공했지만, 카운터 직원이 여권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유명이 눈웃음을 지으며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댄다.
쉿-
캐리어를 부치고 가벼운 몸으로 이동한다.
검색대에서 또 한 번 놀라고, 출국 심사장에서 한 번 더 놀라는 공항 직원들에게 살짝 고개숙여 침묵을 요청한다.
유명인들도 공항은 다들 이용할테니 별로 놀랄 광경은 아닐 텐데도, 워낙 최근 화제의 인물인데다, 조용히 일반인과 섞여있다는 부분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는 모양이다.
캐리어를 끌고 쭉쭉 이동하는데, 한 켠의 거대한 전광판에 자신의 얼굴이 보여 고개를 한 번 더 숙인다.
[Crude you, with crude]한 달 전쯤 찍은 두 번째 버전. 컨셉은 였다.
겉은 차갑고 도도하지만, 자기 여자에게는 따뜻한 남자.
그 두 얼굴이 전광판의 절반씩을 차지하며, 크루드의 외부와 내부에 비유되고 있었다.
세련된 외관, 하지만 드라이버 친화적인 내부 공간을 박주원의 양면성에 빗댄 광고 컨셉은 역시나 박진희 팀장의 작품.
차갑던 얼굴이 자기 여자 앞에서 녹아내리는 tvcf는 런칭 1주일만에 화제만발이었다.
{오, 저기도 너당. 아주 현성에서 작정을 했넹.}
‘으어, 빨리 지나가자.’
스크린에 자신이 나오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광고에 제 얼굴이 떡하니 걸려있는 것은 아직 부끄러운 유명이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보딩 시작하겠습니다~”
게이트 앞에서, 유명은 전용 출입구 쪽으로 발을 돌렸다.
유석이 끊어준 티켓은, 퍼스트 클래스였다.
135 그야, 셰익스피어잖아
“Where is Hertz office?”
“Next to gate 16.”
“Thanks!”
짐을 찾자 마자 유명은 렌터카 오피스로 향했다. 이런 저런 수속 끝에, 푸조 마크가 달린 자동차키 하나를 받아서 트렁크를 덥석 실었다. 미호가 조수석에 번듯이 자리잡은 모습이 귀여웠다.
반대방향인 차선에 적응하느라 조금 비틀비틀하던 자동차는, 공항을 빠져나가 서북쪽을 향해 쭈욱 뻗은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과연 영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아닌, 해가 뜨지 않는 나라라고 하더니 쭉 뻗은 도로 위로 먹구름이 끝없이 드리워 있다. 앞유리에 빗방울 몇 개가 뚝뚝 떨어진다.
유명은 라디오를 켰다.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허스키하고 재지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난 널 모르겠어.
하지만 날 울게 하지.
작별의 키스는 안 할 거야?
그러고보니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급성 알콜 중독으로 사망한 것이 2011년. 그녀는 아직 살아 숨쉬며 그 소울을 내뱉고 있겠다.
{도착하자마자 운전 안 힘드냥?}
‘힘들 게 뭐 있어. 12시간 동안 온갖 호사를 누리고 왔는데.’
{그건 그렇징. 어디 가려고 차까지 빌렸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본.’
미호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반응을 하지 않는다.
유명은 당연히 모르겠지- 하면서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이야. 그가 나고 자랐고, 말년을 보낸 후 묻힌 곳이지. 제일 와 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야.’
{왱?}
‘그야, 셰익스피어잖아.’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 이름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인물.
르네상스기 영국의 대표적 극작가로 총 37편의 희곡을 썼다.
흔히 일컬어지는 과 외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으며, 생전에도 최고의 명성을 떨쳤고, 사후에는 명성을 넘어 역사로 자리한 인물.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영국은 넘길 수 있어도 셰익스피어는 못 넘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그의 인생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어?’
{얘기해 봐랑.}
유명은 미호를 위해 셰익스피어에 대한 설명을 부연했다.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본에서 태어난 셰익스피어는 14세에 가세가 기울어서 학업을 중단했어. 18세에 8세 연상인 앤 해서웨이와 결혼한 후, 자식 셋을 보고 나서 21세에 고향을 떠났지. 그 뒤 행적을 감췄다가 런던의 유명 극작가로 짠 하고 등장해.’
{흐음···}
‘셰익스피어에 대해선 미스터리라고 할 정도로 기록이 없어. 고향, 결혼, 작가로서의 대단한 성공, 그리고 다시 스트랫퍼드로 돌아와 죽었다는 것 정도일까.
성격, 친구관계, 취미, 그런 개인적인 부분에 관해선 무엇 하나 남아있는 자료가 없지. ‘셰익스피어의 모든 전기는 5%의 사실과 95%의 억측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말도 있어.’
미호의 보드라운 귀가 쫑긋거린다.
‘심지어는 셰익스피어는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라는 설도 있지. 왜냐, 수많은 전설과 민담에 관한 대단한 지식이며, 내포된 철학은 도저히 한 사람의 작품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라는 거야. 심지어 작품마다 문체도 상당히 다르대.’
이상할 정도로 몸을 배배 꼰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뭐 때문엥?}
‘셰익스피어 원서는 고대 영국어이고, 언어학 전공자가 아닌 나는 문체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선 판단할 수 없어. 하지만 작품들마다 스며있는 날카로운 통찰, 시대를 앞서간 형식과 표현, 무엇보다 ‘재미있는 극을 쓸 수 있는 능력’을 볼 때 단일 존재라고 느껴진다는 거지.
그저, 범인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천재였던 것 아닐까.’
미호는 결국…유명의 입을 막고 만다.
{그…그만해랑.}
‘응?’
{물론 나는 대단하지만, 그렇게 면전에서 칭찬하는 건 민망하당.}
‘…으…응??’
유명은 차선을 이탈할 뻔 했다.
*
홀리 트리니티 교회.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구 교회라고 일컬어진다.
푸른 나뭇잎이 흐린 날씨에 젖어 찰랑거리다가, 흠뻑 머금은 수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오래된 비석에 팔랑 내려앉는다. 아름다운 묘지를 거닐며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던 묘비는, 교회 내부에 자리하고 있었다.
‘왜 교회 안에 무덤을 뒀을까?’
{소심한 녀석이었당. 무덤이 훼손될까봐 그랬을 거당.}
유명은 교회 근처에서 산 꽃송이를 헌화했다.
두 송이의 백합.
하나는 셰익스피어를 존경하는 연기학도의 몫, 하나는 그의 오랜 친구의 몫이다.
미호의 푸르스름한 형체가 무덤 위에 살짝 내려앉아 인사하듯이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제야 입을 열 마음이 생긴 듯 그의 얘기를 시작했다.
{그 땐 나도 어릴 때였당. 꼬리가 여섯 개였을 때였낭···}
귀업에 충실하여 100년 정도 연기(*연기의 기운)를 모으면 꼬리 하나가 생긴다고 했었지.
여섯 개였을 때라면 600살대.
‘혹시 나랑 비슷한 계약이었어?’
{아닝. 너처럼 생기가 약한 인간은 처음 본다니깡. 이 인간과는…다른 계약을 했징.}
‘어떤···?’
{작품 하나당 세 번의 ‘빙의’.}
믿기 힘든 사실을 알게 된 유명이 넋을 놓았다.
하기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믿지 않을 수도 없다.
{그 녀석 나이 스무 살 때, 처음 만났당. 당시 나는 이 나라에 머무르고 있었징.}
‘계속…한국에 있던 게 아니구나?’
{당연하지 않냥. 한국에서 극다운 극의 역사가 얼마나 되었겠냥. 르네상스 때는 이쪽 동네가 더 재밌었당.}
‘하기야···’
{그리고 윌리엄은, 그 때도 소심했당.}
미호는 우연히 지나가던 작은 동네에서 자살 시도를 목격한다. 아니, 자살 시도라고 하기에도 뭣한 소심한 발버둥을.
스트랫퍼드를 흐르는 에이번 강.
그 기슭에서 신발을 벗어두고 종종거리던 청년은, 발가락을 물에 넣었다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친다.
-가…강물이 너무 차가워. 봄에 다시 올까.
-…안녕?
-헉. 여…여우가 말을!!!
당시엔 아기여우가 아니던 미호는 사람 허리까지 오는 은빛의 여우로 현신하여 그에게 말을 붙였고, 그는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고 한다.
{진짜 소심한 녀석이었엉. 영국엔 urban fox(*한국의 길냥이처럼 영국엔 길여우가 있다.)가 흔해서 망정이지, 아니면 심장마비로 죽었을 지도 몰랑.}
‘그…정도였어?’
당시 그는 아내를 저주할 정도로 싫어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불만을 쏟아내며, 기가 약한 그를 어린애 다루듯이 휘두르는, 8세 연상의 아내는 그에게 너무 버거웠다.
게다가, 고작 18세에 결혼하여 시골마을에서 평생을 살아가도록 확정된 인생에 대한 우울감이 그에게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
그런 그에게 미호는 계약을 제안한다.
-부와 명예, 이 시골을 벗어날 자유를 줄게.
-내…가 치뤄야 할 대가는 뭔데?
-가끔 몸만 빌려주면 돼.
유명은 그 대목에서 세익스피어가 극작가로 소속된 에서 조연급 배우로도 활동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네가 연기를 했다면, 셰익스피어는 대단한 배우이기도 했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말했잖아, 소심했다공. 자신이 극작을 하는 극단에서 내가 배우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울먹였어. 들키면 어쩌냐공. 그래서 정체를 감추고, 시골의 작은 무대에서나 가끔씩만 빙의를 했던 거당.}
‘작품 하나당 세 번의 빙의, 그건 공정 거래였어?’
다시 떠올리면 이가 갈리지만, 어쨌든 계약서 상에서는 공정해야 하는 ‘선계의 룰’.
역사에 전해지는 셰익스피어라는 이름과 빙의의 기회는 비슷한 무게였을까?
그 질문에 미호는 이렇게 답한다.
{내게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으니깡.}
인간의 생기 중에서도, 특히 ‘연기’에 강한 끌림을 느끼고 선택한 ‘연귀’라는 귀업.
‘연기를 직접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만큼이나 강렬한 욕구 하나는, ‘재밌는 연극을 만들어 보고 싶다.’였다고 했다.
좋은 희곡으로 인한 부와 명예는 셰익스피어의 것이었겠지만, 대본을 쓰고 알린다는 행위 자체는 미호의 것. 그래서 등가교환의 계약이 성립했다.
{소심했지만, 선량한 친구였엉. 누군가 작품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대답하지 못할까봐 무서워서, 밖에 잘 나가지도 않는 친구였징. 그래서 남아있는 기록이 별로 없나 봥.}
‘그랬구나···’
유명은 교회의 문을 빠져나오며, 기부함에 50파운드짜리 지폐를 떨어뜨렸다.
옆에 서 있던 신부님이 놀라 눈을 껌뻑거렸다.
‘그래서, 얼마나 함께 한 거야?’
{인간시로 25년 정도인강.}
‘왜 떠났어?’
{의견이…갈렸엉. 마지막 작품이자, 그 자신의 첫 작품에서.}
마지막 작이라면, 템페스트.
미호는 아리송한 설명을 남기고 입을 닫았다.
저벅저벅-
교회를 나와서 담벼락을 도니, 에이본 강이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은, 500년 전도 지금도 같은 모습일 것이다.
유명은 그 강이 보이는 돌담을 짚고 서서, 미호와 셰익스피어가 조우했다는 강기슭을 넘어다 본다.
햄릿, 맥베드, 한여름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뜻대로 하세요, 베니스의 상인, 리처드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