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82
가장 좋은 자리는 200유로 이상, 가장 싼 자리도 50유로 이상인 지정석에 비해, 자유석의 가격은 18유로.
자유석은 선착순이기 때문에, 일찍 가서 기다릴 수록 좋은 자리를 맡을 수 있다. 유명 또한 표를 구매한 후, 아침부터 늘어선 입장대기줄로 다가갔다.
돈이 없지만 시간을 이만큼이나 들일 정도로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
잔뜩 설렌 그들의 얼굴에 유명도 빙긋 웃으며 줄을 선다.
공연은 9시.
석양이 지기 시작할 무렵에 입장이 시작되었다.
출입구 옆에 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아가씨가 작은 포장지를 건네준다. 안에는 양초 두 개가 들어있다.
‘아…초를 나눠 주는구나.’
{둘다 켜장. 하나는 내 거당!}
‘알았어.’
그리고 원형경기장의 내부에 들어선 순간, 탄성을 지른다.
‘우와···’
압도적이다.
원래 3만명이 수용가능하다는 아레나는 둥근 원형경기장의 한 쪽을 막아 무대로 사용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거대한 무대와 2만 개의 좌석.
자유석치고 좋은 자리라고는 하지만, 이만큼이나 무대가 크다 보니 거리가 까마득하다. 배우들의 눈코입은 당연히 안 보이고, 손짓 발짓이나 겨우 보일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넓이의 공연장.
혜전당 수전당도 그렇게나 넓어 보였는데, 이 곳은 광활하다.
그런데 더 대단한 것이 있다.
이 광활한 무대를 하루에 한 번씩 제거하고 다시 쌓는다는 것이다.
상연되는 것은 총 다섯 개의 작품. 그런데 작품이 매일매일 바뀐다. 베로나에 1주일만 머물더라도 다섯 개의 작품을 모두 볼 수 있도록, 매일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다음날의 무대와 조명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오늘 유명이 볼 작품은
그리고 내일은 를, 모레는 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은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이 압도적인 공연장 풍경과 관객의 열기만으로도 유명은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재앵–
무대 한 쪽에서 커다란 징이 울린다.
그러자 사람들이 바쁘게 촛불에 불을 켜기 시작한다.
아는 사람끼리도 모르는 사람끼리도, 마주보고 웃음 지으며 불을 빌려주고 있다.
유명도 옆 사람에게 불을 빌린다. 미호의 것까지 두 개의 촛불을 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재앵–
불이 꺼졌다.
객석의 조명에서 무대의 조명까지 불빛이란 불빛은 모두 한 번에 종적을 감췄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와···..’
새까만 밤을 빼곡이 수놓는 2만 개의 불빛.
촛불이 아니라 마치 별같은,
신화에서 업적을 남긴 인간들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듯이, 하나의 인간마다 하나의 별을 수놓은 장엄한 광경에 울컥- 눈물이 흐를 것 같을 때,
재앵–
다시 불이 켜지며, 이 시작되었다.
*
‘어제 좋았다, 그치?’
{뭐강, 노래강? 내용은 어차피 못 알아듣지 않았냥?}
‘그렇지. 그래도 카르멘 줄거리는 아니까, 노래도 너무 잘 하고, 무엇보다도…무대가···’
유명이 다시 꿈꾸듯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눈 앞에 아롱거리는 2만 개의 불빛.
카르멘의 정열적인 열창이 끝나고 나면 무대가 떠나갈 듯한 박수와 함께 ‘브라바–!’ ‘비바—!!’를 쏟아내던 호쾌한 이탈리아인들.
‘그 넓은 무대를 한 사람의 목소리가 장악한다는 것, 정말 굉장하지 않아?’
{노래니까 그나마 가능한 거당. 연기로 그 넓은 곳을 휘어잡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걸.}
‘그래도…한 번이라도 서 보고 싶어.’
그런 이야기와 함께, 유명은 광장의 피자집에서 테이크아웃한 마르게리따 피자를 베어물었다.
북부 이탈리아의 피자는 도우가 얇고 토핑이 잔뜩 올려져 있는 씬피자이다. 지름이 1미터 남짓 되는 거대한 피자를 부채꼴로 슥슥 썰어서 조각으로 판매하는 데, 뜨끈할 때 입에 넣으면 천국의 맛이 난다.
그렇게 피맥을 하고 있는데, 저 쪽에서 어떤 남성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Un attimo, signóre~~!”(*거기 남자분, 잠시만요!)
저 남자는 누구를 저렇게 다급하게 찾고 있는 걸까. 유명이 주변을 둘러본다. 왠지 달려오는 방향이 정확히 자신의 방향인 것 같은데…
“Signóre, Buon Giorno.”(*안녕하세요)
“Me??”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온 뚱뚱한 중년 남성은, 유명이 영어로 대답하자 냉큼 영어로 바꾸어 말한다.
[아, 영어가 편하신가보군요, 저는 여기 오페라 축제에서 무대감독을 하고 있는 안드레아 모레띠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Uner Shin이라고 합니다. 제게 무슨 일이신가요···?]어너Uner.
영어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 유명은, 이 낯선 이탈리아인이 자신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아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남자는 얼굴이 상기되어 말을 꺼낸다.
[혹시 엊그제 공원에서 거리공연하셨던 분, 아닙니까?] […그렇습니다만.] [잠시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배우님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소속사가 있으신지···]꿀꺽-
그의 목울대가 초조한 듯이 움직인다.
런던과 달리 베로나는 소도시. 거리 공연을 보았던 사람들과 마주칠만도 하다.
유명은 싱긋 웃으며 적당한 대답을 생각했다.
[네. 견습 배우입니다만, 소속사는 있습니다.] [아니…그 실력으로 견습이라니요… 제 친형님이 로마에서 배우 소속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혹시 관심 없으십니까? 배우님의 연기를 본다면 위약금을 모두 물어주고서라도 모시려고 할 겁니다!] [소속사에는 무척 만족하고 있고 옮길 생각도 없습니다. 호의는 감사드립니다.]유명이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하자,
안드레아는 미련이 철철 넘치는 얼굴로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혹시…다음 거리 공연은 어디에서 하실지라도…꼭 한 번 더 보고 싶습니다.] [음······]유명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무대 감독의 권한은 얼마나 되나요?]*
베로나에서 여러 오페라를 감상했다.
그 사이, 아디제 강변에서 또 한 번의 공연도 했다.
이 번엔 아테나 여신.
같은 대본에서, 이번에는 아테나 여신의 대사를 연기한다.
반듯한 이마, 강철같은 의지를 가진 최강의 여신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는 타이틀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두려움 없는 여전사이자, 여전히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 마지막 날.
오스트리아로 출발하기에 앞서, 다시 아레나에 들렀다.
스텝용 출입구 앞으로 가 보니, 한 번 보았다고 익숙해진 얼굴이 초조하게 서성거리다가 유명을 반긴다.
[오셨군요!!] [안녕하세요, 안드레아씨.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제가 고맙지요. 그 연기를 이 무대에서 볼 수 있다면야···]유명이 부탁한 것.
공연 준비 시간, 가장 사람이 없을 무렵에 무대 위에 한 번 서 볼 수 있게 해준다면, 그 위에서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제의.
안드레아는 무대 세팅이 완료된 후부터 오페라팀이 리허설을 하러 오기 전까지, 오후 1시에서 3시의 시간에는 시에스타 타임(*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존재하는 점심휴식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몇몇 남아 있는 스탭들도, 햇볕에 그대로 노출된 야외 극장의 특성상 모두 어딘가 그늘이 있는 곳에 숨어 있다는 것.
-그런데 그 땐 너무 한낮인데 괜찮은가요?
-그건 괜찮습니다만, 카메라로 촬영하시는 분이 없도록…조율 부탁드립니다.
-소속사 때문인가요? 어차피 촬영 팀은 오페라팀과 함께 오니 걱정마세요.
그렇게 서게 된 무대.
유명은 안드레아의 인도에 따라, 거대한 무대 위로 걸어가며 가슴을 두근거렸다.
두근-
정면을 바라보자, 거대한 원형극장의 중심에 오로지 자신이 있다.
비어있는 객석 모두가 자신을 주목한다.
온 세계가, 신들까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 엄청난 압박감.
두근- 두근- 두근-
터질 듯이 부풀던 심장이, 다스리는 자가 바뀌자 삽시간에 가라앉는다.
미호다.
{잘 봐랑.}
등장한 것은, 올림푸스의 여왕 헤라였다.
140 여태까지 배운 것, 테스트당
[나는 헤라라오, 제우스의 동생이며 아내이지.]안드레아 모레띠는 하마트면 무릎을 꿇을 뻔 했다.
신의 세계를 잠시 엿보는 죄를 짓고 있는 기분.
[만약 이 사과를 내 것이라고 판정해 준다면, 지금은 왕궁에서 쫓겨난 양치기에 지나지 않는 당신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다스릴 권력을 넘겨주겠노라.]압도적인 위압감.
그야말로 여신 중의 여신, 헤라가 로마 시대에 지어진 무대에서 세계를 호령한다.
가장 말미의 객석에서도 느껴질 법한 위엄이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다.
형식은 그 날과 같았다. 모레띠가 처음으로 그의 연기를 본 날.
그 날처럼, 여신들은 주장하고, 논쟁하며 황금사과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연기했던 배우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위엄있는 여신이 되어 있다.
이것은 뜨거운 한낮에 일어난, 신기루와도 같은 기적일까.
극이 끝나고, 안드레아가 무릎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을 때,
가볍고 산뜻하게 그가 무대에서 내려왔다.
[좋은 공연장이군요, 시뇨르. 잊지 않겠습니다.]이상하다. 아까의 그 예의바른 청년이 아닌 것 같다.
오만하게 빛나는 눈빛과 완벽한 걸음걸이.
아직 신의 기품이 남아있는 청년 앞에, 안드레아는 머리를 조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아…다…당신의 연기를 언제 다시···] [글쎄요.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는.]그렇게 청년은 사라졌고,
베로나에서 그를 다시 볼 기회는 없었다.
*
‘…어마어마하네.’
{이제야 나의 위대함을 알겠냥?}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기차 안,
유명이 탄 컴파트먼트(*6인~8인 정도 앉거나 누울 수 있는 기차칸)에는 다른 손님이 없었기에, 유명은 상기된 얼굴을 감추지 않고 미호를 극찬했다.
거대한 콜로세움을 지배하는, 겪어 보고도 믿기 힘든 압도적인 아우라.
그러나 미호는 고작 감탄 뿐이냐는 듯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둘째 날, 네째 날, 그리고 오늘. 모두 하나의 공연이었당.}
배역만 달랐을 뿐, 하나의 공연.
등장인물은 단 세 명.
제목은 이지만, 파리스는 끼어들지도 못할만큼 엄청난 기세로 각축전을 벌이는 세 여신의 접전이었다.
{배운 게 있냥?}
하나의 극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신을 따로 따로 보여줌으로서, 미호가 가르치려고 하는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유명은 조심스럽게 자신이 깨달은 한 가지를 내밀었다.
‘무게중심···?’
{설명해봐랑.}
‘몸에 무게중심을 싣는 위치가 다른 것이 느껴졌어.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강조하는 아프로디테는 등을 활처럼 휘어 아름다운 자세를 만들었고, 전사로서의 의지와 힘을 가진 아테나는 허리에 단단한 중심이 잡았지.’
{헤라는?}
‘목에, 목을 아주 빳빳이 세우고 있었어. 꺾일지언정 휘어지진 않을 듯이 꼿꼿하게.’
호오···
미호가 살짝 나오려는 감탄사를 목구멍 속으로 말아넣었다.
예리한 지적. 자신이 연기하면서 몸을 어떻게 쓰는지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었기에 겨우 느꼈을 차이였다.
기특하다. 기특하지만···
자신이 가르치려 했던 것은 이런 각론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이다.
혼자서는 전혀 단서를 잡지 못했나 실망할 즈음에 유명이 다시 이야기한다.
‘그리고…궁금했던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뎅?}
‘왜…대사와 대사 사이에 공백을 비우고 연기한 거야? 아니, 물론 공백에서도 호흡이 전혀 깨지지 않는 것에 감탄하기는 했어. 하지만 굳이 그런 방식을 택한 데는 의미가 있었을 것 같은데…’
세 인물을 각각 연기하면서, 미호는 세 번 다 동일한 시간을 썼다.
자신의 대사가 있는 시간엔 자신의 대사를 하고, 타인의 대사가 흐를 시간에는 침묵을 지킨 채 리액션을 했다.
차라리 대사를 빨리빨리 이어 붙이지, 공백까지 모두 연기한 이유는 뭘까.
미호가 유명의 질문이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뭐가 핵심인지는 느끼고 있다.
이 정도면 꽤 영특한 학생이다.
{이걸 봐랑.}
연귀가 은빛 털을 녹여 스크린을 뽑아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오랜만에 봐도 신기한 광경에 유명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곧, 완성된 세 개의 스크린 속에 세 번의 거리공연 모습이 들어찬다.
첫 번째 스크린에선 아프로디테를, 두 번째 스크린에선 아테나를, 세 번째 스크린에서는 헤라를 연기하고 있다.
{아웃 포커스-}
*Out focus 촬영대상 이외의 배경을 뿌옇게 날리는 편집기법
{컴포즈-}
*compose 합성
두 가지 명령어가 연이어 떨어지자, 세 개의 화면이 겹쳐진다.
그리고 드러나는 것은,
한 화면 속에 연기하는 세 명의 인물.
아프로디테, 아테나, 헤라.
‘…!’
그리고 유명은 드디어 눈치챘다.
분명, 동일인이 시간차를 두고 각각의 인물을 연기한 것인데, 합쳐보니 마술처럼 끼워 맞춰져 하나의 극이 되었다.
‘말도 안돼···!’
따로 연기한 것임에도, 서로의 대사를 물고 들어가듯이 연기의 호흡이 연결된다. 리액션과 시선 처리까지 딱딱 들어맞는다.
마치 유명의 몸이 세 개가 있어, 한 장소에서 호흡 맞춰 연기한 듯한 일체감.
유명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이게 어떻게 가능…능력이야? 네가 연귀라서 가능한 거지?’
{얘기했잖냥. 연기할 때는 본신의 능력을 쓰지 않는다공.}
‘그…그럼 어떻게···’
미호가 비밀을 알려주듯이, 소리를 낮춰 일러주었다.
{두 번째 레슨, 너 자신을 알라.}
‘……’
{자신의 연기를 정확히 알아야 한당. 자신이 세 인물을 각각 어떻게 연기할지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자신이 연기할 다른 배역을 떠올리며 이렇게 맞춰 연기할 수도 있는 거당.}
미호의 입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경지가 튀어나온다.
{물론, 이만큼 해내기는 힘들겠징. 그만큼 스스로의 연기를 의식하고, 체화하라는 얘기당.}
‘…넵.’
유명이 기가 질린듯이 대답했다.
*
두 달이 지났다.
그들은 오스트리아의 짤즈부르크에 가서 에 등장한 명소들을 하나하나 밟아보기도 했고,
맥주를 좋아하는 미호를 위해 독일 옥토버페스트에 참석해, 한국에선 먹어볼 수 없었던 갖가지 맥주에 취해 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미호의 레슨은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그리고 11월 초순,
그들은 남프랑스의 칸에 도착한다.
‘와…여기구나. 칸 영화제가 열리는 곳.’
뤼미에르 극장.
관광객들을 위해 평소에도 깔려 있는 레드카펫을 보며, 그 위를 걸었던 세계의 명배우들을 떠올려 본 유명은, 별들의 길(*Le Chemin des Étoiles) 위를 걸으며 스타들이 남긴 핸드프린트를 눈에 담았다.
그렇게 가을에 접어든 남프랑스의 온화한 공기를 맛보며 영화의 도시를 한참 거닐던 유명은,
거리에 붙은 포스터 한 장을 보고 깜짝 놀라 멈추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