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84
‘안 돼. 짖지 말아줘.’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알 리 없는 강아지는 이내 컹컹- 소리를 내고, 다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 강아지가 돌아온 것 아니야?] [이놈의…이놈의 개가 다시, 다시 나타났어! 아이고! 아이고!!]히스테릭한 여지주의 비명. 그러나 게라심은 듣지 못하고 밝은 얼굴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온다.
마님의 두통이 도졌대. 발작을 하셨대. 게라심의 개 때문이래-
드디어 그도 눈치를 챈 모양이다. 강아지에게 달려가 세게 껴안고 등으로 보호막을 친다.
하지만 그 위로 떨어지는 여지주의 냉정한 음성.
[정말로 그에게는 그가 모시는 주인의 안정이나 목숨보다 어떤 개새끼가 더 소중할까? 난 그렇다고 믿고 싶지는 않아-] [라고 주인님이 말씀하셨대, 게라심. 그 개를 넘겨줘. 그 개 를 넘 겨 줘!]그에게 알아듣겠냐는 듯이 한 자 한 자 강조하는 음성.
남자는 고개를 젓는다. 강아지를 온몸으로 덮고, 줄 수 없다는 의견을 몸으로 발악하듯 표현한다. 하지만 ‘그 개를 넘겨줘’라는 음향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한다.
결국, 남자는 등을 떨다가 일어선다. 그리고 앞을 보며, 어떤 손짓을 한다.
그 손짓을 읽듯이, 음향이 천천히 말한다.
[차라리 네가, 직접, 개의, 목을 졸라, 죽이겠다고? 알겠어. 꼭 그렇게 해야 해.]남자는 조용히 강아지를 안고 일어섰다.
*
강아지를 좋아하는 앙투안은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니 강아지를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분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남자가 단 하나 지극히 애정을 쏟은 존재를 제 손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너무 많은 애정을 줘버렸기에, 밖으로 내쫒더라도 다시 저를 찾고 말,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잡혀 처리되기보다는 제 손으로 무무를 깨끗이 죽이기로 결심한 남자.
그의 비참함이 손에 잡힐 듯이 전달되고 있다.
무ㅡ 무ㅡㅡㅡ
한 마디 대사도 없는데도, 저 소리만으로 그의 지독한 슬픔이 느껴진다.
엄청난 연기력이다.
마지막 식사.
그는 손에 가득 음식물을 퍼 와서, 강아지의 입에 대 준다.
먹는 것을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그리고 소중히 보듬고 일어서, 조명 반대편 끝으로 향한다.
강아지를 소중히 내려놓고, 그는 노를 젓는다.
손동작만으로도 점점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배의 움직임이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노를 탁- 내려놓더니 강아지를 두 손에 쥔다.
무우ㅡㅡ
차마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비통함에 절어서 운다.
더듬더듬 강아지의 눈코입을 쓸어보고, 소중히 입을 맞춘다. 그리고 강아지의 목에 줄을 걸고, 눈을 질끈 감고 강에 밀어넣는다.
앙투안도 눈을 질끈 감았다.
낑낑-거리다 마침내 발악을 하는 강아지의 비명이 들려올 것에 몸을 사리며.
‘……’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치익거리는 테이프의 잡음까지 끊기고, 완전한 정적.
그 때 앙투안은 질끈 소름이 돋았다.
‘이것…은···’
게라심의 시점이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 보내면서도, 비명소리조차 듣지 못한다.
침묵에 싸인 그의 세계에서 오직 들리는 것은, 자신의 속울음 뿐.
무ㅡㅡ 무ㅡㅡㅡ!
그가 가슴을 끊어질 듯 텅텅 두들겼고,
앙투안은 다른 의미로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것은, 처음 보는 레벨의 연기였다.
142 보면 알 겁니다
유명의 연기는 거기에서 끝났다.
하지만 앙투안은 그 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게라심은 무무를 죽인 직후, 저택에서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가고,
이후 평생동안 어떤 여자도 만나지 않고, 어떤 강아지도 키우지 않으며,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는 이야기.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는 세상에서, 주체성이 없는 인간은 감정을 가질 자격이 부여되지 않으며, 그것은 곧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근대 러시아 문학의 걸작.
책을 읽을 때는 그러려니 했던 게라심의 마음을 앙투안은 오늘에야 절절히 공감한다.
한 명의 인간에게 작은 강아지 한 마리도 인생 전부와 같은 무게일 수 있다는 것.
그 강아지를 스스로 목졸라 죽인 것은, 자신의 마음과 삶을 스스로 죽인 ‘인격체로서의 자살’과 다름없다는 것을, 저 배우는 짧은 단막극으로 훌륭히 설득해냈다.
짝짝짝짝짝—-
[브라보! 최고에요!!]앙투안의 박수와 격찬이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동료들이 박수를 쳤다.
눈이 있다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연기였다.
[대단한 연기였습니다. 무무를 1인극으로 이렇게 만들 수 있다니…음향 효과와 배우의 연기만으로…] [봉제인형일 뿐인데도, 강아지의 얼굴에서 게라심을 따르는 맑고 신뢰 가득한 표정이 보일 것 같았습니다.] [저희도 이 작품으로 공연해보고 싶네요.]대부분의 배우들의 눈이 푸욱 젖어 있었다.
그들이 돌아가면서 찬사를 보낸 끝에, 발롱이 회심의 일격을 꺼냈다.
[연기력에는 당연히 놀랐겠지만, 또 다른 놀라운 점 발견한 사람 없어?]그의 질문에 배우들이 고개를 갸웃갸웃한다.
그리고 앙투안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하나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고보니 음향, 어떻게 맞춘거죠? 미리 저희 기사와 합을 맞췄던 건가요?]그 말에 발롱이 좋은 지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걸 말하고 싶었어. 음향파일이…통파일이야.] [네??] [본인이 어떻게 연기할지를 계산해서 음향파일을 만든거고, 만들어진 음향파일의 타이밍을 정확히 계산해서 연기한 거라고.] [……]배우들 사이에 잠시 날카로운 정적이 흘렀다.
발롱 씨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대사와 음향은 서로의 신호가 된다.
음향이 큐를 주어 대사를 치기도 하고, 대사가 큐가 되어 음향이 재생되기도 한다.
그런데, 연기의 간격을 계산하여 음향을 잡고, 음향의 간격을 계산하여 연기를 한다고?
말도 안 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누군가가 생각을 결국 입 밖으로 신음처럼 토해내었고,
유명은 담담하게 응답했다.
[제가 어떻게 연기하는지를, 스스로 파악하는 법을 공부하는 중입니다.]그런 그의 말에, 지켜보던 미호가 웃었다.
*
{맹랑한 녀석. 결국 도전하다니.}
‘도전이라니, 감히 무슨. 그냥 공부한 거라니까.’
{네가 하는데 나는 못할 거 같냐는 심정으로 덤빈 거 아니냥.}
미호의 놀림에, 유명이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완전히 아니라고도 할 순 없는 모양이다.
테스트를 주면서 미호의 주문은 간단했다.
-무무, 테스트하기 좋은 작품이당.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표정과 몸짓으로만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연기를 해 봐랑. 세 달간 얼마나 배웠는지 보장.
하지만 유명은 테이프를 준비했다.
소설을 발췌해, 연기할 부분을 가볍게 각색하고, 연습을 거듭해서 감을 잡은 후, 자신의 연기에 맞추어 녹음된 소리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배경으로, 다시 연습이었다.
어마어마하게 정교한 작업이다.
벙어리 게라심은 대사가 없기에, 대사의 타이밍을 맞추는 것만큼의 난이도는 아니다.
하지만 시계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음향의 타이밍을 예측하여 연기를 해낸다는 것만 해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걸 해낸다.
{완벽하진 않았당. 타이밍이 미묘하게 어긋난 부분들이 있었엉.}
‘알고 있어. 더 연습해야지.’
놀라운 일을 해내놓고도, 부족한 점을 곱씹는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기준점 자체가 높아져 있다. 유명이 비교하는 상대는 연기의 신과 같은 존재이므로.
{졸업.}
‘응…?’
{여행 중의 레슨은 여기까지당. 테스트는…62점.}
‘그렇게…엉망이었어?’
{내가 준 과제에만 충실했다면, 만점은 55점이었당. 욕심을 더 내서 7점의 추가점을 받은 거당. 인간 주제에…흥.}
‘진짜? 그럼 잘 본거야?’
{시끄럽당!}
미호가 팽- 하고 고개를 돌리자, 유명이 웃으며 꼬리를 간지럽힌다.
미호가 곧 견디지 못하고 데굴데굴 구른다.
{여행 후에도…배울 기회가 있을까?}
{당연하징. 아직 배울 게 차고 넘친당. 인간 수준에서나 좀 하는 거지, 아직 한참 멀었당.}
유명은 미호를 고맙게 바라보았다.
미호를 위해 제의한 빙의는, 오히려 자신을 위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치익- 철컹.
기차가 이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파리에 도착했다.
*
“류신 형.”
“왔어요?”
유명이 파리에서 만날 사람은 류신이었다.
여행을 간 김에 파리 유학을 간 류신을 만나보고 와야겠다, 이왕이면 여행이 끝날 때쯤에 들러서 혹시 그가 출연하는 공연을 보게 된다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 Out 도시를 파리로 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는 정말로 이 시점에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이 칸에서 잠시 연기했던 .
류신의 공연은 3일 후에 개연한다.
유명은 발롱씨를 통해 이미 초연 티켓을 부탁해 두었다.
‘내가 했던 게라심과는 완전히 다르겠지. 어떤 식으로 연기하고, 연출했을까…’
“공연 준비는 잘 돼 가세요?”
“후…그 인간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에요.”
그 인간.
누구인지 단번에 알겠다.
“어떻길래…”
“…도대체 상식이라는 게 없습니다.”
“…”
“그런 부분이 틀을 깨는 데 도움이 되긴 합니다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위고 씨를 따라온 것에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간 쌓인 게 많았는지 자신의 앞에서 울분을 토해내는 류신을 보며, 유명은 그와 좀 더 가까워진 느낌에 싱긋 웃었다.
“그나저나, 갑시다.”
“어디로요?”
“위고 씨가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오늘 유명씨 와서 조금 일찍 나가겠다고 했더니, 데리고 오라고 하는군요.”
“이렇게 갑자기요?”
“…그런 사람입니다.”
결국 유명은 류신을 따라, 어느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위고 비아드는 여전히 ‘파리지앵’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빚어낸 듯 세련되기 그지 없는 차림새로 유명을 반겼다.
[신유명씨. 환영합니다.] [위고 씨,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들끼리의 시간을 눈치없이 빼앗은 것 아닌가? 앉아요 앉아.]류신이 그걸 알면서 그랬냐고 퉁명스레 뇌까리고, 위고는 그걸 못들은 척 딴청을 피운다.
높은 명성을 가진 예술가이면서도, 그는 주변인들을 투덜대게 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발롱씨도 그러더니, 류신도 단 4개월만에 그렇게 되어 버렸다.
[여행은 즐거웠나요?] [네. 이런 시간은 난생 처음 가져봐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나저나…, 바그 극단에서 공연했다면서요?]앉자마자, 식사도 나오기 전에 위고는 제가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네, 공연까지는 아니고, 발롱 씨의 부탁으로 배우들 앞에서 잠시 연기했습니다.] [하하. 앙투안 녀석 반응은 어떻던가요? 코가 납작해지는 꼴을 내가 직접 봤어야 했는데.] [앙투안 모니에씨와 잘 아는 사이십니까?] [내 영화에 출연했었죠. 감히, 브라이즈 극단의 영입 제안을 걷어찼고.]류신이 옆에서 담담히, ‘브라이즈 극단을 걷어찬 게 아니라, 위고 씨 성격을 못 견뎌서 거절한 거야.’라고 설명했고, 위고는 또 한 번 못 들은 척 했다.
[좋은 분이더군요. 무척 인상깊게 봤다고, 정중히 얘기해 주셨습니다.] [하하하! 싱글대면서 잘 봤다고 인사한 게 아니라, 여유를 잃었다 이거죠?]유명이 앙투안의 표정을 떠올려본다. 여유를 잃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 느긋한 녀석이 정중한 인사를 했다면, 보통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겁니다. 지금쯤 불이 붙어 있겠군요. 언제 놀리러 가지…]위고는 신이 나서 중얼거리더니, 유명에게 슬쩍 엉겨붙는다.
[나도 그거 보고 싶은데…] [죄송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요, 왜. 좀 보여줘요. 별로 길지도 않다면서.]유명은 멋진 외양에 어울리지 않게 칭얼칭얼대는 위고와, 조금 긴장하고 있는 류신을 한 번 더 바라보더니, 다시 한 번 명확히 거절했다.
유명은 조금 과할 정도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유학까지 와서 온 힘을 다하고 있는 류신을 비교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자신과 류신 중 어느 쪽이 낫던지 간에 말이다.
위고 비아드를 대하는 발롱과 류신의 태도를 볼 때,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라면 상당히 억지를 부리는 성격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시 엉길 여지없이 끊어내는 것이 답이다.
지나칠 정도로 단호한 유명의 거절에, 위고는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청을 거뒀다.
위고와의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류신과 따로 맥주 한 잔을 더 했다.
“아직 위고 씨를 많이 보지도 않았는데, 다루는 법을 금세 파악했네요.”
“하하…그런 건 아니고, 오랜 여행으로 좀 피곤해서요.”
류신은 유명을 잠시 쳐다보더니, 의도를 읽은 듯이 한 번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화제를 돌려 위고 비아드라는 연출가에 대해 얘기한다.
“그래도, 보면 볼 수록 대단한 사람이긴 해요. 일할 때 보면.”
“어떤 부분이요?”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합니다. 배우가 갖고 있는 틀을 깨기 위해서, 상식 밖의 것들을 요구해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그랬나요?”
류신이 담배를 한 번 깊이 빨았다 한숨처럼 내뱉더니, 말한다.
“내 감정이 아닌, 남의 감정에 따라 연기하라고 시키더군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개연 때 봐요. 보면 알 겁니다.”
“…흐음.”
류신은 아리송한 말을 남긴 후, 며칠 후를 기약하고 떠났다.
*
3일 후, 브라이즈 소극장.
관광 도시 파리답게,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다.
그리고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본 극장에서는 영어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무대 상단의 전광판에서 자막을 확인하십시오.]‘와, 이런 서비스도 있구나.’
게라심에게는 대사가 없다 해도 다른 등장인물들은 프랑스어로 대사를 칠 것이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는데 잘 됐다.
‘등장인물은…게라심, 여지주, 하인장 가브릴라, 게라심이 처음 좋아했던 타티야나, 여지주가 타티야나와 결혼시킨 카피톤, 기타 단역 배우들…꽤 본격적이네.’
{이렇게 배우가 많은데, 온 지 얼마 안 돼서 주연을 꿰차다니 서류신도 꽤 하넹.}
‘류신 형이야…근성 빼면 시체니까. 여기서도 죽어라 했겠지?’
미호와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공연 시간이 다가왔다.
객석등이 어두워지는 것은, 무대 위의 세상으로 진입한다는 신호.
언제나 가장 설레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