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88
분명 그랬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딸깍- 딸깍-
그녀는 유명의 대표 작품들의 이미지를 따고, 영어 설명을 붙이는 작업들을 밤새도록 해 나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응원이었다.
*
[와, 저기 셀리나 벤슨 아니야?] [저기 루카스 영도 왔어.]엘에이 외곽에 마련된 의 지역예선장에는 무려 천여 명의 인파가 몰려 있었었다.
헐리우드를 품고 있는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는, 미국 어느 곳보다도 배우지망생들의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다. TW의 야심찬 기획의 화제성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지망생 뿐 아니라 낯익은 기성 배우들의 면면도 심심찮게 보이고 있었다.
[루카스 씨, 싸인 한 장만 부탁드려요~!] [와…저런 배우들도 오디션에 왔구나. 이미 끝난 게임이네.] [에이, 그래도 신선한 마스크가 더 득이 되지 않을까?]이름이 알려진 배우라 해도, 주연의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이미지’로 굳어진 배우라면, 신인보다도 주역을 딸 가능성이 낮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A급이 못 되는 배우들에게도 이번 오디션 프로그램은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어디쯤에, 유명도 자리하고 있었다.
인원이 많아서인지 5일에 나누어서 1차 예선을 본다고 하는데도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걸 보니 약간 기가 질리려고 했다.
‘경력있는 배우로 한정했는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구나…물론 ‘연기로 돈을 벌어본 적이 있다’는 조건은, 엑스트라 한 번이라도 해 봤으면 채울 수 있는 조건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다. 심지어 이 곳은 20여개 지역구 중 하나일 뿐이다.
{그 꼬마는 몇 일째로 배정받았냥?}
‘3일째일거야.’
{1차 과제는 안 나왔다고 했컁?}
‘응. 즉석 과제라던데.’
{악취미당. 쯔쯧.}
중간에 기둥 하나 없이 뻥 뚫려있는 거대한 홀에는, 가운데 방파제처럼 쭈욱 뻗어 있는 일자 무대가 있다. 이제 곧 시작하겠다는 장내 방송이 울리고, 일자 무대를 시원시원하게 걸어나온 것은 진행자 제리 하이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네~ 안녕하세요!!] [시작합니다~ 기존에 없었던 연기 서바이벌, 캐스팅~~보트!!]우와아아–
참가자들이 어색하게 함성을 지르자, 제리는 싱긋 웃었다.
[쫄기는, 아직 연습이에요, 연습.]우하하하하-
웃음이 터지고, 소리를 질렀던 사람들은 적절히 친근한 비속어와 우우- 소리를 더해 그를 야유했다.
[아따 인간들 숫자 보소잉. 캘리포니아에 배우경력자가 이렇게 많았나. 예선 1차 합격자 수는 심사위원 재량인 거 알죠? 여러분들 협조 잘 되고 분위기가 살아야, 심사위원들 기분 좋~으셔서 한 명이라도 더 뽑습니다. 오케이?]특유의 입담으로 재기발랄하게 좌중을 휘어잡은 제리는, 진행상의 몇 가지 유의점을 당부하고, 자신과 심사위원이 나올 때의 함성까지 연습시켰다.
역시 방송이구나, 싶은 장면이었다.
그리고 진짜로,
[기존에 없었던 연기 서바이벌, 캐스팅~~보트!!]우와아아아아–
[안녕하세요, 캘리포니아 지구 예선을 진행하게 된 제리 하이입니다. 오늘 이 곳에는 헐리우드 영화 주연 캐스팅에 도전하는 무려 ‘천 명’의 배우들이 모였는데요.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캘리포니아에만 천 명짜리 팀이 다섯 팀이나 있답니다!]오오오오–
[미국 전역을 강타 중인, 최초의 ‘프로배우’ 연기 오디션, 캐스팅 보트! ‘프로로서 활동한 경력’이 없는 지원자를 제외한, 실제 지원자 수만도 52000명! 그 중 10퍼센트인 오천 명의 배우가 캘리포니아 지구에서 모였습니다. 그야말로 헐리우드의 도시다운 열정을 보여주는 숫자 아니겠습니까!]우와아아아–
[그런 열정 넘치는 여러분이지만, 아쉽게도 한 분 한 분 공들여서 판단할 시간적인 여유는 없습니다. 불과 6명의 심사위원이 천 명의 인원을 심사해야 하기 때문에, 한 분께 드릴 수 있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합니다.]제리가 싹- 하고 얼굴을 바꾼다.
짐짓 무섭고 냉정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엄포를 놓는다.
[무릇 배우라면 가지고 있어야 하는 뻔뻔함, 누구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근성, 한 순간에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슬슬 밀려오는 불안함에 지원들이 술렁거린다.
[1차 예선의 과제는, 지금 이 자리,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즉석에서 펼쳐 보이는 ‘3분 즉석연기’입니다. 재밌는 과제에 신나신 분들, 모두 함성~~~~!!]제리가 신난 목소리로 함성 발사를 외쳤지만, 돌아온 것은 완전한 정적이었다.
[어? 여러분 안 신나요–?]배우들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147 3분 지나지 않았나요?
의외로 배우들은 그다지 외향적인 인간들이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직업이라는 편견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연기라는 것은 오히려 내부로 파고 들어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으아, 이런 난장판에서 갑자기 연기를 하라고?] [세트도, 배경도, 주어진 과제도 아무것도 없는데?] [아, 뭐야…집에 가고 싶다…]물론 그들은 수많은 테스트의 상황에 처한다.
오디션은 물론이며, 촬영 장면들 하나하나가 모두 테스트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도 대부분은 준비된 환경에서, 준비한 상황을 연기하게 된다.
셋업되지 않은 환경,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 속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각인시키는 것이 익숙한 개그맨이나 MC들같은 인종들은 아니라는 얘기다.
[심사위원단을 소개합니다–!]아직 웅성임이 사그라들지 않은 가운데, 캘리포니아 지역예선의 심사위원 6명이 등장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한 명의 존재를 보고 지원자들이 다시 의욕을 불태운다.
우와아아아아—
나탈리 카센.
이라는 대작 영화에서, 감정없이 살아가는 여성 킬러 ‘넬리’가 사람의 목숨을 끊어놓을 때만 짓는 화사한 표정 하나로 전세계인의 가슴을 덜컹하게 만들었던, 헐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몸값의 여배우.
출연하는 작품마다 퀄리티를 떨어뜨리지 않는 연기력으로도 이름이 높다.
유명도 처음 보는 대단한 셀럽의 실물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과연 매혹적이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블랙홀처럼 시선을 빨아들이는 존재감.
TW에서 정말로 캐스팅보트에 공을 들이긴 들인 모양이다. 지역심사 때, 본선 심사위원 중 한명씩이 의무적으로 참가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마 그녀인듯 싶다.
와아아아ㅡ 나탈리ㅡ 넬리ㅡㅡ!
6명의 심사위원들이 6개로 나뉜 구획을 하나씩 배정받는데, 나탈리 카센이 유명의 조 쪽으로 우아하게 걸어오자 주변의 함성은 더욱 드높아졌다.
[제가 앞에 서면, 준비한 연기를 해 주시면 돼요. 합격 판정을 받으신 분들은 따라오는 FD가 바로 번호와 이름을 기입할 거고, 인터뷰가 필요한 분은 얘기를 해드릴 거라고 하네요. 좋은 연기 보여주세요.]귀에 바로 감겨드는 울림이 좋은 목소리가 선명하게 전달된다.
그녀의 차분하고 따뜻한 표정에, 지원자들은 한숨 돌린 듯 구겨진 얼굴을 펼쳤지만, 그것이 이전보다 더 심하게 구겨진 것은 바로 잠시 후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독백을 연기하겠습니다.] [네, 시작하세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3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건너편의 심사위원은 성격이 급한 편인지, 어설프다 싶으면 바로 다음- 다음-으로 끊어내고 있었고, 어버버하다 탈락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나탈리 카센은…기다린다.
[어…어……] [아직 1분 넘게 남았어요. 천천히 하세요.]3분동안 끝까지.
그리고 진중하게 하나하나의 연기에 짧은 코멘트를 남긴다.
[배우분은 호흡이 짧아요. 긴장해서도 있겠지만, 복근이 단련이 안 돼있는 것 같군요. 넓고 시끄러운 환경이라 해도, 그걸 뚫고 나오는 선명한 목소리는 훈련으로 만들 수 있어요. 기초 체력과 호흡법을 좀 더 익히는 것을 추천드릴게요.]상냥하다. 상냥한데… 아프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으로, 가장 약한 부분을 거침없이 지적하고, 불합격 선언을 내린다.
그런 그녀의 판정에 좌절하는 사람도 황홀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조보다 현저히 진행이 느리고 현저히 합격률이 떨어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유명은 차례차례 넉다운되어 가는 앞선 참가자들을 지켜보며, 무엇을 연기할까를 고민했다.
연습해온 것들이야 숱하게 많지만…
지금 이 환경, 이 상황과 가장 어울리는,
그래서 자신도 재미있게 연기하고 관객들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연기.
‘결정했어.’
유명의 머리 속에, 하나의 영화가 떠올랐다.
*
-나탈리, 3조 쪽으로 서 줘요. 그쪽 심사를 맡는 게 좋겠어요.
-거기 주목할만한 누군가가 있나봐요?
-있죠. 누군지는 비밀이에요.
나탈리 카센은 의 피디, 데니스 밀턴의 밀명을 받고 3조의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었다.
가혹하고도 지루한 시험이었다.
이 시험의 효용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을 한명 한명 개별 오디션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수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다는 환경은 대범함을, 자유연기는 순발력을, 3분이라는 짧아 보이지만 의외로 긴 시간은 배우로서의 분위기 장악력을 빠르게 가려낼 수 있다.
그럼에도 가혹한 시험이다.
특히나 이 기회가 천금같이 느껴질 단역출신 배우들에게 이 과제는 무겁다.
여러 악조건에 처해보지 못한 경험 짧은 배우들은, 좀 더 차분한 환경에서 준비한 연기를 펼쳐보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원망하고 있겠지.
바로 지금 나탈리를 붙잡고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이 배우처럼.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준비한 것의 십분의 일도 못 보여드렸어요.] [이름이 보자…캐리군요. 캐리는 아직 집중력이 부족해요. 3분간 세 번의 다른 대사를 시도했지만 모두 중간에 잊어버렸잖아요?] [하…하지만 이런 걸 예상치 못해서…] [지금 이 환경이 하드한 건 사실이지만, 배우로 활동하다 보면 이보다 말이 안 되는 상황에 많이 처해요. 캐리는 배우로서 좋은 페이스와 보이스를 가지고 있으니, 좀 더 집중력을 키우면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을 거에요.]나탈리 카센은 요령을 부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준비된 시간을 모두 들여서 지켜보고, 자신이 배우 지망생이었던 때의 절박함을 떠올리며 최대한 친절하게 조언해준다. 하지만 자격미달이라 판단하면 얄짤없이 잘라낸다.
그렇게 집중해서 연기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평가를 남기는 일이 2시간을 넘어가자 나탈리의 집중력도 한계에 이르기 시작했다.
가끔 기대 이상의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참가자를 볼 때만, 지친 눈과 뇌가 조금 환기되었다.
‘데니스가 말했던 ‘주목할만한 배우’는 누굴까. 아직 그렇다 할 배우는 안 나온 것 같은데.’
또 한 명을 떨구고, 나탈리는 다음 순서의 참가자 앞에 섰다.
이번에는 아시안 페이스.
동양인들은 원래 그런 것일까, 표정이 묘하게 차분하다. 그냥 봐서는 표정을 읽기가 어렵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연기하실 건가요?] [네, 저는 의 트루먼 버뱅크를 연기하도록 하겠습니다.]오디션에서 트루먼 쇼라, 독특한 선택이다.
나탈리 카센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시작을 재촉했다.
그리고 호흡 한 번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그녀의 눈 앞에 ‘만들어진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
셰익스피어의 나라에서는 셰익스피어를.
신의 나라에서는 신을 연기한다.
푸른 녹음이 우거진 공원에서 아름다운 아프로디테를,
도도하게 흐르는 아디제 강변에서 현명한 아테나를,
2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콜로세움에서는 위압적인 헤라를 연기한다.
환경과 상황에 적절한 극을 선택해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던 미호처럼,
이 수많은 사람들이 호의와 악의로 뒤섞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극은 무엇일까, 를 유명은 생각했다.
그렇게 도출된 작품.
제 3자가 바라보는 인간의 인생,
트루먼 쇼.
[말론, 뭔가 이상해. 자꾸…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나탈리는 동양인 남자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본 채로, 목소리를 낮춰 말을 걸어올 때 살짝 소름이 돋았다.
웃는 표정인 채로 목소리를 한껏 죽여서 그녀에게 속삭인다.
아니, 속삭인다는 느낌을 주었을 뿐, 그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주변에 전달되고 있다.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는데…이상한 사람들이 앉아있고, 라디오에서…내 사생활을 방송에 내보내는 거야.]자신이 미쳤을까, 세상이 미쳤을까 혼란에 빠진 목소리는, 도무지 연기같지 않다.
사람들이 흘깃흘깃 바라보고, 환한 조명과 카메라가 자신들을 찍고 있는 상황 속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현실감이 느껴지는,
그래서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과 제 자신까지 배우이며, 그 혼자만이 연기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듯한, 미묘하게 연기같지 않은 연기.
[지금도 봐. 시선이 느껴져. 누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그가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시선을 주욱 돌릴 때,
홀린듯이 바라보던 주변 배우들은, 그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마치, 공범이라도…된 양…?’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나탈리는 한기가 들었다.
이 커다란 무대, 이 수많은 배우들, 그리고 마주본 자신까지 배우라는 것을, 이 남자는 계산해서, 라는 작품을 선택한 것인가?
갑자기 떨어진 과제, 3분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에만 급급한 사람들 가운데서, ‘아- 이런 환경이라면 트루먼쇼가 어울리겠다’, 그 정도의 시야와 여유를 가지고…?
[뭔가 음모가 있어.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벽에 둘러 싸여 있다는 생각.]너무 자연스럽게 걸어온 물음에, 나탈리는 하마트면 대답할 뻔 했다.
고개를 돌렸던 시선들이 다시 슬금슬금 모여든다. 수백 개의 카메라가 관음하듯이 그를 지켜보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자신도 하나의 카메라.
[나, 멀리 떠날거야.]떠나는 것이 꿈인지, 꿈을 깨뜨리는 것인지도 모르는 남자의 눈에, 열정이 서렸다.
*
남자는 등을 돌리더니, 주저앉으며 다시 정면으로 몸을 돌렸다.
그것이 장면의 전환이었다.
남자는 노를 젓고, 돛을 끌어올린다.
바다다.
점차 노를 젓는 손길이 거세어진다. 몸이 마구 흔들린다. 아아, 비다. 바람이다. 격렬한 몸동작만으로 격렬한 태풍에 뒤집힐 듯 흔들리는 작은 배가 보이는 것 같다.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 자신이 평생 속아 살았음을 예감하고, 도망쳐 바다에 배를 띄운 트루먼이, 기후 조작으로 탈출을 방해받는 장면이 선명히 떠오른다.
인생이 곧 세트였던 세상에서 탈출하는 트루먼쇼의 클라이막스.
그것을 두 손 모아 시청하는 애청자의 마음으로, 시끄러운 경연장에서 그 주변 반경 일부만이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하늘을 향해,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상대를 향해 트루먼이 소리친다.
[날 막을 생각이라면, 차라리 죽여!!]한 순간의 외침에, 거대한 전율이 주변을 울렸다.
그 외침에는 도저히 연기라고 느껴지지 않는, 참된 갈구가 배어 있었다.
누군가가 만들어 준 안온한 인생과, 힘들고 격한 진짜 인생 중, 언제나 후자를 택하는 인간의 진실된 갈구가.
그리고 그는 드디어 벽을 발견한다.
턱-
소리가 들릴 듯이 손으로 단단한 벽을 짚는 마임.
그 벽을 더듬어, 조금씩 이동하다, 문을 발견한 그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아…’
나탈리는 탄식했다.
정말 자신의 모든 삶이 거짓이었다는 경악,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안도, 해방감, 두려움,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긍지, 그 모든 복잡한 감정이 배어있는 표정.
자신이 에서 모든 복잡한 감정을 하나의 환희로 담아냈듯이, 그도 한 가지 감정이 아닌, 수 가지의 감정을 섞어 담아낼 줄 아는 배우였다.
이런 환경, 이런 상황에서.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문을 열고 나가려던 그가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인사한다.
[못볼 지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애프터눈, 굿이브닝 그리고 굿나잇.]그는 무대에서 퇴장하는 배우처럼 멋드러진 인사를 하고,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긴다.
‘……’
나탈리가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을 때,
연기를 마친 배우가 싱긋 웃으며 묻는다.
[3분, 지나지 않았나요?]그 말에 나탈리가 손에 든 스톱워치를 내려다보았다.
03’’ 37’’’
삑-
자신이 멍하게 있었던 시간을 감안하면, 거의 3분에 맞춰진 연기.
하지만 영화 한 편의 주요 장면을 모두 재생한 듯, 한참으로 느껴졌던 연기.
주변을 둘러싼 배우들도 모두 믿기 힘든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합격입니다.]나탈리 카센은 처음으로 코멘트를 하지 못한 채, 합격이라는 멘트 한 마디만을 남겼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은데, 아직 연기를 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저 배우구나…!’
데니스 밀턴이 얘기했던 3조의 ‘주목할만한 배우’가 누구인지, 그녀는 강하게 예감했다.
그리고 그녀를 지나쳐, 한 스탭이 그 배우를 데려가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신유명씨. 합격 축하드려요! 저는 수잔 레이콕이라고 해요.] [네, 안녕하세요.] [연기 정말 좋았어요. 저 쪽에 가서 저희 인터뷰 좀 할까요?]프로듀서의 특명을 받은 수잔이, 유명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 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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