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9
환한 오전, 형광등이 모두 켜진 강의실이 순간 어두워 보인다. 암전된 무대의 중앙에서 홀로 핀라이트를 받으며 독백을 읊조리는 죽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 곁을 지키는 짐과, 매일 찾아오는 메리. 나는 정상에 서 있을때보다도 덜 공허하다.”
죽음에 이른 자의 연기.
죽기싫어 발버둥치며 고통스러워하는 연기는 차라리 쉽다. 해탈한 듯 평온한 만족을 연기하는 것도 개중 낫다. 하지만,
지독한 고통 사이에서 피어난 담담한 관조.
‘행복’이라 표현하기에는 어둡지만, 어둠 속을 손잡고 걷는 벗이 있어 두렵지만은 않은,
삶의 종말을 맞이하는 인간의 단상을 목소리로 설득할 수 있다니.
La~ Laa~ Laaa~
bgm이 점점 커지다가 뚝- 하고 끊어진다.
그와 함께 서서히 몸을 일으킨 배우의 얼굴에 순식간에 생기가 가득 들어찬다.
재필은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어린 시절의 프레디다.
-파로크? 영국인이 아니구나. 식민지에서 왔니?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에 따라 언제나 선한 생각, 선한 일, 선한 말을 행하라.
-헤이, 뻐드렁니. 입을 좀 닫아 봐 이빨이 보이잖아.
무대의 좌우에서 쏟아져 나오는 나레이션.
말이 중첩될 때마다 가운데 소년의 입은 더 앙다물어지고, 어깨는 더 젖혀진다. 편견에 기가 죽기보다는 자의식이 더 강해지는 모습.
소년 프레디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할 듯 무대를 헤집었다.
왼쪽으로 갔을 때는 ‘나 알아주는 뮤지션이에요.’라고 허세를 부렸고, 오른쪽으로 갔을 때는 파티에서 술에 취해 널부러진다.
무대 위에서 본체도 없는 나레이션들과 대화하며 혼자 좌충우돌하는 씬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내는 모습에 재필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몸을 무척 자유롭게 쓰는군.
아무리 메소드 연기가 감정에 근거한다 하더라도, 뒷받침하는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연기가 어색할 수 밖에 없는데…’
온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고독하고 사나운 기세.
재치와 공격성.
영감과 열등감.
그 모든 것이 정점을 찍은 야수같은 기세가 무대를 지배했을 때,
메리가 등장했다. 2부의 시작이었다.
“안녕?”
“안…녕.”
메리는 그저 살짝 웃으며 지나쳐갔다.
그 한 모습만에도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원래 남자’라는 말이 모욕으로 느껴질 정도로 세련되고 청초한 여성. 재필도 프레디의 연기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감탄했을 것이다.
프레디의 눈이 사라지는 메리를 좇는다.
다시 그녀가 나타난다. 이번에는 지나갈 때 목례를. 흔들리는 눈빛이 조금 깊어진다.
그리고 세 번째로 서로가 잠시 멈춘듯 시선을 교환하고 사라졌을 때였다.
*
dum- dum-
경쾌한 드럼 소리가 일렉 기타와 섞인다. 첫사랑과 같이 고동치는 드럼 비트.
멀어져 간 메리를 향해 돌려진 오른쪽 몸을 거부하듯이 휙- 왼쪽으로 돌아서는 프레디.
하지만 자석처럼 다시 몸이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1- 2- 3-
불과 3초만에, 다시 태어나기라도 한 듯 표정이 개화한다.
그건 그야말로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
하지만 재필은 다른 의미로 몸을 떨었다.
‘뭐…뭐야 저건!’
3초간 표정의 변화가 한 번이 아니다.
다섯 번? 아니 여섯 번인가?
눈여겨보지않으면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지만, 자세히 보면 끊겨서 툭툭 넘어가는 표정들.
그 각각의 표정에서 프레디는 한 살씩 더 먹어가고, 조금씩 더 깊이 그녀에게 매료되는 듯 했다.
그리고 몸이 오른쪽 끝까지 돌아가자,
그는 다섯살 남짓 나이를 더 먹은 완연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이걸? 마치 정지동작을 이어서 붙여놓은듯한… 그런데 어색하지 않아. 설마 중간중간의 모션들이 모두 고도로 훈련된 동작들인가??’
재필의 짐작이 맞았다.
죽어라 연습한 끝에 오늘 아침에야 각 스틸 동작들을 체득하고, 이를 연결시키는 것에 성공한 유명이었다.
의미를 알고 입이 벌어진 재필,
의미를 모르지만 시선을 빨아들이는 연기에 눈을 떼지 못하는 학생들,
경악에 낯빛이 질린 류신 외에도,
감탄한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
‘저걸 진짜 해냈냥. 그 시간에···’
재능있는 놈이라는 생각은 했다.
불어넣어준 생기를 200% 활용하는 모습에 보통이 아닌 놈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알았다. 독한 놈이란 걸.
거의 먹지도 자지도 않고 자신이 던진 조언에 매달렸다.
써보지 않은 근육을 며칠만에 훈련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걸음마하는 아이에게 뛰어보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저녀석, 몸을 무척 잘썼다. 남의 생기에 짓눌려 가면서도 제 뜻대로 몸을 움직이려 버둥대길 15년. 근육 하나하나를 극도로 의식하고 쓰는 버릇이 든 모양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짓을 웃으면서 하고 있더라는 거다.
꾸벅꾸벅 졸다 깨서도 벙긋 웃기에 면박을 줬더니,
-왜웃냥. 멍청해 보이겡.
-내 인생에 첫 주연이잖아…정식공연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다! 으아 더 잘하고싶다!
이런 짠한 소리를 하고 앉았다.
연귀는 무대위에 마주본 두 배우의 아우라를 보았다.
분명 류신의 아우라가 크기가 한참 크지만, 유명의 아우라는 역동적으로 피어오르고, 활개치고 있다.
이것이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의 아우라다.
크기가 작더라도 넘실거려 몸집을 불려보이는.
전생엔 너무 작고 희미해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짓눌려버렸던 여린 생기가,
자신이 보태준 여력을 입고 골리앗 앞의 다윗처럼 무대를 압도하는 광경은···
‘흠…꽤나···’
연귀의 아홉개의 꼬리들이 팽글- 돌았다.
*
재필은 책상에서 튀어나갈 정도로 몸이 앞으로 쏠려 있었다.
“너와 있을 때는 노래할 때 같은 기분이 들어.”
행복에 가득찬 남자. 세상을 다 가진 듯 자신만만한.
재필은 재능넘치는 젊은 아티스트에게 빙의한 듯 연기를 펼치는 배우를 보고 감탄하면서도, 소름의 예감에 피부의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또···?’
이어지는 그의 성공, 성공, 성공.
좌우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여상하게 받아 치면서도 점점 달아오르는 얼굴.
자신만만한 제스처들에 조금씩 불안이 서린다.
와글와글
남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중첩되어 들려온다.
“나는 메리를 사랑해.”
“그녀는 내 인생의 사랑이야.”
“하지만···”
커지는 소음들을 듣지 앉으려 귀를 막고 오른쪽으로 돌아앉는 프레디.
하지만 무대를 가득 메울 정도로 커진 소리가 결국 와장창 깨진다.
그리고,
결국 체념한듯이 귀에서 손을 떼고 일어난 프레디가, 스르르 몸을 돌렸다.
‘아···또…’
재필의 뒷골이 오싹했다.
사랑의 들뜸이 거부할 수 없는 애욕으로.
그저 애욕이라 무시하기엔 너무나 강렬한 충동.
하지만 그 충동 하부에는 영혼의 사랑에게 상처를 줘야 하는 남자의 슬픔이 자리했다.
잃고싶지않다. 잃고 싶지 않구나.
그 감정들이 컷컷으로 나뉘어 눈에 박제된다.
“나 동성애자인 것 같아.”
“…알고있었어. 가능하다면 끝까지 모른 척 하고 싶었는데···”
“사랑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평생 내 옆에 있어.”
“안을 수도 없는 남자의 곁에? 그게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