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92
그런 그가 몇 개월 전 ‘옛다’하는 느낌으로 내민 카드가 희한했다.
-TW에서 진행하는 캐스팅보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어. 심사위원석에 함께 앉겠다면 함께 작품 출연, 고려해볼게.
-예능 오디션 프로? 당신이 그런 데 왜···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싫어? 싫으면 헤이젤 로트에게-
-아…아니에요. 할게요. 내가 할 거에요.
함께 카메라프레임에 서 있을 때 누구와도 다른 특별한 느낌을 주는 남자. 그와 다시 한번 마주보기 위해 나탈리는 두말 없이 그 제의를 승낙했다.
하지만 나탈리는 오늘 마주 보았던 이름 모를 동양인 배우에게서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거 알아요? 나, 당신에게서 졸업할 날이 곧 올지도 몰라요.] [하하, 가능하다면 얼마든지.]나탈리는 잔에 남은 와인을 한 번에 들이키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
띠링-
유명은 유석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 도중에 문자가 왔다.
유석이 문자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모로 기울인다.
“유명씨네 조 대본이 2번…이라고 했죠?”
“네. 왜요 실장님?”
“효준이네 대본도 2번이라네.”
오늘은 2차 예선 5조로 배정받은 효준의 촬영일이었다. 오후 5시가 넘어 촬영이 끝났을 타이밍. 효준에게 합격 문자를 받은 모양이었다.
“효준이 녀석도 팀장이 되었다네요. 그나저나 같은 대본이 여러 팀에 배정된 건가?”
“두 팀씩 겹칠 겁니다. 총 50팀이고 준비된 대본이 25개라고 했으니, 두 팀마다 하나씩 대본이 배정되었을 거에요.”
“그런데 하필 유명씨와 효준이가 같은 대본이라…공교롭군요.”
“방송에 공교로운 게 있을 리가요, 설정이겠죠.”
유명의 말에 유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본을 25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같은 극을 다르게 연기하는 두 팀을 비교해가며 뵤여주려는 의도일 테고, 둘이 같은 한국출신 배우다보니 엮어서 보여주려는가 보군요. 그나저나 효준이가 팀장이라니…걱정되네요.”
유석이 슬그머니 꺼내는 걱정에도 유명은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누가 같은 극을 한다고 해서 자신이 할 연기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고.
띠링-
그 때 아웃룩으로 메일이 전송되었다는 알람이 들렸다.
기다리던 메일이었다.
[casting vote 참가자 공지사항입니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안녕하세요. casting vote 2차 예선을 통과하신 (신유명)님, 축하드립니다!
조금 전 모든 지역의 2차 예선이 종료되었습니다. 18개 지구에서 통과한 200명의 배우들은 4명씩 50팀으로 나뉘어 팀 과제를 진행하게 됩니다.
(신유명)님이 포함된 (14)조의 대본은 (2)번이며, 함께 진행할 팀원은 (페이스 샤퍼, 제프리 레인, 카이 누넨)입니다.
캘리포니아 지구의 합격자 팀은 TW 방송국이 있는 deli Ave.에 지정 연습실이 있는 건물이 있습니다. 해당 연습실을 2주간 마음껏 사용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첨부) casting vote 본선 오디션 2번대본.doc
연습실 약도.pdf
14조 연락처.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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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 연락이에요?”
“네. 드디어 대본을 보내왔네요. 오늘 예선 마지막조가 끝나서 한꺼번에 보냈나봐요.”
“철저하네요. 대본은 뭐에요?”
유명이 파일을 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창작 대본인 모양인데요? 따로 본 적이 없는 대본이에요.”
“흐음…설마 25개 대본을 모두 직접 만든 건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 4명이 들어가는 적절한 대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티비쇼를 위해 대본을 창작까지 하다니, 캐스팅보트에 정말 공을 많이 들이긴 들이는군요.”
“그건…이미 많이 느꼈습니다.”
나탈리 카센.
나이가 든 중견 배우도 아니고, 한참 현역으로 뛰고 있는 헐리웃에서도 날리는 배우를 심사위원에 섭외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본선의 심사위원엔 누가 오려나…조금 궁금해진다.
“그럼, 저는 대본 읽으러 들어가 볼게요. 팀원들에게 연락도 해야 하구요.”
유명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자, 유석이 애처롭게 물었다.
“저녁 같이 먹고 연습하죠?”
“시간 없어요. 효준씨 오면 같이 드세요.”
“너무하네, 진짜.”
유석은 일밖에 모른다며 투덜투덜댔고, 유명은 못들은 척 제 방으로 직행했다.
한 시간 후, 그의 방 문 앞에는 샌드위치와 과일이 소담하게 놓였다. 열심히 매니저의 본분을 다하는 유석이었다.
*
[다녀왔어요, 데니스?] [아, 수잔. 앉아요.]뉴욕 예선을 지휘하러 갔던 데니스 밀턴이 복귀했다.
수잔은 1차 예선 영상의 편집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그와 의논할 것이 있었다.
[뉴욕은 어떠셨어요? 쓸만한 참가자가 좀 있었나요?] [그냥 쏘쏘. 그래도 좋은 화면은 꽤 건졌죠. 데렉이 멋지게 호두를 깎아줬어.] [호두를…깎아요?] [네. 호두 깎는 가위를 들고 뽜악- 뽀개듯이 지원자들을 산산히 깨부쉈어요. 아주 훌륭한 개판이었죠.]데니스의 자랑에 수잔이 헛웃음을 짓는다.
데니스의 수완과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하는 자극적인 감성은 함께 ABC에 근무하던 시절부터 유명했다. 그는 TW으로 이적을 제안받으면서 몇몇 스탭을 함께 데려가겠다는 조건을 걸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수잔이었다.
고로, 그의 심복인 그녀가 지금 짚고 갈 부분은 그의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었다.
[데니스, 그 참가자 있잖아요. 신유명.] [아, 중간에 뉴욕으로 날아온 스탭이 녹화 테입을 가져와서 보여줬지. 그 친구 뭐야 진짜. 실제로 봐도 그렇게 대단해요?] [카메라가 절반도 못 담아요.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났다 싶더라구요.] [와우.] [그래서 말인데요. 초반 카드로 쓰긴 좀 아깝지 않아요?] [흠…고민 중이긴 해요. 부스팅하기엔 딱 좋은 소재긴 한데, 첫끝발이 개끝발이 되기 십상이지. 좀 아깝긴 해.]대화의 요지는 이렇다.
오디션 프로에서는 시청자의 관심을 사로잡을 만한 참가자를 강조하여 편집하기 마련인데, 문제는 그 화제성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이다.
초반에 가열차게 써먹은 참가자들은 갈수록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피로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뭔가 중간에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그 참가자는 실력이 있더라도 신선함에서 밀려 낙오할 수 있다. 흔한 예능의 법칙이다.
[대체할 카드가 있다면…어때요?] [누구?]그래서 자주 쓰는 방법은, 소모할 참가자와 마지막까지 끌고 갈 참가자들을 나눠서 써먹는 것이다. 1~2회차에 바짝 몰아서 감동스토리나 갈등관계를 부각시키는 참가자들이 보통 소모성으로 사용되는 경우.
반면 끝까지 가겠다 싶은 놈들은 초반에는 조금씩만 보여준다. 그리고 중반 이후에 모아뒀던 원기옥을 빵 터뜨리지.
[도효준이라고…예선 1,2차 모두에서 상당한 두각을 드러냈던 참가자가 있어요. 연기를 잘 하는데다 아이디어도 과감해요. 예선 1차 자유연기에서 무려 예수님을 연기했다니까요.] [호오…그런 친구라면 초반에 쓰고 버리긴 아깝지 않아요?] [재기발랄한 친구긴 한데, 오래는 못갈 것 같아요.] […어째서?] [감이죠. 재주는 잘 부리지만 깊이는 없는 느낌···?]데니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수잔의 안목이라면 믿을만 하죠.]누구나 경계를 풀게 만드는 둥글고 순한 눈망울을 가진 여성은 사실 이런 계략을 꾸밀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이 방송국이라는 황금과 질투와 꿈과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 정도의 발톱은 숨기고 있는 것이다.
[편집 회의에서, 지역예선 파트에선 도효준을 부각해서 내보내라고 지시하죠. 신유명 관련 자료와 인터뷰는 잘 수집하고 있어요?] [그럼요. 연습실 장면들도 제가 직접 방문해서 밀착취재해 놓을 예정입니다, 보스.] [좋아, 첫 미팅이 언제?] [바로 내일이에요.]그렇게 데니스 밀턴과 수잔 레이콕의 밀담은 끝났고,
그녀는 내일의 취재를 위해 휘하 스탭들을 불러모았다.
*
[형! 어서 와요.]유명은 바깥에서 기다리던 수잔과 만나 연습실 취재의 방향을 들은 후, 연습실로 들어섰다. 꽤 높은 사람인 듯 한데 왜 자신에게 바짝 붙어 다니는 느낌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연습실 안에는 이미 세 사람이 모여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며칠 간 잘 쉬었어?] [네. 1조인 게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5조 끝날 때까지 며칠 쉴 수 있었으니까.] [그러게.]카이를 향하던 시선을 세 명 모두에게 나누며 유명이 말한다.
[음…어쩌다보니 제가 팀장이 되어 버렸는데, 많이 도와주세요.] [그럼요, 형. 우리 다 같이 열심히 해요!]의욕 넘치게 대답하는 카이와는 달리, 나머지 둘은 왠지 뜨뜨미지근하다.
유명이 그들을 빤히 바라보자, 보이쉬한 외모의 여성 참가자인 페이스 샤퍼가 시니컬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음…제가 입에 발린 말을 잘 못하는데…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얘기해 주시죠.] [워낙 바라던 일이고 힘들게 통과한 거라 이 자리에 나오긴 했는데, 사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해요.]그 말에 카이가 그녀를 말리려는 듯 나서는 것을 유명이 제지했다.
[왜 의미가 없죠? 다들 목적을 가지고 캐스팅 보트에 지원하신 거 아닌가요?] [그 목적이 물 건너간 거나 다름 없으니까요.] […?] [어차피 저희 조에서 합격해서 본선으로 넘어갈 사람은 신유명씨 아닌가요?]그 말에 유명이 아차했다.
제프리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고, 카이도 동조는 하지 않지만 부정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본선 진입 과제의 경쟁률은 5:1이라고 했다. 이 4명 중에 단 한 명이 붙을까 말까라면, 그건 당연히 유명일 거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하기야 내가 2차에서 그렇게 튀어 버렸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지만 유명은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건 아니죠. 이번 과제는 팀플레이의 성격이 짙다고 봅니다.]세 명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153 먼저들 고르시죠
[200명 중에 40명이라고 했지, 4명중에 1명이라고 한 건 아니잖아요?]유명은 이렇게 반론했지만, 페이스는 날카롭게 이의를 제기한다.
[팀과제이긴 하죠. 그래도 서로 비교가 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닐까요? 상식적으로 경쟁률이 5대 1인데, 4인 1조에서 붙을 수 있는 건 1명, 아무리 잘한다고 해봐야 2명일텐데요.]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표정인 제프리.
그리고 눈치를 보던 카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 열심히 준비하면서 연기가 늘 수 있으니까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잘 해내서 누나 말대로 2명이 합격할 수 있다면 저희 중에도 한 명이 붙을지도 모르니까…] [카이, 그 쪽 나이가 어떻게 된다고 했죠?] [어…스물 두 살이에요.] [좋은 나이네요. 전 올해 스물 여덟이 됐어요. 배우를 꿈꿨지만 생계가 막막해서 2년 전에 취업을 했죠. 캐스팅보트 모집공고를 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직장에 사표를 냈어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그녀의 솔직한 말에 카이가 주춤했다.
[신유명씨 대단한 거 알겠어요. 같은 배우로서 저렇게 연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해하고 존경해요. 하지만 하필 우리 조가 된 게 원망스러운 것도 사실이지 않아요? 우승은 저런 사람이 하겠죠, 그걸 바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탑텐 안에만 들어가도 누군가 나를 눈여겨봐 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런 사람이랑 같은 무대에서 경쟁하면 누가 나를 봐 주겠어요?]그녀의 호소를 유명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꿈과 생계의 충돌.
자신은 생계에 허덕이면서도 그만두지 못했었지만,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은 여러 번 했었다. 그리고 미호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언젠가는 그만두었게 되었을 것이다. 꿈을 접는 시기의 차이일 뿐이다.
자신이 새로운 생을 얻었을 때의 기분으로 그녀는 이 기회를 택했을 것이다. 그 기회를 가로막고 선 자신이란 존재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이해는 한다.
그렇지만, 그녀가 자신을 원망할 것이 ‘지금’은 아니다.
[같은 무대에서 ‘경쟁’한다면 그럴 수도 있죠. 건방진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연기력’으로 비교한다면 저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자신이 우위라는 것을 인정하는 말에 페이스가 더욱 얼굴을 굳힌다.
하지만 그 멘트로 분위기를 자신 쪽으로 끌고 온 유명은 이야기를 뒤집는다.
[하지만 경쟁이 아니라 협조해서, 50개의 모든 조들 중에서 최고의 ‘공연’을 보여준다면요?]그가 내민 것은, 생각해보지 못한 가정.
[애초에 한 팀에서 한두 명을 뽑겠다는 계획이었으면 조를 이렇게 짜지 않았을 겁니다. 캘리포니아, 뉴욕, 그 밖의 모든 지역에서 뽑힌 참가자들의 수준은 천차만별일 거에요. 아니, 같은 캘리포니아 내에서도 1조에서 5조까지 조별 수준차가 상당히 날텐데, 레벨 조율을 전혀 하지 않았잖아요?]그 말에 듣던 사람들이 ‘어?’하는 표정을 짓는다.
[‘경쟁’이라고 생각하면 페이스의 얘기가 맞을 수도 있죠. 하지만 같이 ‘작품’을 한다고 생각하면 전혀 문제가 되는 부분이 아니에요. 하나의 극에 주인공만 필요한가요? 조연도 단역도 모두 밸런스 좋게 섞여야 좋은 극이 나오는 것 아닌가요?]그 말에 페이스가 다시 한 번 반박한다.
[그 말은 결국 주인공은 당신이고, 너희들은 조연이나 단역을 잘 해내라. 운이 좋으면 너희도 붙을지도 모른다, 이거 아닌가요?]유명이 웃었다.
[좋아요. 배역을 먼저들 고르시죠.]그 말에 세 명 다 움찔 놀랐다.
[저는 세 분이 모두 고르고 남은 배역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형…그…그건…] [다만, 이후 저는 단순한 팀장이 아닌 연출의 권한을 갖겠습니다. 제가 이끄는 방향에 최대한 협조해 주셔야 할 겁니다.]혹하는 당근과 동시에 내어놓는 채찍.
[가장 비중이 적고 매력없는 역이더라도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을만큼 재밌는 극을 만들 생각이니까요.]그 단호한 음성에, 그들은 조금 긴장했다.
*
2007년 1월 중순.
한국은 때 아닌 해외토픽으로 와글와글했다.
신유명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헐리우드 진출 구상 중이다라는 찌라시들이 사실로 확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선택의 당위와 벌어질 결과를 두고, 관계자들의 갑론을박이 각종 매체를 뒤덮었다. 오늘 MBK의 연예 뉴스 프로에도 이 소식과 관련된 패널들이 출연할 예정이었다.
잠적했던 신유명, 해외 오디션 프로그램 진출?
화제의 이슈에 시청자들은 티비 앞에 바싹 다가앉았다.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MC는 그 이슈부터 다루기 시작했다.
“영화 , 연극 으로 지난 해 국내 연예계의 화제의 중심이었던 배우 신유명 씨가 현재 미국에 건너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믿을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의 유명 방송국인 TW에서 준비중인 새로운 리얼리티 쇼 에 참가 중이라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헐리우드 영화 진출’이 걸린 연기 오디션 프로라고 하는데요, 오늘 이 자리에는 이 소식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려 두 분을 모셨습니다. 우정일보 연예부 김남진 기자와 영화평론가 신응수씨입니다.”
“안녕하세요, 김남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영화평론가 신응수입니다.”
“신응수 평론가는 이번 신유명씨의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신응수는 피터팬에 대한 억측 기사를 냈다가 몰매를 맞고, 매거진Q에서 짤린 이력이 있는 평론가였다. MBK에서는 일부러 그를 섭외했고, 그는 기대에 부응해 즉각적인 포문을 열었다.
“뻔하죠. 좀 나간다 싶은 배우들은 한 번씩 다 거쳐간다는 헐리우드 뽕 아니겠습니까.”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까요?”
“한국에서 좀 뜬다 싶으면, 이 시장은 나에게 너무 좁은 게 아닌가, 나도 헐리웃 배우들보다 못할 게 없는데, 이런 뽕이 한 번씩 생기나 봅니다. 그런데 신유명씨는 너무 성급했네요. 겨우 3년차 아닙니까. 사실상 주연 배우는 한 번도 없어요. 실력이 있는 배우인 걸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연극 때의 행보도 그렇고, ‘자신은 뭔가 특별하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게 아닌가 싶군요.”
“그걸 뽕이라고 표현하신 거군요.”
“좀 단어의 어감이 그렇긴 하지만, 뽕이죠. 헐리웃은 한국과 차원이 다른 시장입니다. 신유명씨가 헐리웃을 노린다면 좀 더 경력을 쌓고 나서 신중하게 단계를 밟아 올라갔어야죠. 화제나 끌려는 이런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김남진 기자가 반박한다.
“화제를 끌어서 득이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신유명씨의 연기적 욕심이 부른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연예인들이란 관심을 먹고 사는 인종이죠. 득이 안 돼도 관심을 받을 욕심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꼬아서 보자면 끝도 없죠. 저는 이 때까지 보여준 신유명씨의 행보가 ‘연기에 대한 끝없는 욕심’ 하나로 어긋남 없이 설명된다고 생각합니다. 연기력으로도 그것을 증명해 왔구요.”
신응수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MC는 김남진에게 질문한다.
“그럼 김기자님은 신유명씨의 선택을 지지한다는 의미인가요?”
“그건…아닙니다. 저는 그 선택이 순수한 의도였을 것은 믿지만,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서는 최악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례없을 정도로 최고의 커리어를 밟아 나가던 배우가 자기 앞길에 이런 먹칠을 한 게 안타까울 뿐이죠.”
“그럼…오디션에서 우승하기는 어렵다, 는 의견이시군요?”
“당연합니다. 미국의 오디션 프로에서 동양인이 우승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차라리 흑인이 낫죠, 흑인을 보면서는 ‘차별은 나쁜일이다’라는 인식 정도는 하니까요. 하지만 동양인의 경우는 아예 ‘외부인’ 취급을 할 겁니다.”
“흠…그래서 떨어진다면 어떤 리스크가 있을까요?”
김남진이 볼펜을 한 번 빙글 돌리더니 답했다.
“신유명씨는 한국에서 연기력으로 탑, 혹은 곧 탑이 될거라는 얘기를 듣던 배우입니다. 그런 배우가 미국 오디션 프로의 예선부터 참가하는 것 자체를 한국 영화계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죠.
그리고 이렇게 관심이 쏠린 상태에서 중도 탈락하면 ‘탈락’ 이미지가 꼬리표로 붙을 겁니다. 오디션에서 웬만한 성과를 내지 않고서는, 예전같이 국민적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거에요.”
국내의 대체적인 여론은 이와 유사했다.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있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양쪽 모두 결론은 ‘신유명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라는 것이었다.
*
유명의 헐리웃 행보에 대한 기사가 터진 후, 소진은 걱정이 많았다.
팬클럽이란 스타가 승승장구할 때는 대부분 해피하다.
하지만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예전보다 못 나가게 되면 이런저런 분란이 생기고, 튕겨져 나가기도 한다.
‘초반부터 타이트하게 수질관리를 해오긴 했지만, 이렇게 의견이 갈릴만한 상황은 처음 겪어보는 거니…’
하지만 기사가 터진 후에 올라온 속속 올라오는 팬들의 반응을 보고, 소진은 가슴이 뻐근해졌다.
-신응수 저 XX 전에 된통 당하고도 또 저 GR이네요. 후…방송 쪽도 보이콧 갑니다.
-이번에도 우리 유명이는 뭔가를 보여주겠죠? 하지만 안 보여준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유명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 유명이를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하고싶은 거 하다가 활동 자금 부족하면 말하렴. 누나 지갑은 언제나 너에게 프리오픈이란다!
-피해 준 것도 없는데 왜 저렇게 오지랍들인지 모르겠군요. 본인 하고 싶은 연기 하겠다는데…
-나중에 전화 투표같은 거 하겠죠? 어떻게 우회해서 참가할 수 있는 방법 공유해 주실 분 안계신가요?
유명의 선택에 대해 의심하고 비난하는 글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유명이라면 잘 할 거야’ 라는 믿음보다 감동적인 것은, ‘결과가 안 좋아도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응원할 거야’라는 조건없는 지지.
소진은 자신이 원하던 스타를 만나 원하던 팬클럽을 만들어가고 있음에, 벅찰 정도로 이 공간이 사랑스러워졌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 준비해왔던 일에 팬들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