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94
의심받고 있는 용의자는 2명.
왕권 계승을 두고 경쟁구도에 있는 2왕자, 로슈.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하고 나선 귀족, 나르바.
범인의 정체를 두고 각 계급의 대표들이 모여 난상토론을 벌이는 파트가 유명의 팀에게 주어진 대본이었다.
캐스팅을 마친 그들은 각자의 배역을 맡아 리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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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폐하. 나르바가 이미 모든 것을 자백했습니다. 독살에 쓰인 약물과 구입 내역까지도 그가 제출하지 않았습니까. 저희 귀족원은 대역죄인 나르바의 극악무도한 짓에 같은 귀족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는 바이며, 전하 앞에 무릎 꿇고 사죄를 드립니다.
왕: 아니, 그대가 사죄할 일은 아니지. 나르바의 일은 나르바의 일. 그리고 상인연합 쪽은 의견이 다른 것 같군.
상인: 폐하. 왕의 혜안으로 굽어 살펴보아 주시옵소서. 일국의 왕자가 시해당한 사건입니다. 나르바 공이 키신 전하와 어떤 앙금이 있었건, 독단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왕: 그대의 주장은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인가. 그게 누구인가?
상인: 그야, 키신 전하의 죽음으로 가장 득을 볼 인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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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분 정도의 대본.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이런 구조가 반복된다.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 왕을 사이에 두고, 나르바가 죽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귀족과 로슈 왕자가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는 상인의 첨예한 대치가 이루어진다.
노예는 극의 중반부 이후, 그들의 부딪힘이 극에 달했을 때 처음으로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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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비천한 소인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까.
상인: 어딜 감히···!
귀족: 네 이놈!!
왕: 그대들은 조용히 하게. 가장 낮은 자여. 아리자데의 주인인 짐이 허하니, 그대는 하고싶은 말을 모두 하라.
노예: 저는…왕자 전하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인: 뭐라!! 그 요망한 입을 닥치지 못할까!
귀족: 그대는 가만히 있게! 저 노예의 말을 더 들어봐야겠네.
왕: 어찌하여?
노예: 저는 왕자 전하의 발치에서 그 분을 늘 지켜보았습니다. 그날 밤 그 분이 어떤 천주머니를 품에서 꺼내시어, 그것을 입에 털어 넣으시고 방 밖을 나서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귀족: 그래? 그랬단 말인가? 그럼 나르바는 왜 그런 거짓말을···
상인: 거짓! 거짓입니다. 네 이놈! 누구에게 사주를 받은 것이냐!
왕: 왕자가 뭐라도 남긴 말은 없었는가?
노예: 전하께선 방 문을 나서시며…‘나는 허수아비로 살지 않겠다.’는 묘한 말을 남기셨습니다.
노예의 말을 긍정하던 귀족도, 부정하던 상인도 마지막 말에 화들짝 놀란다.
상인이 품 속에서 단도를 꺼내어 노예를 찌르고, 노예는 피를 흘리며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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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을 마무리한 후, 그들은 토론을 시작했다.
*
유명의 물음에 먼저 페이스가 입을 연다.
[저는 2왕자의 사주로 누군가가 1왕자를 독살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나르바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죠. 대본의 내용을 보면 상인연합은 죽은 1왕자를, 귀족원은 2왕자를 지지하고 있는 것 같죠? 그래서 귀족원은 나르바라는 귀족 하나를 희생양으로 내어주고 2왕자를 지키려는 게 아닐까요?]그 말에 제프리가 반박한다.
[그저 희생양이라…보통의 죄도 아니고 왕자 시해라면 멸문의 죄일텐데, 나르바가 흔쾌히 희생양이 되었을까요?]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수도 있고, 나르바가 그 정도로 2왕자에게 충성심이 강한 인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대본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요.] [그렇다면 노예의 증언은 뭐죠?] [글쎄요, 누군가 노예를 사주한 것 아니겠어요? 제 3의 세력이라도 있었을까요? 증거라고는 없는 고작 노예의 증언을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페이스의 의견은 2왕자가 뒤에 있다는 것으로, 제프리의 의견은 나르바의 단독 범행인 것으로 나뉘었다. 자신들이 맡은 배역과는 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카이는?] [음…저는 마지막 노예의 말에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긴 한데…그 파트가 너무 짧아서 잘 모르겠어요. 노예의 말이 진실이라면 나르바의 자백이 해석되지 않으니까요. 형 생각은 어때요?] [나는 노예가 증언한 바대로 왕자가 자살한 거라고 생각해.]그 말에 페이스와 제프리가 궁금한 표정을 짓고, 유명은 설명을 풀어놓는다.
[가장 유력한 왕위계승권자가 죽었어요. 귀족원의 입장에선, 자신들이 밀고 있던 로슈 왕자를 왕위에 올릴 절호의 기회였겠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로슈 왕자는 누구보다도 의심받을 위치이기도 해요.그래서 그들은 귀족 하나를 희생시켜서라도 빨리 사건을 종결하려 합니다. 상인 연합에선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채, 나르바의 뒤에 로슈 왕자가 있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거구요.] [나르바는 왕자의 죽음과 아예 무관하다?] [음…나르바가 쉽게 희생하려 했을까요?] [그야 어떤 반대 급부를 주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어요? 예를 들어 나르바가 몰락 귀족이라면? 자신의 아들을 최고의 귀족가의 후계자로 만들어주기로 한다든가, 방법은 있지 않을까요?]
고개를 갸웃하는 팀원에게 던져지는 부연 설명.
[그래서 왕자가 자살한 거라는 노예의 증언에, 귀족은 반가운 기색을 보였던 겁니다. 나르바를 희생시키지 않고도 2왕자를 무사히 왕위에 올릴 수 있다면 더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미 이루어진 나르바의 자백은요?] [그건 2왕자에 대한 과잉 충성심으로 나르바가 거짓 자백한 거다, 라고 하면 왕자시해죄보다는 가볍게 무마되지 않을까요.]드디어 제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다.
[거기까지는 납득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노예의 마지막 말에 귀족과 상인의 얼굴이 돌변하고, 상인은 노예를 찔러 죽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노예의 마지막 말에 단서가 있죠.] [왕자의 유언…말인가요?]-나는 허수아비로 살지 않겠다.
[네. 저는 이 대본이 어떤 완결된 대본의 조각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앞뒤의 이야기를 이어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이 조각 대본에서 유추할 수 있는 건···]팀원들이 침을 삼키며 유명을 주시한다.
[아리자데 왕국은 말만 왕국일 뿐, 왕은 허수아비에 불과한 나라지 않을까.] […!] [귀족과 상인은 나라의 두 파벌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왕자를 다음 허수아비로 앉히려고 기를 쓰지요. 왕은 그것도 모른 채, 그들의 입에 발린 말에 자신이 ‘최고 권력자’라고 착각하고요.]‘왕’ 역할을 맡은 카이가 움찔한다.
[노예의 증언에 따르면 1왕자는 자신의 방에서 약을 먹은 후, 굳이 ‘홀까지 나와서’ 죽었습니다. 그것 자체가 자신의 죽음이 공론화되어, ‘왕’이 정신을 차리고 뭔가 해 주길 바란 의도가 아니었을까요?]조각 대본만을 가지고 이루어낸 해석.
그 대본의 앞과 뒤가 보일 것만 같은 유려한 해석에 모두가 그 논리를 인정하고 말 때,
카이가 물었다.
[형, 그럼 노예의 죽음은···] [‘바른 말’을 하는 일반 백성의 죽음이죠.] [……] [노예를 일반 백성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아리자데 왕국에서 귀족과 상인은 기득권에 속하니까, 노예는 피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겠죠.그리고 왕이 그 말의 의미를 미처 깨닫기 전에, 귀족과 상인은 노예를 죽여 입을 봉해버립니다.] […와우.] [대립된 정치 집단이 허구헌날 싸워대다가도, 위기 상황에서는 서로 손을 잡고 진실을 봉해 버리는 광경, 그렇게 의도된 장면이 아닐까요?]
팀원들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서, 형은 노예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본 거군요.] [응. 비중은 가장 적지만, 의미있는 문제 제기를 하고 죽음을 당하는 인물이니까. 잘 연기하면 가장 큰 임팩트를 줄 수도 있는 배역이라고 생각해.] [그럼, 노예 역이 가장 유리한 역이라는 뜻이에요?] [그건 아니야. 끌리는 역이긴 하지만 비중이 적으니까. 캐릭터만 잘 잡으면 가장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비중이 높은 귀족이나 상인 쪽이지. 내가 ‘연출’의 입장이 아닌 ‘오디션에 참가한 배우’의 입장이었다면 역시 그 쪽을 고르는 게 옳았을 거야.]연습을 마치고 나오는 길, 달라붙어 질문해 오는 카이에게 유명은 ‘노예’를 택한 이유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카이는 왜 ‘왕’을 택한 거야?]그리고 내친김에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유명이 보았을 때 이 대본에서 가장 약한 배역은 왕이었다. 귀족과 상인은 서로 대비되는 확고한 캐릭터와 높은 비중이 매력적이었고, 노예는 (자신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전하는 인물이며, ‘죽음’이라는 강렬한 사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왕은 어중간했다. 귀족의 말을 들을 땐 귀족에게, 상인의 말을 들을 땐 상인에게 귀를 팔랑거리는 허수아비 지배자.
[어…저와 가장 다른 인물이라서 해보고 싶어서요. 이런 식으로 배역을 선택하면 안 되는 건가요?]그 말에 유명이 웃었다.
오디션에서 어느 역이 가장 돋보일지를 계산한 것이 아닌, 그저 해보고 싶은 배역.
그것도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배역이 아니라, ‘나와 가장 다른’, 가장 어려운 배역.
오디션 참가자로서는 순진한 결정일 수 있지만, 같은 배우로서는 칭찬해주고 싶다. 역시 유석에게 카이를 추천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은 카이를 조금 더 돕고 싶어졌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다른데?] [왕이잖아요. 그런 고상하고 품위있는 역할은 제 삶과는 완전히 반대니까…이런 역할도 해낼 수 있게 된다면 좀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우물쭈물하며 내미는 답에 유명은 조금 마음이 짠해졌다.
카이 누넨의 성장환경은 어떠했을까. 할리우드 배우들의 가쉽같은 데는 흥미가 없었던 유명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그가 입고다니는 옷이나 말투, 제스처 같은 것만 봐도 그다지 혜택받은 환경에서 자라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왕’이 어울리게 할 방법.
[카이, 연기의 기본은 관객을 속이는 거야. 이걸 보는 잠시만이라도 나는 진짜 왕이라고 속이는 거지. 하지만 내 상상으로 위엄있는 왕을 연기해본들, 다른 사람들이 위엄있다고 여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 [맞아요!] [그럼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기대하는 ‘위엄있는 왕’의 모습을 알아야 겠지. 그걸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음…영화나 드라마? 옛날 왕들의 자료를 찾아보는 것?] [맞아. 그런 식으로 다양한 자료를 관찰해서 , 이미지상의 공통적인 특징을 잡아내는 게 1단계야. 2단계는 뭘까?] [나만의 특징을 부여하는 것?]유명이 카이의 총명함이 기특한 듯 입끝을 올렸다.
[정답. 왕이 될 자질이 있네.]카이가 기쁜 듯 방긋 웃었다.
[그리고 자료도 좋지만, 비슷한 실제 인물을 관찰하는 것도 도움이 많이 돼.] [아, 의사 역할을 맡으면 진짜 의사들을 관찰하듯이요?] [맞아.] [하지만 왕은 현대에는 없잖아요?] [마침 내 주변에, 왕과 비슷한 인물이 하나 있는데…만나볼래?]카이가 짓는 어리둥절한 표정에, 유명이 쿡쿡 웃었다.
*
유명이 카이에게 소개한 사람은 유석이었다.
그는 유명이 아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몸가짐이 단정한 사람이었다.
눌려 자랐다 해도 어릴 때부터 재벌가의 에티켓 교육을 철저히 받았으며, 품성 자체에 제왕의 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유석은 언어마저 깨끗한 상류층 영어를 사용했다.
“마지못해 배웠던 것들이…계약할 배우를 꼬시는 데 쓰일 줄이야.”
“하하, 윈윈이죠 뭐. 왕 대사 녹음도 좀 해 주세요. 억양이나 발음에 참고가 될 거에요.”
“네네, 마음껏 갖다 쓰시죠.”
그리고 유명은 카이를 자신의 숙소에 데려와서 따로 연습을 봐 주었다.
페이스나 제프리에 비해 카이의 연기는 기본기가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연습실에서 카이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쓰기에는 나머지 멤버들의 눈치가 보였다.
유명이 숙소에 카이를 데려와 연습을 봐주는 것을 보고, 효준은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유명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 눈부신 재능이 있던 카이의 연기는 유명의 조언을 받아들여 급속도로 성장했다.
[아리자데의 주인인 짐이 허하니, 그대는 하고싶은 말을 모두 하라.]7일째의 연습.
날 때부터 만인지상이었던 자의 오만한 품위로 왕이 명령했고,
페이스와 제프리는 믿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유명은 생각했다.
이제 정말로 해 볼만한 게임이 되었다고.
156 후회하실텐데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와…카이 너 연기가 갑자기 말도 안 되게 늘었는데?]칭찬에 초조함이 섞였다.
페이스와 제프리는 어느 정도의 연기 경력과 평균 이상의 실력을 갖춘 참가자들. 이때까지 연기 초보인 카이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이 연기할 때를 보면,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귀족과 상인은 배역 비중도 비슷했고 대립되는 역할이었기에, 서로가 서로만 아니면 자신이 2등이라는 가정하에, 상대보다 잘하려고 애써 왔겠지.
하지만 갑자기 카이가 달라졌다.
착하고 순진한 초보 배우라고 생각했던 그가, 자신들을 압도하는 분위기로 왕의 위엄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어…근데 그 때 우리가 합의한 설정에 따르면, 왕은 허수아비면서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저렇게 위엄있는 연기가 맞을까요?]제프리의 질문에 유명이 말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 [입헌군주제를 대변하는 말이죠. 이 극에서와 상황은 다르지만, 영국에는 지금도 왕족이 있습니다. 영국의 로얄 패밀리는 실질적인 지배권이 없지만, 그래서 그들이 품위가 없나요?]현대를 살아가는 귀족. 그들은 날 때부터 귀족이었기에 몸에 밴 품위가 있다.
[이 극에서의 왕은 무능하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왕족으로서의 아우라가 없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정치적인 능력이 없으면서도 턱만 치켜든 왕족과 그를 떠받드는 척 기만하는 신하들의 조합이 어우러져 좋은 그림을 만들 겁니다.]유명이 생각하는 형태로 이 극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카이 누넨이라는 배우가 자신이 연기할 비천한 노예와 대비될 정도로 탁월한 왕족의 품위를 보여줄 것.
그리고 페이스와 제프리가 서로만 꺾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더 절박하게 극에 매달리게 만들 것.
카이의 괄목할만한 성장이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카이의 눈에는 기쁨이, 페이스와 제프리의 눈에는 경계와 질투가 도사린다.
[잘했어, 카이. 그 방향으로 더 발전시켜 보자.] [네, 형!] [그리고 두 분에게도 주문할 것이 있어요.]유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에게도 과업을 부과한다.
[둘이서 말로 치고받을 때의 속도, 1.2배속으로 올립니다.] [네?] [아니 왜···] [이 대본의 주요 서사는 두 분의 대치에요. 관객들이 눈을 뗄 수 없는 팽팽한 대치 상황을 만드는 게 관건입니다.] [그건 말의 속도가 아니라, 다른 제스처나 뉘앙스로도 줄 수 있잖아요. 제가 잡은 귀족의 캐릭터는 귀족답게 우아한 말투를 쓰는데 말의 속도를 1.2배속으로 늘리라는 건-]유명이 페이스의 불평을 끊었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건 쉽지 않습니다. 대사를 치고 받는 속도는 긴장감을 줘서 단숨에 집중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에요.]다시 뭐라 반론하려는 페이스를 바라보며, 유명이 한쪽 입꼬리만을 비스듬히 올린다.
[속도를 올리면서 캐릭터도 보여주면 되잖아요. 설마, 못하시나요?]페이스가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
페이스를 도발한 것은, 유명이 그녀의 성격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오기와 자존심이 강한 인간.
그녀는 기대를 받은만큼 부응하며, 특히 도발에는 쉽게 흥분해 사력을 다하는 타입이다.
아니나다를까, 적개심이 솟아오르자 그녀의 연기는 훨씬 좋아졌다.
[네 이놈! 정녕 그 모가지가 아깝지 않은 것이구나. 로슈 전하는 이 일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만한 일을 정말로 나르바 경이 독단으로 저질렀다굽쇼?] [귀족의 명예를 걸고, 그러하다. 그대는 귀족인 내가 같은 귀족 나르바를 지목하고 있는 의미를 모르는가?] [글쎄…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명예, 긍지, 귀족이기에 가지고 있는 사명감인 것이다. 같은 귀족이라 해도 옳지 않은 짓을 했다면, 내 살을 도려내는 마음으로 잘라내는 것.]귀족과 상인의 공방을 유명이 다시 끊어낸다.
[느려요. 더 빨리!]두 사람 다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었다. 같은 장면을 벌써 열두 번째 쉼 없이 반복중이었다.
분명 이 정도면 빠르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유명은 전혀 만족하지 못한 얼굴로 다시, 다시를 외치고 있다.
결국 페이스가 버럭 짜증을 냈다.
[이 정도면 됐지, 여기서 더 어떻게 빨리 해요! 캐릭터고 대사 전달이고 다 망가질 걸요?] [할 수 있습니다. 페이스와 제프리의 역량이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자신을 인정해주는 듯한 말에 페이스는 조금 주춤했지만, 다시 목소리를 키웠다.
[어떤 식으로 할 수 있다는 건지 한 번 보여주시던가요.] [후회하실텐데···] [후회 안하거든요?]유명이 흐음, 하고 머리를 긁적였고,
옆에서 미호가 부추겼다.
{보여줘랑! 콧대를 납작하게 해버령!}
‘보여주는 거야 쉽지만, 혹시 빈정 상하거나 좌절해서 다음 스테이지에 영향을 미치면…’
{그렇진 않을거당. 오기가 강한 인간이니 주저앉진 않을거고, 떽떽거리긴 하지만 처음부터 네가 자신보다 연기를 잘한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았냥.}
‘흠…이렇게 시간이 부족하지만 않다면, 이런 방법은 쓰지 않겠지만.’
자신보다 현저히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자신의 배역을 연기해보인다는 것은, 무척 공부가 되는 일임에 동시에 거대한 자괴감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다.
유명은 페이스를 가늠하듯이 쳐다보았다.
직설적이고 다혈질이긴 하지만, 연기에 대한 그녀의 욕심과 열정은 상당해 보이니…
[귀족의 대사를 하겠습니다. 제프리가 상대역 받아주세요.] [그러죠.]페이스가 두고보자는 눈빛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제프리가 먼저 대사를 던졌다.
[이만한 일을 정말로 나르바 경이 독단으로 저질렀다굽쇼?]그 말의 끝을 따지듯이 먹어들어가며, 유명의 대사가 터져나왔다.
[귀족의 명예를 걸고, 그러하다. 그대는 귀족인 내가 같은 귀족 나르바를 지목하고 있는 의미를 모르는가?]빠르다.
첫 대사에 페이스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빠르지만 급하다는 느낌은 없다. 대사가 귀에 꽂히듯 전달되는 것은 명료한 발음 때문도 있지만, 호흡의 타이밍과 리드미컬한 속도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