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96
2월 10일 오전 7시.
며칠 새 퀭해진 얼굴의 배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2박 3일간 총 8시간의 수면을 제외하곤 온통 연습으로 채운 강행군 끝에, 그들은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냈다.
[진짜…독하다 다들.]30분 전에 연습실에 온 수잔이 테이프를 돌려보며 혀를 내둘렀다.
관찰 카메라에는 새벽 2시까지 연습하고 6시까지 수면을 취한 후, 새벽에 마지막 리허설을 하는 장면까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피곤해서 괜찮겠어요?] [어차피 2일간 본선진입과제 촬영하면서 다른 팀 거 관람할 거잖아요. 그 때 졸죠, 뭐.] [조는 모습 전국에 방영돼서 흑역사로 영원히 박제되려구요?]수잔은 그들과 우스갯소리를 하며 설치된 카메라를 철거했다.
[그래도 다들 옷은 갈아입고 갈 거죠?] [그래야죠. 각자 집에 들렀다 10시까지 촬영장에서 만나는 걸로 해요.] [침대보고 잠깐 누웠다가 잠들면 안 돼요-]피곤하지만 뿌듯한 얼굴로,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오늘은 캐스팅보트 본선 첫 촬영일.
전국에서 200명의 예선 합격자가 모여들어, 치열한 경합을 펼치게 되는 첫 번째 날이었다.
158 자유로운 해석, 자의적인 변형
유명이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FD 한 명이 붙어 진행을 간략히 설명한다.
[짐은 저 쪽에 두세요. 이따 촬영 끝나고 다같이 숙소로 이동할 겁니다.]본선으로 넘어가기 위한 관문인 본선진입과제.
총 50팀이 10분짜리 극을 진행하기에, 그것만도 8시간 20분이 소요된다.
진행과 심사, 결과 발표까지 생각하면 하루 안에 촬영을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래서 이틀에 걸쳐 심사가 진행된다는 이야기는 미리 공지받았다.
다만, 무대의 순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첫째 날과 둘째 날 공연의 유불리를 없애기 위해 순서는 당일 아침에 정해진다고 했다.
FD는 유명에게 참가번호와 이름이 써 있는 명찰을 건넸다.
|34-1st participant|
|Youmyoung Shin|
[신유명씨 팀은 34번째 무대에 오르실 겁니다. 2일차 후반쯤이 되겠군요. 34조는 5조 전인 29조의 무대가 시작된 후 호출받아 분장과 의상 교체를 위해 이동하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다른 팀의 무대를 관람하는 동안은 정해진 좌석을 벗어나시면 안 됩니다. 화장실 갈 시간은 2시간 단위로 드릴 거니까 물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유명은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고, 먼저 도착해 있는 카이와 제프리를 볼 수 있었다. 각각 34-3, 34-4의 명찰을 달고 있었다.
[형, 여기에요!]인상적인 스튜디오였다.
중세를 연상케 하는 양 옆의 거대한 기둥. 마호가니 색을 바탕으로 붉은 색과 초록 색 소품들이 자리한 우아한 무대 디자인.
일반적인 번쩍거리고 화려한 쇼 무대를 연상했던 유명은 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무대를 샅샅이 구경했다.
[무대…멋지네요, 그쵸?] [그러게요. 저희 극 내용과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진짜 작정하고 만드는 듯요. 하기야 1,2화 시청률 보면 신날만도 하죠.]현재 2화까지 방영된 캐스팅보트는 막 개국된 TW 채널의 인지도를 한껏 높이고 있었다.
나탈리 카센과 데렉 맥커디라는 핫한 네임이 시청률 견인의 일등공신이었고,
참가자들이 드글거리는 홀에서 배우들에게 즉흥 연기를 시키는 가혹한 미션과, 이에 넋놓은 배우들의 반응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재능있는 인간들을 자극적으로 잘 편집하여 흥미를 한껏 끌어올린 것이다.
스윽-
참가자들은 옆에 앉은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티나지 않게 주변을 스캔하고 있었다. 200석을 채운 머리들 중에서도, 특히 예선 때 주목을 끌었던 ‘유력한 후보’들의 실물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선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유명과 네 칸 떨어진 자리였다.
33-1번. 도효준.
1차 예선에서 골고다 언덕의 예수를 연기해낸 대담한 참가자.
그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원리였지만, 참가자석 뒤에 설치된 매직미러 너머의 한 시선은 효준이 아닌 유명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신유명…또 보게 되는군.’
그 시선은, 옆에 앉아있던 사람을 톡톡 건드려 유명을 보게 했다. 그리고 뭐라뭐라 속삭이는 듯했다.
물론 참가자석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선이었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들 2주간 신나고 즐거운 휴식 만끽하셨나요?]우우우–
본선 진행까지 맡게 된 제리 하이가 첫 멘트를 날리자, 참가자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모르던 참가자 4명이 2주간 묶여서 하나의 극을 준비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4명 모두가 한 가지 배역을 하겠다고 싸우는 경우도 있었고, 팀장이 같은 배우이기 때문에 연출적인 재량이 부족한 경우 연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계속 잡음이 났다.
그런 힘든 과정을 겪고 온 참가자들에게 제리 하이의 빙글대는 멘트는 속이 터질만한 것이었다.
[자, 과제 심사에 앞서 여러분의 명줄을 쥔 악마들을 소개해 드려야죠.]제리의 말에 무대 뒤쪽에서 항의가 터져 나온다.
[악마라니요. 저는 신실한 크리스천이라구요.] [본인부터 부를 줄 알고 딱 나서는군요. 역시 작가라 흐름을 안다니까. 스타작가 에바 도브란스키, 박수로 모셔주세요-]에바 도브란스키.
이 네임드 작가는 영화 대본과 드라마 대본을 함께 집필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심지어 데뷔는 연극대본으로 했다고 하니, 장르를 가리지 않는 스토리텔링력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세트 가운데 배치된 중후한 문이 반으로 갈라지며 나오는 에바를 보고 유명은 깜짝 놀랐다. 유명이 아는 누군가를 너무 닮은 탓이다.
‘도…도플갱어…?’
얼굴 생김새도, 헤어 스타일도, 제스처까지도 닮았다.
육미영 작가와.
동양인과 서양인이 저렇게 닮을 수가 있나?
[에바. 에바는 자신의 작품의 주연배우를 점찍어 두는 것으로 유명하죠. 캐스팅 보트에 출연한 것은 역시 미래의 스타를 미리 발굴해두려는 속셈인가요?] [무슨 말씀인가요. 아직 여기의 애송이들은 이 에바 도브란스키의 작품에 섭외되려면 감감 멀었다구요. 제가 노리는 건 단 한 사람. 데렉 맥커디!]배우에 대한 욕심까지도 닮았다.
[아니, 너무 뻔뻔한 거 아니에요? 말이라도 ‘커팅 전의 원석을 발굴하러 왔어요.’ 이런 거 못해요?] [그런 입에 발린 대사가 트렌드인 시기는 지났거든요? 데렉! 뒤에 있죠? 제가 서스펜스 하나 제대로 뽑아놨는데 어때요?]제리가 눈을 번뜩이며 욕심을 드러내는 그녀를 달래어 심사위원석으로 들여보낸다.
[다음은, 후…또 참 재미있는 인선이에요. 캐스팅보트의 우승자는 카일리 언쇼 감독의 차기작을 찍게되는 것 다들 알고 계시죠? 그런데 카일리 언쇼의 ‘라이벌’로 불리는 감독이 심사위원에 나섰습니다. 조지 하우슬리 감독, 모셔봅니다.]유석이 물어왔던 소식 중 하나.
본선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조지 하우슬리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선 카일리 언쇼의 라이벌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희한할 정도로 두 감독의 작품 개봉 시기가 겹치는 데 있었다.
다섯 작품이나 그러했는데, 현재까지 흥행성적은 카일리 언쇼가 3번, 조지 하우슬리가 2번을 앞선 상태.
[한 번을 더 이겨야 동률이 됩니다. 그래서 카일리의 차기작 주연을 회생불가능한 멍청이로 뽑아버리자! 그런 꿍꿍이를 가지고 섭외를 수락했습니다.] [맙소사. 조지의 지난 작품이 였죠? 그걸 감독이 그대로 실천하고 있을 줄이야.]조지의 유쾌한 농담과 이를 받아치는 제리의 반격에 웃음이 터진다.
[좋아요. 자, 이제 두 분 남았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두 분이죠. 캐스팅 보트가 미국 전역을 강타하게 된 일등 공신이기도 합니다.한 분은 유명한 영화평론가 오클리 랜서의 이 말, ‘코 앞에서 넬리의 웃음을 볼 수 있다면, 나도 살해당해도 좋다.’로 전미에 넬리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헐리우드의 여신, 스타 중의 스타, 나탈리 카센.]
작게 환호가 터져 나온다.
제리는 앞서처럼 그녀를 바로 무대로 불러내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또 한 분은 그저 ‘최고의 배우’라는 타이틀 하나로 더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데렉 맥커디.]그리고 정말 그다.
말 그대로 그 이름 하나로 어떤 수식어도 필요하지 않은 배우.
[제 눈이 호강하고 싶은 욕심에 두 분을 함께 불러 봅니다. 나탈리, 데렉?]다시 한 번 문이 열리고, 나탈리 카센이 데렉 맥커디의 팔짱을 가볍게 끼고 걸어나왔다.
제리의 안목이 옳았다.
이 둘이 함께 등장하는 그림만으로도, 방송 후 온갖 매체의 헤드라인에 꽂힐 정도로 압도적인 아우라가 번져 나왔다. 특히, 의 팬이라면 7년만에 나란히 선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쿵쾅쿵쾅 뛸 것이다.
[아무리 봐도 너무 잘 어울리는 그림인데…두 분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닌가요? 아무에게도 말 안할테니 저한테만 살짝 알려주시죠.]데렉이 그 멋진 얼굴에 피식하는 웃음을 담으며 나탈리를 바라본다.
[음…나탈리는 무척 아름답고 멋진 여성이지만, 저에게는 장르가 달라요. 성장영화를 보고 두근두근하는 사람은 없잖아요?]그의 말에 제리가 호들갑을 떤다.
[와…나탈리 카센에게 성장영화라니. 나탈리, 이 발언 여자로서 좀 화나지 않나요?] [전혀요. 성장영화면 너무 감사하죠. 저한테 데렉은 공포영화라서.]하하하-
그녀의 만만찮은 반격에 좌중의 웃음이 터졌다.
킬링 스마일 촬영 당시 데렉이 얼마나 그녀를 갈궈댔는지, 나탈리는 이후 토크쇼 등에서 여러 번 이야기해 왔으니까.
그렇게 심사위원 네 명의 소개가 끝나자, 본격적인 과제 시연이 시작되었다.
*
50팀에게 주어진 25개의 대본.
같은 대본을 연기하는 두 팀의 순서는 맞붙어 있다.
따라서 팀마다 연기가 끝나면 각각의 감상과 평가가 진행되고, 같은 대본을 연기한 두 팀을 동시에 불러올려 다시 한 번 총평을 진행하게 된다.
{머리를 많이 썼넹. 포맷이 심심해질까봐 아이디어를 많이 넣은 것 같당.}
‘그러게. 그런데 저렇게 대놓고 비교하는 건 좀 잔인하네.’
{그 편이 재밌는 화면을 뽑을 수 있으니깡.}
과연 그렇다. 첫 팀부터 한 명이 눈물을 터뜨렸다.
[대본을 제대로 읽어보기는 한 건지 의심스럽군요. 자신만의 해석이라는 핑계로, 작가가 의도한 상황이며 감정을 완전히 무시한 거 아닌가요?] [그게 아니구요…]대본과 연기의 괴리에 일침을 날리는 에바 도브란스키.
그녀의 격양된 어조를 들으며 유명은 추측했다.
‘본선진입과제로 주어진 대본들, 다 에바가 쓴 거 같지 않아?’
{그런 것 같당. 여태 10팀이 공연했고 5개의 대본이 나왔는데, 다 뭔가 작가 특유의 쪼가 비슷하당.}
‘그리고 작품의 의도를 무너뜨리거나 대사를 변형하는데 유난히 예민하고.’
자유로운 해석과 자의적인 변형은 다르다.
주어진 대본의 범위 내에서 캐릭터의 성격, 말투, 대사 저변에 깔린 의도등을 만들어가는 것은 해석이라고 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연기할 때 하나의 대본을 두고 유명의 해석과 류신의 해석이 달랐던 것처럼.
하지만 ‘극’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이 튀기 위해서 자의적으로 변형하는 것은 당연히 극 전체의 퀄리티를 떨어뜨린다.
지금 무대 위에서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 이 배우처럼.
[오디션이기 이전에 연기에요. 조금 평범한 배역이라 해도 그 대본에서 그 배역의 본분에 충실한 연기라면 충분히 점수를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시장에 찬거리를 사러 온 부인이 재즈 댄스를 추며 나타나다니, 본인도 말이 안 되는 걸 알고 있죠?]이어지는 나탈리 카센의 차분하지만 냉정한 질타.
아마 저 배우는 캐스팅에 불만이 컸던 모양이다. 자신이 맡은 평범한 배역으로는 도저히 튈 수 없다는 판단으로, 자신의 장기인 재즈 댄스라도 보여주려고 우겨넣은 거겠지.
그리고 나탈리는 그 팀의 팀장을 부른다.
[저게 무리수인 거, 설마 모르진 않았죠?] [그녀가 배역을 바꿔줄 게 아니면 내버려두라고 하도 난리를 쳐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받고 서는 프로 무대라도 이 상태로 올렸을 건가요?] [……] [맞아요. 팀장도 참가자 중 한 명일 뿐이죠. 급조된 팀의 팀장에게 리더십까지 원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최대한 설득해보고 안 되면 제작진에게 도움이라도 구하는 게 맞았어요.] […어…옆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안 말리셨는데…] [그게 저희 지침이었어요. 누군가 돌발 행동을 할 때, ‘제작진에게 도움을 요청할 경우’에 한해 조율을 돕는다.]듣던 참가자들이 헐…하는 표정을 지었다.
[두 팀 있었어요. 캐스팅에 불복하고 고집을 부리는 참가자가 있어서, 제작진 쪽에서 회유하거나 강제한 경우요. 오디션을 떠나서 올리면 안 되는 무대가 확실한데도, 고민없이 ‘나는 하는 데까지 했다’라고 생각했다면, 팀장도 다른 팀원들도 모두 이 공연을 안일하게 만든 거에요.]나탈리의 준엄한 질책에 그 조원들은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데렉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가 마이크를 들자, 객석에 긴장이 감돌았다. 특히 동부쪽 참가자들은 바짝 얼어 있었다.
159 그는 이미 완성된 배우야
후–
앞줄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1,2화의 방영으로 데렉의 독설에 대한 평은 이미 자자했는데, 실제로 보면 더 살떨렸던 모양이다. 그 모습이 섹시하다며 발악하는 팬들이 더 늘어난 것을 보면 인생은 될놈될인 것도 확실했다.
[먼저 트리니티. 여긴 장기자랑 무대가 아니에요. 논할 가치가 없으니 바로 넘어가겠습니다.]사람을 홀리는 어떤 마성을 담은 목소리는 무심하고 차갑게 실수한 참가자를 잘라냈고,
앞서의 날선 심사평들에 심적으로 몰려있던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쪽에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다른 참가자들을 향한 데렉의 심사평이 이어졌다.
[요한, 당신은 마지막에 캐릭터를 바꿨나보군요. 아마 이틀 전쯤…?] [어…넵…그렇습니다.] [연습이 덜 돼서 초반에 설정했던 캐릭터와 후반부의 캐릭터가 섞였어요. 왜 그런 무리수를 뒀죠?] [제가 맡은 역할이 단편적인 인물이 아니라,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한 수를 집요하게 쫒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마지막에야 들어서…] [그건 맞습니다. 요한이 맡은 배역이 이 전체 장면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핵심키이긴 해요. 하지만 완성도를 그 정도로 가져올 거면 차라리 기존에 연습했던 걸 하는 게 나았겠군요.] […..] [어제 몇 시간 잤나요?] […7시간요.] [새로 바꾼 캐릭터를 그 정도밖에 완성시키지 못해놓고 잠이 오던가요? 흠…신기하네.]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배우들의 연습과정을, 숨기고 싶은 약점을 읽어낸다.
[지금 그 배역의 이미지를 잡으면서 의 여주인공을 참고한 건가요? 장점이 아니라 단점만 가져왔네요.] [호흡이 짧은 걸, 원래 캐릭터인 척 녹여냈네요. 영리한 꼼수였지만 호흡은 기본이에요. 부족한 부분을 매번 캐릭터에 숨길 수는 없지 않겠어요?]어떤 때는, 몇 가지 제안만으로 배우들의 역량을 쑥쑥 끌어냈다.
[거기, 시녀 역과 요리사역, 귀부인역 세 명 시계 방향으로 역할 바꿔서 리딩해보죠. 원래 하던 역할의 캐릭터 그대로 살려서 읽으면 됩니다. 시녀역을 귀부인처럼, 요리사역을 시녀처럼, 귀부인역을 요리사처럼. 연습했던 그대로.]그가 시킨대로 배역을 바꿔서 읽기만 했는데도, 훨씬 배역간의 밸런스가 좋아지고 무대가 흥미로워진다. 마치 마법같은 광경.
그의 심사평이 참가자들의 상태를 턱턱 짚어갈 때마다 눈을 빛내던 제리 하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데렉, 혹시…내 등 뒤에 뭔가 보이나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음…메이킹 필름도 안 봤는데, 참가자들이 진행해온 바를 점 치듯이 짚어내는 거, 너무 신기한데요?] [배우니까요. 다들 어떤 식으로 해 왔고 어떤 오류가 있었을지 보이는 거죠.]그 말을 나탈리가 반박한다.
[그건 아니죠. 그의 직관력은 타고난 거예요. 저도 연기를 보면 배우의 장단점이나 노력 정도를 웬만큼은 가늠하지만, 데렉처럼 점성술사처럼 집어내진 못해요.] [함께 작품할 때, 나탈리에게도 그랬나요?] [하하, 그 때요? 무시무시했죠. 그 때 비하면 지금 하는 건 애교 수준이에요. 제가 당한 걸 찍는다면 방송불가 수준일걸요?]지금도 충분히 무시무시했다.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성실하고 준엄하게 평가해 가는 나탈리와 달리, 데렉의 심사평은 다분히 오만하고, 즉흥적이었으며, 자신의 기준 밖의 연기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건 보는 사람의 기가 질릴 것 같은 지도 방식이었다.
‘재밌는 배우네. 저 배우가 직접 연기하는 걸 보고 싶어. 화면에서는 무수히 봤지만 실물로.’
{나동. 저 놈의 연기(*연기의 기운)는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하당. 무척 자극적인 냄새가 난당.}
그렇게 첫 날의 심사가 끝났다.
*
참가자석 뒤편에는 매직미러가 설치된 방이 하나 있었다.
첫 날의 심사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밖으로 나간 이후, 8명의 사람들이 그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 중 한 명은 오늘 아침, 유명을 눈여겨 주시하던 인물이었다.
[어땠어?] [몇 명 빼고는 그다지…]방을 나서며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목소리를 키웠다.
[말이 프로지 대부분 아마추어들이잖아. 피라미들 사이에 배스와 블루길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겠어? 결국 우리의 잔치가 될 거야.]잭슨 포스터.
그는 호주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배우였다.
나머지 면면들도 아직 미국에서 알려지지 않았을 뿐, 자국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배우들이었다.
이들은 해외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아 섭외되어, ‘시드를 부여받은’ 배우들의 집단.
그들은 다른 참가자들처럼 2주 전에 이 캘리포니아로 초청받았으며, 본선 진입과제를 통과한 사람들이 거주하게 될 에 미리 입주해 있었다.
잭슨의 말에 프랑스 배우, 앙투안 모니에가 태클을 걸었다.
[배스와 블루길이 풀린 곳에 가물치가 살고 있다면? 되려 뼈도 남기지 못하고 잡아먹히지 않을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는 너희들은 인정하고 있지만 미러 너머의 아마추어들 중에 우리의 상대는 하나도 없어 보여서 한 말이라고.] [내일이 남았잖아.] [비슷하지 않겠어? 물론 몇 명 눈에 띄는 참가자는 있었지만. 그…도효준? 그 친구라든가.] [음…앙투안,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린 이미 자국에서 인정받은 배우들이잖아. 재능있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해도 우리들에 비하면…물론 과정 중에 갑자기 성장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지만 말야.]그 말에 앙투안이 피식 웃는다.
[신유명. 그를 주목해. 그는 이미 완성된 배우야.] [누구? 신? 아…그 트루먼 쇼. 그건 꽤 볼 만한 연기였지만 크게 반향은 없지 않았나?] [편집에 속다니, 안목이 그 정도밖에 안 돼?] [글쎄, 네 말만큼 대단한 연기였다면 이미 피디가 띄우지 않았을까?] [그들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연기가 예선의 그 누구보다도 대단했다는 건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