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97
앙투안 모니에. 그는 느긋하고 온화한 분위기의 남자였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무리의 중심에 위치하는 리더십이 있으며,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타입의 남자.
그런 그가 이렇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처음 보는 잭슨이 화낼 타이밍을 잃고 머뭇거릴 때, 여배우 한 명이 끼어들었다.
[앙투안의 말이 맞아. 나도 그의 연기가 참가자들 중 가장 좋았어.]마르타 가르시아.
햇살에 그을려 연갈색으로 빛나는 피부에 청록색 눈동자가 나른한 느낌을 주는 스페인 출신의 여배우였다. 평소 무심한 편이던 그녀가 의외로 논쟁에 끼어들자, 모두가 그녀를 주목했다.
[뭐야. 같은 유럽 출신이라고 편드는 거야?] [고작 그 정도 생각밖에 못한다면 네 머리는 역시 떼고 다니는 게 낫겠어. 무겁기만 한 짐덩어리일 뿐이잖아?]그녀의 사뿐한 응대에 잭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앙투안이 끼어든다.
[마르타. 말이 심하잖아.] [그냥 느낀 걸 말한건데. 알았어.]그녀는 쉽게 던진 막말만큼이나 쉽게 사과했다.
항상 살짝 풀려있는 눈동자는, 자신이 마음속에 있는 말을 거르지 못하고 얘기하는 것을 안다는 듯이, 별다른 감정을 담지 않고 사과를 내민다.
[하지만, 나도 믿기지 않아. 물론 그의 트루먼이 상당히 좋았다고는 하지만, 앙투안이 해준 얘기는…그 정도가 아니었는걸.] [무슨 얘기?]다른 시드 배우 한 명이 궁금함을 표시하자, 앙투안이 간략히 얘기해 준다.
그가 관람한 [무무], 그 기막힌 연기를.
[말도 안 돼. 음원 하나를 틀어놓고 그 시간에 맞춰서 연기를 했다고?] [그보다 대단한 건, 시간을 재면서 연기했다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 연기가 놀랍도록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는 거야. 그가 연기를 마쳤을 때 우리 단원들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지. 눈에는 눈물이 그렁한 채로.] […도저히 믿기 힘든데?]잭슨의 말에 마르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엔 이 쪽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내일보면 알겠지.] [내일이 기대되는군.]그들의 눈빛에 진한 호기심과 호승심이 어렸다.
*
다음날, 34조원들이 분장을 마치고 무대 뒤로 내려왔을 때에는, 33조의 무대가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유명의 조와 같은 대본.
도효준이 맡은 배역은…왕.
그들은 마름모형의 대열로 섰다.
가장 높은 자리에 왕. 그 아래 서로 마주 본 귀족과 신하. 그리고 발치에 엎드린 노예.
유명은 궁금했다. 다른 팀에서는 이 대본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연기할까.
그리고 극을 여는 왕의 첫 마디가 떨어졌을 때, 유명은 알아차렸다.
[경들은 이 홀에서 일어난 왕자시해사건에 대한 의견을 말해보라.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왕이 이 모든 사태의 흑막이다.
그것은 카이가 우물쭈물 잠시 내밀었던 해석과 궤를 함께 했지만, 그보다 훨씬 발전되어 있었다.
[아니, 그대가 사죄할 일은 아니지. 나르바의 일은 나르바의 일이야. 그리고 상인연합 쪽은 의견이 다른 것 같군.]귀족을 안심시켜주는 것이 아닌, 가당찮다는 듯 그의 의견을 딱 끊어버리는 말투.
이 참에 땅에 떨어진 왕권을 바로 잡아보겠다는 듯이, 그는 귀족과 상인을 저울질한다. 때로 북돋우고 때로 기를 죽인다. 귀족과 상인은 열심히 말싸움을 하지만, 관객들의 시선이 머무는 것은 그들을 손아귀에 놓고 조종하는 듯한 왕.
누가 봐도 왕이 주인공이고, 나머지 배역은 들러리가 된 듯한 무대.
하지만 재미있다.
어느새 왕에 이입된 관객들은 그의 리액션을 훔쳐보며, 어디서 어디까지가 그의 안배인지를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노예가 진실을 고했을 때,
왕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저는…왕자 전하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아뿔싸- 라는 표정.
그 표정 하나로, 관객들은 예감하게 된다.
왕자에게 약을 거내며 자살을 명한 인물이 왕이었다는 것을.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의 의미는, 이제 목숨을 다하면 더 이상 아버지의 허수아비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뜻.
왕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목격자가 있었다니. 저 입을 어찌 막지, 라는 난감함이 여실한 가운데,
귀족과 상인의 표정도 변했다.
이것이 왕의 계략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귀족과 상인의 입장에서는,왕자가 남긴 ‘허수아비로 살지 않겠다’는 말이, 귀족과 상인에게 휘둘리는 ‘허수아비 왕으로 살지 않겠다’라는 의미로 들린다.
그리고, 혹시 왕이 그 사실을 눈치챌까 두려워서 잽싸게 노예의 입을 막는다.
푸욱-
칼에 찔려 죽어가는 노예.
손에 피를 묻힌채 안도하는 상인과, 그에게 잘했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는 귀족.
그 너머의 왕의 표정이, 볼만했다.
‘골치거리를 너희들 손으로 처리해주고, 내게 또 하나의 약점을 쥐어주다니, 이 멍청한 것들, 하하하하.’
놀람을 가장한 그의 표정 속에서 비웃음이 비죽비죽 비져나왔다.
그것은 판을 뒤집을 패를 손에 얻은 자의 오만한 표정.
모두가 그 표정에 시선이 사로잡힌 사이, 극이 끝이 났다.
심사위원석의 반응은 갈렸다.
[재미있는 해석이었어요. 왕이 모든 걸 알고 조율하고 있었다니…그 해석 덕분에 긴장감으로 눈을 뗄 수 없는 극이 되었군요. 특히 왕을 연기한 도효준씨의 연기력이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대사를 바꾸지 않고서도 눈빛, 말투, 제스처로 ‘왕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것을 설득해냈어요.]조지 하우슬리 감독은 극찬을 남긴 반면,
[사실 이 대본 제가 썼는데요.]자신이 대본의 집필자임을 참지 못하고 밝힌 에바 도브란스키는,
[이건 무리한 해석이에요. 본인들도 작가의 의도가 그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을 겁니다. 튀려고 특이한 시도를 한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으로서 성립시킨 ‘왕’의 연기력 하나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다른 캐릭터들은 너무 조잡해졌어요. 오디션용 연기가 아니라 실전이었다면,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벗어난 해석이라고 질타를 당했을 겁니다.]대본의 의도가 곡해되었음에 불쾌감을 표했다.
나탈리는 다른 지적을 했다.
[이 해석, 도효준씨가 주로 한 거죠?] [네.] [극적인 재미는 줬을지 몰라도, 저는 팀장으로서 팀원들에 대한 배려심이 너무 없었던 점이 아쉽군요. 다른 팀원들이 왜 여기 동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왕을 빼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조연이 되어 버리는 해석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궁금하지 않잖아요. 다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죠.]효준이 그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듯 뭔가 입을 달싹이는 사이, 데렉이 그녀의 말에 반박하고 나섰다.
[글쎄, 극이 재미있으면 됐지, 거기서 배려심을 논할 필요는 없죠.]그 말에 나탈리가 반론하려는 것을 막고, 데렉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개연성은 있어야죠. 저렇게 똑똑한 왕은 왜 허수아비로 지냈으며, 귀족과 상인은 왕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왜 모르고 있죠?]그 지적에, 도효준이 움찔했다.
160 그걸 눈치챘다고?
데렉의 지적에 에바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했다.
[맞아. 그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설명이 안 되잖아요.] [그건…즉위한지 얼마 안 된 왕이라든가, 음···] [왕자에게 자결을 명할 정도로 영향력을 미치는 왕이 즉위한지 얼마 안 되었다구요? 그 부분은 넘어간다 해도, 저렇게 영리하고 야심만만한 인물을 못 알아보다니 귀족과 상인은 눈이 삐었나요?]그 말에 효준이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데렉이 다시 말한다.
[그리고, 그 해석대로라면 왕자의 마지막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요. ‘이제 허수아비로 사는 생은 끝났다.’라면 모르겠지만, ‘더 이상 허수아비로 살지 않겠다’는 것은 왕자의 의지를 표상하는 말이잖아요. 누군가 시켜서 자살하는 사람이 남길 말 같지 않군요.] [……] [욕심. 좋은 극을 만들기보다 혼자 튈 욕심이 과했어요. 차라리 왕이 겉으로는 멍청한 모습을 가장해 보이며 기회를 노리는 약자의 모습을 보였다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었겠죠. 하지만 영리함과 야심이 겉으로 드러나는 편이 매력적으로 비치고 연기하기도 쉬우니 편하게 타협한 거에요, 그렇죠?]효준이 입술을 깨문다.
[그리고 이렇게 왕을 중심으로 한 극이라면, 다른 배우들의 수준을 맞추려는 노력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다른 배우들의 연기퀄은 너무 떨어져요. 왕이 하드캐리하기 때문에 나름 재미있기는 하지만, 다른 배우들의 연기는 너무 별로입니다.] [제가 연출도 아니고···! 말만 팀장이지 결국 경쟁자 아닌가요.] [그건 맞아요. 팀장이라고 모든 책임을 지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배우로서, 4명 중 가장 나은 배우로서, 본인이 극의 방향을 제안했다면 극의 퀄리티를 높이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 겁니다.]데렉의 말을 듣고 참가자들 대부분은 고개를 숙였고,
페이스, 제프리, 카이는 유명을 슬쩍 쳐다보았다.
‘저런 리더십을 가진 팀장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구나.’
그렇게 33조의 무대가 끝나고, 터덜터덜 내려온 그들은 무대 뒤에 다시 대기했다.
유명의 조인 34조의 무대가 시연된 후에, 33조와 34조는 함께 올라가 평가를 받을 것이었다.
[34조, 올라가세요!]이제 그들의 차례였다.
[휘유~ 이번에는 34조의 무대입니다. 우리 인터뷰 팀장인 수잔이 저에게 슬쩍 귀띔해 줬는데, 34조의 연습에서 꽤나 재미있는 상황이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와…지금 볼 수는 없나요?] [메이킹 필름은, 액션 스쿨 클래스 배정 때 공개하기로 했으니까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저도 모릅니다만, 확실한 것은 전체 조들 중 가장 열정적으로 연습한 팀이었다고 합니다.] [오오, 제리. 이렇게 기대치를 올리기인가요? 배우들이 부담돼서 바짝 얼겠어요?]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 걸요?]그의 말대로, 34조원들은 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포지션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들은 33조와는 달리 무대에 4명이 나란히 섰다.
왕 귀족 상인 노예,
의 순으로.
그리고, 자세를 잡는다.
왕은 무대 왼쪽 바깥을 향해 살짝 턱을 치켜들고 한쪽 손을 골반에 짚은 당당한 자세.
귀족은 한 손을 주먹쥐어 가슴에 댄, 긍지를 표상하는 자세.
상인은 고개를 살짝 숙인 상태에서 한 손을 턱에 괴고 살짝 눈을 치켜뜬, 꿍꿍이가 느껴지는 자세.
그리고 노예는 등이 한껏 굽은 상태로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받든 복종의 자세.
‘신유명이…노예···’
나탈리 카센도, 무대 밖의 도효준도 의외의 캐스팅에 의아해 했고,
배우들이 시작하는 장면에서 작위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에 당황했다.
[시작하겠습니다.]노예의 입이 시작을 알렸고, 무대 위로 빛이 떨어졌다.
*
무대가 시작되고도 그들은 몇 초간 움직이지 않았다.
왜 저러지? 얼었나? 하고 모두가 의아할 때쯤, 가장 왼쪽에 선 왕의 눈동자가 도르륵 구른다.
그가 허리의 손을 천천히 떼더니 목을 두어번 덜그럭 움직인다.
그리고 고개를 완전히 정면으로 돌리더니 가슴 앞으로 팔짱을 턱하고 낀다.
[경들은 이 홀에서 일어난 왕자시해사건에 대한 의견을 말해보라.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뭔가…이상하다.
그것이 관객들의 첫 인상이었다.
움직임이 다소 각이 져 있다.
특히 이상한 것은, 행동과 움직임을 분리하여 행한다는 것이다.
무표정하게 입술을 움직이던 왕은 첫 번째 문장 뒤에 잠시 말을 멈춘 후, 얼굴을 찌푸린 표정으로 툭- 넘기고, 찌푸린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며 다시 대사를 잇는다.
그것은 마치, 관절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인형극같은 느낌이었다.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사람들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무척 놀란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에바 도브란스키.
그녀는 설마…하는 표정을 온 얼굴에 퍼뜨리며 의심했다.
‘그걸 눈치챘다고? 설마···’
[폐하. 나르바가 이미 모든 것을 자백했습니다. 독살에 쓰인 약물과 구입 내역까지도 그의 침실 깊숙한 곳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이번에 얼음이 땡- 하고 풀린 것은 귀족.
아직 상인과 노예가 멈춰있는 채로 그는 동작이 풀리자마자 절박하게 외친다.
이 땅에서 귀족의 득세를 이어가야 한다, 로슈 왕자가 우리의 대안이다, 그런 절박함이 터져나오는 말투.
그럼에도 삐걱이는 동작들은 못내 우습다.
[푸흡..저게 뭐야. 동작이 왜 저렇게 어색해?] [어색한 게 아니라 의도한 것 같은데. 왜 한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지? 왕과 귀족과 상인과 노예가 나란히 서 있는 건 뭐고.] [이거…사람이 아닌 뭔가 다른 걸 표현하는 건가? 조각상? 아니면…그림?]참가자들이 웅성이는 가운데, 오히려 심사위원석은 숨죽이고 있다.
특히 에바는 댕- 하고 머리를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맞네. 진짜 그걸 눈치채고, 반영시켜서 연습한 거네. 도대체 어떻게···? 그 부분만 보고 눈치챌 정도로 힌트를 주지 않았는데?’
다음 차례는 상인.
왕이 꺼낸 ‘상인연합 쪽은 의견이 다른 것 같군.’이라는 말에 허락을 받은 듯이 기지개를 한 번 쭉 편 그는, 귀족과는 달리 느긋하게 뜸을 들이며 음흉한 속내를 꺼낸다.
[폐하. 폐하께서 가지신 왕의 혜안으로 굽어 살펴보아 주시옵소서. 일국의 왕자가 시해당한 사건입니다. 나르바 공이 키신 전하와 어떤 앙금이 있었건, 독단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대놓고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의혹을 제기하는 상인은, 품위로 치장한 귀족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노예는? 노예는 마지막까지 대사가 없는데 어떻게 움직이기 시작할 생각이지?’
에바의 입이 초조함으로 바싹 말랐다.
귀족과 상인이 마주보고 논쟁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그 때 왕이 시선을 멀리 던지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러자 ‘허락받은 듯이’ 움직이기 시작한 노예는, 몸을 한 번 펴지도 못하고 허리를 깊숙이 숙여 감사표시부터 한다. 아리자데 왕국의 노예는 그림 속에 박제되어서까지도 노예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읽혔군…완전히 읽혔어.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에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이, 극은 점점 진행된다.
[그야, 키신 전하의 죽음으로 가장 득을 볼 인물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누구란 말이냐!] [뻔하지 않습니까. 키신 전하가 사라진다면 자동으로 1계승권자가 될 로슈 전하이지요.] [무엄하다! 폐하, 이 무례한 자의 목을 치셔야 합니다! 폐하께서 명하신다면 제가 지금 바로라도···!]그리고, 다들 넋을 놓고 빠져들기 시작했다.
서서히, 굳은 몸이 풀리듯이,
기름칠이 되어가는 것처럼,
삐걱거리던 동작들이 점점 부드러워져 간다.
대사 한 마디를 치고, 표정 한 번, 다시 대사 한 마디를 내뱉던 초반에 비해, 이제는 점점 아귀가 맞추어져 가는 모양새다.
대화를 하면서 점점 살아나는 그림 속의 인물들.
‘배우들끼리 만든 수준의 극이 아니야. 연출이 있어. 어떻게···?’
극이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빨라!’
귀족과 상인의 대화가 쳇바퀴 돌듯이 결론을 내지 못하고 뱅글뱅글 돌아간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격해지자, 사람들은 그 기세에 숨을 죽인다.
그것을 중간에 툭툭 끊으며 천연덕스럽게 응대하는 왕의 캐릭터는, 품위있는 멍청이같이 보여서 매력이 빵빵 터진다.
그리고,
잠자코 듣고 있던 노예가 첫 음절을 떼었다.
*
[저…비천한 소인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까.]입에 채워둔 구속구를 가까스로 풀어낸듯이 목소리가 그렁그렁 울린다.
나락에 떨어진 자가 바닥을 기는 듯이 꿈지럭거리며 내미는 한 마디.
그 말에 블랙코미디같던 분위기가 심각하게 반전되었다.
[어딜 감히···!] [네 이놈!!] [그대들은 조용히 하게. 가장 낮은 자여. 아리자데의 주인인 짐이 허하니, 그대는 하고싶은 말을 모두 하라.]삶의 무게에 짓눌린 몸짓, 공허한 눈에 한 가닥 희망이 감돈다.
왕자의 뜻을 왕이 알아주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용기를 끌어모아보는 노예는, 귀족과 상인의 호령에 화들짝 소스라치며 팔을 들어 머리를 숨긴다.
‘아···’
나탈리 카센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연기는 가늠하기가 어렵다.
트루먼을 연기할 때는 스스로의 길을 걷는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넘쳐났고,
인형에 둘러싸인 소년을 연기할 때는 인간성이 부재하는 싸이코패스의 모습이 섬찟했다.
그리고 지금은…인간으로 살 권리를 빼앗긴 자.
어떻게 그 모든 설정들에 저렇게 딱 맞추어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꽉 짜여진 귀족과 상인의 연기와, 거기에 숨쉴 틈을 툭툭 던지던 왕의 연기.
이미 완성된 것 같던 구조 사이에 들어온 노예는 폭탄을 던져 그 구조를 뒤집는다.
비루한 목소리에 용기가 실린다.
머뭇머뭇 말소리를 내면서도, 그의 시선은 유일한 희망인 왕에게 붙박혀 있다.
상인은 발작적으로 그의 입을 막으려 들지만, 왕이 허락한다.
[어찌하여?] [저는 왕자 전하의 발치에서 그 분을 늘 지켜보았습니다. 그날 밤 그 분이 어떤 천주머니를 품에서 꺼내시어, 그것을 입에 넣으시고 방 밖으로 나서시는 것을 보았습니다.]그 대사를 하면서, 그는 미동없이 굽혀져 있던 자세를 바꾼다.
곡괭이질을 하는 모습. 그것은 아마도 왕자의 방에 걸려있을 또다른 노예의 상징화.
그것이 눈을 데굴 굴려 그림 너머를 쳐다본다. 왕자의 이상한 행동을 염탐하듯이.
‘노예가 왕자가 약을 먹는 것을 ‘보았다’는 의미까지 파악하다니···!’
에바는 다시 한 번 신음이 비져나오려는 입술을 깨물었고,
[왕자 전하께선···방 문을 나서시며 ‘나는 허수아비로 살지 않겠다.’는 묘한 말을 하셨습니다.]노예가 뱉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귀족과 상인이 흠칫 놀랐다.
왼쪽의 왕은 별 생각이 없는 표정인데, 가운데 2개의 초상화는 빠르게 서로의 시선을 교환한다. 그리고,
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