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98
상인이 칼을 뽑아들어 옆을 찔렀다.
찌르는 것이 ‘상인’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노예의 옆에 붙어있는 그림이 상인이라서.
실제 화면 속에서. 그의 칼은 프레임을 뚫고 나와 노예의 초상화로 넘어갔을 것이고,
노예는 그 칼에 단숨에 궤뚫려 죽어간다.
털썩-
먼저 한 쪽 무릎이 꿇린다.
오른손이 오른쪽 옆구리를 부여 잡는다. 계속 비굴하게 숙여져 있다가 처음으로 치켜든 턱 위에는 선명한 두려움과 아픔이 새겨져 있고, 그것이 그대로 관객의 뇌리에 새겨진다.
결국 양 무릎을 꿇고 바닥에 나뒹군 노예.
자신을 찌른 상인이 아닌 유일하게 노예를 구원해줄 수 있는 왕을 쳐다보지만, 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할 뿐 무슨 상황인지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다.
[으으–]저 멀리 왕을 향해 손을 뻗고 꿈틀거리는 노예.
보는 사람들의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참혹한 죽음의 장면.
그것을 바라보며 ‘됐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귀족과 상인.
하지만 그 때,
마지막 순간,
왕의 눈빛이 살짝 변한다.
숨이 끊어진 노예,
그걸 주동하고 방조한 귀족과 상인,
왕은 처음으로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허울뿐인 왕이며, 그들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pause.
그 비극적인 장면이 다시 하나의 정물이 된 듯이 움직임을 멈추고, 관객들이 한껏 숨죽였을 때,
그들은 삐그덕삐그덕 다시 자세를 바꾸었다.
그림 속에서는 희망이 엿보였지만, 현실에선 여전히 귀족과 상인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아리자데 왕국.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침이 되면 다시 원상복귀되는 초상화들은, 결국 변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일까.
왕은 오만하지만 무지한 표정으로 돌아가고,
귀족과 상인은 자신들의 죄를 감추고 당당히 가슴을 내밀며,
노예는 칼을 맞기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다시 허리를 굽힌다.
무대가 끝났다.
끝나자마자 에바 도브란스키가 허겁지겁 마이크를 들었다.
[누구, 이…대본을 이렇게 해석한 사람이 누구인가요!]갈라진 목소리였다.
161 배우를 소환하는 배우
그녀의 질문에 배우들은 일제히 한 명을 주목했고, 유명이 멋적게 대답한다.
[음…같이 의논해서-] [틀에 박힌 말은 집어치우고! 신유명씨, 당신이죠?]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다른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 해석, 어떻게 나온거죠? 어딘가에서 이 대본을 본 적이 있나요? 배포한 적은 없지만 혹시···] [아닙니다.] [그럼 겨우 이만큼의 조각대본으로 어떻게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캐치한 거죠?]이 조의 해석이 작가가 의도한 바를 정확히 짚었다는 인정.
그 말에 객석의 참가자들, 특히 무대 아래에 서 있던 도효준이 움찔했다.
유명은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울리지 않는 네 명의 인물이 모여 있다는 상황에서 받은 위화감.
뭔가 어색했던 왕의 태도와 상인의 태도.
그리고 극중 인물에게 ‘이름’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을 땐 모든 참가자들이 탄성을 자아냈고,
마지막으로 대본의 첫 줄에 있던 ‘네 장의 그림’이라는 단어에 주목한 과정을 설명했을 때는 모두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진짜 그걸…대본 분석만으로 알아냈군요?] […네.] [와, 당신 진짜 정체가 뭐에요? 어디 보자…한국에서 왔다구요? 도대체 어떤 연기 인생을 살아온 거에요?]그녀의 호들갑에 유명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봐도 육작가다.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육작가님’ 하고 불러버렸을 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 파트는 제가 의도한 해석이 나올 거란 생각은 전혀 안했어요. 그냥 대본대로나 잘 연기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림 속 인물’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이런 무대를 준비해 오다니···] [저희도 처음엔 몰랐습니다. 해석해 내고 나서도, 짧은 시간 내에 구현하기에는 어려운 장면이라 망설였구요. 그래도 도전해 보고 싶었던 건, 재미있게 잘 쓰인 ‘대본의 힘’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이 극중극의 바깥인 실제 아리자데 왕국에서 키신 왕자가 왜 자살을 택했는지도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일 것 같아 궁금하네요.]
대본을 칭찬하는 유명의 말에 에바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며 눈이 번쩍번쩍 빛나기 시작한다.
유명은 조금 흠칫했다.
저건…자신에게 차기작을 종용하던…육작가의 눈빛과 100% 일치한다.
[저…소, 소속사가 어딘가요? 개인 연락처라도. 저랑 대본, 대본 얘기 좀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에바, 정신차려요. 당신 지금 며칠 굶은 맹수같은 표정이라구요. 데렉은 어쩌고! 데렉 꼬시러 왔다면서!]제리의 말에 심사위원들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참가자들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전미에서 손꼽히는 각본가 중 하나인 에바에게 직접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경쟁자라니.
그리고, 조지 하우슬리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
[저는 별로였어요.] [네?] [조지, 제 정신이에요?]옆에서 에바와 나탈리가 비명을 지르자, 그는 보란듯이 한숨을 푸욱 내쉰다.
[아…미치겠네. 여기서 떨어뜨려야 하는데.] [조지, 설마 지금 저 친구를 카일리 언쇼에게 주기 싫어서 뒷공작중인 거에요?] [깎아내리자니 내 안목이 의심받을 것 같고, 태클없이 합격시키려니 아깝다, 아까워. 혹시 신유명씨 연출 경력이 있나요?] [따로 없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대본의 감춰진 의미를 알아냈다고 해도, 저 연출법은 연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시도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방식이에요. 왕의 허락 하에 한 명씩 정지상태에서 풀려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지만, 밤이 깊어갈수록 처음에는 뻑뻑하던 동작들이 부드럽게 풀려가는 과정을 보여줄 생각을 하다니. 심지어 모든 배우들이 다 그 훈련을 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을 텐데요.]페이스와 제프리가 끔찍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신유명씨는 나중에 연출을 노려봐도 좋을 것 같군요. 연출적인 시야나 감각도 풍부하고, 특히 같은 팀원들을 동기부여해서 끌고 나가는 리더십이 탁월한 것 같습니다.]그런 그에게 짐짓 눈을 치켜뜨는 나탈리.
[안 돼요. 저는 같은 배우로서 그가 연기를 계속 해주길 바란다구요. 시야나 감각은 배우에게도 커다란 재능인걸요. 지금 그가 보여주듯이요. 예선 때도 당신의 연기는 언제나 감탄스러웠지만, 오늘 노예의 연기는 특히나 몸서리칠만큼 생생해서, 이 극의 수준을 확 높인 일등공신이었어요.]유명이 그녀의 칭찬에 답례하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페이스, 제프리. 축하해요. 모두 예선 때 제가 통과시킨 배우들인데, 그 때도 잘했지만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연기가 좋아졌어요. 때로 좋은 동료를 만난다는 것은 배우의 성장에 커다란 촉매제가 되죠. 제가 데렉을 만났듯이요.]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카이의 이름을 불렀다.
[카이. 당신의 오늘 연기는…무척 감동적이었어요. 2차예선 때 아직 서툴지만 무척 반짝거리는 잠재력을 보고 당신을 선택했지만, 이렇게 빨리 개화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네요. 오늘 카이의 연기에서는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고, 잘 하고 싶어하는지가 선명히 보여서 마음이 무척 흐뭇했어요.]여신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칭찬을 쏟아내자, 카이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인다.
유명이 그런 그의 어깨를 살짝 도닥였다.
이제 마지막, 데렉 맥커디의 차례.
그가 조금 뜸을 들인다.
그러는 동안 모든 시선이 초조하게 자신에게 모이는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그는 다리를 살짝 꼬고 턱을 괴더니, 유명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에 노예의 죽음, 그리고 왕이 뭔가를 깨달은 눈빛을 했죠? 그 부분은 왜 넣은 건가요?]왕이 마지막에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이것은 원대본에서는 따로 지시되지 않았지만 살짝 추가한 내용이다.
하지만 원대본과 궤를 달리하는 해석은 아니었다.
[왕국의 밑바닥에서 고통받는 노예가 용기를 내어 바른 말을 하죠. 그 용기로 인한 죽음이 아예 헛되지는 않았다는 걸, 아리자데 왕국에도 희망의 불씨는 살아있다는 것을 잠깐이라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이 극중극이 현실을 상징하는 도구라면, 그 핍박받는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암시하고 싶었어요.]
유명의 차분하고 진지한 말.
그 말을 듣고 에바는 뭔가 영감을 얻은 듯 대본 뒤쪽에 마구 필기를 하기 시작한다.
제리가 묻는다.
[뭐해요, 에바?] [왜 저 생각을 못했을까. 마지막 부분에 왕의 눈빛이 변한다는 지문을 추가해야겠어요.] [지금 여기서 아이디어 낚고 있는 거에요?] [네. 월척이네요~]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진 사이, 나탈리가 데렉을 보며 슬쩍 묻는다.
[어때요?] […당신이 못 참고 무대 위로 올라갔던 이유를 알겠군.]그의 순순한 인정에, 나탈리는 이겼다는 듯이 살짝 짓궂게 웃었다.
그 말을 뱉은 직후, 데렉은 화면 바깥을 바라보고 말을 걸었다.
[앤드류.] [어…왜요, 데렉?]그가 갑자기 자신을 호출하는 것에 메인PD는 당황했지만, 데렉은 거침없이 말한다.
[저 노예 역, 나도 해보고 싶은데요.] […어우, 그럼요. 하셔야죠. 얼마든지요.]나탈리에 이어, 데렉도 무대 위에 올라가길 자청했다.
저 무대 위의 배우에게는 다른 배우를 부르는 마력이 있는 것일까.
앤드류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
34조 사람들 중 유명만 빠져 무대 아래에 섰다.
그 자리에 데렉이 자리하자, 조원들이 패닉에 빠진다.
[여러분은 뭔가 변형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맞출 테니까, 하던 그대로.]느긋한 음성이 파고들자, 그들은 겨우 정신을 차린다.
[아, 왕의 마지막 ‘뭔가 깨달은 듯한 눈빛’ 그건 빼고 연기 부탁합니다.]데렉의 당부와 함께, 극이 시작되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극의 초반부는 스킵한다. 페이스와 제프리가 빠르게 대사를 주고 받는 부분부터.
다행히 수없이 반복했던 연습이었다. 머리가 패닉에 빠져도 몸은 기억하고 있다.
카이도 정신을 차리고 제 몫을 해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노예의 차례가 왔을 때 유명은 깜짝 놀란다.
[저…비천한 소인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까.]저 당당한 체격의, 매력적인 마스크의 배우가 순식간에 바람이 빠진 듯 생기를 잃고 비루한 하층민이 되어버린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유명이 정말로 놀란 것은,
음슴한 말투.
‘노예의 해석이…달라졌어.’
[저는…왕자 전하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비루한 처지이지만, 자신의 비루함을 더욱 강조해 동정을 구하는 말투.
그 속에 슬쩍 교활함이 내비친다.
노예의 속셈은 알 수 없지만, 데렉의 속셈은 알 수 있었다.
원래 34조의 연극은 초반에서 중반까지 풍자극의 형식을 띠다가, 노예의 등장부터 비극으로 전환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노예까지도 정의롭지 않은 인물이 됨으로써, 이 극은 갑자기 부조리극으로 전환된다.
아무 생각이 없는 군주.
품위로 포장한 속물인 귀족.
대놓고 제 잇속만 차리는 상인.
비굴함을 가장한 음흉한 노예.
노예 하나의 연기가 바뀐 것만으로,
제대로인 사람 하나 없는, 엉망진창의 아리자데 왕국이 펼쳐졌다.
‘노예를 사주한 제3의 집단이 있었던 것일까···아니 노예 자신이 꾸민 음모일지도.
어쨌든 단숨에 다른 해석을 해낸데다, 자신의 자리가 아니던 곳에 꼭 맞는 퍼즐같이 끼어 들어간 능력···’
데렉은 처음 맞춰보는 자리인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귀신같이 말 끝을 이어 받고, 받아 넘기고 있었다.
그 뿐일까, 왕, 귀족, 상인이 얘기할 때마다 슬쩍슬쩍 끼워넣는 리액션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저 노예가 주인공이 된 양 그가 어떤 음모를 꾸밀지 기대되고 마는 것이다.
푸욱-
상인이 노예를 찔렀다.
처절한 장송곡이 들릴 것 같이 비극적이던 유명의 죽음과는 달리,
끼릭-
그는 마치 빌빌대는 벌레 한 마리처럼, 꿈틀- 꿈틀대다 죽어간다.
왕의 눈빛은 바뀌지 않는다.
바뀔 리가 없다.
노예의 죽음은 혁명을 꿈꾸던 시민의 죽음이 아닌, 자신의 이득을 탐하던 개미새끼의 죽음일 뿐이었으니, 무언가를 깨달을 리도 없다.
과연, 이 시대 최고의 배우라고 일컬어질만한, 대담한 해석과 엄청난 연기력.
유명은 모처럼 솟아오르는 경쟁심에 살짝 땀을 쥐었다.
미호가 옆에서 의견을 보탰다.
{저 녀석…상당하넹. 연기도 맛있을 것 같당, 쩝.}
데렉 맥커디는 연기를 끝낸 후 유명에게 시선을 던졌다.
어땠어?
라고 표정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
[재밌는 무대를 보니 이런 해석으로 연기해보면 어떨까 해서요.] [크, 역시 데렉 맥커디군요…] [34조의 연기 버전이 사실 작가가 정확히 의도한 해석입니다. 저는 사도를 좋아하는 편이라.]그리고 데렉이 말한다.
[34조의 무대, 같은 배우로서 상상력을 상당히 자극받는 무대였습니다. 솔직히, 오디션에서 괜찮은 연기가 나올 순 있어도 특출나게 좋은 ‘극’이 나올거라는 기대는 못했는데, 감탄했어요.]그의 말에 심사위원들 이상으로 놀란 것은 나탈리였다.
‘그가, 다른 배우의 연기를 순순히 칭찬한다고?’
데렉 맥커디는 늘 자신만만하고,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유명을 보고 데렉과 비슷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데렉이라면 뭔가 부족한 점을 짚어낼 줄 알았는데···
그의 가감없는 산뜻한 인정을 듣고 나탈리는 유명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한 가지 더 놀라웠던 것은, 데렉이 연기한 후에도 유명의 연기가 빛바래 보이지 않았다는 것.
둘 다 각각의 가치를 가진 무대로 동등한 무게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나탈리는 유명을 몹시 높이 평가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 평가도 부족한 배우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예감이 흐른다.
앤드류는 옆에 있던 수잔에게 속삭였다.
[신유명씨 띄우는 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 아닌가요?] [제 생각도 그래요, 피디님. 좀 더 뒤에서 터뜨리고 싶었지만 이 정도 되면 가 줘야죠.] [그렇죠? 흠…터뜨릴 거면 제대로 터뜨려야지.] [나탈리와 데렉, 둘 다 그의 연기에 자극받아 무대로 나온 건, 엄청난 화제가 될 거에요. 컨셉을 ‘진짜 배우는 진짜 배우를 무대 위로 소환한다’로 가져가면 어떨까요?] [배우를 소환하는 배우라. 좋은 아이디어인데요?]캐스팅보트의 포커싱이 수정되는 순간이었다.
162 40인의 합격자, 48인의 본선 진출자
데렉이 심사위원석으로 돌아가고, 이제 무대 위에는 33조와 34조가 함께 자리했다.
[도효준, 카이. 같은 극에서 왕을 맡은 두 사람입니다.]나탈리의 말.
[두 왕을 비교해 보죠. 효준의 왕은 아리자데 왕국을 뒤집을 수를 세우고 귀족과 상인의 머리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인물이에요. 반해, 카이의 왕은 왕족으로서의 품위를 갖추었을지언정 귀족과 상인의 손아귀에서 휘둘리는 허수아비 왕입니다.]효준은 카이를 힐긋 넘어다본다.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젊은 배우. 유명이 살뜰히 챙기며 숙소에 매일 데려와서 연기를 지도해주던 녀석이다.
쟤한텐 그렇게 친절하면서. 효준의 볼에 살짝 심술이 어린다.
[연기력, 무대 장악력, 표현력 그 모든 것을 볼 때 효준이 우세했지만, 극 안에서의 어우러짐, 그리고 품위와 어리석음이 어우러져 뿜어나오는 독특한 매력에 있어서는 카이도 상당히 좋았어요. 즉 기본 역량은 효준의 승리이지만, 극의 구성원으로서는 카이가 나은 부분도 있었어요.]이런 식으로 한 역할씩 비교해 나간다.
같은 역을 연기한 다른 배우와 고스란히 비교를 당하는 경험에 참가자들은 움츠러들었지만, 화면은 자극적으로 잘 빠지고 있었다.
전반적인 성적은 왕만 33조가 살짝 우세했을 뿐, 귀족과 상인은 34조가 훨씬 좋은 평을 받았고, 노예는 34조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그리고 팀장 평가.
[둘 다 잘하는 배우들입니다. 예선에서 압도적인 기대주들이었어요. 하지만 경험과 리더십의 유무가 어느 정도의 결과 차이를 보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였습니다.]총평을 마치고 내려온 효준은,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로 무대 밖으로 빠져 나왔다.
‘분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들의 연기를 지켜 보았다.
대본의 해석이 신박했던 것은 인정한다. 자신도 뭔가 묘한 대본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런 의도가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알지 못했다.
연기는…그래, 연기도 인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