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0
“이기적인 거 알아. 억지이고 어리광인 것도.”
“난 자기에게 뭐야?”
“…you, love of my life.”
절박한 고백뒤로 선율이 깔린다.
…Love of my life Can’t you see
내 생의 사랑이여, 모르겠나요.
Bring it back, bring it back
되가져와줘 되가져와줘
Don’t take it away from me
그걸 내게서 가져가지 말아요
Because you don’t know what it means to me
당신은 그게 내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잖아요.
나무랄 데 없는 구성, 가사에서 따 와서 더욱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대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대 위에 살아있는 프레디.
그 때부터 재필은 더 이상 ‘평가’를 할 수 없었다. 한 명의 관객이 되고 말았다.
*
1조의 공연이 끝났다.
후반부, 과하지 않으면서도 프레디 특유의 몸짓과 행동이 녹아있는 연기는 그 자체로도 볼거리었지만,
15분을 끈덕지게,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몰아온 프레디의 감정선에 비할 수는 없었다.
메리에게 매달리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여학생이 없었고,
짐을 만나 드디어 안착했을 때는 다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초반부와 상관을 이루는 마지막 독백에선 모두가 눈을 붉혔다.
공연이 끝나고, 엔딩 bgm이 끝까지 잦아드는 순간까지 숨도 못쉬던 관객들은,
그리고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작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박수는 점점 더 커졌고,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박수의 한 가운데서 유명은 몸을 떨었다.
15년만에 처음 받아보는, 온전히 그에게 떨어지는 박수.
비록 관객은 얼마 되지 않지만 진심으로 경탄해 손바닥이 빨개질 때까지 맞부딪히는 박수는, 타격음마다 척추가 진동할만큼 몸을 관통했다.
‘이게, 나의 연기···’
타인이 몸을 점령했다 빠져나간 듯한 생경한 감각.
그 감각은 허탈한 가운데도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내 손, 내 발, 내 시선인데···’
잠깐동안은 세상의 색깔이 다르게 보였다.
지난 생, 어떤 역이든 몰입하려 애쓰며 살았었지만, 관객의 시선이라는 것이 이미 몰입한 배우에겐 더한 몰입을 강요한다는 것은 알지 못했었다.
유명은 어색하게 새로 깨어난 것 같은 몸을 움직여,
허리를 숙였다.
이번 생의 첫 무대인사 였다.
*
재필이 앞쪽으로 걸어나왔다. 일어날 때 살짝 무릎이 휘청하는 듯도 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자세한 코멘트는 중간고사 이후부터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강의실을 나가려던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교수로서 공정해야 하지만, 관객으로서 찬사를 받아 마땅한 작품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네요.”
그가 유명을 똑바로 쳐다보며, 목례했다.
“지금 이 순간 올해 이 과목을 개설한 과거의 나를 찬양하고 싶군요.
내 인생 최고의 메소드 연기를 보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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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좋아하죠?
교수가 나가고 난 뒤에도 강의실은 한참 떠들썩했다.
“와 피도 눈물도 없다는 이재필 교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이야.”
“근데 진짜 쩔긴 했어. 나 중간부터 숨도 못쉬고 봄.”
“1조 학점은 따논 당상이네. 류신이가 캐리할 줄 알았더니 뉴페이스가···”
그 말을 하던 학생이 힐끔 류신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묵묵히 가발을 벗고 분장을 지우고 있었다.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이 말을 붙였다.
“너네 조 진짜 레전드 찍었다.
비중이 적어서 그렇지 너도 정말 잘했어. 프레디랑 케미가 아주 그냥···”
칭찬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에 류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명에게 다가갔다.
“훌륭했어요. 많이 배웠습니다.”
유명에게 축하의 한 마디를 건네는 것, 그것이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
돌아선 그는 부서질 듯 이를 악물었다..
그는 일곱 살에 아역배우로 데뷔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촬영장에서 스쳐지나는 명배우들을 보면 언젠가는 뛰어넘겠다는 전의를 활활 태웠던 패기 넘치는 꼬마였다.
그런 그는 십수편의 작품 후, 불과 15세에 활동을 중단했다
‘연기의 베이스를 제대로 쌓지 않으면 언젠가는 무너진다.’
어린아이답지 않은 성찰이었다.
그로부터 10년.
연기학원. 유명 연기 선생님의 사사. 고등학교 연극부 부장을 거쳐 오디우스까지. 또래에서 열정이건 실력이건 그에게 비견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천재라고 추켜세웠지만 자신만은 안다.
그의 실력은 타고난 보석이라기보단, 돌덩이를 깎아내고 수없이 연마한 노력의 산물인 것을.
하지만 오늘 그는 오랜만에 10년 전 꼬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발버둥쳐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격의 차이.
연기만 바라보고 매진해온 세월이 허망할만큼 쉽게 자신을 뛰어넘은 ‘천재’
부럽고 분한 마음에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대단한 연기었어. 그런 것이 천재라면 나는 그 이상의 노력으로 뛰어넘는다..!’
밟는다고 밟힐 근성이라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류신의 눈이 시퍼렇게 타올랐다.
*
[유명아. 아르바이트 할래?]민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디자이너 친구가 런칭하는 개인 브랜드에서 f/w 시즌 라인업 촬영을 한다는 것이다.
“저 요즘 매일 연극연습 있어요.”
[다음 주 아무 때나 비는 시간 없어? 서너 시간이면 되는데.]“다음 주 중간고산데.”
[앗 그럼 안되겠네.]“아뇨, 그래서 시간은 돼요.”
다행히 중간고사 한 주 만큼은 연극 연습이 없다.
시험은? F만 안 받으면 된다. 졸업해서 취업할 생각도 없으니.
“그런데 얼굴은 나오면 안되는데.”
[응? 왜?]“저, 연기하잖아요.”
[그러면 얼굴을 알리면 더 좋은 거 아냐?]“모델출신 배우라는 딱지는 달기 싫어서요.”
[…알았어. 어차피 여성 브랜드라 남자 모델은 병풍으로 쓸 거니까 얼굴 안나오게 해달라고 할게.]민희는 조금 감탄했다.
말하는 건 유들유들해 보이는 녀석이, 생각 외로 진지한 구석이 있다.
그렇게 시험이 없는 목요일로 스케줄을 잡고 당일.
유명은 학교 앞에서 민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미니카같이 생긴 파란 색 경차 한대가 달려온다. 티코. 2010년에 단종됐던 국민차다.
달칵-
유명이 차에 올라타자, 선글라스를 쓴 민희가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오~ 오너 드라이버. 가게는 어쩌구요?”
“닫고 왔어. 베프 일이잖아.”
그 디자이너란 사람과 민희는 무척 친한 모양.
“근데 왜 정식 모델을 안 쓴대요?”
“돈 없대. 계획했던 예산은 좋은 원단 쓴다고 다 꼴아박았다네. 여자 모델도 무슨 무명신인이래. 최저가 라인업에서 골랐다던데?”
“헉. 제 알바비는 나와요?”
“많이는 못 주고, 십만원.”